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3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대략적인 논의를 마치고 호텔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고 이사가 술이나 마시자고 해서 함께, 그가 잘 안다는 술집으로 향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엄청나게 화려한 술집이었다. 고 이사가 나타나자 마담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예전에 영화에서도 몇 번 봤던 얼굴이라 깜짝 놀랐다. 그녀는 우리를 룸으로 안내하고 고 이사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와우. 엄청난 곳이네요. 그런데 아까 그분 예전에 영화배우 아니었습니까?”
“알아보네? 왕년에 영화에도 나왔다고 자랑을 하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나보군.”
“왕년이라고는 해도 한 때는 꽤 잘나갔던 것으로 아는데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얼굴을 비췄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촌스럽게 괜히 드라마에서 봤다고 아는 척하고 그러지는 마.”
내가 장담하는데 형진이가 가봤다는 곳도 여기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짜 귀족들만 상대하는 리얼 살롱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웨이터가 두 명의 여자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진짜 연예인이었다. 그것도 꽤 잘나가는 이름 있는 연예인이었다. 같이 들어온 여자도 외모만큼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예뻤다. 고 이사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정말 지난번에 나온 드라마 잘 봤다고 꾸벅 인사를 할 뻔했다. 하필이면 그 연예인 여자가 내 옆에 앉는 바람에 입이 더욱 근질근질해졌다. 그래서 고 이사가 술을 한 잔 따라줄 때까지 티 안 나게 은근히 힐끔거렸다. 그냥 신기했다. 솔직히 사인이라도 받고 싶었다.
술자리는 조용히 진행됐다. 고 이사도 별나게 노는 취미는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조용히 따라주는 술과 안주를 받아먹으며 술 자체를 즐겼다. 나 또한 그냥 신기할 뿐이었지 다른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시연이의 말랑말랑한 입술이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톱스타 여배우가 옆에 있다고 해도. 음 정말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시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체면이고 뭐고 간에 사인 한 장 정도는 받았을 것 같다.
거의 한 시간 넘는 시간동안 쓸데없는 잡담만 하던 우리였다. 고 이사는 새로운 술을 주문하면서 옆에 있던 여자들도 내보냈다. 역시나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옆에 있던 여자애 꽤 잘나가는 배우라고 들었는데 그냥 몇 번 힐끔거리고 마네?”
“하하하. 고 이사님 덕분에 친구에게 자랑할 일이 생겼지 뭡니까. 그래도 신기하긴 했습니다. 이런 곳에는 못 와봤지만 결국 남자들이 노는 모양은 비슷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냥 여자죠. 별다른 게 있겠어요? 눈, 코, 입 다 제대로 붙어있으면 됐지.”
“하하하. 그렇지? 그래도 예전에는 조금 놀아 봤나봐? 그렇게 담담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아니다. 마 대리 옆에는 엄청난 미인이 있었지? 그러니 눈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 이거 괜히 여자 친구 분에게 내가 실례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실례라니요. 직장생활 하다보면 이 정도 일은 예사죠. 적정선만 넘기지 않으면 괜찮겠죠. 그래도 비밀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그나저나 이 인간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마 대리.”
“네.”
“마 대리는 우리 그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대단한 회사죠. 제계 순위는 5위라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계열사 대부분이 알짜기업 아닙니까. 부채도 다른 기업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니 내실로 따진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 말고.”
이 양반 참 위험한 이야기를 자꾸 시키려고 한다. 자신에게도 야망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을 때부터 조심했어야 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알겠지. 마 대리 정도면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반합을 통한 발전. 그런 게 필요하겠네요.”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돌렸다.
“이거이거 마 대리 삐졌네. 왜 부담 가는 이야기야?”
맞다. 나는 삐졌다. 지금은 놀이공원만 감당하기도 머리 아프다. 은인자중하며 조용히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태풍 속에 일부러 들어가 풍랑을 겪으며 개고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고 이사님. 저는 놀이공원만 신경 쓰기도 벅찹니다.”
“알아. 엄청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능력이 있어서 우리 놀이공원이 점점 발전해 나갈 것도 믿고 있어. 그런데 말이지 나는 동생이 돌아오면 결국 그룹으로 들어가야 해. 내 사람이 필요하지.”
“저는 변칙적인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오히려 피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정공에 능한 사람들을 가까이 두는 것이 이사님에게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직 후계구도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나 같이 임기응변이나 잘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 특이하게 튀는 행동으로 견제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론 그것도 알아. 지금 내 기반이 형님들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빠르면 올해 안에 그룹에 들어가 조용히 지내면서 내실을 기해야 하는 것도 알아.”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년이야.”
“네?”
“오년 후면 후계구도가 서서히 수면 밖으로 떠오를 거야.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 예측이 되나?”
“회장님과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신 분이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그룹이 분리되겠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나나 형님들이나 아버지 같은 천재가 아니야. 그런 카리스마도 없고, 그래서 독선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어떤 형태로든 분리될 수밖에 없어.”
