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8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법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마케팅 1부 회의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준비해야 한다. 지금 시간 07시 30분 역시나 강소현은 오지 않았다. 회사 출근시간은 9시지만 그 시간에 딱 맞게 출근하는 사람은 승진하기 힘들다. 마음가짐의 문제다. 강소현이 처음에 그랬다. 헐레벌떡 9시에 딱 맞춰 출근해서는 숨 고른다고 5분, 화장실 다녀온다고 10분, 일하기 전에 커피한잔 한다고 10분. 결국 9시 30분은 되어야 업무를 시작한다. 업무야 팀장과 김 대리에게 들키지 않게 지능적으로 잘 도움을 받았지만 출근시간에 대한 문제는 너무 눈에 띤다. 늦게 왔으면 미안한 마음에 빨리 업무를 시작할 생각은 하지 않고 딴 짓하며 시간을 보내니 누가 좋게 보겠는가? 열흘 쯤 지켜보던 팀장에게 제대로 혼나고 요즘은 그래도 10분전에는 도착한다. 그래도 우리 팀에서는 제일 늦게 출근한다.
나는 처음 신입 때 8시 35분에 출근했다고 엄청 깨졌었다. 신입이 빠져서 선배들보다 늦게 출근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엄청 깨고 나서야 신입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줬다. 탕비실 청소(탕비실은 우리 팀 창고와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비품이 많이 쌓여있다. 도난 문제 때문인지 청소용역에게 맡기지 않는다.), 가습기 청소하고 물갈기. 화분에 물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9시 5분전에 커피타서 돌리기. 막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깐 별 생각 없이 열심히 했다. 그런데 강소현은 출근하기도 바쁘다. 내가 시키니깐 왜 자기가 해야 하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래서 내가 팀에 막내로 들어오면 해야 하는 일이라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다.
“히잉. 너무 많은데 좀 도와주시면 안돼요? 마 주임님!”
“싫은데요.”
나는 여전히 강소현에게 존댓말을 쓴다. 존중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도저히 친해질 수가 없어서 그런다. 나의 무뚝뚝한 대답에 역시나 표정이 굳어졌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뭐 화분에 물주는 것 정도는 제가 해드리죠.”
그래. 도와준다. 네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막내라서 도와준다.
“저 마 주임님~. 그것 말고 탕비실 청소를 대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년은 학습효과가 없다. 그 따위 코맹맹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 해봐야 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젠 알 때도 됐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강소현씨! 그냥 탕비실 바닥 쓸고, 쓰레기통 비우고, 싱크대 정리하고, 걸레로 먼지 좀 털어내면 끝입니다. 정수기 물은 제가 갈아드리죠.”
“어쩜 남자가 그래요? 여자가 부탁을 하면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주셔야죠? 매너가 어떻게 그렇게 없어요.”
매너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지금 강소현이 말한 매너는 원래 관습이나 몸가짐, 습관이라는 뜻인데, 사실 처음의 매너라는 것은 여성의 행동과 몸가짐을 억압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배려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싶었다면 에티켓이라는 말을 써야했다. 생각 이상으로 무식하다.
“휴. 강소현씨가 지금 제게 여자입니까? 저는 직장 동료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게 여자 취급을 받고 싶은 겁니까? 어떡하죠? 저는 강소현씨에게 관심이 없는데요.”
저 봐라. 저 봐. 강소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륵‘ 흘러내렸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다고 눈물을 다 흘리는지. 아니나 다를까 최 주임이 들어왔다. 오늘은 웬일로 이 대리가 아니라 최 주임과 마주쳤는지 모르겠다. 탕비실에서 둘이 있다 보니 궁금했나보다.
“뭐야. 강소현씨 울어? 이봐 마 주임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뭐 그냥. 탕비실 청소하라고 말 했을 뿐입니다”
“안 봐도 알겠다. 마 주임 그러는 거 아니야. 그동안 이 대리님하고 김 대리님에게 욕 엄청 먹은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일 잘하는 우리 강소현씨에게 그 억울함을 푸는 건 아니지.”
