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마 대리다. 로또 당첨금을 받으려고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예상도 못한 성과를 보이면서 승진했다. 주임으로 승진한지 석 달만의 행운이다. 최 주임의 똥 씹은 표정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최 주임은 8월부터 대리를 단다. 아직 세 달이나 남았다. 한 달도 아니고 두 달도 아니고 무려 세 달이나 남았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그 3개월 동안 최 주임의 기를 제대로 눌러 놓을 생각이다. 아무리 그래도 먼저 입사한 선배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군 면제 받은 녀석에게 선배대접을 하고 싶지는 않다.
군 면제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최 주임이 받은 그 면제라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정상적으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면 하다못해 공익이라도 가야 하는 게 정상이다. 생긴 것도 곱상하니 부유해보이고, 팔다리와 목도 제대로 붙어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함께하는 체육대회나 등산도 곧잘 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최 주임의 면제 사실만은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 방법이 설령 정당했다고 한다면 그 법이 잘못되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의 피해의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렵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만 아니면 어떤 형태로라도 무조건 군대는 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동안 생각이 너무 과격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악의에 가득 찼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딱히 괴롭히고 그럴 생각은 아니다. 폭력을 휘두를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단지 대리가 주임을 교육(?)시킬 뿐이다. 군대에서 나이 어린 선임이 항상 나보고 했던 말이 있다.
“꼬우면 먼저 오던가?”
나도 최 주임에게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꼬우면 먼저 대리 달던가?”
우리 팀에 파견 왔던 두 인턴들은 아직도 우리 팀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한 명은 변형석이라는 녀석이고, 다른 한 명은 태준호라는 녀석이다. 둘 다 27살이고 02학번이다. 어찌되었던 다른 인턴들이 거의 육체노동자로 동원되었다면 이 두 녀석은 나름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인원이었기 때문에 거의 99% 입사 확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지금 상태로 보면 거의 우리 팀에 배치될 모양인데, 나이 어린 05학번 강소현에게 이리저리 지시받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조금 애잔하기는 하다. 그놈의 군대 때문에 자기보다 실력도 없고, 나이도 어린 후배에게 절절 매고 있으니 동병상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얘들아 정식으로 발령받으면 형이 잘해줄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우리 팀에 들어온다고 해도 나같이 착한 선배 만나 인간적인 직장생활을 할 예정이고, 둘이 함께이다 보니 내가 혼자 했던 일들을 나눠서 할 수 있으니 무척 편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소현은 참 운이 좋다. 고작 3개월 만에 막내 딱지를 땠으니 그보다 운이 좋은 신입은 거의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상식은 있는지 김 대리나 최 주임처럼 우리 인턴들에게 막말은 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면서 친분을 쌓아가고 있는데, 내가 볼 땐 앞으로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는 불여우 같은 수작으로만 보였다.
내가 대리를 달고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우리 팀의 이원화다. 다른 팀들은 많이 시행하고 있었는데 아직 우리 팀은 인원이 적어 별 의미가 없었다. 과장님을 열심히 꼬드겨 과장님과 나 그리고 인턴 두 명만으로 작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부장님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를 만들자고 했다. 그런 내 말에 과장님은 조금 난색을 표했다. 내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인턴 두 명이 영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과장님도 벌써 11년차다 보니 슬슬 팀장으로 진급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는 겨우 2살 많지만 벌써 17년차인 팀장이 버티고 있어 쉽지가 않다.
“과장님. 이번에 저랑 같이 일하면서 근무평가도 많이 좋아지셨잖아요. 단독 책임자로 두 개만 더 프로젝트 성공시키면 팀장도 눈앞이에요. 과장님 동기들 중에 벌써 팀장 단 분도 계시다면서요.”
“야. 마 대리. 네가 아직 뭘 모르는 하룻강아지라서 잘 모르나 본데. 양 팀장님 인맥이 장난이 아니야. 괜히 반항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가 한직으로 밀려나. 지난번에는 운 좋게 마패를 받아서 조용히 넘어갔지만, 또 그럴 일이 있을 것 같아? 괜히 척지지 말고 팀장이 부장 달고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순리야.”