미래의 일을 어떻게 정확하게 예측하겠느냐마는 아마도 땅따먹기 형태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전에 누가 더 회장님의 신임을 받느냐? 그래서 누가 더 알짜 계열사를 가져가느냐가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년이야.”
“네?”
왜 자꾸 오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오년 후면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특히 아버지의 친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마케팅부서의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 나는 그동안 아버지의 신임을 받으면서 착실하게 내실을 다질 거야. 그리고 오년이 지나면 나는 마 대리가 필요할 거야.”
“음”
위험하다. 내가 윤 사장님을 꼬실 때와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우유부단 하지. 걱정이 많거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돌진만 하지. 걱정할 머리조차 없거든. 돌진을 할 때도 마찬가지야.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돌진을 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그냥 포기를 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싶어도 그냥 돌진을 해.”
“그렇죠.”
이게 내가 필요한 것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옆에서 일하는 것 지켜봤어. 머리 회전도 빠른데 거기다 추진력도 갖췄어. 마 대리 자네는 이거다 싶으면 거침없이 돌진을 하지. 무식하게 돌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생각을 하면서 돌진을 해. 그런데 아니다 싶으면 변칙이든 임기응변이든 자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판단으로 난관을 거침없이 돌파해버리지. 포기를 하지도 않고, 생각 없이 계속 돌진하지도 않지. 그게 마 대리의 매력이고 그래서 난 자네가 필요해.”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와 같이 일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적으로 두면 무서운 사람일 것 같았다.
“칭찬이 과하시네요. 제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하하하”
“에이. 겸손한 척하기는. 너무 그러지마. 마 대리도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잖아. 그래서 더 마 대리가 필요한 것이고.”
“큼. 큼.”
“오년이네.”
또다시 그놈의 오년 이야기가 나왔다. 이년 저년을 합치면 오년이 될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고 이사를 바라봤다.
“마 대리는 그 동안 자기 할 일을 묵묵하게 잘 해나가면 돼. 지금처럼만 하면 큰 문제없이 회사에서 커나갈 것이라고 믿어. 그 동안 마 대리도 자신만의 인맥을 어느 정도 형성해야겠지.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수 요건이니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 그리고 오년이 지나서 내가 부르면 선택을 하면 돼. 어차피 그때가 되면 싫어도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일 거야. 그런 상황에서 가장 자네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 고현호고,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또한 나 고현호라는 사실만 알아두면 돼.”
정말 무서운 남자였다. 괜히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했던 약속 때문에 동지랜드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지만 한 번 날개를 달기 시작하면 제대로 날아갈 것 같았다. 놀이공원 또한 내가 없었어도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확실하게 키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눈에 띄기 싫고, 동생에게 할 일을 남겨두기 위해 조용히 살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고 이사의 말을 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말이 맞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우리 회사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회장님은 점점 노쇠해 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회사는 큰 위기와 함께 제대로 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내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선택을 해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더없는 행운이 될 수 있다. 고 이사 옆에 내가 서 있다는 상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떴다. 고 이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자신의 웅심을 다시 숨겼는지 장난 끼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 어딘가에 완전히 감추지 못한 열망도 숨겨져 있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사람 같았다. 윤 사장님에게 장난같이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괜찮은 남자 같았다.
“오년입니다.”
“응?”
“오년 후에 두고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사님이 웅변처럼 대단한 말씀을 하셨지만 지금은 놀이공원에 계실뿐입니다. 오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역시 마 대리다운 대답이야. 자네도 열심히 살 테니 나도 그때까지 능력을 보여라?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내, 마 대리 때문이라도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군. 그래 우리 둘 다 오년 후에 두고 보자고. 지금은 죽을힘을 다해 술이나 마시자고. 하하하”
그때부터 우리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술을 마셨다.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고급술들이 줄줄이 들어왔지만 그게 무슨 생수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술을 마셨다. 네 병, 다섯 병, 여섯 병. 그 정도까지만 세고 포기를 했다. 내일 아침이면 무시무시한 후유증이 기다릴 것 같다.
Rrrr
“아이고 머리야. 누가 아침부터 전화야. 어제 정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여보세요.”
“선생님!”
“그래. 시연이구나.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아침이라니요? 지금 시간이 낮 한 시예요. 우와 우리 선생님 완전 술에 곯아떨어지셨구나. 히힝. 연락도 안하고 너무해요. 걱정했단 말이에요.”
낮 한시라니. 정말 어지간히도 마셨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는데 큰일이다. 내가 어제 술을 마신다고 연락을 하고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었으니 걱정할 만도 했다. 그런데 이 녀석 벌써부터 바가지 긁는 건 아니겠지? 우리 순수한 시연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다. 당연히 바가지 같은 것은 모를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됐어? 시연아 미안한데 선생님 엄청 늦었거든. 일단 출근하고 전화할게 미안해.”
