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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47화 (47/424)

00047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저 둘은 지금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시연이와 과외를 하면서 시작된 윤 사장님과의 조금 특이한 인연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윤 사장님은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다. 사업이 정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윤 사장님에게 나는, 우리 회사와 윤 스포츠센터간의 신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그동안 윤 스포츠센터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의 노력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누구보다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 팀장과 이 대리는 그런 나의 노력을 너무 쉽게 봤다. 일개 직원이 해낸 일이라며 우습게보고 나를 밀어냈다. 나도 반드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대리가 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윤 사장님과 같이 일하려면 변죽도 좋아야 한다. 이 대리와 같은 까칠한 성격으로는 아마 힘들 것이다. 혹시라도 일이 잘 안 풀려 곤란한 처지에 몰렸을 때 양 팀장이 해결한답시고 몸이라도 들어댔다가는 제휴고 뭐고 다 뒤집어 질지도 모른다. 내가 2년 동안 시연이 과외를 하면서 지켜봤던 모습과 최근 근 2달 동안 옆에서 관찰한 결과로 봤을 때 윤 사장님은 지독한 순정남이었다. 나이가 아직 40대 중반이라서 그런지 노 여사님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셨다.

회사에다가 윤 사장님에 대한 소소한 특징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에 있어 내가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도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계속 일을 진행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열흘이다. 아마도 열흘 안에 나는 본사로 다시 불려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놀이공원에 가서 범퍼 카나 실컷 타면서 탱자탱자 놀 작정이다.

‘두고 보자. 양지선 팀장. 이기적 대리.’

혹시나 싶어 동지랜드의 현황보고서를 살펴봤다. 암담했다. 적자를 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나마 땅값이라도 계속 올라서 회사에서 그동안 신경 쓰지 않고 지켜봤던 것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나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지 모르겠다. 저번에 롯데월드에서 못논 것을 시연이가 아쉬워했는데 시험 끝나면 불러서 놀이기구나 실컷 타게 해줘야겠다.

직업병이라서 그런지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동지랜드를 알아봤다. 규모는 대형 놀이공원의 2/3 수준이었다. 다행히 있을만한 놀이기구는 다 있었다. 문제는 없을만한 놀이기구는 전부 없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동지랜드만의 특색을 갖춘, 고객들을 유혹할 수 있는 특별한 놀이기구나 구경거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롯데월드는 자이로드롭과 비가와도 실내에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다가 서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메리트로 작용했다. 에버랜드는 규모의 급이 다른 곳이다. 캐리비언베이나 스피드웨이를 갖춘 복합시설이라는 장점도 있다. T익스프레스를 비롯한 열차시리즈와 다양한 놀이기구는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한, 사파리라는 관람코스는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는 아직 볼 수 없는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랜드는 에버랜드에 비하면 규모면에서 부족하지만 서울에서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미술관과 동물원도 붙어 있어 시너지효과도 상당하다. 아마도 성인남녀의 데이트코스로는 최고의 놀이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절묘했다.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상대의 약점이 자신들의 강점이 되었고 그것이 의외로 조화를 이루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롯데월드보다 멀고, 동물원이나 미술관도 없으며 규모도 작은 이곳. 그나마 의정부 옆에 위치해서 틈새시장을 공략한 덕분인지 적자는 보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능력은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잇몸으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것이 대단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시연이의 목소리가 약이 된다.

Rrrr

“네 선생님.”

“시험공부는 잘하고 있어?”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공부가 잘되기도 하고 갑자기 딴 생각이 나서 잘 안되기도 하고 이상해요. 선생님. 히히.”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전체 수석입학 한 학생이 시험 망치면 그것도 망신인 거 알지? 시험 잘 보면 선생님이 좋은 곳에 데려갈 테니까 남은 기간에도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지?”

“정말요? 어디요? 알려주시면 안 돼요?”

“동지랜드! 혹시 알아?”

“아뇨. 몰라요. 그래도 선생님이랑 같이 가면 어디든 좋아요!”

역시나 모른다. 아마도 그 지역 주민들이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알 것 같았다. 집에서 너무 먼 것도 문제다. 출퇴근 시간만 3~4시간은 걸릴 것 같다. 직원들 숙소가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응. 모르는구나. 선생님이 이번에 그곳에서 잠깐 일하게 됐거든. 그래서 놀이기구는 시연이가 원하는 대로 탈 수 있을거야.”

“와. 정말요. 좋아요. 히히. 그런데 그럼 앞으로는 스포츠센터에는 안 나오시는 거예요?”

사실 난 윤 사장님에게 은근히 고자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서 지시했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윤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나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윤 사장님이 하루빨리 노발대발 하셔서 내가 다시 복귀하는 동안 나는 놀이공원에서 시연이와 유유자적 한가로이 놀 생각이다. 흐흐흐.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게 바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의 계책이다.

“응.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지.”

“히잉. 그래도 아쉬워요. 방학하면 선생님과 같이 운동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게. 선생님도 좀 아쉽다. 그래도 방학하면 자주 볼 수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공부부터 열심히 해. 그래야 선생님하고 동지랜드에서 신나게 놀지.”

“네. 선생님.”

“그래. 잘 자.”

“네. 선생님도요.”

시연이 목소리도 들었고, 고자질도 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양 팀장 그리고 이 대리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디 개고생 좀 해봐라.

