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특이한 경험으로 번 돈에 대한 쓰임을 결정하자 맘이 많이 편해졌다. 복권으로 돈을 벌었을 때와는 또 많이 달랐다. 여전히 아끼고 살 것이고, 앞으로도 내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은 비밀로 할 것이다. 너무 아끼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도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참고 참다보니 덜컥 차를 사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사소한 것을 하나 살 때도 내가 지금 이 정도의 가격대를 사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도 했고, 그럴 리도 없겠지만 내 씀씀이에 복권 당첨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괜한 조심도 했다. 뭔가 많이 참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나보다. 차를 산 것은 후회 되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는 조금 편하게 살려고 마음먹었다.
형진이가 이야기 해준 브리티시컬럼비아에 대해서 알아봤다. 어 그래. 하면서 동의는 했지만 뭐하는 곳이기에 그렇게 돈이 드는지도 궁금했고, 그냥 여러 정보를 알고 싶었다. 그 녀석이야 워낙 낚시를 좋아하니까, 플라잉 낚시를 할 수 있는 그곳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다른 녀석들은 안 그럴 수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스팟 호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신비한 곳 중 하나로 뽑힐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그것 말고도 정말 매력적인 곳이 많았다. 로키 산맥의 주변에 위치해서 거대하고 장엄한 산, 더 넓은 숲과 아름답고 투명한 호수, 그리고 태평양과 인접한 매력적인 해안까지. 문제는 너무 넓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한 땅을 길어야 열흘인 휴가로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었다.
형진이는 한 때 흐르는 강물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가서 플라잉 낚시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뭐라고 하더니 결국 목적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나도 한 때 브래드 피트를 동경하며 아름답게 플라잉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며 동경한 적이 있었다. 같은 곳은 아니지만 만년설의 장엄한 산이 올려다 보이고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어딘가의 강에서 우리끼리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면 그곳이 정말 천국일 것 같았다. 휴가 시즌이 오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몸이 벌써부터 들썩였다.
Rrrr
“응 왜?”
“아니 뭐 좀 물어보려고.”
나는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에 최대한 빨리 여행 계획을 짜고 싶었다. 그래서 형진이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뭘 물어보려고?”
“여행갈 때 기욱이 형은 어떡할 거냐고.”
“어떡하긴 그냥 가자고 말해야지. 그 양반이 그래도 우리에게 잘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잘해준 것이 많긴 했다. 대부분이 밤 문화라서 그렇지. 그래도 형제처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고 그래서 나도 기욱이 형에게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정수랑 태균이 때문에 그렇지.”
“그냥 통보하면 되지. 너와 내가 돈을 내서 해외로 여행을 갈 거다. 인원은 기욱이 형 포함 7명이다. 여름휴가를 맞춰서 갈 것이고, 싫은 사람은 안가도 된다. 기욱이 형에게도 말해. 정수도 여행 갈 것이다. 형이 알아서 결정해라. 뭐 기욱이 형이야 가겠지만.”
“하하하. 그냥 그렇게 보내자고?”
“뭐 어때? 그 두 사람 몇 년째야. 그때 그 여자애가 자기들 여자 친구도 아니고 그냥 둘 다 들이대다가 둘 다 나가떨어진 것 아냐? 서로 먼저 좋아했네 어쩌네, 배신이네 어쩌네 좀 지겹다. 내가 봤을 때는 둘 다 걔 스타일 아니었어. 괜히 차이고 나서 변명거리 만든다고 저렇게 삐져서는 이야기도 안 하는 거지.”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지들도 어느 정도는 돈을 쓰겠지만, 거의 공짜로 갈 수 있는 해외여행 기회인데 삐져서 포기할 거냐 말거냐 결론을 내리게 해야지.”
“정수 그 자식은 안 갈수도 있어. 그럼 삐져서 우리도 안 볼걸?”
“에잇. 몰라. 그냥 그렇게 하자. 우리가 지금 몇 년째 두 사람 눈치보고 살아야 하냐? 강하게 나가자. 자꾸 맞춰주니까 더 저러는 거야.”
“그래 알았다. 조만간 스포츠클럽에 다 모이게 해서 회의나 한 번 해야겠다. 아 내가 바쁘니까 우리의 만남 장소도 헬스장이냐. 우울하다.”
“어쩌겠냐? 우리는 모두 직장인들이다. 원래 남의 돈 먹는 거 쉬운 일 아니잖아. 아무튼 형님은 이만 일하러 간다. 수고해라.”
“그려. 너도 수고.”
생각해보니 정수와 기욱이 형은 정말 오래간다. 여자 하나로 결투를 해서 승자가 나온 것도 아니고 둘 다 쪽팔리게 차여놓고는 무슨 원수 사이처럼 변했으니 웃기기도 하다. 나이가 몇 갠데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띠링”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전시준입니다. 고객님의 소렌토를 괜찮은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문자드렸습니다.
