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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2화 (32/424)

00032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최 주임과의 관계변화는 팀 내에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 주임과 내가 갑작스레 말 트는 사이가 되었으니 모두들 놀랄 만도 했다. 그렇다고 딱히 간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최 주임이 직장 선배지만, 이젠 내가 직장 상사이니 이 대리도 딱히 꼬투리를 잡긴 힘들었을 것이다.

최 주임은 형석이와 준호와도 금방 친해졌다. 그 전에는 거의 나와만 일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많지 않았다. 최 주임이 빠른 생일이긴 하지만 입사한 이후 남자 중에는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친구를 후임으로 받았으니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은연중에 형처럼 행동하는 것이 보였다. 나에게 말하듯이 그렇게 꼬아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짜 직장 선배 같은 듬직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내가 나이가 많았던 것이 어쩔 수 없는 장애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주임의 좋은 기분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또 다시 지방출장. 그런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지방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좋은 점도 많다. 심지어 최 주임은 감독이라며 남들 일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지 같이 일을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고생할 일도 없는 녀석이 왜 저렇게 인상을 쓰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좋으면 나보고 가라고? 그건 싫다. 난 새로운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부장님은 나와 과장님을 직접 불러 새로운 일을 지시하셨다. 뭐 결국 둘이 다시 일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그 일이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호텔과 리조트의 헬스시설에 대한 재정비였다. 그 말인 즉 우리 호텔만의 독특하고 매력 있는 차별화 된 헬스클럽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요즘처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시기에 이미 수많은 개성의 건강관련 업체가 난립한 상태에서 그냥도 아닌 독특하고, 매력 있고, 차별화된 헬스클럽을 만들고 브랜드화 시켜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해버린 건강관련 사업에 진출하자니 이것은 정말 아니었다. 우리 호텔이 아무리 세계적인 호텔이라지만 건강관련 사업이 호텔로고 하나 박았다고 진출할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으시던 부장님은 피식 웃으시며 브로셔를 하나 던져 주셨다.

“그것은 이미 예상했지. 마 대리가 아무리 잔머리가 좋아도 맨땅에 헤딩하라고 할 수 없으니깐 말이지. 회장님이 직접 지시한 사항이야. 아 그렇다고 누구를 콕 집어 지시하신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판단할 때 가장 운동선수 같은 느낌을 가진 자네가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무튼 이 브로셔 받게”

회장님 이야기가 나올 때 깜짝 놀랐으나, 역시나 전무님과 같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워낙 독재자 스타일이라 회장님 지시사항은 자주 내려온다. 솔직히 우리 마케팅 부서가 하는 일중 반 이상이 회장님 지시사항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렇지 운동 선수 같은 느낌은 뭘까?

부장님이 주신 브로셔는 ‘윤 스포츠 센터’의 안내책자였다. 낯이 익어 잠깐 생각해보니 시연이 아버님이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이었다.

“부장님.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요? 설마 업무제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정확히 말해서 공동출자를 해서 합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거네.”

“그러니까 결국 거기 사장님을 설득하라는 말씀인거네요?”

“음.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지분은 우리가 최소 51은 확보해야하네. 대신 자본투자는 대부분 우리가 하고 그쪽에서는 일정금액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지 않나? 이 정도면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이 너구리같은 부장님이!’

정확하게 나에게 뭘 바라시는지 모르겠다. 말을 그럴싸했지만 결국 우리보고 사기 쳐서 오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이런 말이다. 기술력이 1위인 업체에 가서 우리 회사가 자본을 전부 투자할 테니 당신들은 기술력만 제공해라. 그리고 우리가 돈을 전액 투자하는 대신 지분은 우리가 51, 당신이 49를 가지도록 하자. 그렇게 두 회사가 힘을 합쳐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 그 사이 자본을 제공한 회사는 막대한 자본금을 바탕으로 야금야금 기술력을 빼먹다. 더 이상 빼먹을 게 없는 순간 기술력을 제공한 회사는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부장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윤 스포츠센터와 합자회사 형태로 새로운 브랜드의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물론 윤 스포츠센터가 가지고 있는 명성까지 빼앗아 오자는 이야기다. 내가 못 알아듣기를 바라고 이야기 하시는 것 같지는 않고 의도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거기 사장님이 그렇게 녹록한 분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 윤 사장님을 아나?”

