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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7화 (17/424)

00017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 정말. 나 닭대가리인가 봐. 대체 복권을 어디다 뒀지? 진짜 기억이 안 나네.”

부모님을 고향에 내려 보내고 나서야 복권생각에 미쳤던 나는 지갑과 양복 주머니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심히 뒤져봤다. 그래도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복권에 의미부여를 했다면 기억하기 쉬웠겠지만, 시연이의 말을 듣고 그냥 장난처럼 구입해서 그런지 술 먹고 필름이 끊긴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에잇.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담배나 피워야겠다. 어라 담배는 또 어디갔지? 나이가 들긴 들었나? 요즘 들어 자꾸 깜박깜박하네.”

담배를 사러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차안이라도 뒤져볼 생각으로 자동차 키도 함께 챙겼다.

“삐빅”

차 안으로 기어들어가 콘솔박스를 열어보니 역시나 담배는 거기 있었다. 그런데 담뱃갑 밑에 복권도 같이 있었다. 일타이피다. 조짐이 괜찮은데? 담배와 복권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 나는 컴퓨터부터 켰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컴퓨터가 부팅되면서 들리는 하드 돌아가는 소리다, 작가의 변명: 윈도우가 시작되는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의성어, 의태어가 제일 어렵습니다.)

윈도우 화면이 열리자 인터넷 창부터 열었다.

“로. 또.”

검색창에 로또라고 치자 로또를 관리하는 회사의 주소가 제일 위에 링크되었다. 주소를 클릭하고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보자. 몇 회였지? 음. XXX회 여기 있다. 제발 3등이라도 당첨되라.”

복권에 적힌 회차를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창을 열었다. 주르륵 숫자가 뜨고 당첨금액이 표시되었다. 1등은 단 1명이었고, 당금 금액은 무려 150억 원이었다. 와우. 누군지 몰라도 대박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복권과 비교해보기 위해 숫자를 확인해 나갔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1등은커녕 당첨번호 중에 ‘4’자가 들어간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

“에이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슨 일확천금이냐. 시연이 덕분에 잠깐 좋은 꿈을 꾼 거지.”

복권을 구겨버리고, 왠지 시연이에게 심술을 부리고 싶어 문자를 한 통 날렸다.

- 복권. ‘꽝’이었다. 다행히 너랑 결혼할 일은 없겠다.

“띠링”

- 히잉ㅠ 안타까워요. 실망하셨죠? 아쉬우면 저랑 결혼해요. 제가 복권이에요^^

헉. 농담 삼아 던진 말을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이럴 땐 진지하게 나가면 곤란하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은 내 입장에서 사양이다.

- 로또 1등 됐으면 정말 청혼하려고 했는데 아쉽. 잘 자라.

“띠링”

- 네. 선생님! 좋은 꿈꾸세요!

문자 답변이 의외로 깔끔했다. 이런 답변을 기대하고 보내긴 했지만 혹시 다른 답변이 올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던 내가 다 민망했다. 깔끔하게 구는 시연이가 괜히 마음에 들었다.

괜한 기대를 한 덕분인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나 일확천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계속 되는 찜찜함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뭐지?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그것 참 이상하네. 내가 뭔가를 자꾸 잊어버린 것 같단 말이지.”

머릿속이 안개 속처럼 뽀얗게 변해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계속 나를 귀찮게 했다.

“내가 복권을 사러갔어. 숫자 하나를 제대로 못 들어서 다섯 개의 숫자에 40, 41, 42, 43, 45, 46, 47, 48, 49 이렇게 아홉 개의 숫자를 각각 넣고, 마지막 하나는 그냥 자동으로 선택해서 총 만원을 주고 나왔지. 아 자동번호!”

찜찜함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았다. 아까 숫자 ‘4’가 들어간 번호가 당첨번호 중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냥 구겨서 바닥에 던져버렸었다. 그게 왜 지금 생각났는지 나도 참 바보 같다. 바닥에 떨어진 구겨진 복권을 다시 집어 들고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는 여전히 아까 열어둔 그 화면을 표시하고 있었다.

“보자. X, X, X, X, X, X. 헉. 다시 맞춰 보자. 억. 맞다. 다 맞다. 으악!”