역시나 말을 참 얄밉게 한다. 졸지에 후배 직원에게 억울함을 푸는 한 맺힌 인간으로 몰아버렸다. 뒤에서 온갖 이간질은 다 해놓고 지금 누굴 보고 뭐라고 나무라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자들과 굉장히 친하게 지내거나 굉장히 서먹하게 지낸다. 가장 큰 원인은 내가 배려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왜 배려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여자로 대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할 뿐이다. 정수기 물을 갈아야 한다거나, 무거운 서류박스를 옮길 때는 누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움직인다. 나의 배려는 거기까지다. 그런 일은 육체적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청소, 심부름, 복사 이런 것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이 자기 책임일 때는 남자든, 여자든 스스로 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자라고 배려하지 않아서 나를 좋아하고, 여자라고 배려하지 않아서 나를 싫어한다. 덕분에 나와 친한 여자들의 대부분은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팀원과는 처음부터 꼬여버려 친한 사람들이 당연히 아무도 없다. 그래도 연수원에서 두 달 동안 고생한 입사 동기생들과 다른 부서 사람들 중에는 친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된다. 그들 대부분은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라 같이 이야기하다보면 굉장히 유용한 정보를 얻을 때도 많다. 가끔 저녁식사도하고 술 도 한 잔한다. 특히 나는 좋아하지만 내 친구들은 별로 관심 없어 하는 팬케잌이나 와플 따위를 같이 먹으러 다닐 때가 제일 좋다. 딱히 이성에 대한 감정은 없었기 때문에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다.
김수현 대리도 그런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뭔가 내면에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납득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상처 입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을 알 수만 있다면 관계개선을 시도해보겠는데 딱히 다른 팀원들과 친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직접 ‘당신이 그렇게 까칠하게 변한 이유를 알고 싶소.’라며 물어볼 수도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어쨌든 그런 내 성격 때문에 나는 강수현과 잘 지내기 힘들다. 배려 받고, 이쁨 받고, 칭찬 받고, 사랑 받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멍청하고, 성격 까칠하고, 이기적이고, 공주병에 싸가지인 그녀를 보면 한 마디로 바퀴벌레를 보는 심정이 된다. 사람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은 저러고 다니지만 언제 어떤 계기로 좋은 직장인으로 변신할지도 모르는 가능성 많은 신입이다. 그래서 좀 받아주고 아껴주고 해야 하는데 나 또한 2년 동안 구박받은 일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점점 차갑게만 대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너무한다. 회의가 있어서 제발 일찍 와달라고 사정까지 했는데 깜깜 무소식이다. 나도 참 어리석다. 이 정도 일은 예상 했어야 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늦게 하더라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놨어야 했다. 평소에는 최 주임과 함께 준비를 했는데 이제는 막내가 들어왔기 때문에 미리 오지도 않을 것이다. 같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회의 준비를 포기 하느냐 아니면 혼자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준비를 하느냐 기로에 섰다.
회의 준비를 못하면 같이 혼이 나도 결국은 신입 교육을 제대로 못한 내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것이다. 혼자 준비해서 잘 마치면 강소현은 앞으로도 늦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뭐라고 해도 이 대리와 최 주임은 ‘혼자서도 잘했잖아. 앞으로 회의준비는 마 주임이 해.’라며 오히려 열심히 한 나를 바보로 만들지 모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그런데 내 몸은 거의 본능적으로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회의 내용에 대한 핸드아웃(제본까지 해야 한다. 형식을 좋아하는 부장은 스테이플러로 찍거나 클립으로 끼우기만 하는 성의 없는 자료를 싫어한다. 일일이 구멍 뚫고 고리 끼워서 깔끔하게 정리해줘야 좋아한다.)만들고, 지사와의 영상 통화 준비하고,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를 연결해서 이상 유무 확인하고, 이번 달 매출 현황(하필이면 월말이 토요일이라 통계 그래프를 이제야 만들고 있다)그래프로 정리하고, 매출 현황과 마케팅 활동과의 연관성을 찾아 업무 성과표도 만들어야 한다.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복권에 당첨 됐는데 지금 뭐하는 꼴이지.”
급하게 일손을 놀리던 나는, 갑자기 복권에 생각이 미쳐 혼자 중얼거리고 말았다. 헉. 입조심 해야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이다. 지금은 참자. 복권에 당첨된 뒤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정신병자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가 있다.
