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갑자기 시연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이 먹고 노망이 났나보다. 아직 핏덩어리 같은 20살짜리 여아가 갑자기 보고 싶다니 안 될 일이다.
Rrrr
모르는 번호다. 협력회사에서 온 전화일지도 모른다. 이럴 땐 직장인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네 마케팅팀 마동수 주임입니다.”
“선생님~. 저 시연이에요.”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전화가 오는지 모르겠다.
“어. 윤시연. 넌 그저께 어떻게 된 거야? 선생님이 너 안고 다니느라 허리가 부러질 뻔했다 이 녀석아.”
내가 말하고도 내가 만족스럽다. 일단. 윤시연이라고 성과 이름을 같이 불렀다. ‘시연아’라고 부르는 것과 ‘윤시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리는 대상은 같지만 어감이 완전히 다르다. 성을 같이 부름으로 해서 좀 더 공적인 관계임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 앞으로 시연이와 대화를 할 때는 ‘내가’, ‘나는’과 같은 대명사 대신에 꼭 ‘선생님’이라는 명사를 이용할 생각이다. 그렇게 계속적으로 나는 너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주입할 생각이다. 그리고 ‘허리가 부러질 뻔 했다 이 녀석아’라고 말하면서 너는 내게 여인이 아니라 아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구질구질하게 단어 사용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말하는 이런 구차스럽고 한심한 행동에 부끄러워졌다. 아직 아무것도 없다. 시연이가 내게 ‘선생님 때문에 이 학교를 왔다’는 말 말고는 내게 어떤 행동도 한 적이 없다. 물론 시연이 어머니 덕분에 상황은 파악하게 됐지만 김칫국물 먼저 마시는 사람처럼 이렇게 행동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결론은 ‘해야 한다’였다. 이상한 말이 나오기 전에 원천봉쇄하는 게 서로에게 편한 일이다.
“히잉. 선생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원래 어제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술을 그렇게 마셔본 게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힘이 들어서 연락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그러게. 뭔 술을 그렇게 마셨어?”
“제가 어제 선생님을 만나 무지 반가웠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저는 봐주지도 않고 계속 다른 사람들하고만 놀길래 옆에서 선생님이 술 마실 때마다 따라 마셨는데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안나요.”
“선생님은 정말 네가 온 줄 몰랐어. 분위기가 좀 많이 웃겼잖아. 옆에 왔으면 아는 척하지 왜 바보같이 혼자 술을 마셨어?”
“몰라요. 계속 선생님만 쳐다봤는데 선생님은 봐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취해서 쓰러진 거 선생님이 데려와주셨다면서요? 헤헤. 고마워요. 역시 제겐 선생님밖에 없어요.”
가만 들어보면 우리 회사 신입인 강소현과 말투가 좀 비슷하다. 그래도 강소현처럼 말이 늘어지지 않아서 듣기는 편했다. 강소현 그 기집애는 대학 신입생 때나 쓰는 말투를 지금까지 쓴다는 말이 된다. 아무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년이다.
“앞으로 또 그렇게 술 마시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넹. 지금 당장은 술만 봐도 토할 것 같아요. 히힛. 앞으로도 절대 취할 만큼 술을 마시지는 않을게요. 저도 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냥 선생님이 잘 드시기에 저도 괜찮은 줄 알았죠. 선생님이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깐 절대 많이 안 마실게요.”
아니 여기서 왜 날 끌어 들인담.
“선생님은 술 마시는 것 자체가 싫다는 게 아니라. 술을 마시는 것은 관계없지만 자기 주량도 모르고 많이 마셔서 뭐라고 하는 거야. 시연이도 이제 성인이니깐 자기 행동에 책임질 때가 된 거야. 선생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정말 선생님이 된 것처럼 시연이의 행동을 나무랐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오늘 저 밥 사주시면 안 되나요?”
“오늘?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이 오늘 약속이 있는데. 미리 얘기했으면 좋았을 것을.”