천원을 거슬러 받기 귀찮아서 자동으로 하나를 더 선택했는데 그게 1등으로 당첨됐다. 나는 내 목소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고 음역대의 소리를 내며 만세를 불렀다. 아 정말. 뭔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숫자를 다시 맞춰봤다. 맞다. 그래서 또다시 맞춰봤다. 그런데 또 맞다. 혹시나 싶어 회차를 다시 확인해봤다. 그런데 그것도 맞다. 정말 1등이다. 150억. 세금을 때고도 무려 100억. 맞나? 복권은 세금을 얼마나 때지?

인터넷을 복권 당첨 시 납부하는 세금을 확인해봤다.

“당첨금이 3억 이하일 경우 22%, 3억 이상일 경우는 33%? 뭐지? 그럼 3억이면? 금융권이 이렇게 허술할 리가 없다. ‘이하’와 ‘이상’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놈의 정보를 믿을 수는 없지.”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저런 실수를 발견하는 것을 보니 나도 어지간하다 싶었다.

“여기 있네. 보자. 당첨금이 3억 이하일 경우는 22%, 당첨금이 3억을 초과할 경우는 33%. 그렇지. 여긴 정확하게 나왔네. 단, 3억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한 금액에만 33%를 부과하고 나머지 3억에는 22%의 세금이 부과된다. 오. 역시 깔끔하게 설명이 되어있네.”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계산이 될 리가 없다. 소수점까지 내려갈 텐데. 나는 계산기가 아니다. 윈도우키를 누르고 계산기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음. 어떻게 계산해야하지. (3 X 0.78) + (147 X 0.67) 이렇게 계산하면 되는 건가? 백억 팔천 삼백만원. 헉. 이거 제대로 계산한거 맞아? 백억 팔천 삼백만원. 이거 꿈 아니지? 백억 팔천 삼백만원. 백억 팔천 삼백만원. 백억 팔천 삼백만원.”

나는 미친놈처럼 ‘백억 팔천 삼백만원’이라는 숫자를 계속 중얼거렸다. 머리는 이미 하얗게 비워졌다. 지금은 딱 하나만 생각났다. 백억. 뒤에 따라붙는 숫자는 귀찮으니깐 생략하고 백억! 순식간에 팔천 삼백만원이 우수리 신세가 돼버렸다.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열심히 저축하고 투자해서 2억을 모았는데, 8천 3백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략해버리는 내가 정상적인 것 같지가 않았다. 무서워졌다. 미친놈처럼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잠금장치는 정상적으로 잘 작동됐다.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걸쇠를 걸고 나서야 마음이 안정됐다.

“동수야. 진정하자. 진정해. 당첨은 이미 됐고, 내가 어떻게 살지를 잘 생각해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의식중에 8천 3백만 원을 생략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을 푼돈처럼 여기는 내 모습에 경계심이 들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다 보면 돈 백억도 순식간에 날아갈지 모른다. 일단 가족회의를 할까? 아니다. 우리 가족은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살았고,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았다. 그것만 해도 행운이었다. 알뜰하게 살았지만 인색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은 돈의 소중함은 알았지만 돈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괜히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이것은 나 혼자 감당하면 된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가족 중에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행운에 지금처럼 알뜰하게 살아왔던 삶을 허무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좀 전까지 8천 3백만 원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우선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직접적이지 않고도 함께 부유함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처럼 건강검진을 받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선물을 나누었던 일들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 방향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니 천천히 생각해보면 된다.

다음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이집은 외지기도 해서 불안하다. 큰 도로에 있는 20평 정도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면 그런 곳은 방범도 잘되어 있으니 일단은 안심할 수 있다. 원래 이사를 생각하고 있었고, 구입하지 않고 전세로 들어가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모르니 이사는 당첨금을 수령하기 전에 완료해야 한다. 무조건 이사를 마무리하고 그 다음에 당첨금을 수령해야겠다.

그 다음은 회사에 사표를 낸다. 웬만하면 다니는 것이 좋겠지만 든든하게 돈이 있다는 생각에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른다. 지겨운 인간들아 이제 안녕이다. 회사를 그만 두면 뭘 해야 하지? 남들처럼 조용한 곳에 커피숍이나 차릴까? 장사는 정말 소질이 없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일단은 회사를 다니면서 알아보고 완전히 결심이 서면 그때 사표를 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된다.