이놈의 로또. 괜히 당첨돼서 사람을 강박증 환자처럼 만든다. 할아버지가 밉다. 시연이도 밉다. 그냥 전부 다 기부해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더더욱 싫다. 기부는 할 생각이 없다. 그게 또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날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기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방법도 잘 모른다. 그냥 우리 과와 자매결연 하고 있는 고아원에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 찾아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전부다. 이제 돈이 생겼으니 아이들 간식 좀 많이 사고, 공부 잘하는 녀석은 장학금 정도를 지원해줄 생각이다.
“어머. 마 주임님! 제가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차가 막혀서요.”
안다. 다 안다. 지하철이 갑자기 멈추고, 버스가 고장 나고,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고. 내가 왜 모를까? 강소현의 이야기만 들으면 서울시내에 폭탄공격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지경이 된다. 강소현이 살고 있는 서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미사일 공격을 받는 곳이다. 그래서 그렇게 매번 지각을 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지금 시간이 8시 27분이다. 참 교묘하다. 김 대리가 출근하기 직전에 도착했으니, 그것도 재주다.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아니에요. 지금부터라도 제가 도울게요.”
“그냥 나가보세요. 괜히 숟가락 들이밀지 말고 나가서 일보세요.”
나도 참 말을 예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이게 다 김 대리에게 배운 결과다. 확실히 나도 많이 꼬이긴 했다. 숟가락 들이밀지 말라니. 내가 말하고도 너무 노골적인 말이라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런데도 안 나간다. 그렇겠지 지금 사무실에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김 대리에게 무슨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강소현이 아무리 살랑거려도 김 대리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뭐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무식하게 힘으로 내 쫓을 수도 없다. 오늘도 누군가의 도움 속에 무사히 하루를 보낼 것이다.
어쨌든 무사히 회의는 끝났다. 부장에게 칭찬 한마디 들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매출 신장에 이바지해서? 아니다. 제본을 잘해서 그렇다. 칭찬은 좋은 것 아니냐고? ‘자네 이번에 복사를 참 잘했어.’라고 한다고 해서 폴짝폴짝 뒤며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이럴 땐 칭찬 받지 않는 것이 낫다. 괜히 눈에 띠어 제본의 고수로 이름 날려봤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서류들 구멍이나 뚫고 다니는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
“띠링”
- 선생님! 혹시 중국어 학원 어디 다니세요?
시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 왜? 중국어 배우게?
- 네! 미리미리 공부하려고요.
- 신촌이나 강남에 더 좋은 학원이 많아.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광화문에서 다니는 거야.
- 네 ㅠ. 감사합니다. 일 열심히 하세요. 파이팅~
너무 까칠하게 대했나? 그렇지만 내 말이 사실이기도 하다. 더 좋다기보다는 비슷비슷하다는 게 정확하겠지만 굳이 광화문까지 나와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돈은 어떻게 전해주지. 꽝인 사실에 괜히 심술이 나서 로또 됐으면 청혼하려고 했다는 따위의 농담을 했으니 난감하다.
지금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외제차 사이트를 구경하고 있다. 구경이야 예전에도 열심히 했다. 언젠가 돈을 모아 한번은 몰아보겠다고 결심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구매력이 생기고 나니 지름신이 강림해서 나에게 강요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스포츠카 따위에는 관심이 없지만 내 나이에 맞는 세련되고 다이내믹한 디자인의 차들은 내 구매욕을 마구마구 자극한다.
“오 외제차 사려고?”
앗. 깜짝이야. 그래도 다행히 과장님이다. 우리 과장님은 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 팀이 아니었다고 해도 사람이 워낙 괜찮아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둘 다 스키를 좋아해서 겨울이 되면 주말에 종종 스키를 타러 다니기도 하고, 가끔 날 좋은 날 1박으로 낚시를 같이 다니기도 한다. 아마도 과장님이 아니었으면 회사를 진즉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나는 레저스포츠의 대부분을 대학교에서 배웠다. 활동적인 성격이면 남는 학점을 스포츠로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스키, 스쿠버다이빙, 패러글라이딩 그리고 골프까지 배웠다. 실습비 얼마를 내긴 하지만 학교에서 상당 금액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사회에서 배우려면 시간 내기도 힘들고 금액도 최소한 열배 이상 더 들기 때문에 정말 좋은 혜택이다.
“아뇨. 무슨 돈이 있어서요. 그냥 구경만 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친구 녀석 하나가 BMW를 끌고 왔는데 부럽던걸요?”
