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58화 (58/424)

00058  꿩 대신 닭.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맙소사. 그녀였다. 대학 동기 중에 유일하게 나를 마탱이라고 부르던, 그리고 군대를 가자마자 사라져버려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고장희였다.

“야 밤톨! 너 살아 있었어?”

“그래 마탱이! 나 살아있었다. 반가워.”

“그. 그런데 네가 회장님 딸이라고?”

“내가 누구 딸인지가 뭐가 중요해. 이리 와봐 한번 안아보자.”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장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품에 안겼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키는 작아, 얼굴이 내 가슴에 겨우 닳을락 말락 하는 아담한 체형이었다.

“흠. 흠. 두 사람의 회포는 조금 이따 풀고. 장희야, 생각보다 빨리 왔네. 올해 말에나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걱정 마시라. 내가 누구 딸인데. 생각보다 논문이 빨리 통과됐어. 짜잔. 이게 바로 박사학위증. 그건 그렇고 마탱이는 대체 왜 여기 있으며, 놀이공원은 왜 이따위로 만든 건데?”

“여기가 뭐가 어때서? 내가 그동안 방문객들 끌어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 따위? 이 밤톨만 한 게.”

“뭐? 이 미련한 마탱이가 뭘 안다고. 여기는 동심이 숨 쉬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그런데 왜 갑자기 타락한 성인들의 공간이 되었냐고?”

“뭐 타락? 대체 뭐가 타락했다는 건데?”

“야외결혼식도 하고 프러포즈 이벤트도 한다면서. 그게 타락이 아니면 뭐가 타락인데. 왜 순수한 동심의 공간에 때 묻은 어른들의 사랑이 끼어드느냐고. 대체 왜.”

듣고 보니 그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놀이공원이 제대로 돌아가야 순수한 동심도 있을 수 있다.

“성인의 사랑이 어때서? 세상에 동심만큼 신성한 것이 결혼식이고, 동심만큼 순수한 것이 사랑 고백의 순간이다. 뭘 제대로 알기나 알아? 그러니 그렇게 애인이 군대를 가자마자 사라져버렸지. 싸가지 없는 년.”

말을 하다 보니 옛날일이 생각나서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그래서 홧김에 입에서 막말이 나왔다. 지금은 고 이사든, 회장 딸이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흠. 흠. 장희가 무사히 학위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나는 이제 안심이다. 두 사람의 회포는 두 사람이 알아서 풀도록 해. 나는 나가볼 테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을 느꼈는지 고 이사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장희는 이미 내가 내뱉은 말에 충격을 받고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래. 나 싸가지 없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재벌 딸인 것은 비밀이라 엄마가 돌아가셔도 위로받을 친구 하나 제대로 없었다. 미친 듯이 좋아죽겠는데 엄마 유언 때문에 떠나야 했던 내 심정을 알아? 유학 기간이 대체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는데, 군대 훈련소에 처박혀 있어서 연락도 못하고 떠났던 내 심정을 알아?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연락을 하면 공부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될까봐 외로움을 견디며 참고지낼 수밖에 없었던 내 심정을 알아?”

장희가 그렇게 절규하듯 말을 했지만 내게는 겨우 신세 한탄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결국은 자신을 위해 사랑을 버리고 떠난 것은 그녀였다.

“나쁜 년. 이기적인 년. 결국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떠난 거잖아. 그래놓고 무슨 신세 한탄이야. 처울지 마. 재수 없어.”

내가 그렇게 욕을 하든 말든 장희는 내 팔을 붙잡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안아줬다. 어쨌든 장희도 내 동기고, 형진이도 내 동기다. 힘겨워하는 형진이 옆에는, 그래도 힘이 돼줄 친구라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혼자 외롭게 지냈다고 하니 마음이 안됐다.

“엉엉. 마탱이 이 나쁜 놈아. 형진이만 네 친구라 이거지. 이 치사한 놈아. 나도 정말 동기들이 그리웠다고. 엉엉.”

“그만하고 뚝 그쳐. 이제 다 끝난 일이잖아. 됐어. 미안해. 내가 괜히 옛날 생각나서 화를 좀 냈다. 난 그때 정말 그 자식이 폐인이 되는 줄 알았거든. 그러니까 미안해. 그만 울어.”