당첨금 수령은 어떻게 하지? 변장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150억 당첨자가 아직도 수령을 하지 않았으니 한참 관심이 집중될 때다. 변장처럼 어설픈 방법으로 가봤자 오히려 의심만 키운다. 다행히 당첨금 수령할 수 있는 곳은 국민은행이고, 그 곳은 우리 회사의 주거래 은행이다. 찾아보면 자연스럽게 담당자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이정도만 생각하자. 잠을 자야 회사를 출근한다. 로또가 됐어도 당분간은 바쁠 것 같다. 내일부터 당장 이사할 곳부터 찾아야겠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아. 잠이 제발 와라.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을 천오백마리까지 헤아리고 나서야 잠자는 것을 포기했다. 꿈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는데 아쉽다. 그런데 이건 도와주셨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시연이가 도와 준건가? 아 참. 시연이. 시연이를 잊고 있었다. 시연이에게는 이미 꽝이라고 말했는데 어떡하지? 10억 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 할아버지께서 도와셨든 아니든 시연이가 없었으면 로또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고맙긴 고마운데 당장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결혼해버려?”

에라이 미친놈. 시연이가 자꾸 결혼이야기를 뜬금없이 던지니깐 세뇌라도 된 것일까?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위험하다. 아니 언제부터 내 입에서 시연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된 거지? 어쨌든, 시연이도 지금은 패스. 반드시 돈을 줄 생각이다. 돈을 주는 방법이 문제다. 그 집안에서는 10억이 아니라 100억도 그리 큰돈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센터가 들어서 있는 곳의 땅값만 합쳐도 천억은 훌쩍 넘을 텐데. 그냥 줘 버릴까? 그 녀석이라면 용돈처럼 아무생각 없이 받을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과한 생각이다. 집이 부자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벌도 아닌데 10억을 용돈으로 생각하다니 내가 복권에 당첨되더니 망상이 심해졌다.

아 왜 자꾸 시연이만 생각나지. 안 될 일이다. 수많은 핑계가 있었지만 우리 집보다 많이 부유하다는 사실도 솔직히 싫다. 못났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비슷한 형편이나 조금 못한 집안과 결혼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시연이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집안 형편일지 모른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가족 모두에게 축복받는 그런 결혼식을 하는 게 꿈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 배우자 쪽에서 나를 반대한다면 나는 미련 없이 결혼을 관 둘 생각이다. 나는 내 가족이 상처받는 게 싫다. 나를 이만큼 번듯하게 키워주신 고마운 부모님인데 그 분들이 내 결혼문제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처받는다면 내 자존심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시연이 어머님이야 찬성한다고 하지만 아버지 입장은 또 다르다. 그래서 싫다.

예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 중에 “물에 오빠 엄마와 내가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야?”라고 물어보는 골빈 년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별을 통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아니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뇌구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부모가 물에 빠져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어떻게 상상만으로 라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농담? 부모님의 생명은 농담거리가 될 수 없다.

여자 친구를 사귀는데 그런 질문을 한다면 웬만하면 헤어지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질문을 한 여자분들! 남자친구가 자기를 먼저 구하겠다고 대답했다면 좋아하지 말고 당장 헤어져라. 그 남자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혹은 부모님의 목숨 따위는 걱정조차 하지 않는 사이코패스일게 분명하다.

아 다행히 점점 졸려온다.

◆ 동수네 집

“허허. 평소에는 그렇게 똑 부러지게 행동하던 녀석이 이럴 땐 왜 이렇게 둔하게 굴어. 옳지. 이제야 생각이 났구먼. 고얀 녀석 이렇게 할아비를 고생시키다니, 이제야 편하게 하늘에서 지켜볼 수 있겠어.”

동수 꿈에 나타났던 할아버지 형상을 한 혼령은 한참을 동수 주변을 맴돌더니, 동수가 침대에서 일어나 컴퓨터로 향하자 그렇게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 150번 버스 안

시연이는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다이어리를 읽고 있었다.

“마동수의 모든 것. 128번. 문자를 할 때는 깔끔하게. 마동수는 문자를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문자를 보냈다가는 번호를 차단당할지도 모른다. 주의요망.”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뭔가 반전을 노리다가 중요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로또는 45번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스토리는 말이 안되는 것이죠. 조만간 수정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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