“오 친구가 잘 사나 보네.”
“그렇죠 뭐. 그래서 그림의 떡이지만 이렇게 구경하고 있습니다. 과장님도 외제차 있지 않습니까?”
“에이. 그게 무슨. 내 차도 아닌데. 게다가 구형이잖아. 요즘 얼마나 좋은 차들이 많은데.”
“이참에. 한 대 뽑으시죠. 과장님?”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나 거지야. 알잖아? 나 주식해서 다 날랐어.”
아. 저놈의 주식투자. 과장님의 장점이자 단점이 돈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없어도 너무 없다. 내가 알기로 과장님 아버님이 잠실에 목 좋은 곳에 빌딩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꽤 부유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딱히 돈 모을 생각이 없다. 언젠가는 물려받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주식투자다 뭐다 해서 종종 돈을 날리지만 그렇다고 부모님께 도움도 안받다보니 가끔 점심을 라면으로 때울 때도 있었다. 이번에 또 돈을 날리셨나보다. 그렇게 가난한 척 하는 나와 가난한(?) 과장님은 모니터로 외제차를 구경하며 침을 질질 흘리기만 했다.
◆ 강남의 어느 스포츠클럽 사장실
윤 사장은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지중지 키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삑”
“네. 사장님.”
“이 실장 좀 오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똑똑똑”
잠시 후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이 실장이라는 남자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 실장. 여기 일단 좀 앉아.”
지끈지끈한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던 윤 사장은 이 실장이 들어오자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함께 앉았다.
“시킬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 실장 자네 정보 계통으로 정통한 사람 알고 있지?”
“네. 예전에 군에서 알고 지낸 친구인데 안기부로 옮겼다가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그쪽일은 안하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워낙 유능한 친구였기도 했고, 아마 프리랜서로 조용히 일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것 참 다행이군. 사람 하나 좀 알아봐줬으면 좋겠는데?”
“말씀하십시오. 간단한 신상명세만 있으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이름은 마 동수. 지금은 ㈜동지 마케팅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선까지 알아볼까요?”
이 실장은 메모장을 꺼내 윤 사장이 불러주는 이름과 직장을 적으면서 물었다.
“샅샅이. 부모부터 해서 가족 전부와 금전 관계, 여자 관계, 친구 관계, 회사 관계. 전부 다. 가능하겠나?”
“가능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알았네. 잘 좀 알아봐주게.”
이 실장이 나가자 윤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창가로 이동했다.
“이 놈의 자식. 감히 내 딸의 마음을 누구 마음대로 빼앗아가. 나쁜 놈 같으니라고.”
◆ 동수네 사무실
“과장님 이 차 어때요?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데 새끈한걸요?”
“오! 멋지다. 아 돈만 있으면 당장 사고싶다.”
“저도요.”
============================ 작품 후기 ============================
주인공은 아직 바뀌지 않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죠. 그만둬도 아주 벽에 똥칠을 하고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수인계도 없이 갑자기 사표만 던지고 사라지는 거죠. 사실 이정도만 해도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엿 먹이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그만 두는 그날 까지는 조용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보이며 웅크리고 살고 있습니다. 다시 회사를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 그 때는 바뀌겠죠.
혹시 물에 빠지는 이야기 때문에 마음 상하신분 계신가요? 주인공의 성격을 표현한다고 조금 과격하게 썼습니다. 사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만한 이야기죠? 그런 질문을 하는 여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지 너무 궁금했겠죠. 여자는 항상 확인이 필요한 존재죠. 그래서 그런 무리수를 던졌을 겁니다. 어렸죠. 그런 질문을 할 때는 어리고 순진한 시절이었죠. 그리고 여자 친구를 구한다고 대답했을 남자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질문을 하는데 당장 헤어져 또는 널 나중에 구할 거야 이렇게 대답하기 쉽지 않죠. 압니다. 저도 겪어봐서 잘 압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질문을 하면 거짓말로 듣고 싶은 말을 하고, 그러면 상대는 또다시 거짓말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분 좋게 넘어가죠. 여자도 정말 그런 상황이 생길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질문하는 게 아니고, 남자도 정말 뭔가를 선택한다고 보다는 내가 그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자존감과 자의식이 강해서 까칠하게 반응했던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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