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2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짹짹”
시끄러운 새 지저귐에 잠을 깼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오랜만에 다시듣기 시작한 새 울음소리였다. 침대 너머로 작게 나있는 창가를 통해 아침 햇살이 반갑게 나를 맞아줬다.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멍하니 앉아 어제 일을 생각했다. 꿈인가 싶어 조용히 손가락을 뻗어 입술을 만져봤다. 아직도 어제 시연이와 나눈 키스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방인데도 왜 이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원래 어젯밤은 집에서 자려고 했었다. 아침부터 방송국에 들러 관계자들을 만나봐야 뭔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연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멍하니 운전을 하고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맥주는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고, 그래도 몰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운전을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김 유신의 일화가 생각나서 잠시 내 손과 발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시연이의 딸기 향을 닮은 달콤한 내음이 내 코 주변에서 계속 맴돌았었다.
“아 자꾸 생각나네. 정말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큰일이다 큰일.”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을 겨우 뒤로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없이 브이걸만 섭외했다고 덜컥 방송을 잡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일단 카메라로 정원사 어르신의 손놀림을 촬영해서 그걸 가지고 담당 피디와 작가에게 어필할 생각이었다.
아침을 먹고 고 이사를 찾아가 상황보고를 했다. 내 이야기에 고 이사는 매우 만족해하며 어르신을 만나려 함께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거절하시던 어르신도 동지랜드를 위한 일이라며 간곡하게 설득을 하자 결국 승낙을 하셨다. 처음 촬영을 할 때는 어색해하시던 어르신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손놀림이 현란해지더니, 나중에는 가위를 빙글빙글 돌리는 생각지도 못한 묘기를 보여주셨다.
“근데 고 이사, 마 대리. 이게 정말 방송에 나갈 만 한거야?”
“그럼요.”, “그럼요.”
나와 고 이사는 어르신의 질문에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가 입을 벌리고 놀랄 만큼 화려하고 능숙했다. 나는 내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노트북으로 옮겨서 재생시켜 확인해봤다. 요즘은 DSLR로 동영상도 촬영할 수 있다 보니 고화질의 영상을 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노트북을 통해 확인한 어르신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은 확실히 그림이 되었다.
그림은 만들었는데 그래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방송국에 찾아가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옆에서 어르신의 동영상을 무슨 신기한 동물 보듯 연속해서 재생시키고 있는 고 이사를 보자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깨달았다. 일은 같이하자고 해놓고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주위를 둘러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기. 고 이사님.”
“말해. 마 대리.”
동영상에 빠져 나는 쳐다도 보지 않고 대답하는 고 이사의 뒤통수를 냅다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방송국에 아는 사람 좀 있어요?”
“방송국? 아는 사람 많지? 아 방송 때문에? 하긴, 방송 촬영이 일주일 후로 잡혔는데 마 대리 혼자 하려면 힘들겠지? 같이 가자. 그럼.”
이럴 땐 역시 재벌 2세다 싶었다. 그런 상류층에서 살면 나보다 인맥이 훨씬 대단할 텐데 나 혼자 고군분투를 하려고 했다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고 이사의 인맥을 열심히 이용해주려고 마음먹었다.
파일이 든 노트북을 챙겨 고 이사와 함께 서울로 왔다. 서울로 오는 내내 시연이의 말랑말랑한 입술이 생각나서 운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난 직장인이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고 이사 때문에라도 일에 집중해야 했다.
서울로 오는 동안 고 이사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전화를 주고받더니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약속을 잡아버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뒀던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고 이사에게 넌지시 질문을 했다.
“저기 이사님.”
“응?”
“혹시 유명한 사진작가도 좀 아십니까?”
“음. 글쎄 한 세 분 정도 알고 있는데, 뭐하려고?”
“사진 콘테스트라도 열까하고요. 유명 작가님이 심사위원으로 있으면 아무래도 참가율이 높아 질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콘테스트?”