“띠링”

- 선생님. 저 꼭 열심히 공부할게요. 시험 끝나면 우리 꼭 동지랜드라는 곳에 놀러가요. 방금 알아봤는데 근처에 국립수목원도 있고 아프리카 예술박물관도 있고 광릉분재 예술공원도 있어서 볼거리는 많대요. 전 다시 공부하러 갈게요. ^♡^

잠시 후에 시연이에게 문자가 왔다. 그새를 못 참고 어딘지 알아봤나보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광릉수목원이 있었다. 너무 놀이공원만 신경쓰다보니 주변 관광지에 대해서는 조금 무심했었던 것 같았다. 아주 사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는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광릉 불고기’다. 오랜만에 ‘광릉 불고기’에 가서 포식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다음날 나는 놀러(?)갈 준비를 완비했다. 속옷과 여벌옷들도 몇 벌 챙기고 양말과 운동복, 운동화도 챙겼다. 가서 읽을 책 몇 권도 집어넣고 혹시나 싶어 노트북도 준비하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초행길이고 동부간선도로가 엄청 막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잠깐 동안 지낸다고 해도 이미지를 나쁘게 보일 필요는 없다. 일찍 도착하면 공원 내부를 둘러보면서 혹시라도 아이디어가 생길지도 모른다.

새벽길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도착하니 6시 조금 넘었다. 빨라도 너무 빨리 왔다. 정문에는 ‘모두가 소망하는 곳! 동지랜드’라는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유치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큰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당연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경비실을 보니 경비원 아저씨께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이 시간에 누가 오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실례합니다.”

“어이쿠. 아이고 놀래라. 이 시간에 누구슈?”

의자에 앉아 신나게 잠을 주무시던 경비원 아저씨는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깨셨다. 단잠을 주무시는데 방해한 것 같아 죄송했다. 경비원이야 당연히 잠을 자지 않고 이곳을 지키는 것이 임무지만 이곳의 풍경이 너무도 조용해서 주무시는 모습조차 잘 어울렸었다.

“안녕하십니까? ㈜동지 마케팅 1부에서 파견 나온 마 동수 대리라고 합니다. 제가 너무 일찍 왔지요? 초행길이고, 길이 막힐까봐 일찍 출발했더니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네요.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본사에서 나오셨다고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제가 안에 다가 연락을 드려보겠습니다.”

“안에 사람들이 계십니까?”

“당연하죠. 숙소가 안에 있습니다.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보시구려.”

나이 지긋한 경비원 아저씨에게 존댓말을 듣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도 그것은 나중에 해결 할 일이고 우선은 담당자의 얼굴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비원 아저씨는 전화 받는 사람에게 어떤 지시를 들었는지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정문을 열어주면서 내가 가야 할 곳에 대한 지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셨다. 경비원 아저씨의 설명대로 차를 운전해서 가다보니 작은 정원이 붙어 있는 붉은 벽돌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아까 전화 받은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먼저 인사를 했다.

“너무 일찍 와서 죄송합니다. 초행길이라 빨리 출발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마케팅 1부 3팀 마 동수대리라고 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도 아침 운동 때문에 벌써 일어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부지런한 분이라서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여기 책임자로 있는 고현호라고 합니다.”

책임자면 여기 사장이라는 이야긴데 생각보다 너무 젊었다.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180cm 조금 안 되는 키에 단단한 체구를 지닌 호감형의 남자였다. 그런데 이 남자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 기억은 정확하게 나지 않는데 분명히 어디선가 본 사람이 분명했다. 고현호라. 어디서 봤을지 궁금해졌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낯이 익은 얼굴이라 저도 모르게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쾌하다니요. 건강한 체구의 남자에게 관심을 받다보니 당황해서 물어봤습니다. 저는 여자를 좋아하니 관심이 있으시더라도 참아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하하하.”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다 한 방 먹었다. 생각 이상으로 유쾌한 사람 같아 마음이 놓였다. 능력도 있어보였다. 그랬으니 동지랜드를 지금까지 끌고 왔을 것이다.

“불행히도 저 또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러니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마 대리님의 반응이 처음도 아닙니다. 제가 누구랑 좀 닮았지요?”

누구와 닮았다는 고현호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자 머리가 번쩍 깨었다.

◆ 시연이네 집.

윤 사장은 오늘도 고단한 일과를 끝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들어 딸의 안색이 너무 밝아져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그래 우리 딸. 잘 있었어?”

윤 사장이 집에 도착하자 시연이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줬다.

“그럼요. 아빠. 헤헤.”

“우리 딸.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래요? 그냥 평소랑 똑같은데. 참 아빠. 선생님이 당분간 동지랜드에선가 일한다고 하시던데 들은 이야기 없어요?"

“동지랜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선생님 회사에서 갑자기 거기로 보냈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것 참 이상하구나. 일단 아빠 옷 좀 갈아입고 다시 이야기하자.”

“네. 아빠.”

윤 사장은 딸의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얼마 전에 제휴도 했고 앞으로 같이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이미 퇴근했으니 어쩔 수 없고 내일 출근해서 알아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넘버 투는 아직 주인공에게 호감만 있습니다. 오너의 지시사항이라고는 하지만 마케팅부서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도 오너의 지시사항입니다. 일은 부장 선에서 진행되었고 주인공이 밀려난 내막은 후에 등장하겠죠?

주인공은 일개 직원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다는 사실을 오너가 알았다고 해도 ‘오 요놈들 봐라’하면서 어느 정도는 지켜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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