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0 방귀 뀐 놈이 성낸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캐나다로 떠난 여행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여자 친구인 선희씨와 여행을 다녀온 태균이를 제외하고 기욱이형, 형진이, 재형이, 현우, 정수 그리고 나까지 총 6명의 남자는 그야말로 화려하면서도 찌질하게 놀다왔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기욱이 형과 정수도 돈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함께 여행을 갔더니 언제 사이가 나빴냐는 것처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서 어색해지자 화해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벤쿠버에서 미리 예약해둔 고급 요트를 타고 태평양에서 수영도 하고, 고급 호텔 룸에서 냉장고에 들어있는 술이란 술은 다 꺼내 마시기도 했다. 기욱이 형은 백인 여자를 한번 꼬셔보겠다고 나갔다가 나라망신만 시키고 돌아왔다.
“와타시와 니혼진 데스.”
작업을 실패하면 매번 저렇게 타이밍도 맞지 않는 일본말을 주절거리며 우리나라 망신은 간신히 피했다. 우리가 일본 남자들은 ‘와타시와’라고 하지 않고 ‘보쿠와’를 쓴다고 하자 그때부터는 열심히 ‘보쿠와’를 외치며 작업을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나도 잠깐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해봐서 아는데, 미국에 갔다가 외국여자와 잠을 자봤다고 자랑하는 녀석들의 거의 대부분은 동양계 여성들이다. 금발에 백인은 그냥 환상일 뿐이다. 주변에 많이 있다고? 솔직히 90%는 뻥이다. 냉정하게 말해 그녀들에게 우리는 그냥 신기한 노란 원숭이에 가깝다. 그러니 기욱이 형의 작업이 성공할 리가 없다.
캐나다의 로키산맥 주변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높고 거대한 산 앞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압도되었다. 깨끗하고 투명한 호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고,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뻗은 광대한 숲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시간이 없어 헬기나 경비행기를 통해 이동하는 도중에 만나는 경관도 부러울 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지막 코스였던 플라잉 낚시도 만족스러웠다. 헬기로도 한참을 들어간 오지에는 자연과 조화롭게 지어진 방갈로가 스키나 강을 따라 예쁘게 위치해 있었다. 방갈로 한 곳을 두 명이 사용하고, 숙소 한 곳 당 낚시에 대한 교육과 감독을 담당하는 가이드가 배치되어 이동하기 때문에 작은 헬기로는 두 명씩밖에 타지 못했다. 그래서 세 대의 헬기를 나눠 타고 목적지를 향했는데 우리는 무슨 대단한 추격전을 경험한 것처럼 신이 났다.
캐나다에서 낚시를 하려면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따로 기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돈만 내면 허가해준다. 라이센스 없이 낚시를 하다 발각당하면 정부로부터 강력한 제제를 받는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 1인당 40불을 내고 이틀짜리 민물낚시 라이센스를 발급받았다.
방갈로를 관리하는 업체에서 낚시도구를 빌려 가이드의 지시를 받으며 캐나다 무지개 송어인 스틸헤드를 낚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쉽게 잡힐 리가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상상했던 것처럼 만년설이 쌓여있는 거대한 산이 멀리서 보였고, 높게 뻗은 나무들이 강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정말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여자 낚시에 실패했던 기욱이 형이 너무 쉽게 송어를 낚아 우리를 놀라게 했고, 정작 플라잉 낚시에 대해 노래를 부르던 형진이는 한 마리도 낚지 못해서 우리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냥 걱정 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시연이가 그리웠다. 이렇게 좋은 곳에 함께 오지 못한 아쉬움이 커지자,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여행이야기를 쫑알쫑알 늘어놓던 시연이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대단한 여행을 간다고 굉장히 어른이 된 것처럼 과제(?)를 내주며 연락을 끊었는지 한심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자 그렇게 즐겁던 여행은 건성으로 변하고 시연이가 보고 싶은 마음만 커져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이렇게 애타는 내 마음을 확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공항 면세점에 들렀다. 카르티에 매장에 들러 세 개 작고 귀여운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와 같은 컬렉션의 손목에 거는 브레이슬릿을 6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입했다. 평소 같으면 깜짝 놀랄 가격이었지만, 가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할 때 이 매장에서 시연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제품이었고, 목걸이를 차고 있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서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비행기가 떠나기 전 시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오전 10시 정도면 도착 예정이라서 오후에라도 약속을 잡고 싶었다.