“네. 그래도 식사는 꼭 하고 출근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는 서둘러 출근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어이쿠”, “우당탕탕”
서둘러 화장실로 향하려던 나는 말에 걸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 때문에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씨. 뭐야”
맙소사. 사람이었다.
“내가 설마 어제 사고를 쳤나. 어제 옆에 앉아있던 그 연예인하고?”
큰일이었다. 시연이가 알면 난 죽음이다. 조용히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언제 이 여자를 집에까지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깨우려고 머리까지 뒤집어 쓴 이불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무. 뭐야. 이사님이 왜 여기 있어. 아이고, 머리야. 휴, 그래도 이사님이라 다행이다. 이 양반은 대체 왜 내 침대에서 자고 있는 거야. 이사님. 이사님. 좀 일어나 봐요.”
“응? 마 대리. 일어났네? 아이고, 머리야. 나 좀 잘 테니까 조금 이따 깨워.”
고 이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통을 꺼내 물부터 꿀꺽꿀꺽 마셨다. 찬물이 속에 들어가자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엄청나게 취했던 고 이사와 내가 생각났다.
“그래. 이사님이 하도 2차를 가자고 해서 우리 집에 술을 마시자며 데려왔구나. 대리기사를 불러서 집에까지 왔는데. 아 생각이 안 나네.”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날 듯 말 듯 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소파에 앉아 생각을 하자 기억이 점점 더 떠올랐다.생각해보니 이미 차에서 뻗어버린 고 이사를 겨우 부착해서 소파에 던지듯 팽개치고 나도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그런데. 언제 침대에는 기어들어 왔대. 이상한 취미 있는 거 아냐? 시연이도 못 올라가본 침댄데 찝찝하게. 내일 당장 침대보부터 갈아야겠다. 에이, 찝찝해.”
회사 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책임자가 여기 있는데 뭐라고 그럴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가 손수 끓인 다음 얼려서 보내주신 소고기국을 냉동고에서 꺼내서 해동시켰다. 어머니의 소고기국은 아침 해장으로 최고다. 밥을 올려놓고, 해동시킨 국을 냄비에 담아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풍기는 얼큰한 소고기국의 냄새가 술 때문에 죽어있던 식욕을 다시 살렸다.
“킁킁. 이게 무슨 좋은 냄새야. 오. 국이네. 마 대리 요리도 할 줄 알아?”
더 잔다고 이불속에 들어갔던 고 이사가 국 냄새 때문에 일어나서 식탁에 앉았다.
“요리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 국은 고향에서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겁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손맛? 아. 그립다. 얼른 떠줘. 배고파. 음. 냄새 좋다.”
“일단 손이라도 좀 씻으시죠.”
“응? 알았어.”
고 이사는 씻으라는 나의 말에 싱크대에서 대충 물만 끼얹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게 정말 재벌 2세의 모습이 맞는지 헷갈렸다.
“아니 근데 왜 남의 침대에 와서 잠을 자요?”
“아 그거? 나 침대 아니면 잠을 못자. 불편해서 깨보니 소파 위잖아. 그래서 자고 있는 마 대리 옆으로 좀 밀어내고 누웠지. 뭐 어때 남자끼리. 하하하”
아침에 내 침대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생각하면 지금 주는 밥도 아까웠다. 그래도 난 부하직원이다. 이제는 밥까지 바쳐야 하는 신세지만. 그렇게 우리는 내가 차린 밥으로 속을 풀고 다시 동지랜드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손맛이 어떠네 하면서 옆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고 이사를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짠했다.
◆ 시연이의 집.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윤 사장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집에 있는 식구들이 잠에서 깰까 봐 조심조심하고 들어왔지만, 거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거실 소파에는 노여사가 팔짱을 끼고, 전원도 켜지지 않은 TV를 열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여보 지금 몇 시인 줄 알아요?”
“어흠. 아직 안 잤어? 미안해.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더니 술을 좀 많이 마셨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늦을 거면 늦는다고 전화를 해줬어야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을 해줘야죠.”
“그러게 말이야. 내가 깜박 했지 뭐야. 미안해.”
“왜 만날 그렇게 깜박만 해요. 전화 한 번하는 게 뭐 그렇게 힘들다고.”
“목소리 낮춰. 시연이 깨겠어. 일단 안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
“지금 잠이 중요해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그렇게 윤 사장과 노 여사의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시연이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부모님의 신경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시연이가 눈에 빛을 내며 구경한 이유는? 동수의 미래는? ㅎㅎ
시연이가 모델이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시연이의 외모라면 주변의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탐을 낼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판 소설을 보면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 또한 소설이라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얼굴만 예쁘면, 인터넷이 들썩이는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그렇게 위험하다면 얼굴 예쁜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서 꼭꼭 숨어 지내야 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물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는 유혹이 많을 겁니다. 선택은 자신들의 몫이겠죠. 참, 그리고 시연이 집안도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