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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82화 (82/424)

00082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Rrrr

휴일을 무사히 보내고 정 주임이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시연이가 쓴 여행일지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든 부탁했던 진경이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 나다. 책 나왔냐?”

“오랜만에 동기가 전화를 했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책이 급하냐?”

“응. 급해. 궁금하기도 하고, 빨리 선물로 주고 싶거든.”

“그래. 아주 어린 여자 친구에게 푹 빠지셨구먼.”

“아니꼬우면 너도 어린 남자 하나 꼬시든가.”

“호호호. 나도 그렇고 싶다. 요즘은 여자도 연하 많이 사귄다고 하던데, 왜 내게는 그런 행운이 안 생기는지 몰라.”

“네가 돈만 많이 벌어봐라. 새끈한 남자들이 ‘누님’하며 따라 다닐 거다.”

“이번 책만 잘 팔리면, 내게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오. 예쁘게 잘 나왔나봐?”

“그럼. 너무 잘 나와서 걱정이 될 정도야. 예감으로는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 정도는 칠 것 같아. 네가 편집해준 사진도 원래 다이어리에 붙인 사진보다 더 나아서 좋더라.”

시연이는 다이어리를 만들면서 그 사진에 대한 아쉬운 느낌 같은 것들을 적어 놨다. ‘아, 내가 본 베니스의 하늘은 이것보다 파랗고 아름다운데 아쉽다.’, ‘이 사진은 흑백으로 찍었으면 더 느낌이 살 것 같았다.’, ‘밝은 느낌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역광이라서 너무 어둡게 나왔다.’ 아직은 초보자라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를 기록한 것을 보고 ‘라이트 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주 살짝살짝 손을 봤다. 내가 사진을 가르쳤기 때문에 시연이가 원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 나야 시연이에 대해서 잘 아니까, 그냥 원하는 느낌으로 살짝 수정만 했어.”

“5만부 이상 팔리면 사진전도 열 계획이야. 고객 감사 차원에서 말이지. 예쁘고 아기자기 한 사진들이 많아서 사인회와 같이 하면 좋을지도 몰라.”

얘가. 얘가. 지금 꿈을 꾼다. 5만부라니. 우리나라에서 1년에 출판되는 수십만 권의 책 중에서 만 권 이상 팔리는 책도 비율로 따지면 매우 적은편이다. 그런데 5만부라니. 게다가 사진전? 사진전은 아무나 하나? 음. 그러고 보니 연예인들도 사진전을 여는 사람이 있긴 했다. 프로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시연이의 사진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떻게 이런 예쁘고 깜찍한 생각을 다했을까 놀랄 때도 있었다. 고객 감사 차원이라고 하니 사인회와 같이 하면 하루 이틀 정도는 팬서비스로 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5만부는 좀 상상이 과하다.

“꿈꾸냐? 5만부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냐? 사회 나간 지 나보다 3년이나 빨랐으면서 아직도 현실이 눈에 안 들어와?”

“어쭈? 네 말대로 3년이나 먼저 사회생활을 한 이 누님의 말씀이다. 게다가 출판계 쪽 일이거든. 괜히 아는 척 좀 하지 말고, 그냥 구석에 찌그러져 있지?”

“하하하. 그래? 그만큼 괜찮게 나왔다는 거네?”

진경이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도 기대가 되었다. 사실 내가 출판계 쪽 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렇게 믿는 수밖에. 시연이가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했다.

“그럼.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책 표지만 가지고도 사람들의 눈을 확 사로잡을 수 있게 잘 만들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어쨌든, 책은 언제 보러올 거야?”

“내가 가면 바로 볼 수 있는 거야?”

“그럼. 따끈따끈한 새 책이 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알았어. 그럼 점심시간에 시간 내서 갈 테니까 약속잡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보고 마음에 들면 거하게 한턱 쏘마.”

“저... 점심시간에? 그렇게 빨리?”

“왜? 바빠?”

“아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지. 이따 보세. 친구.”

진경이와의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뭔가 내게 죄를 지었다는 뜻 같은데, 그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거야 일단 가서 확인해보면 알 일이고, 어쨌든 책이 나왔다고 하니 너무 기대가 컸다. 일도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자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과장님이 아니 이제 팀장님이구나. 팀장님은 밑에 직원들에게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업무만 그르치지 않는다면, 방관하는 입장을 취하신다. 그 믿음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만, 책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냥 홍대로 넘어갔다.

“우진경. 나 왔다.”

진경이가 일하는 출판사도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그녀 혼자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와... 왔어? 빨리 왔네? 많이 궁금했나봐? 자! 여기 네가 기다리든 따끈따끈한 새 책이다.”