“네. 다른 놀이공원과 달리 워낙 풍경이 좋은 곳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마추어 사진작가들과 대학 동아리 사람들을 상대로 콘테스트를 여는 것이죠. 참가비는 받지 않고 대신 우리 놀이공원의 모든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기간을 3주 정도 주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것 같습니다. 당선된 작품은 광고로 활용도 하고, 놀이공원 내에 전시회도 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 괜찮네. 내가 알아볼게. 잠깐만.”
그리고는 또다시 두어 번의 전화를 끝으로 섭외를 마쳤다.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유명 사진작가를 그렇게 쉽게 섭외하는 모습을 보자 허무하기까지 했다. 사람은 소탈해도 역시 인맥의 격이 달랐다.
달인 찾아 삼만리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피디를 만나는 일도 쉽게 진행되었다. 고 이사를 통해 국장라인으로 소개를 받은 데다가 우리가 보여준 동영상과 브이걸도 섭외했다는 말에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촬영을 결정했다. 오히려 좋은 소스를 제공해주었다고 감사인사까지 받았다. 모레쯤 담당 작가가 우리 놀이공원으로 와서 어르신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했다. 이 정도 소스를 제공했으니 나머지는 작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도 방문하는 날에는 직접 데리고 다니며 우리 놀이공원에 대해 최대한 어필을 할 생각이다. 그래야 좋은 그림이 나오고 시청자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지역 관광지와의 협력, 사진 동호회 형님들을 이용한 블로그 광고, 시연이를 광고모델로 활용, 전국방송을 통한 놀이공원 소개, 사진 콘테스트. 생각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냈지만 뭔가 부족했다. 당장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대부분 입소문을 올릴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봤을 때만 긍정적인 아이템들이었다.
“마 대리. 지금까지도 많이 생각해냈어. 너무 그렇게 몰두하면 생각날 것도 안나. 그러지 말고 우리 인천에 가서 바닷바람이나 쐬면서 회나 한 접시 먹고 오자고.”
둘이서 점심식사를 하던 도중에도 내가 계속 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고 이사는 반나절 정도는 쉬어도 괜찮다면서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면서 나를 유혹(?)했다. 나도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골치가 아프던 차에 고 이사의 권유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소래포구에서 바닷바람을 쐬고, 회를 고기 먹는 것처럼 배불리 먹고 나니 지끈지끈했던 머리가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그만 돌아가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고 이사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여기저기로 나를 끌고 다녔다. 소화도 시킬 겸 소래포구 근처의 공원으로 갔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야외결혼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저녁에 식을 진행할 예정이라서 그런지 여기저기에 조명도 설치하고 주변에 꽃들도 배치하자 점차 그럴싸한 야외 결혼식장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요즘은 평일에도 결혼식을 하나봐?”
“네. 주말에는 예약이 꽉 차서 결혼이 급한 커플이나 주말에 오히려 바쁜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수요가 조금씩 늘어간다고 하더군요.”
“저녁에 하면 조명 때문에 벌레들도 많을 텐데,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군. 차라리 우리 놀이 공원을 빌려주고 싶어지네.”
오. 괜찮은 생각이었다. 야외결혼식. 우리 그룹에서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서 결혼식도 큰 수입원 중 하나다. 회사 호텔과 잘 연계해서 준비하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이사님.”
“응?”
“우리도 결혼식 한 번 해보죠.”
“누구? 나랑 마 대리랑?”
“에이, 무슨 말씀을. 왜 거기 E-5 구역 있지 않습니까? 우리 공원 내에서도 풍경 좋기로 최고로 꼽히는 곳. 거기서 야외결혼식 사업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
“어려울 것도 없지요. 저기 보십시오. 대충 저렇게만 꾸며도 그럴싸하잖아요. E-5 구역에다가 신경 써서 꾸미고 주례단상 대용으로 예쁜 구조물 하나만 세우면 끝내줄 걸요? 외국에서 보는 품격 있고 제대로 된 야외 결혼식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룹에서 호텔을 운영하잖아요. 결혼커플 소개야 그곳에서 받으면 되고. 음식도 호텔뷔페를 이용하면 쉽죠.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결혼이 있는 날만 준비하면 되니 번거로울 것도 없고 괜찮죠?”