역시 난 뭘 모르는 하룻강아지였다. 솔직히 양 팀장에 대한 반감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과장님이 팀장의 인맥이라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 중에는 오너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도 있었다. 꼭 팀장이 관련이 없다고 해도 위험부담이 꽤 있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최 주임은 몰라도 이 대리와 김 대리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과장님에게 핀잔을 듣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생각 없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다보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대리를 달고 처음 시도했던 나의 반란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최 주임님. 오늘 시간되세요?”
“어. 오... 오늘? 갑자기 왜?”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그래도 대리 진급인데 한 잔 사야죠. 최 주임님에게만 술 한 잔 사고 싶어서 그래요. 별 약속 없으면 저랑 술 한 잔 같이 하시죠?”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른 행동으로 최 주임을 꽸다. 눈알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이 내 의도가 궁금했던 것 같았다. 의도야 뻔하다. 1차 반란은 시작도 전에 진압 당했지만, 아직 2차 반란은 기회가 있다. 최 주임아. 넌 그래도 깐죽거리기만 했으니 형이 많이 봐준다.
“그럴까? 뭐 그러지. 마 대리가 산다는데 갈게. 이따 저녁에 보는 거야?”
주임 주제에 ‘마 대리’? 확실히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이다. 그러니 내가 가장 먼저 타겟으로 잡았다. 자기는 약삭빠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한참 어리숙하다.
“네. 제가 얼마 전에 종로 쪽에서 괜찮은 웨스턴 바 하나를 뚫어 놨으니깐 거기로 가시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기대 할게.”
퇴근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내가 말한 웨스턴 바로 자리를 옮겼다. 딱히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클래식 바 같은 곳으로 데려가서 시작부터 위스키나 꼬냑으로 정신을 속 빼고 싶었지만 어쨌든 대화는 될 수 있으면 멀쩡할 때 하는 게 좋다. 내가 2년 넘게 지켜본 최 주임은 소심하다. 처음부터 강한 기세로 밀고나가야 뒤탈이 없다. 아니면? 결국 최악이라고 해봤자 그냥 쉬면된다. 어차피 1년에 내 연봉의 수십 배의 돈이 이자 수입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게의 구석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웨스턴 바라고는 하지만 조금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나는 내 임의대로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잔도 따로 부탁했다. 병맥이든 생맥이든 맥주는 유리잔에 따라 마셔야 제 맛이다. 약간의 연출이 필요하기도 했고. 종업원은 금방 맥주와 유리잔을 가지고 왔다.
“자 한 잔 받아.”
“뭐?”
시작부터 강하게 나갔다.
“뭐해? 형이 술 한 잔 주잖아. 팔 아파 어서 받아.”
“어. 뭐. 그... 그래.”
나는 최 주임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내 잔도 알아서 채웠다.
“자 일단. 한 잔 시원하게 마시자고.”
‘꿀꺽, 꿀꺽’
우리는 술이 가득 담긴 맥주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이 봐. 최 주임.”
“응?”
“내가 반말해서 놀랐지?”
“좀 그렇지?”
“내가 강소현에게도 존댓말 하는 거 알지?”
“알지.”
“내가 아무나에게 말을 놓지 않아.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만 말을 놓지.”
사실이다. 그렇다고 최 주임과 친해지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원하게 돌 직구를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 그런가?”
“어쨌든 내가 먼저 대리를 달았잖아. 그렇다고 꼴사납게 직장상사로 대하라는 그런 말도 아니야. 단지 내가 최 주임보다 나이로도 3살 많고, 학번으로도 2학번 위잖아. 그러니깐 이제 서로 편하게 지내자 이런 말이지.”
최 주임은 내말에 뭔가 생각이 많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난 최 주임이 일부러 내게 말을 꼬아서 한다는 것 알아. 나이 많은 후배가 들어왔으니 얕보이고 싶지 않았겠지. 알아 그 마음. 그런데 어쩌겠어? 내가 운이 좋았는지 이렇게 승진도 빨리 했고, 이렇게 그냥 지내다 보면 서로 괜히 불편해 진다고.”
“그건 그렇겠지.”