“아뇨. 그냥 그쪽 계통에서는 워낙 전설적인 분이라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셨다고. 현금 동원력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럼 우리가 입질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겠네?”

“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죠.”

“마 대리 자네도 한 번에 알아들었겠지만 우리 회사가 양아치 회사도 아니고 자네가 속으로 생각한 그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맞는 이야기다. 우리 오너가 독선적이긴 해도 양아치 짓을 하면서 회사를 키운 것은 아니다. 결국은 지금 진행하는 일은 경쟁력 있는 헬스클럽을 유치해서 호텔 간의 경쟁력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네. 결국 우리 호텔과 리조트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겠죠.”

“게다가 윤 스포츠센터는 강북과 강서 쪽은 진출하지도 않았지. 회장님께서는 위상 제고와 동시에 그쪽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계셔.”

“결국은 신뢰의 문제인데. 경영을 이원화 하는 방법으로 접근해 볼 수는 있겠군요.”

“어떻게?”

“결국 합자라는 것이 지분이 많은 쪽이 경영권을 가지고 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신뢰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솔직히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투자자로 남고 윤 스포츠클럽에 아웃소싱을 주는 방법인데 곤란하겠죠?”

“곤란해. 브랜드에는 반드시 우리 회사 로고가 함께 들어가야 해. 헬스클럽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서 무슨 세계적인 리조트를 꿈꾸겠나?”

“방안이야 이미 가지고 계신 것 아닙니까? 행정 쪽은 우리가 현장 직원들은 그쪽에서 맡고 지분을 포기할 경우 상당액의 보상금만 약속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겠죠. 그것 말고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복안을 더 가지고 계시겠죠. 결국 과장님과 제가 윤 사장님의 신뢰를 얻어 그 방안을 관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알고는 있구먼. 이미 방안은 다른 팀에서 타당성 조사를 비롯해서 전부 끝내놨네. 그쪽에서도 따로 움직이긴 하겠지만, 지난번 프로젝트 결과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혹시나 기대를 해보려는 거야. 조 과장은 이번 일만 성사시키면 팀장 대우로 승진할 수 있겠지. 그리고 당분간 팀장으로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거고 성과가 좋아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 대우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이지.”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과장님의 눈빛이 빛났다. 가끔 보면 과장님에게 리더의 자질이 보인다. 절대 함부로 나서지 않고, 행동도 항상 조심하며 진중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다. 그냥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저렇게 가끔 눈빛이 빛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눈빛을 보면 꼭 옆에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렇다.

“김 대리하고 인턴 중에 한명도 같이 주시면 꼭 성사시켜 보겠습니다.”

헉. 이런 배신자. 왜 김 대리까지 끌어오실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 모르겠다. 과장님 나만으로는 부족하신가요? 나는 인턴 두 명만 데리고 일 할 생각이었는데 과장님은 생각이 다르신 것 같다. 수동적인 인턴보다는 생각하는 머리가 하나 더 필요하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대리가 아닌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

“가능할 것 같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안 돼. 꼭 성사시켜야지.”

“명심하겠습니다.”

결국은 말장난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일이 시작됐다. 시연이 아버지가 윤승태 사장이라는 사실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다.

과장님은 팀장님에게 간단하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나와서 나와 김 대리를 회의실로 불렀다.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1년이 될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김 대리와 함께 해야 하다니 암울했다. 과장님은 우선 김 대리에게 부장님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하고 있는 일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거나 인수인계를 하도록 지시했다. 어쩔 수 없이 출장간 최 주임도 불러올렸다. 이 대리 혼자 강소현과 두 인턴을 데리고 뭔가를 하기는 힘들다. 인턴이 강소현보다 일을 더 잘하는 상황이니 그냥 뒀다가는 이 대리 성격에 자폭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턴이 그만큼 일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강소현이 그만큼 일을 못한다는 말이었다. 아마도 강소현의 업무 능력이 일취월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과장님과 김 대리 그리고 나까지 팀에서 업무처리량이 가장 많은 세 명이 빠졌으니 일 속에 파묻혀 죽을지도 모른다.

