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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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공지 -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달인 찾아 삼만리’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생활의 달인은 연예인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군요. 그 방송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생각 없이 이용한 제 불찰입니다. ‘달인 찾아 삼만리’는 개그맨 진행자가 나와 연예인과 함께 전국 각지의 달인을 찾아다니는 가상 프로그램입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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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 이사에게 부탁을 해서 같이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직원들을 소강당에 모았다. 단상에 올라 화이트보드를 세워놓고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 직원들은 약속 시간이 되자 속속 몰려들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아. 아. 잘 들리세요.”
“네. 목소리가 섹시해요.”
“하하하”
마이크 테스트까지 마칠 쯤이 되자 직원들은 모두 소강당에 모였다.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이유는 내가 그동안 너무 혼자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 이사처럼 무시무시한 인맥은 없더라도 사람들이 20명이나 모이면 별의 별 아이디어가 다 생길 것이다. 내가 혼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다. 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뜻밖의 아이템이 생길지도 모른다.
“안녕하십니까. 마 동수입니다. 식사 끝나고 개그콘서트도 봐야 하는데, 제가 혹시 괜한 시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도 봐야 해요!”
“네. 그 마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알고계시겠지만, 저는 이곳 동지랜드를 보다 많은 고객들이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못가 이곳에서 더 이상 개콘을 보지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웅성웅성”
시작부터 굉장히 과격한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그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려면 최소한 자신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지금 이 자리를 지루하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면 절대 안 된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다. 건성건성 참여하기보다는 진지하게 토론에 임해서 보다 나은 생각이 모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대부분이 현장요원들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정말 개성 넘치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아.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장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좋은 의견을 내놓는다면 동지랜드는 훨씬 유명한 곳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곳을 사랑하십니까?”
“네”
몇몇 사람들만 대답을 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동지랜드를 사랑하십니까?”
“네!!”
“좋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제가 이곳에 와서 진행하게 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자랑을 하기보다는 나도 이런 노력을 해왔다. 그러니 여기서 계속 일하게 될 너희들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라는 의미였다.
“일단 야외결혼식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지금 공사 중이고 늦어도 두 달 안에는 주말마다 결혼식이 열릴 겁니다. 그리고 사진콘테스트를 열 예정입니다. 홍보 기간을 거쳐 한 달 후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유인물을 통해 알려들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에는 브이걸이 ‘달인 찾아 삼만리’를 촬영하기 위해 우리 동지랜드를 찾을 겁니다.”
“와”
연예인들이 온다니까 역시 다들 좋아한다.
“좋으시죠?”
“네”
“촬영을 끝내고 방송이 되면 보다 많은 고객들이 우리 동지랜드를 찾아오게 될 겁니다. 그런데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곳에 모셨습니다. 거창한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일하면서 생각해왔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저는 사진 동호회 회원이라서 친하게 지내는 동호회 분들을 어제 이곳에 모셔서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아마 그 사진들은 빠른 시일 내에 인터넷에 퍼지게 될 겁니다. 사소한 일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죠. 제가 필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잠깐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길게 말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 봤다. 옆에 사람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골똘히 혼자 생각에 잠긴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반응이면 충분하다. 아래에서 시작되는 변화는 능동적인 힘이 있다. 그런 능동적인 힘이 동지랜드를 보다 좋은 놀이공원을 바꾸게 할 것이다.
“자. 지금부터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저기 B-3구역에 있는 출렁다리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남녀가 함께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안내책자에 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약간의 사기를 치자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웃지만 좋은 생각이다. 남산타워에 있는, 내가 보기에는 흉물스럽기까지 한, 열쇠를 거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스토리는 만들면 된다.
“자자자. 웃지 마시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제가 방송작가에게 부탁해서 연인들의 다리라고 소개해달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방송에까지 소개하겠다고 하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큰 의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퍼레이드가 다른 곳에 비하면 규모가 작잖아요. 그래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고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퍼레이드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저번에 마 대리님과 여자 친구가 우리 ‘귀신의 집’ 분장실에 와서 분장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다 가셨잖아요. 그래서 생각한건데 직접 접촉이 없는 위험하지 않은 코스에는 고객들이 직접 분장을 해서 참여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할인혜택을 보면 커플 할인만 있잖아요. 그렇게만 하지 말고 요일을 정해서 ‘접시가 깨지는 날’과 같은 재미난 제목으로 여자 세 명이 오면 할인해주고, ‘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라는 제목으로 남자만 세 명 이상 오면 할인을 해주는 행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달콤한 음악을 연주하는 홍대 인디밴드들을 매주 초청해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제 친형이 그쪽에 있어서 다음 주라도 당장 섭외가 가능합니다. 돈도 얼마 안 받아요.”
