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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7화 (7/424)

00007  지랄이 풍년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기욱 선배와 만나는 멤버는 학교에서 노닥거리는 사인방과 구성원이 조금 다르다. 태균이와 정수는 우리와 같이 어울리기에는 너무 순수하다. 아니, 그보다는 기욱 선배와 코드가 잘 맞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정수는 기욱 선배와 여자 문제(내가 볼 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둘은 아주 서로를 원수로 안다.)로 완전히 틀어졌고, 태균이는 무식하게 술을 먹이는 기욱 선배 때문에 기겁을 하고 멀리한다. 그러니 아쉬워도 따로 노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사인방이 만나면 노닥거리고, 기욱 선배와 어울리면 흥청거리고, 또 다른 친구는 만나서 밤새도록 게임만 하고 헤어진다. 여행을 같이 가면 좋은 친구가 있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좋은 맛집을 찾으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친구도 있다. 그들이 모두 함께 친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서로 친하지 않다고 한 쪽을 배제할 필요도 없다. 게임을 못하는 친구에게 게임을 강요할 수도 없고, 술을 못 마시는 친구에게 술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우정은 이미 우정이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려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 집착이 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녀석과  내 친구가 친하다고 해서 ‘넌 이제부터 내 친구가 아니야’라고 하는 것은 초딩들의 우정방식이다. 최소한 성인이 되었으면 흑백논리로 우정을 바라보면 안 된다. 나와 다름을 나와 틀리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의 개성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이 친구는 이래서 싫고, 저 친구는 저래서 싫다.’는 것이 아니라, ‘이 친구는 이래서 좋고, 저 친구는 이래서 좋다.’는 생각으로 친구를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냥 친구가 가진 모습 그대를 받아주는 것이 진짜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기욱이 선배와 약속했던 불타는 토요일이 왔다. 만나기 전날 밤 기욱 선배는 우리에게 드레스 코드를 지정해줬다. 별다른 것은 없다. 검정색 양복에 화이트 톤의 와이셔츠, 그리고 까만 넥타이 이게 바로 오늘의 드레스 코드다. 꼭 장례식장 조문 의상 같았다. 무슨 의미를 가지고 그렇게 입고 오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오늘의 특별 게스트(?) 지정해준 말은 웬만하면 따라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삐진다.

논현동 앞에서 만나 가볍게 입가심을 하기 위해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당연한 이야기다. 재형이와 현우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나와 형진이 그리고 기욱 선배는 키도 키지만 몸무게가 80kg를 넘는 체형이다. 그러다보니 검정색 양복을 맞춰 입은 우리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건달(?) 패션을 한 우리가 들어오자 종업원은 황급히 다가와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아이씨. 쪽팔리게 이게 뭐야. 형 오늘 뭐 하려고 드레스 코드까지 요구한거야?”

역시 까칠한 현우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는지 오랜만에 만난 기욱 선배에게 짜증을 부렸다. 기욱이 선배에게 할 말은 제대로 하는 것이 현우다.

“현우야. 형을 봤으면 공손히 인사부터 못하고 어디 신경질이야?”

“지랄. 공손히 인사?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 아냐?”

저 둘은 톰과 제리 같은 사이다. 누가 톰이고 누가 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면 항상 저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은근히 죽이 잘 맞는다. 그래서 그런지 기욱 선배는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잠은 거의 현우 집에서 자고 간다. 그러면서도 항상 똑같은 이유를 댄다. 다음날 이대 탐방을 한다나 뭐래나.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늘 모인 인간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였다. 내가 한 달 전부터 신입 들어온다고 그렇게 자랑 질을 했으니 궁금할 법도 하다. 내 친구들은 정말 나의 안타까운 회사 생활을 동정하면서도,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는 부러워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친구들과 바꿔서 회사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야! 궁금하니까 빨리 털어놔봐. 여자야 남자야?”