Rrrr
“네. 여보세요.”
“응. 나야. 잘 있었어?”
“선생님! 히잉. 너무 보고 싶었어요.”
“나도 그래. 내일 오전이면 한국 도착해.”
“몇 시에요?”
“글쎄, 10시쯤이면 도착할거야. 혹시 내일 약속 있어?”
“네. 아빠랑 어디 좀 가기로 했어요. 어떡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 사장님과 약속이 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 그럼 밤에는 잠깐 볼 수 있지?”
“네. 그때는 괜찮아요. 그럼 우리 내일이면 얼굴 보는 거예요? 와.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이상해요. 거의 한 달 동안 못 본 것 같아요. 여행은 재미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길게 여행 안 갈 거예요. 저보고 자꾸 여행가라고 등 떠밀지 마세요.”
오랜만에 듣는 시연이의 쫑알거림에 조급했던 내 마음은 가라앉고 어느새 편안해졌다. 살아있는 게 느껴졌다. 한참을 시연이와 수다를 떨고 비행기를 탔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나름 럭셔리였기 때문에 좌석도 비즈니스 석으로 예약을 했다. 성수기라서 그런지 비행기 값만 3천만 원에 가까운 돈이 들었다. 그래도 좋긴 좋았다. 키가 큰 편이라 10시간 넘는 시간을 좁은 일반석에 쪼그리고 앉아 여행을 할 때는 비행기 타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확실히 돈이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
비행기가 친구들과 출구로 나오는데 나를 발견한 시연이가 큰소리로 부르며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시연이의 그리운 체향이 코를 간질였다. 옆에서 친구들이 영화를 찍는다고 핀잔을 주든 말든 시연이를 꼭 끌어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반가웠다. 예상치도 못한 만남이라 더욱 반가웠다. 밤에나 얼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연이의 깜짝 쇼에 가슴이 뭉클했다.
한참을 안고 있자 그제야 창피함이 느껴졌다. 시연이가 말하고 있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도 바꾸고 싶었다. 나만의 개똥철학에 의하면 시연이는 나를 ‘동수씨’라고 부르게 했어야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비슷한 또래였으면 괜찮은데 20살짜리 여자에게 ‘동수씨’라고 부르게 하려니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오빠’도 싫고, ‘선배님’도 싫으니 어쩔 수 없이 익숙했던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바꾸고 싶었다. 자꾸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시연이에게 내가 꼭 남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었다.
“어떻게 이 시간에 와있었어? 약속은?”
“없었어요. 그냥요. 선생님이 전화도 안 가져가고 그래서 연락도 못해서 조금 서운했거든요. 그래서 제 서운함을 조금 알아달라고 일부러 약속이 있다고 했어요. 히히히.”
한방 먹었다. 그런데 유쾌한 한방이라 기분이 좋았다. 시연이 말이 맞다. 나는 그동안 나이 때문에 너무 점잖을 떤 것 같았다. 솔직해지자고 다짐을 해놓고 여전히 나이 많은 어른이라고 시연이를 얕잡아 본 것 같았다.
“잘 했다. 네 서운함을 아주 사무치게 깨달았어. 하하하. 일단 가자.”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들은 그냥 버려두고 시연이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배낭과 카메라 가장 그리고 캐리어까지 있어 집에 들렀다가, 어디론가 가고 싶었는데, 집에 들르면 그냥 나올 자신이 없어서 바로 삼청동으로 향했다.
“자 이거 받아.”
삼청동에 도착하자 11시가 조금 넘었다. 밥 먹기는 애매해서 근처에 있는 슬로우가든에 들러 아이스크림 와플을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나는 시연이에게 무심한 척 선물을 전했다. ‘시연아 너를 위해 골랐어.’라던가 ‘네가 하면 참 예쁠 것 같아.’와 같은 오글거리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시연이를 만나는 순간만 해도 모든 것에 솔직해지자 다짐했건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의 결심은 쑥스러움 앞에 굴복을 하고 말았다.
