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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51화 (51/424)

00051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음. 내일부터는 바쁘게 움직여야겠구나. 근처 관광지에 들러 협조도 요청 해야하고 의정부시청하고 경기도청도 한 번 가봐야겠다. 지역 관광을 활성화할 방안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Rrrr

시연이에게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모델일 때문에 전화하려고 했었다.

“그래. 시연아. 안 그래도 선생님이 전화하려고 했는데.”

“정말요? 기다릴걸. 선생님. 요즘 저 사진 엄청나게 많이 찍고 있어요. 지금 바쁘신 것 아니면 제가 사진 보여 드릴게요.”

“그래? 잠깐만 네이트온으로 들어갈게. 기다려 봐.”

나는 노트북으로 네이트온을 열고 로그인을 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경쾌한 알림 음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창을 열었더니 대부분 시연이가 전송한 사진의 수락 여부를 묻는 메시지였다. 그 중 하나는 현우가 말을 걸었다는 메시지였다. 물론 가볍게 무시해줬다.

“우와. 우리 시연이 사진 많이도 찍었네.”

네이트온을 열어놓고 통화하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사진을 보면서 바로바로 이야기해줄 수 있어서 그냥 전화로 계속 대화를 했다. 정말 많이도 찍었다. 집에 있는 난초, 가재도구, 화장실, 아파트 앞 놀이터, 거기서 노는 아이들, 구름밖에 없는 하늘 그리고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서 계시는 윤 사장님까지.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사진에 찍힌 윤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대체 이게 뭘까’ 하는 이해 불가의 사진도 있었고, 뜻밖에도 시연이의 감각이 빛나는 느낌 좋은 사진도 있었다. 내가 숙제라고 준 것은 취미에 맞는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는데, 이 녀석은 정말 숙제라고 생각하고 목숨(?) 걸고 임하는 것 같아 조금 불안했다. 나는 이 사진이 어떻다고 평가를 하지 않고, 그 사진을 찍었을 때 상황과 왜 그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시연이 나름의 이유가 담긴 사진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독특한 사연이 있기도 했고, 그냥 이유 없이 연습 삼아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를테면 윤 사장님을 찍은 사진?

“아 맞다. 시연아. 선생님이 뭐 좀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했거든.”

한참을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원래 내가 시연이에게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것부터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야 새로운 안내 책자 제작을 할 수 있다.

“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모델을 할 생각 있어?”

“어떤 모델요?”

“우리 동지랜드 홍보 책자와 지면광고에 실릴 광고모델?”

“놀이공원 모델이요? 정말요? 저는 좋아요. 히히. 선생님이 찍어주시는 거예요?”

“하하하. 선생님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전문 사진작가께서 찍어주실 거야.”

“왜요? 선생님이 얼마나 잘 찍으시는데요. 보내주신 사진들을 미니홈피에 올렸는데 친구들이 엄청나게 부럽다고 난리였어요.”

“그래도. 사진작가님이 훨씬 시연이를 예쁘게 찍어주실 거야. 대신 사진 촬영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꼭 지켜보고 있을게?”

“정말요?”

역시 나와 같이 있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시연이가 나를 위해 모델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왠지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설명을 더 했다.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했지?”

“네.”

“아마 이런 활동도 나중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게다가 사장님이 모델료도 많이 주신다고 하니까 돈도 벌 기회가 되고. 그런데 돈을 받는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시연이가 프로가 된다는 이야기야. 열심히 할 수 있지?”

정말 선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자꾸 시연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면 그것도 강요가 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네. 선생님. 저도 꼭 선생님 때문에 모델을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동지랜드가 마음에 무척 들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어요. 안 그래도 학교에서 홍보모델을 하라고 자꾸 이야기해서 2학기부터는 그쪽 일도 하려고요. 저도 열심히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음이 놓였다. 원래 과외를 하던 제자로 만나서 그런지 자꾸 아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시연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열심히 협조공문을 만들고, 동호회 카페에 글을 올렸다. 친한 동호회 형님 몇 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와달라고 부탁도 했다. 역시 흔쾌히 수락하셨다. 이런일에 대해서 돈을 받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들었다. 그래도 우리 동호회 분들은 순수한 아마추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이면 지옥불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인 분들이라 따로 준비했던 설득과정도 필요 없었다.

