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뭐든지 흥신소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정보가 수집 되었으니 와서 자료를 받아가라고 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내용을 확인했다. 역시나 문제가 많은 놈이었다.
이름은 반일수 이고, 나이는 33살이었다. 딱히 직장은 없었고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상가 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수씨 언니를 좋게 본 반일수의 부모가 둘을 연결해줬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한동안은 그럭저럭 살다가 반일수가 도박에 빠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흔히 도박에 빠지면 어미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말처럼 반일수도 만류하는 부모를 뿌리치고 도박장에서 살다가 결국 신혼집은 물론 부모님 상가건물까지 날려먹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반일수의 부모는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그때부터 반일수는 술에 미쳐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제수씨 언니를 때리면서 돈을 가지고 오게 했다. 지옥 같은 삶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부모에게 도저히 알릴 용기가 없어서 그냥 묵묵하게 견뎠다. 그러다가 폭력에 못 이겨 제수씨 언니도 몰랐던 아이를 유산하게 되면서 동생의 처가식구들도 알게 되었다.
제수씨 가족들은 당장 고소라도 하고 싶었지만 언니는 이미 아무런 의욕도 없는 인형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실성을 했으면 금치산자로 만들어 대리인이 고소를 하겠지만 그냥 말문을 닫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멍하니 있는 언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언니를 억지로 집으로 데려왔는데 반일수라는 놈이 자기 마누라 내놓으라면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쩔 수없이 이혼하는 조건으로 2억이라는 큰돈을 건넸지만 그 돈은 금방 도박으로 날려먹고 이혼은 해주지 않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금도 가게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얼마간의 용돈을 뜯어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뭐 하도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모습이라 식상하기까지 했다. 그냥 어딘가에 묻어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도 그럴 용기도 없다. 남의 집안에 상관하는 오지랖 넓은 인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로 인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동생이 반일수라는 놈이 행패부리는 모습을 본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마약이나 도박은 때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때리면 오히려 원한을 사 동생 직장으로 찾아가 행패를 부리거나 자칫 제수씨에게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 동생은 운동만 해서 생각이 단순하다. 순수하다는 의미다. 머리도 좋은 녀석이 생각 좀 하고 살면 좋으련만, 세상을 좋은 놈 나쁜 놈 두 분류로 나누고 팔자 좋게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살고 있다. 나쁜 놈보다 더 무서운 놈 중에는 마약이나 도박에 빠진 지독한 놈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녀석이 예전에 학원을 차려 돈을 본 것을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일단 동생에게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눈이 뒤집혀서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최대한 행동을 자제시킬 작정이다.
Rrrr
“어 형.”
“오늘 저녁에 약속있냐?”
“없는데?”
“내가 너랑 단 둘이 할 말이 있으니까 저녁이나 먹자.”
“그럼 우리 여보야는 혼자 밥 먹어야 하는데?”
“하여간 그놈의 여보야는. 미리 전화해서 오늘은 학교 동료분들 하고라도 식사를 하라고 하고 넌 나 좀 보자.”
“알았어. 이따 봐.”
퇴근 시간이 되어서 집 근처에서 만났다. 동생 학교는 아직 마포에 있어서 어디 다른 곳에서 보기 이상했다. 우리 형제가 종종 가는 굴다리 김치찌개에서 김치찌개와 제육을 시켜 먹고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로 갔다.
“내가 제수씨 형부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봤다.”
“그래? 어떤 사람이야?”
“일단 약속부터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내 말을 다 듣고 내 판단에 따른 다고 약속부터 해.”
“아이씨. 그 정도로 심각해?
“약속 안하면 말 안한다?”
“알았어. 약속 할게. 하면 되잖아.”
동생과 억지로 약속시켜놓고 내가 알아본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은 이야기를 듣던 도중에 흥분해서는 몸을 움찔움찔 했지만 그래도 나와의 약속을 기억했는지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었다.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흥분하지 마. 그리고 아직 내 이야기 다 안 끝났어.”
“이야기 해.”
“넌 일단 설령 반일수라는 작자가 행패부리는 모습을 봐도 그냥 말리기만 해. 할 수 있지?”
“아이참. 형 그런 놈은 때려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나를 믿고 맡겨봐!”
“너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네 말처럼 때린다고 쳐. 한동안은 무서워서 안 오겠지. 그런데 얼마못가서 또 도박이 생각 날거야.”