BMW매장에서 차를 샀던 직원에게 문자가 왔다. 그때는 생각 없이 소렌토를 팔겠다고 했는데 이게 아니지 싶었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회사 출근할 때 소형 외제차도 아닌 BMW X5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아. 정말. 세상일은 쉬운 것이 없다. 문자를 받고 한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냥 두 대 몰기로 했다. 세금이 비싸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티가 나지 않는 그런 돈은 그냥 과감하게 쓰기로 했다. 친구들이 미쳤다고 하겠지만 그냥 어머니 명의로 옮기고 당분간만 두 대로 몬다고 해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런다고 ‘야 넌 왜 아직도 차를 두 대나 몰고 다니냐?’라고 물어볼 친구도 없다. 내가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니 다행히 주차공간이 있다고, 한 달에 10만원만 내면 추가로 차를 주차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세금과 보험료까지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달에 몇 십이 깨지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새 차를 조만간 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즐겁기만 했다.
요즘은 김 대리와 자주 함께 퇴근한다. 어차피 같은 스포츠센터에 갈 건데 퇴근시간만 맞으면 딱히 피할 이유가 없어서 그냥 같이 타고가자고 했다. 김 대리도 웬일인지 순순히 그러겠다고 해서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 편하고 좋은 일이니 거절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데 김 대리와 같은 차를 타고 퇴근 하는 순간부터 나는 계속 후회를 했다. 말이 너무 없다.
“집이 강남이셨나 봐요? 저는 2년간 같이 근무하면서 그것도 몰랐네요.”
“네”
“거기 헬스클럽 많이 좋던데 언제부터 다니신 겁니까?”
“5년”
말을 걸다 보면 내 속이 그냥 뒤집힌다. 속에서 천불이 나서 그냥 조용히 있으면 차 안에서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가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무슨 대화하다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그냥 예전에 회사에서 날 갈궜던 것처럼 그렇게 갈구기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회사에서 바쁘고 스포츠센터에서 힘들고 퇴근하는 차안에서까지 피곤하니 내 삶이 참 고단했다.
“야 왜 요즘은 너만 따라 오냐? 현우는?”
한동안 안내하는 나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현우와 재형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현우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오. 우리가 따라다니면 귀찮아하더니 슬슬 적응이 되니까 우리들이 그리운거야?”
“헛소리 하지 말고?”
“요즘 현우 연애 사업하느라 바쁘시단다.”
“연애사업? 현우가? 그 까칠이 현우가?”
“응. 그것도 여기서 만났다는 것 아니냐? 흐흐흐”
“예뻐?”
“음. 예쁜 편이야. 그런데 좀 이미지가 차갑다고 해야 하나. 둘이 뭔가 잘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무튼 그 자식도 별난 놈이야. 웃음기 하나 없는 여자를 뭐가 좋다고 칠렐레팔렐레 거리며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니까.”
“뭐 다 제 짝이 있는 거지. 그래서 요즘 같이 운동해.”
“그래서 그 여자가 그걸 그냥 내버려둬?”
“나도 그 속을 모르겠단 말이지. 지금 현우가 따라 다닌 지가, 보자 3월 말부터 지금이 5월 말이니까 거의 두 달 되었네. 처음에는 차갑게 톡 쏘더니, 요즘은 포기했는지 그냥 내버려두더라.”
“그래? 귀찮으면 트레이너 불러서 쫓아냈겠지?”
“그렇겠지 아마도? 그렇다고 딱히 친해지는 것 같지도 않고. 모르겠다. 난.”
“아무튼 지금 같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
“그럴 거야.”
“가보자. 나도 궁금하다.”
“그럴까? 지금쯤이면 4층에 있겠다. 가자.”
“으흐흐흐. 현우야 형님이 간다. 내가 많이 도와주마.”
우리는 4층에 도착해서 열심히 현우를 찾았다.
“저기 있다. 저 봐. 좋아서 히죽히죽 웃는거 보이지?”
기구 운동실 왼편에 로만 체어에 다리를 집어넣고 허리를 위로 올리는 백 익스텐션을 하는 여자 옆에서 뭐라고 실실 웃으면서 말을 걸고 있는 현우를 발견했다. 클럽에서 제공하는 운동복을 입고 있어 확 눈에 띄지는 않는, 멀리서 보기에는 약간 마른 체형에 어깨가 살랑살랑 닿는 여자였다.
“여자도 대단한 걸? 저 자세로 운동하려면 얼굴이 좀 웃길 건데, 자기 좋다는 남자 앞에서 잘도 운동을 하고 있네.”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아무튼 가보자.”
재형이의 재촉에 우리는 현우에게 다가갔다.
“야 장현우. 옆에 있는 분은 누구시냐? 나도 소개 좀 해줘”
나는 장난스러운 마음에 풀썩 뛰어 현우의 목을 감으며 옆에 있는 여자를 봤다.
