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6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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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시연이에게 전화가 와서 저녁에 같이 차를 사러가자고 이야기 했다.
“차? 갑자기 차는 왜?”
“어제 아빠한테 운전 연습한 것을 이야기하다가 모르고 모닝 바퀴 찢어진 이야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동수씨와 똑같은 차를 사주신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큰 차는 아직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했더니 BMW 미니를 사라고 하셔서요. 같이 가줄 수 있죠?”
시연이가 이야기를 중간중간에 생각했지만,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왔다.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딸이 무려 바퀴가 찢어지는 사고(?)가 났으니 놀라셨을 것이다. 그런데 딸이 연습하던 차가 모닝이라고 하니 역정이 나신 것이다. 그러니 내 차와 똑같은 차를 사주신다고 했겠지. 하여간 그 양반 심술은 알아줘야 한다.
모닝이 아무리 좋아져도 에어백을 비롯한 안전성은 시연이가 산다는 BMW 미니보다야 아직 부족할 것이다. 나도 시연이가 좀 더 좋은 차로 연습한다면 안심이다. 초보운전자가 비싼 차를 몰고 다니면 주변에 민폐긴 해도 고집불통 윤 사장님이 정한 일이다. 가난한 집이 무리해서 차를 사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집에서 딸을 위해 차 한 대 사준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다. 그래서 저녁에 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BMW 미니가 좀 궁금하기도 했다. 샤를리즈 테론가 나왔던 ‘이탈리안 잡’이라는 영화에서 BMW 미니를 이용해 도둑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영화를 보고나서 당장이라도 미니 쿠퍼를 타고 싶은 욕구를 느꼈었다. 친구 녀석이 내 덩치에는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말리지 않았다면, 통장에 있는 돈을 싹싹 긁어 구입을 했을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가 말려준 것이 다행이긴 했다. 친구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사실 지금 타고 다니는 모닝도 좀 불편하다. 핸들을 조금 낮게 해서 운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좌석을 최대한 뒤로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핸들이 자꾸 닿는다.
회사에서는 아직 휘트니스 클럽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최종 보고서를 올릴 때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일단 호텔․리조트의 헬스클럽부터 완비하고 천천히 사업에 뛰어드는 방안과 대대적인 런칭을 하며 여의도나 목동에 휘트니스 클럽을 건립해서 바로 시작하는 공격적인 방안 등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장․단점을 첨부해서 보고를 했다.
호텔․리조트부터 완비하면 매우 안전하다. 체계를 완전히 갖추고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 있는 호텔․리조트의 모든 헬스클럽을 완비하려면 1년은 넘게 걸린다. 그 성과를 가지고 강북과 강서 시장에 뛰어 들려면 결국 3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대형 헬스클럽이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만 확신한다면 후자의 경우가 낫지만, 어쨌든 결정은 높으신 분들이 할 일이다.
오늘도 역시 칼 퇴근을 하고 시연이가 있는 학교로 향했다. 시연이를 만나서는 바로 운전대를 넘겼다. 나의 교육법은 일단 믿고 맡기기다. 그래야 는다. 한번 사고를 냈다고 기회를 주지 않으면 평생 장롱면허가 될 수밖에 없다. 확실히 오늘은 어제 달랐다. 급출발이나 급제동도 거의 없고 움직임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역시 시연이는 나의 최고의 제자다. 운전 말고도 아직 가르칠(?) 것이 많이 남았다. 가르치는 족족 배워나가는 시연이 때문에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이야. 이제 운전 잘하네. 기특하다.”
“정말요? 저 어제 밤에 계속 운전하는 꿈만 꿨어요. 히히히. 너무 재미있어요.”
키 큰 두 남녀가 모닝을 타고 있으면 차안이 왠지 좁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모닝을 타고는 제대로 스킨십도 나누지 못한다. 선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키스조차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가는 길에 내가 사는 오피스텔이 나오기 때문에 바꿔 갈까하다가 집에 들르면 엉뚱한 생각이 날까봐 그냥 강남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 극악으로 막히는 이 길을 운전 연습 핑계 삼아 시연이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나니 정말 편했다. 이래서 잘 사는 사람들은 기사를 따로 두는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모닝을 끌고 매장에 들렀는데, 영업사원은 반가운 미소로 우리를 맞아줬다. 좀 무시라도 해주면 ‘흥, 나도 알고 보면 부자야.’ 라며 유세라도 한 번 떨어볼 텐데 만나는 영업사원마다 너무 친절하다.