내가 승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생각이 많았나 보다. 순순히 내 말에 동의했다. 어쨌든 자신보다 먼저 대리를 달았으니 소심한 성격을 봤을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괜히 불편해지지 말자고 이런 자리를 이 형이 마련한거야. 최 주임 너도 나를 그냥 만만한 형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최 주임이 직장 선배지만 편안한 직장 동료라고 생각하고. 어때? 우리 팀 사람들 좀 그렇지 않아? 삭막하잖아. 우리라도 좀 친해지자고.”
아직은 어색했는지 내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어색함을 깰 시간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면 일단 친해진다. 문제는 술이 깨고 나서지만. 그것도 다 해결 방법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죽어보자는 생각으로 술을 마셨다. 근처에 있는 클래식 바로 2차를 갔고, 거기서 그나마 만만한 잭다니엘 블랙을 두 병이나 마셔버렸다. 아직은 딱히 비싼 술은 사주고 싶지 않았다. 돈은 많이 생겼어도 예쁜 것 하나 없는 녀석에 너무 많은 호의를 베풀고 싶지도 않았다. 최 주임은 거의 인사불성이 돼서 나중에는 ‘형’이라고 부르기까지도 했지만 술이 취해서 앞으로도 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술에 취한 최 주임을 집으로 데려갔다. 침대에 재워야 효과가 더 좋지만 아직 여인의 손길도 닿지 않은 내 침대를 남자 놈에게 양보할 순 없어 대강 옷을 벗기고 그냥 소파에 던져 놨다.
“어이. 최 주임. 최 주임. 그만 일어나.”
“으”
다음날 아침 나는 손수 해장국까지 끓여놓고 최 주임을 깨웠다.
“어이. 일어나라니깐? 출근해야해.”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어?”
“어제 술을 마시고 완전히 뻗었잖아. 집이 어딘지도 몰라서 그냥 우리 집에 데려왔어. 양복은 간단하게 다리미질만 해달라고 밑에 있는 세탁소에 맡겼어. 걱정하지 마.”
아직은 내 반말이 어색한가보다. 그럴 수밖에. 뭐 그렇다고 여기서 굴할 순 없다. 뻔뻔하게 나가야지.
“왜 아직 어색해? 어제는 나보고 형이라고 부르더니 술 깨니까 쌩이야? 서운한데?”
“내... 내가 정말 그랬어?”
“그럼. 내가 녹음도 해뒀어.”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휴대폰으로 인증샷은 물론 인증보이스? 인증사운드? 아무튼 녹음까지 되니 참 편리하다. 최 주임 너는 이제 독안에 든 쥐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내용은 ‘형! 내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식의 사랑고백(?)이었다. 최 주임은 듣기도 민망한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숙였다. 뭐 놀리는 것은 여기까지다.
“자 일어나. 형이 해장국도 끓여놨어. 먹어야 출근하지.”
최 주임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묵묵히 일어나 식탁 앞에 앉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이건 얼마 전에 고향 가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거다.’라면서 조금은 살랑거리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최 주임도 점점 말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내 반말에 익숙해져갔다. 넌 이제 낚였다. 이 녀석아! 표현은 이상하지만 딱히 최 주임을 이용해먹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도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은 아이였고, 그래서 크게 유감도 없었다. 지금부터는 최 주임하기에 달렸다. 나에게 친근하게 대하면 나도 그만큼 곁을 내줄 생각이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 작품 후기 ============================
ilyong님이 로또 증여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럴 때 주변에 변호사나 회계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주인공처럼 폭 넓은 인맥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문직 친구라고 해봤자 삶에 별로 도움도 안 되는 직종들뿐이니 난감합니다. 그냥 단둘의 약속일뿐이니 혹시라도 돈을 주게 된다면 세금을 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그리고 2009년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한 투자 상품은 어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안전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 비교적 안전한 투자 상품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 하면서 논란을 피하긴 했지만 독자님의 말씀도 있었고, 적당한 선이 어느 정도일까요? 역시 10~15%는 과한가요?
제가 혹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적으면,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남은 정종철이다라고 하면 ‘이 바보야 그게 말이 돼’라고 하지 마시고 ‘아하하. 작가님 바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남은 현빈입니다.’라고 말씀해주시면 정말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바보가 될 거, 이왕이면 정답은 알려주고 바보로 만들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