우당탕탕탕.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깜짝 놀라며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솔직히 더 놀랐다. 동그랗게 말아 질끈 묶은 머리는 어디가고 찰랑찰랑한 머리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기. 김 대리님?”
넘어진 그녀는 바로 김 수현 대리였다. 놀라서 넘어졌던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수현씨~ 어디가세요?”
현우가 애타게 불렀지만 그냥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야. 김 대리는 무슨 소리야? 아는 분이었어?”
“어”
“어떻게 알던 사인데?”
다급함이 보이는 현우의 표정을 보자 놀란 마음은 사라지고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예전에 잠깐 만났던 여자.”
“뭐? 그런데 왜 ‘님’자는 붙이고 그래? 똑바로 말 안해?”
“거래처 사람이었고, 정말 잠깐 만나서 서로 말은 트지 못했지. 김 수현 대리를 여기서 또 보게 될지는 몰랐는데?”
“씨발. 진짜야? 뭐 이런. 아. 나도 참 운이 없다. 운명의 여자를 만났나 싶었는데 친구의 옛 애인이었다니.”
“야. 저 여자가 그렇게 좋았어?”
“그래. 좋았다. 젠장. 잤냐? 자지만 않았으면 만나도 괜찮은 거잖아. 아니다. 니가 잠깐 만났다고 했으면 잤겠지. 하여간, 저 카사노바 같은 놈.”
장난이 길어졌더니 사실을 말할 틈도 없이 현우는 흥분을 했다. 역시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위험하다. 한 대 맞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야.”
“왜. 이 망할 놈아”
“너 내가 매일 욕하던 우리 팀 대리 알지?”
“알지 네가 만날 욕했잖아. 김 썅이라고. 뭐랬더라. 김 대리라고 했나? 김 대리? 이 새끼야 김 대리가 그 김 대리야? 아우. 씨. 장난칠게 따로 있지. 망할 놈. 내가 지놈을 위해 얼마나 도와주고 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 엉엉엉”
헉. 울지는 몰랐다. 정말. 다 큰 사내놈이 바닥에 앉아 우는 꼴이라니. 아 정말 눈꼴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같이 있는 게 창피했다.
“야 재형아. 창피하다. 일단 피하자.”
“푸하하하. 지금 저놈 우는 거야? 응? 우는 거지? 하하하 아이고 배야. 나도 눈물 나려고해. 웃겨서. 그래 나가자. 같이 있으면 우리도 똑같은 놈이 될거야.”
“엉엉엉. 같이 가 이 나쁜 놈들아.”
우리는 사람이 없는 야외 벤치로 나왔다. 현우는 이미 울음을 멈췄다.
“아이씨. 뭐냐 정말. 창피하게.”
“몰라. 그냥. 넌 정말 사람도 아니다 정말. 어휴. 말을 말자.”
“그런데 네가 날 뭘 도와줬다는 거냐?”
“뭘 도와?”
“아까 그랬잖아. 네가 나를 무척 도와주고 있다고.”
“몰라. 기억 안나. 그냥 예전에 네가 여자 친구 사귈 때 도와줬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
“그래? 네가 날 도와준 적이 있었나?”
“뭘 또 그렇게 꼬치꼬치 따져.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 정말 넌 임마. 세상에서 제일 나쁜놈이야.”
“크크크크크”
옆에서 재형이는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아 좀. 그만 좀 해. 내가 다 잘못했어. 그만 좀 웃어.”
“그런데 정말 김 대리에게 관심 있는 거야?”
“정말. 정말. 관심 있어.”
“너 내가 평소에 하던 이야기 기억 안나?”
“사회 생활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친구보다 여자가 더 좋다는 말이냐?”
“너도 생각해봐라. 내가 우리 수현와 사귀면 수현씨가 네게 형수님이 될 텐데. 잘 해주지 않겠냐? 최소한 갈구지는 않겠지?”
“누가 형수님이야? 제수씨면 제수씨지.”
생각해보니 현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전에도 한 번 친구를 소개시켜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아무도 도와줄 녀석이 없을 것 같아 포기했는데, 현우가 제 발로 나타날 줄이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은 생겼으니, 이제 방울 다는 것만 성공하면 된다.
============================ 작품 후기 ============================
이번 소제목의 챕터도 끝이 났습니다. 원래 마주치는 순간까지만 쓰고 다음 편에 계속. 두둥. 이런 분위기로 나가려고 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예상한 것 같아 그냥 밝혔습니다.
저 폭풍 5연참입니다. 생활이 거의 ㅠ
연참의 이유 중 하나는 솔직히 1등을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질로는 되지 않으니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죠. 그런데 역시 귀족님은은 저와 차원이 다르더군요. 뱁새가 아무리 발을 빨리 놀려도 황새의 한 걸음을 따라잡긴 힘들었습니다.
결국 전 가랑이가 찢어졌습니다. 이대로 쓰러져 내일은 안 돌아 올지도 모릅니다. 다크서클이 발바닥과 놀고 있습니다.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