한참을 울고 나자 서러움이 풀렸는지 장희가 나를 올려다봤다. 궁금한 게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9년이 지난 일이다.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 동안 형진이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어떻게 힘겨움을 이겨냈는지 그녀에게 내가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들으려면 형진이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형진이는 장희에 대한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겠지만, 그것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게 형진이에 대한 예의다.

“말 안 해줄 표정이네.”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 꺼. 내가 해줄 말은 없어. 너도 내가 아꼈던 동기지만 9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 형진이는 이미 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친구야. 내가 오히려 부탁하고 싶다. 마음잡고 잘 살고 있는 애, 괜히 가서 흔들지 마. 게다가 너 회장님 딸이라며. 형진이 집안정도는 눈에도 차지 않으실 분인데, 나 그녀석이 또 상처받는 거 싫다. 웬만하면 여기서 죽은 듯이 일이나 하고 살아. 우리 곁에 나타날 생각은 하지 말고.”

“와. 나쁜 자식. 말을 참 아프게도 한다. 나도 알아.”

“알면 됐어.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동기대접은 제대로 해주마.”

“아이고, 고맙네.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감동적이다. 마탱아”

그래도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후련해 보이는 장희였다. 다행이었다. 예전부터 동심이 가득한 친구라, 입는 옷들도 애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 입던 녀석이었다. 공부까지하고 왔으니 내가 했던 방식이 아닌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여기를 키울 것이다. 나도 그동안 많은 정이 들었는지 그녀가 이곳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래 꼬장희. 감동적이지?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서 동심 가득한 곳으로 한 번 만들어 봐. 나도 기대할 테니까.”

“야. 그래도 놀이공원에서 결혼식은 너무 그렇지 않냐?”

“돈을 벌어야. 동심가득 한 곳을 만들 수 있단다. 괜히 미국에서 공부해왔다고 이상한 것만 마구 적용하려고 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일단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해라. 일단 놀이공원부터 살아남아야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돈도 좋지만 결혼식에, 프러포즈 이벤트에, 인디밴드에, 완전히 성인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버렸잖아. 무슨 꿩 대신 닭도 아니고. 이게 뭐야.”

“넌 대체 거길 가서 뭘 공부하고 왔냐? 동심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란다. 이 어리석은 중생아. 오빠가 말해 줄 테니 잘 들어라. 인디밴드? 그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가는 연인들이 꽤 있어.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우는 거야. 사랑의 감정을 키워야 결혼하자고 고백을 하지. 고백이 바로 프러포즈야. 프러포즈 이벤트?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것만큼 순수한 마음이 있는 줄 아냐? 그 순간은 동심만큼 아름답고 순수한 시간이야. 그렇게 고백을 해야 결혼을 하는 거란다. 야외결혼식? 결혼식이 얼마나 신성한 의식인지 아냐? 결혼을 해야 애를 낳고, 애를 낳아야 동심도 생긴단다. 결국 우리 놀이공원은 동심을 만들기 위한 길고 긴 프로젝트에 돌입한거란다. 알아듣겠냐? 사랑도 이해 못하는 꼬마아가씨?”

참 길게도 말했다. 내가 말하고도 내가 감탄을 했다. 동심을 만들기 위한 길고 긴 프로젝트? 그런 의도 전혀 없었다. 야외결혼식이고 프러포즈 이벤트고 간에 별 뜻 없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냥 장희가 내가 노력한 결과물을 무시하자 화가 나서 지껄였는데 그게 의외로 말이 된다. 장희도, 나의 의도하지 않은 엄청난 프로젝트 계획에 입을 딱 벌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야. 마탱이. 너 정말 말 잘한다. 그리고 정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멋진 말 같다. 동심을 만들기 위한 길고 긴 프로젝트라. 내가 원하던 모습이 바로 그거야. 네 말을 듣고 보니 알 것 같아. 사랑하는 연인이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고, 이곳에서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식도 이곳에서 올리고, 애를 낳아서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 아이는 커서 연인을 만나고, 연인과 함께 이곳에 오는 거지. 와 생각만 해도 감동적이다. 너는 정말 천재야. 그래서 네가 여기 있었구나. 대단해.”