“둘 중에 누굴 쓸 거야?”

인턴 중 한 명을 고르라는 말씀이다. 아 둘 다 비슷한데. 이번 선택으로 둘의 회사생활은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윤승태 사장님만 설득할 수 있으면 과장님을 중심으로 바로 팀이 꾸려질 것이고 그렇게 꾸려진 팀이 성공을 거두면 모두에게 무척이나 달콤한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나야 대리 최소기간 3년을 채워야 진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 진급은 꿈에도 꿀 수 없지만 연말에 과장님과 김 대리가 동시에 승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은 업무보조밖에 할 능력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라인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의의가 있는 일이다.

“준호요”

아무래도 서울 샌님보다는 지방에서 명문대에 들어간 준호가 더 정이 갔다. 놀기는 형석이가 재미있는데 끈기가 준호의 장점이니 지루한 일도 성실하게 임할 것 같았다.

“너희 둘. 분명히 들어. 이번일 내겐 중요한 일이야. 실패하면 당분간 팀장 승진 물 건너 간 일이 되는 거지.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고 맡은 바 일부터 제대로 해.”

“김 대리”

“네.”

“미팅도 나가야하고 그러는데 항상 말조심하자. 말투가 너무 거칠어. 그리고 마 대리에게 하는 말투도 좀 고치고. 연습하는 셈 치자고. 밖에서 실수하지 말고. 알았지?”

“네”

좋다. 좋은 일이다. 김 대리는 대답은 ‘네’라고 했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오죽 말을 거칠게 했어야지. 한동안 고생 좀 할 것 같다.

“그리고 마 대리?”

“네?”

“너 요즘 대리 달았다고 세상이 네 것 같지?”

“아닌데요.”

아주 약간, 아주 약간 그런 느낌을 받기는 한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안다.

“요즘 많이 들떴어. 평소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보기 좋은데 괜히 김 대리 성질 건드리지 말고.”

순간 김 대리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과장님의 그 ‘성질’이라는 표현 때문인 듯 했다. 우리 과장님도 약간은 흥분하셨는지 말씀이 많으시다.

“흠흠. 아무튼 잘 해보자고. 난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준호도 데리고 올 테니깐 이야기 나누고 있어.”

과장님이 나가자 김 대리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 정말.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내가 김 대리와 같이 일하기 싫은 것이다. 그냥 최 주임이라도 괜찮은데. 아쉽다.

“이봐요. 미련 곰탱씨.”

속에서 욱!!!

“네”

“잘합시다.”

와우. 특별히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닌데 은근히 기선제압에 들어온다. 사실 김 대리 입장에서는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다. 과장님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으니. 잘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괜히 거슬린다.

“그러죠”

헉. 입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 절대 나의 의지가 아니다.

“뭐라고요? 곰탱이 자식이 정말. 미쳤어요? 한 번 해보자는 거죠?”

젠장, 요즘 내가 성격이 많이 급해졌나 보다. 과장님도 없는데 에라이 모르겠다. 이판사판이다. 질러버리자.

“제가 언제부터 대리님 자식이었습니까? 아니 애는 낳아 봤습니까?”

결국 내 입에서 나온다는 소리가 저 말일 줄이야. 내 말에 김 대리의 얼굴은 벌겋게 변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데. 요즘 로또 때문에 자신감이 과하게 넘쳤나보다. ‘곰탱이 자식’이라는 말에 욱하고 말았다.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말이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성희롱이라고 하셔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아주 살짝 숙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중함을 담아 사과를 했다. 요즘 최 주임과 말을 트면서 김 대리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빈틈이 없어서 짜증이나 예민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답지 못했다.

“돼... 됐어요. 앞으로나 그러지 마세요.”

아주 잠깐 뭔가를 본 것 같다. 김 대리와 관계를 개선 할 수 있는 방법을. 그런데 살짝 느낌만 받았을 뿐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 뭘까. 그래 이 부분이야 라는 느낌은 왔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아. 어려운 김 대리다. 언제쯤 개선된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동생 가족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끔 다른 이야기들도 간간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너무 곧바로 달리기만 하면 쓰는 제가 지쳐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길게는 가지 않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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