“뭐에요?”
“선물”
“정말요? 고마워요. 선생님. 저도 선물 준비했는데 이따 집에 들러서 드릴게요. 선생님을 만난다고 너무 흥분해서 깜빡 잊고 안 가져왔어요.”
“괜찮아. 어서 풀어봐봐.”
머릿속은 내가 사준 목걸이가 시연이에게 얼마나 잘 어울릴지 궁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괜히 그녀를 재촉했다.
“네. 저도 너무 궁금해요. 어머, 카르티에네요. 와 너무 예뻐요.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여행 가서 제 생각 안 하시는 줄 알았는데 감동받았어요. 히잉.”
시연이는 선물을 풀어보더니 갑자기 뺨에 뽀뽀를 하고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못 본 사이에 표현이 너무 솔직해졌다. 그래도 저렇게 좋아하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시연이는 원래 하고 있던 목걸이를 풀고 내가 선물해준 목걸이를 걸었다. 하얀 목덜미와 노란 원피스 사이에 자리 잡은 목걸이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줬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시연이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노란 원피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옷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휴가를 가기 전에 장희가 입고 있던 옷과 모양이 같았다. 둘 다 부잣집 딸이라서 좋은 옷을 입었겠지만 장희가 입었을 땐 유치원교복 같던 옷을 시연이가 입자 그 옷이 주는 원래의 고급스럽고 시원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났다. 왠지 유쾌했다.
“흠흠. 내가 왜 네 생각을 안 해? 캐나다에 있는 동안 계속 생각나더라. 친구 녀석들이 자기들은 통화할 사람도 없다고 괜히 휴대폰은 놓고 가자고 해서 나도 많이 서운했었어.”
“정말요? 그럼 됐어요.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목걸이도 목걸이지만 저는 이 브레이슬릿이 더 맘에 들어요. 꼭 선생님이 제 손목에 수갑을 채우듯 구속하고 싶다는 느낌이 나서 너무 좋아요. 히히.”
주문했던 아이스크림 와플이 나와서 맛있게 나눠먹으며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여행가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빠짐없이 했다. 산과 바다, 강, 숲, 호수 그리고 우리가 잡은 무지개 송어까지 캐나다의 자연경관을 보여줄 때마다 시연이가 감탄해주는 바람에 더욱 신이 나서 수다를 떨었다. 목이 칼칼해져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추가로 두 잔 더 주문했을 만큼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가 한 여자 앞에서 이렇게 긴 이야기를 떠벌린 것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배가 출출해지자 삼청동에 있는 ‘삼청동 수제비’집에 들러서 수제비와 감자전을 먹고, 다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또 배가 고프면 ‘천진포자’에 들러 지짐만두를 몇 접시 비우고, 그래도 아쉬워서 ‘먹쉬돈나’에 들러 즉석떡볶이를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도 자꾸 허기가 졌다. 배를 자꾸 채워도 계속 허기가 지자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독도서관의 그늘 벤치에서 시연이의 무릎을 베고 눕고 보니, 말랑말랑한 시연이의 입술이 그리웠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겼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그녀의 몸이 그리웠다. 그제야 내가 허기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내가 또다시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할 것 같아서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연이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선생님.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집에 가서 선생님께 주려고 산 선물만 들고 금방 나올게요. 여행 다녀와서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시연이는 그 말만 남기고 후다닥 집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녀는 쇼핑 가방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타났다. 뭔가 굉장히 설명을 많이 할 것 분위기라서 근처에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일단 이건 제가 여행하면서 느꼈던 점을 적어 놓은 글과 사진이에요.”
시연이가 넘겨준 묵직한 다이어리를 펴자 언제 현상을 했는지 유럽 각지의 사진을 붙이고, 그 옆에는 깨알같이 작고 예쁜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글을 적어 놓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전화를 놓고 가며 핑계로 했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서 선물로 줄 생각을 하다니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짜잔. 커플티예요. 영국갔다가 너무 예뻐서 샀어요. 예쁘죠?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입고 나오셔야 해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넘겨준 것은 영국국기가 예쁘게 들어간 남방이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커플티는 무슨 커플티야.’ 또는 ‘한국 사람이 무슨 외국 국기가 들어간 옷을 입어.’라며 퉁명스럽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연이가 넘겨준 다이어리에 큰 감동을 받아서 그런지 그냥 다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제가 선생님 생각하면서 산 선물. 그때 모델하면서 받은 돈하고 제가 여행갈 때 받은 용돈을 모아서 산거에요.”