“그럼 또 때리면 되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니깐 그러네. 금단 현상이 심해지면 도박을 못하게 한 네게 원한을 가진다고. 당연히 네게는 한주먹감도 되지 않으니 그럼 어떻게 행동하겠어? 결국 제수씨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어쩌라고? 병신처럼 그 꼴을 지켜보라고?”
“일단은 두고 보자. 지금은 그냥 가끔씩 돈 받아가는 재미로 살고 있으니까 큰 문제는 저지르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제수씨 언니라는 사람 치료부터 해야 해.”
“무슨 치료? 말씀은 없지만 내가 가면 그래도 희미하지만 반가운 표정도 짓고 내 말에 고개도 끄덕여 주셔.”
동생 말이 사실이라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은 것이 아니니 설득만 잘하면 치료를 받기 위해 용기를 낼지도 모른다. 일단은 저 둘을 이혼부터 시켜야 한다. 제수씨 언니가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상황부터 만들고 나서, 다시 돈이 들더라도 이혼을 하게 되면 그 때 부터는 반일수에 대한 법적인 행동도 취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결국 난 가족에서 한 발 바깥의 사람이다.
흥신소에서 보내준 자료를 꺼내서 다시 한 번 훑어봤다. 꼼꼼히 읽어보니 반일수가 가게를 찾아가는 패턴이 있었다. 거의 매주 목요일에 찾아가 돈을 받아 간다. 무슨 일수 찍듯이 규칙적이다. 그나마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서 다행이지 거의 매주 백만 원 넘는 돈을 받아간다니 참 대단한 놈이었다.
정말 동생을 앞에 두고 최대한 진지한 눈빛으로 설득을 했다. 6개월만이라도 좋으니깐 우선은 골치 아픈 생각을 좀 하고 살자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의 매주 목요일 저녁 장사를 하기 전에 찾아가니깐 네가 어떻게 든 시간을 내서 마주칠 기회를 만들어. 절대 흥분하지 말고.”
“응”
“분명히 돈을 주거나 행패 비슷한 것을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그래도 돌아갈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 알았지?”
“형 나도 지금부터는 진지하게 생각한다니깐 일단 이야기부터 해봐.”
“그리고 네 장인어른에게 가 상황을 물어. 처형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반일수 저 사람과 관계가 있는 거냐고.”
“말씀 안하시면?”
“말씀하게 네가 설득해야지. 가끔 제수씨가 언니 사진을 보고 운다고 하고, 이제 너는 이 집의 아들이나 마찬가지니 이야기 해달라고 졸라. 그래도 안하시면 그 다음 주에 다시가 그리고 또 졸라.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모르는 척 계속 물어봐. 여기까지는 할 수 있지?”
“응”
“결국 말씀해 주실 거야. 그러면 상담을 받자고 말씀드려. 분명히 펄쩍 뛰실 지도 몰라. 특히나 나이든 분들은 정신과 상담에 거부감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네 장인, 장모를 같이 모셔서 이야기를 해. 이건 미친 게 아니라 그냥 아픈 것이다.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다. 언제까지 처형을 저렇게 살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치료를 받아야 이혼을 할 수 있고, 그래야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출발도 할 수 있다고 계속 설득해.”
동생은 메모지까지 꺼내서 내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치료를 잘 받도록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거지. 너와 제수씨에게는 반응을 보인다고 하니깐 자주 시간을 보네.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래도 조카가 태어나면 많이 도움이 될 거야.”
“그래서?”
“그렇게 치료를 받고 희망을 가지면 이혼을 준비해야지. 그리고 예전에 제수씨 언니 치료했던 병원에 가서 치료 기록 같은 것 꼭 받아주고. 진술서도 받아. 사진이 없어서 아쉽지만 내원당시 온몸에 멍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폭행에 의한 유산으로 생각된다. 뭐 그정도 말이 들어가도록 진술서를 받아놔.”
“알았어. 그 다음에는?”
“너도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라. 아무튼 제수씨 언니가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해. 아기 낳으면 자주 찾아가. 희망을 좀 가질 수 있도록. 그런 다음에 목돈으로 유혹을 하던 해서 이혼을 하게 만들어야지. 그때는 반드시 이혼 도장 찍고 그 다음에 돈을 줘.”
“그럼 끝?”
“그럼 좋겠지만 아마 돈을 날리고 또 찾아올 거야. 한번 쯤 행패 부리게 나두는 것도 괜찮아. 그 동안 증인이나 확보해놓고. 어쨌든 예전 폭행 건이랑 같이 해서 집어넣어야지. 미안한 말이지만 돈이 없으니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하기도 힘들 것이고 대강 해결 될 거야.”