속속들이 의견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정말 괜찮은 의견도 있었다. 특히 퍼레이드 참여나 홍대 인디밴드 초청은 스토리를 잘 만들면 반응도 좋을 것 같았다. 퍼레이드의 경우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서 가족이 전부 분장을 하고 사진도 찍어주면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우리 놀이공원 입구 왼편에 숲으로 둘러싸인 예쁜 공연장이 있으니 ‘숲속의 연주회’라는 식의 제목을 붙여놓고 공연을 하면 연인들이나 공연에 목마른 지역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았다.
“와. 여러분. 이 화이트보드를 보세요. 이게 전부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의견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야기 해주신 의견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수용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화이트보드는 사진을 찍어 우리 숙소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놓을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놀이공원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놀이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돌아가자 언제 왔는지 고 이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이야. 이게 다 우리 직원들이 말한 의견들이야? 좋네. 조금만 수정하고 보완하면 당장 써먹어도 될 의견도 있고. 역시 우리 마 대리는 아이디어뱅크라니까.”
“에이, 괜히 사람 띄우지 마세요. 이게 제 의견인가요? 다 여기 직원들 의견이지. 그래도 괜찮은 의견들이 좀 있죠. 이걸 보니 또 걱정이네요. 일이 태산 같을 것 같아서. 에휴.”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시연이는 이른 아침부터 이곳을 찾아왔다. 난생처음 하는 모델일이라 그런지 많이 긴장돼 보였다.
“긴장 풀어. 벌써부터 긴장하면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아무것도 못해.”
“네. 휴, 전 어제 잠도 설쳤어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직 사진촬영하려면 몇 시간 남았는데. 잘 됐다. 나랑 놀이공원이나 구경하자. 여기 아침 전경이 예술이야.”
나는 긴장하고 있는 시연이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데려갔다.
“와. 예뻐요. 꽃들이 이렇게 이슬을 먹고 있으니까 살아서 막 움직일 것 같아요. 히잉, 카메라도 가지고 올 걸.”
이런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생각하다니 정말 사진 찍는 게 취미에 맞을지도 모르겠다. 예쁜 전경을 봤을 때 ‘와, 예쁘다’하고 생각만 하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와, 예쁘다. 카메라로 이 장면을 담아야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 와서 같이 찍으면 돼. 오늘은 모델일만 생각하자.”
“네. 저 어제 스포츠센터에 가서 풀 마사지도 받고 왔어요. 그리고 자기 전에 마스크 팩도 잠깐 했어요. 어때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가 얼굴을 내미는 시연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래도 좋은 피부가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싱그러운 아침 정원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풋풋하고 상큼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쪽”
“어머.”
시연이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입술에 살짝 뽀뽀를 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시연이가 내밀어서 생긴 사고다. 저렇게 상큼하고 싱그러운 얼굴을 내 앞에 내미는 것은 범죄행위다.
“그렇게 예쁜 얼굴을 내미니까 내가 참을 수가 없잖아.”
내 말에 시연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런 모습이 내겐 또 다른 도발로 다가왔다. 충동적인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내 품에 안으면서 키스를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무와 꽃들이 우리를 숨겨주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길고 깊은 키스를 나눴다.
홍대의 낡은 카페 구석에서 나눴던 우리들의 첫 키스와는 다르게 시연이는 적극적으로 내게 안겨왔다. 그리고 더 힘차게 내 입술을 갈구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싱그럽던 아가씨가 이렇게 정열적으로 변할지는 몰랐다. 시연이가 내뿜는 뜨거운 입김에 내 몸이 금방이라도 불타오를 것 같았다.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에 갇힌 것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그녀의 입술에 매혹되어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또다시 내 안에 있는 짐승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손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시연이의 허리를 더듬고 있었다. 허리를 만지면서 조금씩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나의 손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순간 시연이의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떨림을 느끼고 나서야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입술을 뗐다.
“헉. 헉.”
길고 강렬한 키스에 숨이 찼는지 시연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녀는 이제 내게 너무나도 위험한 여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의 처음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에서, 평생 동안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곳에서, 서로의 마음까지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훗날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 날의 추억이 우리 관계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시연이의 손을 잡고, 아직 다 구경하지 못한 놀이공원의 다른 정원들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 작품 후기 ============================
마동수 : 어이. 이 봐 작가. 이번 회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냐?
작가 : 뭐가?
마동수 : 독자들이 준 의견을 직원들과 회의를 나누는 것처럼 꾸며서 사용했잖아.
작가 : 우. 웃기지마. 내 의견도 있었어!
마동수 : 꼴랑, 인디밴드 이야기? 참 대단한 작가다.
작가 : 너 자꾸 건방지게 굴면, 시연이 멀리 보내버린다.
마동수 : 웃기시네. 한 번 해봐. 그랬다가는 독자들 반은 날아갈 거다. 하여간 생각 없는 작가라니까. 그러니 생활의 달인도 제 멋대로 꾸며냈지. 몰래카메라? 아주 꼴값을 떨어요.
작가 : ... ㅠㅜ
반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