“하하하. 이 친구 이거 아주 물건이야. 바람 좀 쐬면서 머리나 식히라고 데려왔더니 여기서도 일 생각이야?”
고 이사는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나를 빙그레 쳐다봤다. 이 인간이 뭐를 잘못 먹었나? 바다를 보러가자고 하지를 않나.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를 하지 않나. 그래도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동지랜드의 수익성 증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괜찮지 않아요?”
“좋아. 좋은 생각이야. 호텔이랑 연계하면 되니 일도 별로 없겠네. 마 대리가 말한 거기 정말 좋긴 하지. 결혼식을 올리기 아까울 정도로 좋아서 문제지만. 좀 아깝다.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거기서 하려고 꽁꽁 숨겨뒀었는데, 마 대리가 냉큼 채가는 구나. 우리 호텔 이름 팔아서 ‘호텔급’ 야외결혼식이라고 소개해도 좋을 것 같네. 음식이야 전부 우리 호텔에서 공수해오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죠? 그럼 당장 호텔부터 가시죠. 하루라도 빨리 이야기를 하고 예약을 받아야 수익이 생기죠. 가요. 얼른.”
나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린다. 일단 호텔과 협조만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일이야 일사천리다. 원형 지붕이 있는 석재 구조물을 만들어서 설치하고, 가운데는 하얀색 카펫을 깔고, 주변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꽃으로 장식만 하면 끝이다. 하얀색 페인트칠을 한 담장을 두르고 꽃을 장식할 수 있는 아치형 입구를 세우면 금상첨화다.
그 구역에는 아담한 디자인의 하얀 석조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있고, 그 사이에는 예쁜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어 유럽의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두 건물을 개조해서 신부 대기실이나 폐백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한다면 결혼식에 필요한 대략적인 조건은 갖추는 셈이 된다. 세부적인 것이야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촬영만 잘해서 예쁜 안내책자만 만들면 그 때부터 영업을 시작해도 별 다른 비용 없이 웨딩사업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시작하면 복잡하지만, 호텔 웨딩 사업부와 연계하면 간단한 수고로도 괜찮은 수익모델이 만들어진다.
인천에서 한남동에 있는 회사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운전은 고 이사에게 맡겼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중에서 E-5 구역의 사진들을 모아 편집을 시작했다. 워낙 인상적인 곳이라 찍어둔 사진이 많았다. 사진을 편집하고 잘라서 대략적인 조감도를 만들고, 각각의 사진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 PPT를 만들었다. 가지고 있는 템플릿으로 보기 좋게 구성을 해놓으니 꽤 그럴싸해졌다. 자료를 만들었다고 해도 나 혼자 갔다가는 냉큼 쫓겨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게는 만능열쇠 같은 고 이사가 있었다. 아직 한직에 있다고는 하지만 후계구도가 윤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회장님의 아들들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 이사에게 내가 만든 자료를 보여줬다. 몇 가지 조언을 바탕으로 수정작업을 마무리하고 웨딩 사업부로 향했다. 고 이사가 미리 전화를 해둔 덕분에 저녁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팀장과 대리급 직원 두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빔 프로젝터가 있는 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의실에서 내가 만든 PPT로 설명을 마치자 웨딩 사업부 직원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야외결혼식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고객 유치를 많이 하면 그만큼 성과급이 늘어나기 때문에 결혼식을 진행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일단은 결혼식이 언제부터 가능한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야외결혼식의 특징상 식장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까 보신 두 개의 건물에 대한 개조가 가장 많은 손이 가겠죠. 그래도 넉넉잡고 40일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피로연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습니까?”