“땡큐”

나는 진경이가 건네는 책을 받고 겉표지부터 확인했다. 표지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파스텔 톤의 연한 노란 색 표지 안에 유럽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원피스를 입고 밀짚 페도라를 쓴 여자가 그 지도 위에 서서 두 손을 모아 하트를 불어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표지 오른쪽 구석에는 작은 그림으로 한 남자가 한국 지도 위에서 그 하트를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진경이 말처럼 눈이 가는 예쁜 표지였다.

뭔가 개운치 않았다. 예쁘기는 예쁜데 제목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지은이가 지금 사랑하고 있음을 대놓고 광고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순수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감성팔이를 해보겠다는 수작이었다. 진경이가 자신만만해 하던 이유가 여기었었다.

처음에는 시연이에게 깜짝 선물을 할 생각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시연이가 내게 보냈던 사랑의 메시지는 일부러 빼거나 수정까지 했다. 이런 일을 벌일 생각이었으면 내게 먼저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냥 화를 내버릴까 하다가 일단은 좋게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제목이나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참기로 했다.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 이게 제목인가 보네. 제목하고 그림이 무지 잘 어울린다. 지은이 윤시연. 역시 우리 시연이는 이름도 예뻐. 자... 잠깐 편집자 마동수? 이건 뭐야?”

책의 표지를 천천히 살폈더니 큰 그림의 여자아이 앞에는 지은이 윤시연 이라는 이름이 예쁜 손 글씨로 적혀있었다. 지은이가 시연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표지의 구석에 작게 그려진 남자의 그림 옆에도 편집자 마동수라는 글자가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게 문제였다. 난 그냥 사진 편집하고 컴퓨터로 글을 옮겼을 뿐인데, 왜 내 이름이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호호. 봤어? 솔직히 우리가 교정은 좀 봤어도, 내용 자체에는 거의 손댈 것이 없었어. 네가 워낙 잘 만들어 놔서 말이지. 원래도 우리에게 맡기지 않고 그냥 책을 만들었으면 편집자는 동수 네가 되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작은 글씨로 네 이름도 집어넣었어. 연인이 함께 만든 책. 느낌 괜찮지 않아?”

흠. 매도 먼저 맡는 게 낫다는 말이 결국 이거였었나? 아까 참았던 화가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참았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그때 화를 내도 늦지 않다. 나는 분기를 누르고 책을 뒤집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넓은 세상을 보라며 권유한 여행. 20살 소녀는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리움이 가득 담긴 마음을 수줍게 전한다. 그 마음을 받은 남자가 그녀를 위해 만든 책. 풋풋한 소녀를 싱그러운 아가씨로 성장시킨 그녀의 첫 번째 여행 에세이. 갈수록 태산이네. 여행 에세이를 팔겠다는 소리야 아니면 로맨스 소설을 팔겠다는 소리야? 좀 심하다. 우진경?”

“호호호. 그... 그런가? 그래도 잘 팔리면 좋지 않을까? 요즘은 독자들의 감성을 제대로 공략해야 책이 잘 팔려. 화났어?”

나는 당황해서 열심히 변명을 하는 진경이를 두고 책을 펼쳤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왠지 여기서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책을 펼치고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연이가 찍은 사진들과 그녀가 열심히 쓴 글이 보기 좋게 종이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다 책의 제일 첫 장 마지막 문구를 보고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내가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내용이 버젓이 담겨있었다.

“쾅...”

“에구머니나.”

나는 주먹으로 앞에 있는 테이블을 힘껏 내려쳤다. 그 소리에 진경이가 화들짝 놀랐다.

“너. 사람 뒤통수를 제대로 쳤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어도 적당히 했어야지.”

“화... 화났어?”

“사람들 언제와?”

“그... 글쎄. 조금 있으면 올 거야.”

나는 그때부터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이건 진경이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자 진경이는 내 눈치만 살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식사를 하러 갔던 이곳 직원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사장님이 누구야?”

“사... 사장님? 사장님은 왜?”

“사장님이 누구냐고?”

나는 진경이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목소리를 최대한 내리깔며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저분이셔.”

“저 사람? 생각보다 젊네.”

“응. 원래는 나이가 좀 많으신 분이었는데, 일 년 전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들인 저 남자가 사장으로 들어왔어.”

진경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차가운 인상의 30대 후반의 남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으니 누군지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마동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 책을 출판해달라고 의뢰한 사람이죠.”

“아. 그러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 OO출판사 사장으로 있는 채은성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책이 괜찮게 나와서 아주 기대가 큽니다. 하하하”

이곳 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보이며 내 소개를 하자 사장이라는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이 책 판매 중단해 주세요.”

“네?”

“이 책의 판매를 중단해 달라는 말씀입니다.”