“윤승태 사장님 소개로 왔다고 하면 안다고 그러시던데요.”
“아. 그러시구나.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로 좀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영업사원은 커피와 카달로그를 가져와서 시연이가 타게 될 차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미니 쿠퍼는 색깔별로 다 예뻤다. 시연이가 몬다면 뭐든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동수씨는 어때요?”
“나? 시연이 네가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야지.”
내 말에 시연이는 열심히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봤자 미니 쿠퍼와 미니 쿠퍼 컨버터블 그리고 미니 쿠퍼S 컨버터블 세 가지가 전부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미니 쿠퍼S 컨버터블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이 더 매력적이었나 보다. 미니 쿠퍼S 컨버터블은 최대 속도가 내 차보다 좋았다.
“색깔은 빨간색도 예쁘네.”
“원래 노란색 좋아했던 것 아니야?”
“빨간색도 좋고, 노란색도 좋고, 파란색도 좋고, 보라색도 좋아요.”
“아니 그럼 그날은 왜 노란색이 좋다고 이야기 한거야?”
“그날은 노란색이 좋았거든요. 히히히.”
나는 시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차를 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변덕쟁이였다. 시연이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차 종류 고르는데 30분 가까이 걸렸는데, 색깔은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고민하는 시연이를 두고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매장의 가운데에는 스포츠카인 BMW Z4가 늘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봤자 내 차보다 저렴한 녀석이다. 괜히 목에 힘을 한 번 줬다.
“저 칠리레드로 할래요.”
한참동안 매장에 있는 자동차를 구경하다보니 시연이가 결정을 했다. 윤 사장님이 다 이야기를 해놔서 그런지 서류 같은 것도 작성할 필요 없었다. 그런데 영업사원이 와서 갑자기 키를 건넸다.
“버. 벌써 차가 나올 수도 있습니까? 임시번호판 받으려면 서류작업도 해야 할 텐데요.”
“아 윤 사장님이 오전에 오셔서 빨리 해달라고 요구하시는 바람에. 저희도 부랴부랴 차량 수배해서 이미 간단한 튜닝과 데칼, 썬팅 작업까지 마무리 했습니다. 급행으로 하느라 돈은 많이 들었지만 아주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 하하하. 저기 앞에 보이시죠. 예쁘게 무늬까지 들어간 빨간색 차. 바로 저 차입니다.”
영업사원이 설명한 차는 내가 몰고 왔던 모닝 바로 옆에 주차 되어있던 미니쿠퍼였다. 사이드미러와 보닛에 예쁜 격자무늬가 들어가고 차량 정면의 그릴에는 드리이빙램프와 그릴뱃지로 포인트를 준 정말 귀여운 차였다. 그래서 나와 시연이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선을 빼앗겼었다.
“아니. 그래도 시연이가 그 색으로 고르지 않으면 어쩌려고?”
“저희도 그게 걱정됐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윤 사장님이 따님과 함께 오는 덩치 큰 남자가 그런 질문을 하면 쪽지를 전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영업사원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메모지를 건넸다.
[흥, 내가 시연이 아빠다! 이 놈아!]
짧지만 강렬한 의미가 담긴 메모였다. 으악! 심술쟁이 영감탱이. 결국 나보다 당신께서 시연이에 대해 훨씬 많이 아신다고 자랑을 하신 것이다. 하긴, 나는 그 동안 그녀가 좋아하는 색깔이 그렇게 여러 가지인 줄도 몰랐다.
“와! 이 차가 정말 제 차예요? 아까 잠깐 봤지만 너무 예뻤는데. 헤헤헤. 역시 우리 아빠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동수씨. 잠깐 아빠한테 고맙다고 전화 좀 할게요.”
자동차를 보며 해맑게 웃으면서 전화를 거는 시연이를 보니 뭔가 알 수 없는 승부욕이 마구 끓어올랐다.
‘흥, 두고 봅시다. 윤 사장님.’
윤 사장님께 꼭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혼자 몰아도 괜찮겠어? 내 뒤만 잘 따라와.”