근처에 있는 관광지에 들려 내 생각을 전했더니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해를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자는 내 취지를 금방 수긍해줬다. 그들도 나름대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던 중이라 완전히 협의를 하고 문서로 만들어 공식화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청과 도청에 들러 협조공문을 전달하고 놀이공원에 돌아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재미난 광경을 발견했다. 우리 공원의 정원을 맡고 계신 정원사 어르신이었는데, 옆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무척 자연스럽게 정원수를 다듬고 계셨다. 그런데도 허투루 손이 가는 경우가 없었다. 거의 신기의 손놀림이셨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얼마 전에 봤던 ‘달인 찾아 삼만리’이라는 프로가 생각났다. 개그맨인 진행자가 연예인 게스트들과 달인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떻게든 TV에 노출은 해야 했는데 마땅히 방법이 없었던 내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발견이었다.

일단 머릿속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불행히 방송가에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신문사 쪽에는 아는 분들이 조금 있으니 알음알음 소개를 받으면 어떻게든 연결은 될 것 같았다. 촬영은 당연히 우리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정원사 어르신이 등장하셔서 신의 손놀림의 보여주시면 좋은 화면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끌 만한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맞다. 브이걸이 있었지. 우리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었으니 잘 설득하면 넘어와 주려나? 그때 봤을 때는 담당자가 조금 어수룩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브이걸은 우리 회사의 행사와 맞물려 인지도가 엄청나게 올랐다. 다행히 우리 그룹과 전속계약을 맺었고, 동지랜드도 우리 그룹이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브이걸만 섭외한다면 그냥 당당히 찾아가서 우리 좀 소개해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이다.

설득에 실패하면 고 이사가 실망할 것 같아 알아볼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차를 몰아 서울로 왔다. 무턱대고 오긴 왔는데 인지도도 많이 올라 스케줄도 많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게다가 전화도 하지 않고 왔으니 나도 참 대책 없는 인간이었다.

다행히 그 때 나와 만났던 담당자가 자리에 있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내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달인 찾아 삼만리’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넉 달간의 스케줄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넉 달 후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했으나 그 때의 동지랜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망을 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설득을 해봤지만 바쁘다는 핑계에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마 주임님 아니세요?”

“아. 가연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어린이날 행사를 너무 잘 도와주셔서 대리를 달았습니다. 감사인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정말이세요? 축하해요. 잘됐다. 저희도 덕분에 인지도가 많이 올랐어요. 서로 잘되고 좋네요.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제가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놀이공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좋은 아이템이 있어서 브이걸 여러분들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꽉 찼다고 하네요. 그래도 인지도가 많이 올라서 바쁘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가 마 대리님 덕을 얼마나 봤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잠시만 저기 휴게실에서 기다려주세요. 잠시면 돼요.”

“네?”

내게 그렇게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가연씨는 빠른 걸음으로 2층 계단을 올라갔다.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면서 몇 번 얼굴도 봤고 같이 식사를 하기는 했어도, 나에게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기다려 보라고 하니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서 홀짝홀짝 마시며 한참을 기다리니 복도에서 가연씨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왼손으로는 작게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실장님하고 이야기를 끝냈어요. 일주일 뒤 목요일에 시간을 비웠거든요. 저희도 그때밖에 시간이 안 나서요. 괜찮을까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당연히 괜찮죠.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호호호. 고마우시면 그날 저녁은 우리 멤버들에게 맛있는 것 좀 사주 세요.”

“그럼요. 제가 알아보고 제일 맛있는 곳으로 예약해두겠습니다.”

“그럼 연습이 늦어서 이만 가볼게요. 자세한 것은 실장님과 다시 이야기해보세요.”

