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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5화 (35/424)

00035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야 운동 안하냐? 헬스장에 운동하러 왔으면 운동이나 하고 가.”

“넌 여기서 일도 한다는 놈이 헬스장이 뭐냐 헬스장이? 스포츠센터나 휘트니스 클럽이나 이런 말들은 놔두고.”

“촌놈이 뭘 또 그렇게 잘 안다고. 헬스장이나 스포츠센터나 무슨 상관이야 운동이나 하러가.”

“이런 촌놈 보게. 넌 임마. 마늘 아가씨랑 미스 월드랑 같다고 할 놈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놈들은 왜 저렇게 미친 듯이 웃지?’

난 요즘 정말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연히 재형이와 형진이, 현우, 정수를 만났다. 그래도 태균이는 연애하느라 바빠서 잘 못 온단다. 이놈들은 나에게는 이야기도 안하고 자기들끼리 운동하러 다닌다고 뭐라고 했더니 나는 어차피 강남까지 운동하러 올 놈이 아니란다. 무서운 놈들. 나에 대해서 확실히 너무 잘 안다. 형진이와 정수는 일이 바빠서 잘 안 오는데, 재형이와 현우는 거의 매일 같이 온다. 그런데 이 자식들이 하라는 운동은 하지 않고, 나만 따라 다닌다. 운동하는 것보다 나를 따라 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단다.

그리고 시연이도 만났다. 자기 아빠가 운영하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서초에서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시연이가 나를 불러서 예전처럼 좋은 선생님과 제자, 좋은 선배님과 후배로 잘 지내자고 했다. 그래서 나도 좋다고 했다. 덕분에 요즘은 어색함 없이 잘 만난다. 내가 힘들게 돌아다니면 음료수도 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절하게 설명도 해준다. 친구들과도 친해졌는지 스스럼없이 지낸다. 참 기특한 녀석이다. 10살이나 나이가 많은 선배들에게 친절하기 쉽지 않을 텐데, 역시 뭘 해도 예쁘다.

안내 명찰을 달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이 의외로 재미있다.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규모가 큰 만큼 정말 다양한 곳이 많았다. 구조 하나하나가 전부 의미가 있고, 시설 하나하나가 전부 고객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큰 건물을 쓸데없는 곳 하나도 없이 거의 완벽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윤 사장님의 고뇌와 노력이 시설 하나에도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왠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것을 의도하고 내게 안내를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도 이런 대단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과 제휴를 맺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청소는 너무 힘들었다. 욕탕에 물을 빼고 바닥에 물을 뿌리고 거품을 내서 솔로 박박 밀다보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목욕탕도 동네 목욕탕 수준이 아니다보니 청소해야할 영역이 정말 넓었다.

문제는 이곳이 아니었다. 여자 목욕탕이 문제였다. 금단의 지역 여자 목욕탕. 머릿속 상상에서만 생각하던 그곳을 내가 청소한다. 처음 들어갈 때는 왠지 두근거리고 마치 비밀의 화원을 구경하는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상상과는 달랐다. 일단 알 수 없는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 그것부터가 거슬렸다. 같이 청소하는 분들 말로는 여성 특유의 체취가 뒤섞여서 그렇다고 설명하셨다. 여자들끼리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 부드러운 살 내음이 뒤섞이면 이런 퀴퀴한 냄새로 변한다고 하니 나의 환상은 그 순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욕탕 안은 그 냄새가 더 심했다. 게다가 하수구는 휴. 그냥 말을 말련다. 남탕의 하수구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여탕의 하수구는 남자 입장에서 저절로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꼭 변태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청소하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그렇게 모든 청소가 끝나고 집에 오면 거의 3시다. 사장님의 지시였는지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2시가 되기 전에 가라고 하시지만 같이 일하다가 혼자 나오려니 괜히 뒤가 찜찜해서 그냥 다 같이 청소를 하고 나온다. 역시나 나는 오지랖이 넓은 인간이었다. 덕분에 집에 오면 나는 온몸이 만신창이 된다. 허리도 지끈지끈하고 팔다리는 뻐근해서 혼자 끙끙 앓다가 잠이 들곤 했다.

Rrrr

모르는 번호였다. 받고 보니 형진이었다. 요즘 바빠서 헬스장도 거의 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니 웬일로 전화를 다 했다.

“어 그래 형진아.”

“일은 할 만하냐?”

“힘들어. 온몸에 알이 배겨서 죽겠다 야.”

“어쩌겠냐? 그게 네 팔자인걸.”

“그래 무슨 일이야?”

“너 오늘 몇 시에 나올 수 있냐?”

“왜? 나 피곤한데. 일 마치면 바로 집에 가서 자야지.”

“잔말 말고, 몇시에 끝나?”

“글쎄, 빨라도 2시에야 나올 수 있을걸?”

“그래 알았다. 내가 2시에 오마.”

자고 싶은데 그 새벽에 만나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얼른 집에 가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일부러 전화까지 했으니 만나는 줘야겠다.

“이야 힘들어 보인다.”

“어 왔어?”

같이 일하는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조금 일찍 나왔다. 스포츠센터 앞에서 형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차에 타자.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가야지. 너도 집에서 쉬어야 하고.”

“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형진이의 차에 올라탔다.

“너 돈 좀 있냐?”

말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네. 이 녀석 집은 꽤 부유한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웬 돈? 너 무슨 사고 쳤냐?”

“사고는 무슨. 투자하라고. 내부 정보 하나 받은 게 있어서 그래.”

“그래?”