“네. 걱정 마세요. 우리 집 앞에 잠깐 차만 세우러 가는 거잖아요. 잘 할 수 있어요.”
차가 두 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따로 운전을 해야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연이를 믿고 모닝의 키를 넘겼다. 잠깐이라도 해도 익숙한 차를 모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다. 절대 윤 사장님이 사준 차를 내가 먼저 시승해야겠다는 그런 심술은 없었다. 정말이다!
미니 쿠퍼S는 역시 잘나갔다. 모닝과 달리 살짝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차가 쭈욱 나갔다. 이 차를 시연이가 몰았다면 시작하자마자 어딘가에 박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차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경쾌한 엔진음도 나쁘지 않았고, 작은 차에 비해 운전석도 넓었다. 시연이만 뒤에 따라오지 않았다면 막힌 도로를 여기저기 끼어들어가며 앞으로 확 나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시연아. 이 차는 내 차와 달라 조금만 밟아도 확 나가거든. 그러니까 처음에 운전할 때 주의를 하고 운전하자. 응?”
시연이 집 근처에 내 차를 세우고 시연이에게 미니 쿠퍼S를 넘겼다.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잘 했다. 밟자마자 차가 나가는 것이 느껴지니 발동이 느린 모닝처럼 힘껏 힘을 줄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1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주차를 제외하고는 혼자 다녀도 될 만큼 익숙해졌다.
‘이 차안에서 키스를 나눴다는 사실을 윤 사장님이 아셔야 할 텐데. 흐흐흐’
집 앞에 도착하자 그 때 나눴던 진한 스킨십이 생각나 시연이에게 키스를 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가로막는 콘솔박스가 없어서 키스를 나누기가 훨씬 편했다.
“내부가 너무 밝아서 키스밖에 못하겠다.”
“그. 그러게요. 좀 진한 것으로 바꿔달라고 할까요?”
시연이 차로는 키스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썬팅필름을 너무 밝은 것으로 했다. 시연이의 말랑말랑하고 좋은 향기가 났던 가슴이 그리웠지만 그러기에는 내부가 너무 잘 보인다.
“하하하. 진한 것으로 바꿔서 뭐하게?”
“아. 아뇨. 히잉. 장난치지 말고요.”
내가 농담을 하자 금방 얼굴이 발개진 시연이가 내 팔을 한 대 때렸다.
“썬팅은 지금이 딱 좋아. 이것보다 어두우면 밤에 사이드미러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안 돼.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야. 나중에 정말 운전이 능숙해지면 그때 생각해보자.”
“네. 그럴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동수씨 덕분에 저도 운전에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시연이를 들여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뼈마디가 쑤셔왔다. 믿는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잔소리는 배제했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온 몸에 힘이 들어갔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그나마 몸이 좀 괜찮아졌다. 역시 운전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 윤 스포츠센터 사장실(부제 : 동수의 복수혈전)
윤 사장과 동수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 그렇게만 하면 끝난단 말이지?”
“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죠.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지.”
윤 사장은 동수와 이야기 하면서 자꾸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동수는 윤 사장이 아까부터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열쇠고리는 아까부터 왜 자꾸 만지작거리십니까?
“응? 이거? 우리 시연이가 유럽여행가서 사다준 것 아닌가? 이쁘지?”
“그. 그러네요. 벤츠 자동차 키와 정말 잘 어울리네요. 하하”
“그렇지? 자네에게 선물했다는 그 남방보다 좋아 보이지 않아?”
동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왼쪽 팔을 슬며시 올렸다.
“아. 전 시연에에게 이 시계를 선물 받았습니다만.”
“뭐? 그. 그 시계를 우리 시연이가 네놈에게 사줬단 말이야?”
“그럼요. 예쁘지 않습니까? 몽블랑의 상징인 검은색 엠블럼이 정말 예쁘죠?”
“크흠. 흠흠. 뭐 우리 딸이 보는 눈은 좀 있어.”
윤 사장의 표정이 굳자, 동수는 아까보다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했다.
“참. 그리고 보내주신 장뇌삼도 정말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정말 잘 먹겠다고 하시더군요. 하하하.”
“뭐. 뭐라고? 장뇌삼이. 뇌삼이가.... 뇌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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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꼴딱 세우며 연참을 하고 일어났더니 크리스마스가 거의 끝났네요. 만세~~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