이게 아닌데. 장희가 내 말에 저렇게까지 도취될지는 몰랐다. 예전에도 애 같은 구석이 있더니, 지금도 저렇게 엉터리 같은 내 궤변을 진짜처럼 믿고 감동에 빠졌다. 열이 받아 너무 과장되게 설명을 했던 내가 민망해졌다. 저 4차원과 함께 일하려면 당분간 힘들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회사에서 나를 부를 때가 되었는데 뭐하는지 모르겠다. 과장님 말씀으로는 일이 거의 진척이 안 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셨다. 과장님과 김 대리가 고생한다는 이야기에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이 문제에 관해 책임을 질 사람은 양 팀장과 이 대리다.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며 나를 쫓아냈으니 책임회피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장희와의 대화는 저녁을 먹고 나서도 계속 되었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쉴 새 없이 자기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했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수다를 그만뒀다. 졸리다 면서 남은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자고 하는 바람에 몸을 흠칫 떨고 말았다.

Rrrr

숙소에 들어와 자려고 누웠더니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유럽으로 여행을 나가 있는 시연이 같아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 제 말 잘 들리세요?”

“응. 잘 들려. 여행은 잘 하고 있어.”

“히히. 그럼요. 지금은 로마에 왔어요. 여기 너무 예뻐요. 카타콤베, 쿼바디스 성당, 콜로세움, 베네치아 광장, 트레비분수. 말로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만큼 유명한 곳도 많아요.”

시연이는 지금 유럽여행중이다. 친구들과 여행계획을 짜고 나서, 떠날 날짜가 다가오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잘 달래서 보냈더니 그때부터는 아주 신이 났다. 매일 저녁에 전화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8시간 빠르다보니 새벽에 전화를 받아야 해서 고생을 좀 했다. 다행히 며칠 동안 시간에 대한 개념이 생겼는지 우리나라 시간으로 밤 11시가 되면 거의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하루 일정을 보고하고 있다. 내가 유럽여행을 말렸으면 어쩔 뻔 했는지, 너무 신이 난 모습에 약간의 질투가 났다. 그래도 항상 전화를 끊을 때쯤이 되면 ‘다음에는 꼭 선생님과 와보고 싶어요.’라며 기특한 말을 하는 덕분에 행복해진다.

“참. 선생님도 다음 주면 캐나다로 가는 것 알지? 친구들끼리 이야기했는데 여행갈 때 휴대폰은 놓고 가기로 했어.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고 자연에 품에 안기자나?”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어요? 그럼 어떡해요. 전화도 제대로 못할 텐데. 전 여행보다도 여행에서 본 것들을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는 게 더 좋은데. 히잉.”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도 너무 자주 보면 결국 지루해져. 이렇게 떨어져 있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야. 여행가서 사진 많이 찍고 있지?”

“네. 선생님.”

“그럼. 마음에 드는 사진을 보면서, 메모지에 네 느낌을 적어봐. 나와 함께 여행 중이고, 네가 가이드가 됐다고 상상을 하는 거야. 전화로 말하듯 나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거지. 어때?”

“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선생님이 내준 숙제 때문에 소감문 비슷한 것을 쓰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히히”

다행이었다. 시연이와의 전화가 귀찮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여행 중에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놀다가 오고 싶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 중 누군가의 회사에서 비상이 걸렸다는 전화가 온다면 여행기분은 그냥 깨질 것 같아 일부러 전화기는 놓고 가기로 했다. 서운할 수 있어도, 금요일 밤부터 그 다음 주 일요일까지 고작 10일의 시간이다. 연락수단을 끊어버리고 10일 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회사에도 복귀하라는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이곳이 좋기는 해도, 진짜 책임자가 나타났으니 내가 할일은 없어졌다.

고 이사는 싹이 조금 나있던 야망이라는 감정에 슬며시 물을 뿌렸다. 그리고 나에게는 100억이라는 백그라운드가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다. 그 덕분에 ‘에라이 모르겠다. 돈도 있는데 어때. 못 먹어도 고.’라는 식의 배짱도 생겼다. 고 이사가 얼마나 세력을 키울지 알 수 없고, 나 또한 얼마나 성장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기대가 크다.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고 이사가 뿌렸던 물위에서 태양이 주는 양분처럼 변해 숨어있던 야망을 일깨우고 있었다.