“그래 임마. 네가 하도 안쓰럽게 살아서 그래. 이게 무슨 짓이냐? 참 나. 먹고 살기 정말 힘들다. 하하하”

“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내부 정보?”

“재형이야 집에 돈도 많고, 딴 녀석들은 끼웠다가는 소문이 날지도 몰라서 너에게만 이야기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안쓰러워 보였나? 나 돈 엄청 많아 형진아. 걱정하지 마.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건 말할 수 없었다.

“위험한 것 아냐? 무리할 필요 없는데.”

“괜찮아. 안전해. 너 그동안 알뜰하게 살았으니까 돈은 좀 모았지? 한 2~3억?”

귀신같은 놈이다. 역시 회계사라 그런가. 범위가 크긴 했지만 제대로 봤다.

“응. 뭐 그 정도?”

“역시. 평소에 알뜰하게 살더니 그래도 많이 모았네. 더 모아서 얼른 장가라도 가야지. 일단 이것부터 받아.”

형진이는 자기도 안간 남의 장가까지 걱정하면서 차 뒤에 있는 가방을 꺼내 내게 건넸다.

“뭐냐? 이게?”

“현금이야. 오천. 오천만원에 대해서는 세무서에서도 신경 안 쓰니까. 나도 그 정도만 투자 하려고.”

“확실한 정보인가 봐? 이런 거금을 덜렁 넘기는 것 보니까?”

“당연하지. 내가 너보고 이상한 곳 투자하라고 하는 줄 알았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튼 내일부터 내 돈 합쳐서 XX상사 주식을 사. 그리고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딱 2배만 되면 팔아. 절대 욕심 부리면 안 된다.”

“알았어. 근데 정말 문제없는 것 맞지?”

“그래. 안전해. 걱정 마.”

“알았어. 그럼 간다. 고마워.”

“응. 조심해서 운전해. 그리고 내가 연락하기 전에 먼저 하지 말고.”

형진이에게 돈을 받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손에 들려있는 돈 가방을 보고 있으니 씁쓸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 위해서 새벽에 여기까지 온 녀석의 마음이 고마웠다.

다음날 나는 고민 끝에 내가 가지고 있는 돈 중에서 2억만 투자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원래 내가 거래하던 증권사에 들러 형진이가 돈 준까지 입금하고 XX상사의 주식을 2억 5천만 원 어치를 샀다.

그때부터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내 수중에는 그 정도 돈은 코 묻은 돈 취급(?)할 만큼 큰돈이 있는데 왜 이러는지는 몰랐다. 형진이의 말처럼 주식은 금방금방 올랐다. 그리고 열흘 만에 주가는 내가 처음 살 때의 두 배를 찍었다. 욕심이 나 잠깐 고민을 했다. 이대로 두면 금방 3~4배로 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굴에서 열이 나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고민은 잠깐 했지만 결국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난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는데 무슨 바보 같은 고민을 했는지 내가 한심했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의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주식을 팔았다. 5억을 살짝 넘는돈이 생겼다. 형진이에게 1억을 돌려준다고 해도 나는 며칠 사이에 2억이라는 돈이 생겼다. 복권을 한 번 맞아봐서 그런지 아니면 주식을 팔 때 고민을 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었는지 별 느낌은 없었다.

그냥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을 했다. 회사에 나가고, 윤 스포츠센터에 찾아가서 일하고, 친구들이 귀찮게 굴어서 짜증내고, 시연이가 음료수 줘서 맛있게 먹고.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형진이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바빠서 그렇긴 하겠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Rrrr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마동수입니다.”

“마동수씨?”

“네 제가 마동수입니다. 말씀하세요.”

“여기 금융감독원인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침착해야 했다. 속으로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형진이가 분명히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날 새벽에 우리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가 만난 적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잇다보니 진정이 되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뻔뻔하게 나가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차형진씨 아시죠?”

역시 주식이 잘 못된 모양이었다.

“네. 제 친구인데요.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차형씨에게 무슨 이야기 들은 것 없습니까?”

“무슨 이야기요? 최근에는 얼굴 본적도 없는 데요?”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여기로 와주실 수 있습니까?”

솔직히 겁이 났다. 그리고 주식을 산 것이 후회가 되었다. 먹고 살 돈이 충분히 있는데 무슨 욕심이 난다고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금융감독원을요? 왜요?”

“별건 아니고요. 그냥 참고인 조사입니다. 참고인 조사.”

나라에서 오라면 가야지. 난 누가 뭐래도 평범한 소시민이다. 경찰서도 거의 가본 적 없는 내가 난데없이 금융감독원이라니 솔직히 겁이 났다.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해볼까 하다가 그러면 혹시라도 복권에 당첨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관뒀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와 형진이를 묶을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가면 됩니까?”

“시간 괜찮으십니까? 저희는 내일이라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중에 찾아가겠습니다.”

역시 죄를 지으면 마음 편하게 못사나보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그래도 잠깐 잠이 들었는데 재수 없게도 교도소에 갇히는 꿈이었다. 아니 꿈이라도 그렇지, 최소한의 리얼리티가 있어야지 말도 안 되게 무기징역을 받고 내가 받은 돈은 한 푼도 못 쓰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꾸다 잠에서 깨서는 다시 잠을 자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회사에 출근했다. 과장님께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 나와서 금융감독원으로 향했다.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긴장되는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정말 미친듯이 글을 써서 올리는 중입니다. 늦게 까지 잠을 자고 1시 넘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3편 째입니다. 전 양으로 승부하는 작가입니다 ㅠㅜ

아 그리고 평점은 저 말고 서평을 서 주신 분께 드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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