‘와. 땡 잡았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바람처럼 사라진 가연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까 만났던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원래 그날은 브이걸 매니저의 생일이라서,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힘든 멤버들이 휴식도 취할 겸 일부러 오후 일정부터 빼놨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었다. 촬영이 끝나면 놀이공원에서 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생일축하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스케줄 조정은 끝났고 방송국에 가서 이야기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시간이 늦어 오늘은 방송국에 찾아가기가 힘들 것 같아 내일 찾아가기로 하고 대신 시연이를 만났다. 얼굴 본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한참을 못 본 것 같았다. 시연이를 데리고 홍대로 가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람 구경도 하고, ‘조폭 떡볶이’에 가서 군것질도 하고, 길거리 공연하는 사람들의 음악도 감상했다. 그리고 예전에 친구들과 종종 가던 작은 공연장에 가서 구석진 자리에 앉아 인디밴드들이 부르는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가볍게 맥주도 한잔했다.

“선생님. 이런 곳도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너무 좋아요.”

“그래? 왜? 친구들이랑 놀러오지 그랬어?”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한동안 아빠 일 돕느라 바빴잖아요. 그래도 선생님하고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시연이의 말을 들으니 미안해졌다. 아빠 일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하는 일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 다니면서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데 시연이는 벌써 나 같은 노땅을 만나 그러지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학이잖아. 친구들하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봐. 아. 그러고 보니 친구들하고 여행갈 생각은 없어?”

“여행이요? 무슨 여행이요?”

“무슨 여행이긴 해외여행 가보라는 거지. 젊을 때 많이 나가봐야 좋은 경험도 하고 그게 다 네 경력이 되는 거야. 나중에 자기 소개서 쓸 때, 한 줄이라도 더 쓸 내용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정말요?”

“그럼. 그러니까. 지금부터 잘 알아보고 안전한 여행으로 골라서 보름이나, 20일, 아니면 한 달도 괜찮고. 그렇게 한 번 다녀와. 한 번 다녀오면 자꾸 가고 싶어질 거야.”

“에? 그렇게 오래요? 선생님은 저 보기 싫으세요?”

“하하하. 아니.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선생님도 8월 말에는 친구들과 여행갈 생각이야. 오랜만에 휴가를 맞춰서 가려니 기대가 크다.”

“저는요?”

“너? 너도 너대로 여행을 가고, 나도 나대로 여행을 가고. 왜 싫을 것 같아?”

시연이는 내 이야기에 풀이 죽었다.

“네”

“사람이 오래 만나려면 상대와 너무 많은 것을 같이 하려고 해도 안 좋아. 지금도 봐. 선생님은 너무 바빠서 자주 얼굴을 못 보잖아. 나 안 보는 시간동안 그냥 때울 거리를 찾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상하지 않고 오래가.”

“선생님”

“응?”

“그럼 우리 만나는 것 맞죠?”

“그럼 뭐라고 생각했어?”

“아뇨. 친구들이요.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요. 저 혼자 착각하는 거래요. 선생님은 관심이 없는데 제가 자꾸 달라붙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거래요.”

“하하하. 그런 친구들이랑 놀지마. 나도 시연이와 같은 생각이고, 같은 마음이야. 그러니까 전혀 걱정할 것 없어. 내 눈치 보지 말고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것 해. 서로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만나면 오래오래 같이 할 거야.”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시연이의 손을 꼭 잡고 조금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시연이의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됐다. 나와 시연이 주위로 오늘 공연을 맡고 있는 인디밴드가 부르는 사랑노래가 달콤하고 감미롭게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연이에게 다가갔다.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에 음악소리도 아득해졌다. 시연이는 그런 나를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딸기향이 났다. 시연이의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이 감로수처럼 나를 유혹했다. 나는 정신없이 시연이의 입술을 탐했다. 그래도 계속 갈증이 났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둥 두둥”

달콤하고 감미롭던 사랑노래가 언제 끝났는지 무대 위의 밴드는 경쾌한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입술을 조용히 떼자 시연이도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 아까의 그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흉포한 맹수로 변해서 그녀의 입술을 마음껏 유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천천히 나아가야 할 때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코멘트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가 생각도 못했던 이벤트들도 있고 제가 준비했던 소재도 있어서 감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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