약속? 그런 거 없다. 난 참 지능적으로 거절을 잘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책임전가하며 거절하는 방법이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제가 무작정 사달라고 했으니 제가 오히려 죄송하죠. 그런데요. 선생님. 누구랑 약속 있는 거예요?”
“친구”
“친구 누구요?”
“원 녀석도. 선생님이 누구라고 하면 알기는 하고?”
“그럼요. 현우 선배님. 아니지 오빠라고 하라고 하셨는데. 현우 오빠, 태균이 오빠, 정수 오빠, 재형 오빠, 형진이 오빠. 오빠들이 그러는데요 선생님은 놀 사람이 자기들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아. 이것들이 정말. 어린 애 데리고 무슨 짓을 했나 모르겠다. 어제 시연이가 왜 그렇게 술이 취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순진한 애 붙잡아 놓고 술 먹이면서 계속 뭔가를 물어 봤을 거다. 착한 시연이는 주는 술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다 마셨을 테고.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몇 살 차인데 오빠라니. 아저씨면 모를까. 하여간 그놈의 오빠소리 어지간히 좋아한다.
“그건 선생님 친구들이 시연이에게 장난을 친 거지. 선생님 고향 친구들도 있고, 사진 클럽 친구들도 있고 아무튼 많아요. 그리고 이건 선생님 사생활이니깐 시연이가 물어봐도 이제 대답 안 할 거야. 선생님이 예전에 그랬지? 성인이 되면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시연이는 똑똑하니깐 무슨 말인지 이해 할 거야. 그렇지?”
더 이상 깊게 들어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이쯤에서 끊어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직 내게 아이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었으니 성인답게 행동해야 한다며 선생님다운 충고를 했다.
“네 죄송해요. 그런데요. 선생님. 이제 선생님도 제 선배잖아요. 선생님 친구 분들에게도 오빠라고 부르는데, 선생님도 제가 오빠라고 부르면 안 돼요?”
“땍. 선생님은 선생님일 뿐이다. 그냥 계속 선생님이라고 불러.”
당연히 안 된다. 나는 ‘오빠’라는 호칭이 싫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말에 그런 말에 혹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쯤? 초딩시절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여동생이 있었다. 이름이 연희였나? 아무튼 그 아이가 친구를 정말 많이 따랐는데, 보면 항상 ‘오빠, 오빠’하며 졸졸 따라다녔었어. 친구야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고 귀찮아했지만 나는 그게 정말 부러웠다. 매일같이 시커먼 동생 녀석과 흙바닥을 뒹굴던 나와 비교하면 축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탕도 사주고, 친구가 귀찮다고 함부로 굴면 내가 놀아주고 그랬었다. 단지 ‘오빠’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한동안 공을 들이고 나서야 겨우 ‘똥수(어려서 아직 혀가 짧았다) 오빠, 똥수 오빠’ 하며 불러줬다. 그때의 감격이란?
내가 해병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뒤 기욱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열심히 여체를 탐닉하고 있었을 때, 나와 관계를 가졌던 대부분의 여자가 나를 보고 ‘오빠’ 혹은 ‘자기’라고 불렀었다. 안마 시술소나 방석집에서 만났던 여자들뿐만 아니라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만났던 여자들도 항상 ‘오빠’ 아니면 ‘자기’였다. 내 배 밑에 깔려 열심히 신음소리를 낼 때도 ‘오빠!, 오빠!’하며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 듣다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지금 섹스를 하고 있는 여자가 나를 생각하며 ‘오빠’라고 부르는지, 헤어진 아니면 지금 사귀고 있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며 ‘오빠’라고 부르는지, 그것도 아니면 예전부터 다른 남자들이 그렇게 하면 좋아하니깐 본능적으로 ‘오빠’라고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바람둥이라서 호칭이 헷갈릴까봐 편의상 모든 남자를 ‘오빠’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들도 진짜 바람둥이는 호칭을 부를 때 절대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다. ‘애기야’ 또는 ‘이쁜아’ 이런 식으로 호칭을 통일해 혹시 모를 바람의 증거를 은폐한다. 나도 놀았던 입장이라 누구를 비난할 입장은 아니지만, 괜히 생각이 그렇게 꼬여서 한 때는 ‘오빠’라고 부르는 모든 여자가 바람둥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자는 그런 영악한 생각으로 자기 애인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내가 놀던 입장이니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 친구와 사귀면 절대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반드시 ‘동수씨’라고 부르게 했고 나도 항상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줬다.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보면,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후략 』
애인을 부르는 수없이 많은 달달한 말이 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담은 말은 결국 이름이다. ‘동수씨’라고 불러주면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그녀 또한 온전히 나의 소유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온전하게 내보였을 때 상대의 단점이 보이고, 그것이 서로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라면 쿨하게 헤어지면 된다. 대신 모든 것을 완전하게 내보였을 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수 있다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생긴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다.