귀여운 종이로 포장된 정사각형의 상자를 풀자, 가죽으로 된 몽블랑 시계가 나왔다. 예전에 다른 남자들처럼 시계에 빠져 있을 때 비싸서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던 제품 중 하나였다. 내가 시연이에게 선물해준 목걸이와 브레이슬릿을 합친 것보다 조금 더 비싼 제품으로 기억하는데 여행 선물이라고 이런 비싼 시계를 주다니 확실히 시연이 집이 부잣집은 부잣집이었나 보다.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생각했다가는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았다. 나도 이제 그런 선물 정도는 쉽게 해줄 수 있는 형편이니 당당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왼쪽 손목에다 시계를 찼다.
“어때?”
“역시 잘 어울려요. 메탈보다는 가죽이 훨씬 예쁜 것 같아요. 앞으로 시간 볼 때마다 꼭 제 생각 해주셔야 해요.”
“그래. 꼭 그렇게 하마.”
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자 시연이는 수줍어하면서도 만족스러운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내 아랫도리도 묵직해졌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런 순수한 감정이 오가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다니 곤란했다.
나는 윤 사장님과 시연이 어머님에게 드리려고 산 고급양주와 에르메스 스카프를 시연이 손에 들려주고 집에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뭔가 더 바라는 표정으로 나를 살포시 바라보는 시연이의 표정을 외면한 채 살짝 뺨에만 뽀뽀를 해주고 집으로 들여보냈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의 감촉이 내 계속 느껴져서 집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아쉬워졌다.
집에 돌아와서 짐부터 정리를 했다. 내 짐의 반은 선물이었다. 아버지께 드릴 양주와 어머니께 드릴 지갑, 그밖에도 동생과 제수씨 부모님, 고 이사, 부장님과 과장님에게 줄 선물과 놀이공원 직원들에게 나눠 줄 자잘한 열쇠고리까지 선물비용만 해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
내일이면 다시 출근이다.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조만간 본사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 팀장과 이 대리가 일을 잘했다고 해도 어차피 놀이공원에서 내가 해야 할 임무는 마친 상황이었다. 놀다가 다시 일하려니 막막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왠지 앞으로의 회사생활에 대한 기대가 더 커서 그런지 내일이 기다려졌다.
◆ 시연이네 집
윤 사장은 안방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여보. 뭘 그렇게 찾아요?”
“응? 시연이가 선물해준 열쇠고리. 그게 어디 갔는지 도통 안 보이네.”
“호호호. 그 열쇠고리는 어디다 쓰려고요?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던데.”
“그래도 우리 딸이 선물로 줬잖아. 아빠가 돼서 소중하게 사용해야지.”
“정말 딸바보가 따로 없다니까. 아마 서재에 있을 거예요.”
윤 사장은 노 여사의 말을 듣고 서재로 향했다. 노 여사의 말처럼 시연이가 선물한 열쇠고리는 윤 사장의 책상위에 놓여있었다.
“여기 있었군.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깜박깜박 한다니까. 어디보자.”
자신의 주머니에서 자동차열쇠를 꺼낸 윤 사장은 벤츠마크가 박힌 고급스러운 가죽 열쇠고리를 빼고 만원도 안 될 작고 앙증맞은 열쇠고리를 달았다.
“흥. 마 대리에게 준다는 남방보다 이게 더 예쁘고 좋네. 하하하.”
◆ 시연이의 방
“왜 선생님은 키스도 안 해주고 가셨지. 일부러 집에 와서 양치질도 하고 나갔는데. 나랑 하는 키스가 별론가? 히잉. 선생님, 미워.”
시연이는 혼잣말로 잠깐 투덜거리더니 컴퓨터를 켜고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키스를 잘하는 법. 오, 여기 있다. 흥. 두고 봐.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매일같이 키스를 해달라고 조르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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