내 말에 사장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놀라서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난데없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분명히 이런 식으로 책을 내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계약 위반이니까 판매 중단해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이 책에 들인 공이 얼만데요.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들어간 돈도 만만치가 않아요. 지금 중지하면 손해가 얼만데요.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강하게 나가자 사장은 펄쩍 뛰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명백한 계약 위반입니다. 그쪽에서 손해가 얼마가 나던 저는 상관없습니다. 판매 중단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 밟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이봐, 우진경씨. 이야기 다 끝난 것 아니었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우진경씨 그렇게 안 봤는데 일을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억지로 시켰다고, 지금 거기에 불만품고 나 엿 먹이는 거지?”

사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대강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건네준 파일과 다이어리를 보고 사장이 욕심을 낸 것 같았다. 위에서 하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신세다. 그렇다고 진경이를 용서한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서 강요를 했든 어쨌든 나에게 먼저 상의를 했어야 한다. 위에서 시켰다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저지르다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 친구가 이렇게 화를 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책임소재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판매 중단해주세요.”

나는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하게 요구했다.

“저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출판한 것은 계약상에 아무 하자도 없습니다. 법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법대로 하려면 그렇게 하세요.”

씨발. 속에서 욕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화가 난 일이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연이와 나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책을 나라고 판매 중단 시키고 싶었겠는가? 나도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을 가지고 추악하게 법정싸움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화를 내면, 저쪽에서 최대한 저 자세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이용해 좀 더 많은 이득을 뽑아내는 방법으로 저들의 책임을 묻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사장에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햇병아리가 내 성질을 제대로 건드렸다.

“저는 진경이에게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다이어리 속 일부 내용은 넣지 말라고. 제가 일부러 뺀 내용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여행 에세이로 만들어 달라고 분명히 강조했었습니다.”

“증거 있습니까?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구두 계약도 계약입니다.”

“그러니까 법대로 하라는 겁니다. 저는 모르는 일이니까 행패 그만 부리시고 나가세요. 아니면 경찰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진경씨는 잠깐 나 좀 봅시다.”

이 인간이 정말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말이지? 나를 보내고 진경이와 입을 맞춰서 그런 구두 계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당장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당하면 내가 마동수가 아니라 개동수다. 두고 보자 이것들아.

◆ OO출판사 사장실

채 사장은 조금 전에 동수에게 당한 일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갔었다. 그때는 출판사에 이사직만 걸어두고 아버지가 벌어주는 돈으로 잘 놀고 다녔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출판사를 맡았을 때는 그까짓 책 만드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울까 생각했다. 그런데 손대는 일마다 이상하게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되다 보니 이제는 마동수같이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까지 무시를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우진경씨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그깟 일 하나 제대로 못해서 그런 젊은 놈에게 내가 수모를 당해야겠어?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먹는다고 직원인 줄 알아? 일을 제대로 해야 직원인거야. 일도 똑바로 못하면서 하여간. 이래서 여자들에게 일을 시키면 안 돼.”

이제는 성차별 발언까지 한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런 개념 없는 말을 하는지 진경은 어이가 없었다. 괜찮게 운영되던 출판사를 말아먹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가 어렵다면서 일방적으로 수당을 대폭 삭감해서 이직까지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동안 회사에 든 정 때문에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일도 진경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고 뭐고 간에 이 일을 어떻게 할 거야? 다이어리 내용 그대로 싣자고 내가 이야기 했을 때 진경씨가 반대를 했지만, 결국은 알아보겠다고 했잖아. 나는 그 말만 믿고 책을 만든 것 아냐?”

채 사장의 그 말에는 진경도 동감했다. 빠져있는 다이어리 내용만 실으면 독자들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동수의 성격상 절대로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반대했었다. 사장이 이번 일만 잘되면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고 보너스도 주겠다는 이야기에 주위 직원들까지 거들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사정을 해도 안 될 것 같아 학교 후배에게 연락해서 시연이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오히려 그녀를 부추겨 일을 이렇게까지 진행시켰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를 위하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녀석이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대포로 판매 중단을 요청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냥 불같이 화를 내면 열심히 사과하면서 마음을 돌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수에게 저렇게 냉정하고 단호한 면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휴. 정말 어이가 없네. 다 필요 없어. 진경씨도 알겠지만, 계약서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알지? 구두계약?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진경씨 밖에 없어. 그냥 들은 적 없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어쩔 수가 없어. 알아듣지?”

채 사장으로서도 짜증이 났다. 아무리 자신이 무조건 진행하라고 지시를 했어도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젊은 놈은 대체 뭐가 문제라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책이 잘 팔리면 서로가 좋은 일인데,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막무가내로 판매 중단이라니, 그런 놈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

“왜 대답이 없어? 알았어? 몰랐어?”

“... 네”

“대답하고는. 아무튼 나는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나가봐.”

============================ 작품 후기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여기까지 입니다. 1~2시간 안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다음챕터에서 동수의 악랄한 모습을 보실지도?ㅎ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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