친구들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단지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언어촉수가 발달해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 대서 과할 정도로 예민하게 잘 캐치해서 앞에서와 같은 까칠한 개똥철학이 탄생했다는 말이었다.
“네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를게요. 대신 다음에는 꼭 밥 사주셔야 해요!”
“그래. 꼭 그렇게 할게. 선생님 이제 곧 나가봐야 하니깐 이만 끊자.”
내가 나갈 곳? 그런 곳 없다. 화장실이라면 모를까.
“네 선생님. 그럼 잘 노세요.”
마지막에 전화 끊는 목소리에 힘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시연이의 똘망똘망한 목소리를 들으니깐 나는 오히려 힘이 난다. 괜히 전화가 끊기 싫어졌지만 그래도 끊었다.
◉ 시연이 집
“에이. 쪽팔린다고 전화를 미루는 게 아니었어. 어제 전화를 했어야 했어. 바보바보.”
시연이는 동수와의 전화가 끝나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왜 그래 시연아? 선생님 바쁘데?”
“응. 엄마. 오늘 약속 있다고 하셔.”
“그래? 애인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친구들과 만나는 건가?”
“엄마!”
“아이쿠 깜짝이야. 왜 이것아! 엄마 애 떨어질 뻔 했다. 좀 조용히 말해”
“엄마가 우리 선생님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그냥 슬쩍 물어봤지.”
“어떻게?”
시연이는 엄마 앞에 바싹 고개를 드밀며 물었다.
“그냥 주말인데 애인하고 데이트 하겠네요 하며 물었지”
“그랬더니?”
“애인 없다고 하더라. 그게 다야.”
“그래 그것 말고 더 이야기 한 건 없어?”
“그래. 이것아 그게 다야.”
“흠. 이상한데?”
“왜? 뭐가 이상한데? 너의 그 잘나신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디?”
노 여사(시연의 엄마, 노주영)는 자신을 째려보는 시영의 눈빛에 속으로 ‘움찔’했지만 티내지 않고 딸에게 계속 질문했다. 자신의 딸은 중학생 때부터 마동수라는 과외선생만 바라보고 살아온 바보였다. 과외선생에 대한 이야기라면 옆에서 천둥번개가 몰아쳐도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아니 그냥. 날 아직도 중학생 꼬맹이로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조금 애교를 부려보기도 했는데 왠지 단단한 벽하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그냥 느낌이 그랬어. 느낌이.”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다. 노 여사 자신이 아는 마동수 선생이라면 어린 아이가 좋다고 달려든다고 냉큼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믿음직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딸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면 우리 딸 마음 고생할 텐데. 그러기만 해봐. 나중에 사위되면 열 배로 괴롭혀 줄 테니깐.”
딸이 풀이 죽어 제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노 여사는 그렇게 중얼 그렀다.
◉ 동수의 집
“헉. 뭐지? 갑자기 왜 이렇게 한기가 돌지. 으으으. 팔뚝에 소름이 다 돋았네.”
============================ 작품 후기 ============================
제가 좋아하는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를 인용했습니다. 요즘 저작권 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혹시 이 작품도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생길까요? 문제가 된다고 하시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