“나와서 또 행패 부리면?”
“어휴. 그럼 진짜 진상인데.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기를 포긴 한 것이니까 배라도 태워버리던지 해야지.”
“진짜?”
“농담이야. 농담. 형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
농담이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알아볼 생각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최소 1년에서 3년은 걸린다고 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줘야해. 결국은 제수씨 언니가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야. 알아듣지?”
“응”
“내가 말한 것들 잘 기억해둬. 그것만 해결되면 정말 제수씨에게 걱정거리는 없을 거야. 그리고 나와 한 이야기는 절대 제수씨에게 하지 말고. 알았지?”
“내가 무슨 애냐?”
“야이 자식아! 네가 엄마한테 계모냐고 물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널 어떻게 믿어?”
“형은 언제 적 이야기를 꺼내? 아무튼 난 우리 여보야가 기다리니깐 간다. 그냥 형이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해서 나만 불렀다고 이야기 할게.”
“그럴 땐 눈치가 있네. 들어가기 전에 맥주 한 캔 먹고 들어가.”
동생은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자 기겁을 하며 일어나 도망가 버렸다. 내가 잘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제 가장이 될 녀석이니깐 잘해낼 거다. 어쨌든 장기적인 일이니깐 나는 이쪽으로는 당분간 신경을 꺼도 된다. 최 주임 일도 해결 되었고, 동생 일도 잘 해결 될 것이다.
팀장과 이 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저들까지 하하 호호거리며 웃고 떠들고 싶진 않다. 이제 남은 것은 김 수현 대리인데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다. 느낌상으로는 남자에게 한 번 오지게 상처 입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 친구라도 소개시켜주고 싶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냉혈녀에 싸가지 밥 말아먹은 년이라며 욕을 해서 나설 친구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셈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 시연이네 집
“엄마. 나 학교 그만 두고 다시 공부해서 다른 학교 갈까?”
휴대폰을 손에 꼭 잡고, TV를 보는 노여사 옆에 누워 뒹굴 거리던 시연이가 갑자기 물었다.
“딸! 정말? 잘 생각했어. 우리 딸 속 썩이는 마 선생이 나온 학교 따위는 때려치우고 공부해서 내년에 서울대 가자. 얘.”
노여사는 딸의 이야기가 은근히 반가웠다. 딸이 하도 좋아해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인지 얼마 전에 펑펑 우는 모습을 보고는 그나마 좋아 보이던 마 선생이 괘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 다니는 학교도 좋긴 하지만, 서울대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부터 공부 잘한다고 자랑했는데 남들이 물을 때 마다 조금은 곤란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매번 우리 딸은 그래도 전체수석으로 입학했어요 라고 말하기도 빈정 상하고, 수능도 두 개나(?) 틀리는 바람에 우리 딸은 그래도 수능은 두 개밖에 안 틀렸어요 라고 말하기도 모양이 빠졌다.
전체 수석으로 들어가 받는 장학금이야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신경 쓰이지도 않는 일이고, 차라리 1년 공부해서 서울대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부모의 심정이었다.
“휴.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못 그럴 것 같아. 엄마도 알잖아. 중학생 때부터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들어가고 싶어 했는지. 선생님 말 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좋은 곳 같아. 미안해 엄마.”
“에구구. 네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니. 넌 그런데 마 선생이랑 뭔가 틀어졌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살 것은 아니지? 아나운서 되고 싶다고 했잖아.”
“될 거야. 선생님과 만나는 것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야. 올해는 학교생활 좀 즐기다가 내년부터 하면 돼. 그런데 엄마!”
“응?”
“사랑이 뭘까?”
두 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로 눈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시연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달라는 말씀에 짧지만 외전(?) 하나 추가 했습니다. 이걸 외전이라고 하는 것 맞나요?
여러분의 코멘트에 힘입어 비교적 안전한 투자 상품은 그냥 8~10%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없이 수익률을 정했습니다. 간단하게 전세 1000만원이면 월세 10만원이다. 요 공식을 이용해서 대략적인 수익률을 정했는데 조금 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90억이라는 거금을 맡기는데 프리미엄 같은 것은 붙지 않을까요? 사실 1억을 맡기는 사람과 90억을 맡기는 사람에게 같은 금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평등해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곳이 그렇지 않잖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