“젠장.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여자야. 여자! 아, 좀 똘똘한 머슴 스타일의 남자 후배가 들어오기를 그렇게 기도했는데, 내 팔자는 도대체 왜 이럴까?”

“이쁘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친구의 고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미모다. 여자가 들어왔으니 일단 얼굴이 예쁜지가 망할 친구 놈들의 관심사다. 내가 고생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그동안 이놈들을 친구라고 믿고 하소연한 내가 바보다.

“예쁜데, 하는 짓이 여우야. 좀 얌체 같아. 후배가 예쁘면 뭐해? 일을 잘해야지.”

“오~. 진짜 예뻐? 똥수(그래 내 별명 많다. 말똥, 마광수, 똥수 등등)가 예쁘다고 하면 진짜 예쁜 건데. 키는 커? 날씬해? 가슴은 어때?”

“저 새끼는 전생에 무슨 복을 타고 났나. 여직원들이 하나같이 미인들이야. 부럽다 부러워.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전부 난쟁이 똥자루 만하거나, 옥동자 여동생 같은데. 신입이면 나이도 어리겠네. 소개 좀 시켜주라. 응?”

아 정말 징하고 나쁜 놈들. 이럴 땐 화제를 돌리는 게 최고다.

“그나저나 형. 오늘 진짜 어딜 가려고 양복까지 입고 나오래?”

아까 누가 물었었는데, 현우와 기욱 선배가 투닥거리는 바람에 이유를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최소한 우리가 뭘 위해 이 옷을 입고 왔는지는 알아야 뭐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솔직히 크게 궁금하지는 않다. 워낙 엉뚱한 일을 잘 벌이는 기욱 선배라서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우하하하. 기대하시라. 오늘의 컨셉은 바로바로 어둠의 뒷골목을 주름 잡는 건달.”

“아 뭐야! 어디 싸우러 가게? 어디 가서 얻어맞고 오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야야. 가자. 가. 에이 괜히 기대 했잖아. 하여간 기욱이 형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그냥 웃자고 한 농담인데, 까칠한 현우는 정말 당장이라도 집에 갈 기세다. 하여간 저놈의 까칠한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가 않는다. 그래도 형인데 그냥 좀 맞춰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모양이다.

“워. 워. 잠깐. 농담이야 농담. Everybody sit down, please. 오늘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요거다. 짜잔. 보이느냐 이 빛나는 금빛 법인카드가?”

오호라. 기욱 선배의 손에 든 것은 바로 법인카드다. 나 같은 말단 사원은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꿈의 카드다. 영업 사원이 아니다보니, 기름 값은 내가 계산하고 영수증을 모아 제출하면 한 달에 한번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그냥 법인카드라도 한 장 줬으면 좋겠는데, 절대 그런 것 없다. 기욱 선배의 손에 든 저 카드가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에이. 뭐야 법인 카드잖아. 형 직급에 법인카드면 남은 한도가 한 30만 원쯤?”

형진이 녀석 회계사가 되더니 많이 아는구나. 나는 법인카드만 보고 마치 무슨 MI6에서 007에게 지급하는 한도 무제한의 그런 카드를 상상했는데 역시 현실은 상상과 많이 다르다. 그래도 30만원이 어디야? 지금 우리를 위해 그 돈을 풀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공짜는 언제든지 반가운 법이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형이 법인 카드로 30만 원쯤 쏜다는 이야기 아니야? 그럼 우리는 뭐 10만원씩 각출하고, 그럼 70만원이네? 그 정도면 오늘 적당히 잘 놀다 가겠네. 잘 먹을게. 형.”

재형이 녀석. 이런 거에는 계산이 빠르다. 그나저나 확실히 직장인이 되면서 씀씀이가 커지긴 했다. 여기서 연봉이 제일 적은 나도 성과급 포함하면 4000만원이 넘으니 학생 때와는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어허. 노노노. 내가 고작 30만원 쏘려고 공사다망한 너희들을 부른 게 아니란다. 아그들아. 푸하하하. 좀 더 상상력을 키워봐. 실망이야. 소심한 것들.”