◆ 강남의 어느 고급 술집

화려하게 꾸며놓은 술집의 어느 룸에서, 양 팀장은 허벅지가 보일 듯 말 듯 할 정도로 찢어진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도발적인 매력을 뽐내며 서 있었다. 도발적인 복장과는 달리 얼굴의 표정은 초초함이 서려있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나 정도의 미인이 직접 청했으면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줘야 정상인데. 괜히 불안하네.”

“똑똑”

“윤 사장님 도착하셨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양 팀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다급히 옷매무새를 다듬고 문앞에 서서 오늘의 주인공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미안하네. 양 팀장. 내가 좀 늦었지.”

“아닙니다. 사장님. 이렇게 불쑥 약속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나와 주셔서 제가 오히려 영광입니다.”

윤 사장이 도착하자 양 팀장은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허리를 숙이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무덤이 살짝 드러나면서 야시시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영광은 무슨. 이런 미인이 초대했으면 당연히 와야지. 하하하”

윤 사장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종업원이 안내하는 자리로 앉았다. 양 팀장은 윤 사장의 자리 바로 옆 자리에 앉으며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민소매에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노골적인 블라우스가 그녀의 섹시한 자태를 돋보이게 했다.

“미인이라니요. 별 말씀을요. 우선 한잔 받으세요.”

그때부터 양 팀장의 장기가 시작됐다. 술을 따르면서 은근히 손을 스치기도 하고,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윤 사장 앞에 있는 접시에 옮겨 놓으면서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윤 사장의 기색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양 팀장은 그런 윤 사장의 표정에 자신감을 얻고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어깨가 서로 가까워졌고, 테이블 아래에 있는 윤 사장의 허벅지 옆으로 그녀의 허벅지가 살며시 닿았다.

“큼.”

윤 사장의 입에서 잔기침 소리가 나왔다.

“목이 타 신가 봐요. 여기 온더락으로 한잔 드세요.”

얼음이 담긴 유리잔에 위스키를 따라 윤 사장에게 전해준 다음, 양 팀장은 그의 허벅지 위로 은근히 손을 올렸다. 허벅지위로 올렸던 손은 금방 대담하게 변해 노골적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뽀드득, 뽀드득”

윤 사장의 입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눈을 돌려 양 팀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윤 사장의 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도발적인 시선으로 그를 유혹했다.

“촤르르르”

“엄마야. 앗, 차가워.”

양 팀장을 바라보던 윤 사장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더니 갑자기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는 얼음 통을 들고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버렸다. 양 팀장의 머리는 물과 얼음으로 뒤섞여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렸다.

“요즘 동지에서는 일을 이렇게 하나?”

“네?”

“일이 잘 안되면 열심히 일해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따위 천박한 짓거리로 사람을 희롱하는 게 동지의 방식이냐 이 말일세.”

“아. 아닙니다. 사장님. 뭐.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 그럼 지금까지 내게 했던 짓거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나를 그리고 윤 스포츠센터를 우습게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해괴망측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저. 저. 사장님. 일단 고정하시고. 저는 절대 그런 뜻이 없었습니다. 평소에 사장님의 풍모에 반해 제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저. 절대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풍모? 풍모에 반해? 요즘은 풍모에 반하면 일단 옷부터 벗어던지고 덤비나보지? 천박하기 그지없구먼. 능력은 쥐뿔도 없어서 일은 제대로 진행시키지도 못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을 유혹이나 하려고 하고. 능력도 없고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고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보군. 앞으로 서로 얼굴 볼 일은 없었으면 하네.”

윤 사장은 양 팀장에서 호통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윤 사장이 부어버린 얼음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마스카라가 번져 우스꽝스럽게 변해 있었다.

“휴. 어지간히도 색기가 넘치는 여자였구먼. 마 대리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귀띔해주는 바람에 괜한 호기심으로 와봤다가 큰일 날 뻔했네. 갑자기 우리 노 여사한테 미안해지는 걸. 들어갈 때 꽃이나 한 다발 사가야겠어.”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윤 사장은 점 더 깊숙하게 자리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꿩 대신 닭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