“될 수 있으면 야외 결혼식장에서 모든 것을 끝냈으면 합니다. 그래서 테이블까지 준비하는 것이고요. 결혼식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형태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쉬운 분들은 티켓을 구입해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뒤풀이를 하면 되겠죠.”
“안내 책자는 언제쯤 만들 수 있습니까? 그래야 우리도 안내 책자를 보여주면서 고객 유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차로 만들 안내 책자는 담장과 아치형 입구가 완성되는 즉시, 가상 결혼식을 한 번 열고 그 때 찍는 사진과 건물 개조를 맡게 될 인테리어 업체가 만들어주는 가상도를 활용해서 만들 예정입니다. 서두르면 늦어도 보름 안에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예약 손님을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 공사야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으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부터 40일 정도 후면 결혼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밖에도 많은 질의가 오갔다. 책임자인 고 이사가 옆에 있어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일들도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실무자간의 협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리야 내가 서두르는 바람에 책임자까지 대동했지만 호텔 측에서는 사장은커녕 중역들도 전혀 모르는 사안이다. 그래도 높은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는 고 이사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잘 해결할 것이다. 고 이사는 넘버 투가 줬던 마패 이상으로 든든한 카드였다.
실무자 협의에서 정말 잘해야 한다. 우리는 끽해야 예식장대여비가 수익의 전부다. 호텔은 다르다. 결혼준비 자체는 호텔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예식장대여 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호텔의 수익이 된다. 호텔 측과 협상을 잘해서 그들이 가져가는 수입의 일정부분은 가져와야 오늘 이렇게 난리를 친 보람이 생긴다.
일이 정말 많이 생겼다. 주변 관광지 담당들과도 협의, 사진 동호회 형님들의 안내, 시연이가 사진 촬영, 콘테스트 준비, 달인 찾아 삼만리 작가와의 미팅, 호텔 웨딩 사업부와의 협상.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을 벌인 것 같아 조금 걱정도 됐다. 그래도 조금씩 길이 열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 윤 사장 집무실
“삑”
“네”
“동지에서 이기적 대리가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이 대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윤 사장의 입가가 음흉하게 변했다. 윤 사장은 책상 앞에 쌓아둔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소파로 이동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 대리는 얼마 전에 개망신을 당하고 쫓겨났기 때문인지 군기가 바짝 들은 신병과 비슷한 모습으로 윤 사장에게 인사를 했다.
“아닐세. 일단 자리에 앉지.”
“감사합니다.”
“일단 이것부터 보게.”
윤 사장은 테이블에 올려둔 서류철을 이 대리 앞으로 넘겼다.
“이건?”
“우리 윤 스포츠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와 해외 유수의 스포츠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일세. 일부러 자네를 위해 복사를 해둔 것이니 가져가서 외우게.”
“네?”
“어허. 저번에도 그러더니. 어른이 말을 하는데 그렇게 짧게 반문하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나? 고치게나. 좋지 않은 버릇이야.”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내용이 좀 많지? 그래도 외우게. 그 정도는 알아야 우리와 같이 일을 하지. 5일이면 충분하겠지?”
“네?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대리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그래도 윤 사장이 노려보고 있자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대체 이 많은 것을 왜 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밤을 세워가며 자료를 읽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간은 마 대리가 했던 안내일과 목욕탕 청소를 하게.”
“네?”
“어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마 대리 대신 왔다고?”
“네. 맞습니다. 회사의 지시로 마 대리가 하던 일을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키는 것이야. 궁금하면 마 대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던가. 마 대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고객 안내를 하고, 목욕탕 청소를 했는지 아나? 그러니까 자네도 당분간은 그렇게 하라는 거네. 왜 싫은가?”
“아. 아.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거기 서류철 들고 나가보게. 나가면 우리 직원이 잘 설명해줄 걸세.”
============================ 작품 후기 ============================
여러분. 작가의 신상명세는 감추고 싶은 비밀입니다.^^; 그래도 말씀드리자면 전 동지고 출신이 아닙니다. 동지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인공의 고향에 대한 설정은 잘 아는 친구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