그러고는 뭔가 거만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를 향해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

“뭐... 뭐야? 오십? 오! 오늘 기욱이 형. 좀 무리하는 거 아냐? 뭐 그럼 100만원 맞춰서 단란이나 가자. 어때?”

우리가 이렇게 호응을 해줬건만, 그래도 기욱 선배의 거만한 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에이 설마!! 우리 표정이 서서히 변하자 그제야 만족했는지 히죽 웃기 시작했다. 우리를 무슨 저 아래 코 흘리며 사탕이나 빠는 아이들 취급하는 눈빛이었다.

“형!”

“어이쿠. 깜짝이야. 왜 임마?”

형진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뭐 문제 있는 돈 아냐? 형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형 아직 과장도 아니잖아. 아무리 대기업 과장이라도 한 달에 500만원은 과해. 솔직히 부는 게 어때??”

“그런 거 아냐. 잘 들어봐. 우리 팀 앞으로 법인카드가 한 장 나와. 분기별로 천만 원 정도 나와. 다 쓰든 아니든 그 금액은 사라지는 거지. 여기서 중요한 건 돈이 많이 남으면 다음해 예산에서 법인카드 한도액이 줄어들어. 그러니 꾸역꾸역 다 써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정해져있어. 그래서 생각한 게 분기 말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카드를 쓰자는 거였어. 이번이 내 차례고. 나 혼자 안 쓴다고 버티면 나만 왕따 되는 거야. 공동책임 알지?”

“우와. 그럼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거야?”

“그건 아니고. 우리 팀이 15명인데 4/4분기는 회식이 워낙 많아서 우리끼리 다 쓸 수 있으니깐 결국 일 년에 3명에게 기회가 오거든. 음, 계산해보면 5년에 한번 정도 기회가 오는 셈이네.”

결국 우리는 회계사인 형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말 괜찮을 것 맞는지 확인하려는 행동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형진이가 우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오예~”

우리는 그렇게 우렁찬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가게에 와있던 손님들이 우리를 일제히 쳐다봤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5만원도 50만원도 아닌, 무려 500만원이다.

“형! 형님! 그럼 우리 텐프로 가는 거야요?”

현우 자식. 그렇게 까칠하게 굴더니 기욱 형님의 엄청난 성은(?)에 갑자기 공손해졌다. 저 녀석을 욕할 일은 아니다. 현우의 말에 내 귀도 솔깃해졌다. 텐프로. 말로만 들어봤지 한 번도 못 가봤다. 나도 오늘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구나.

“그럼. 우리 오늘 상위 10%의 아가씨들을 만나는 거야?”

나의 호기로운 질문에 기욱 선배와 재형이 그리고 형진이 까지 키득거렸다. 뭐야? 뭔가 내가 실수를 했나보다. 그래도 현우는 나와 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 순박한 중생들아. 오늘 형님이 텐트로가 뭔지 제대로 설명해주마.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 잘 들어.”

기욱 선배의 설명을 듣자면 이렇다. 룸살롱에는 테이블 차지라는 게 있다. 이 테이블 차지를 업소와 아가씨들이 나눠 가지는데, 텐프로는 만약 테이블 차지가 10만원이라면 업소가 10%인 만원을 가져가고 아가씨가 나머지 9만원을 가져가는 방식의 업소라고 한다. 2차가 없고 대신 능력만 된다면 한 번에 두세 개의 룸도 들어갈 수 있어, 따로 받는 팁까지 생각한다면 몸을 팔지 않더라도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다. 어쨌든 2차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때문에 외모가 반반한 대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돈이 필요하면 쉽게 찾아온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나름 사실적인 직장인 모습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소개글에서 거창하게 소시민의 모습이라고 해서 500만원은 너무 과한가 고민입니다. 그래도 직장생활 하다보면 금액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경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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