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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89화 (89/424)

00089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시연이네 집.

동수가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노 여사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딸이 가끔 맹랑한 짓을 잘해서 이번일도 시연이가 연관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 그냥 흥미롭게 듣기만 했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대학생 시절의 꿈이 생각났다. 그렇게 꿈 많던 시절은 어디가고 이제는 시연이 엄마, 윤 스포츠센터 사모님이라는 소리만 듣게 되었다. 어느새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TV를 보면서 실실거리는 남편이 얄미워졌다.

“여보”

노 여사는 거실에 앉아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를 보고 있는 윤 사장을 불렀다.

“응”

“어머, 어머. 지금 눈은 TV를 보면서 대답만 하는 거예요?”

“틱.. 띠링”

윤 사장은 노 여사의 말투가 평소 같지 않자 얼른 TV를 끄고 다가왔다.

“아냐. TV 끄려고 했어. 무슨 일이야?”

“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20년 넘게 열심히 내조를 하면 뭐해요. 남편은 해외축구인지 뭔지를 본다고 정신없고, 딸년은 연애에 빠져 정신없고. 정말 사는 게 재미없네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한테 가장 우선은 당신이야. 당신도 알잖아.”

“알긴 뭘 알아요. 이제 시연이도 다 컸으니, 저도 일 할 거예요.”

“일? 갑자기 무슨 일?”

“왜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집에만 있으라고요?”

“아냐. 해. 내가 적극 지원해줄게. 무슨 일을 하려고?”

윤 사장은 아내를 그동안 너무 집에만 있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녀의 말처럼 시연이도 다 컸으니 일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려고 마음먹었다.

“출판사 하나 인수하려고요.”

“인수를 해? 당신이 사업에 대해서 뭘 안다고?”

“뭐... 뭐라고요? 당신은 우리 마 서방 보고 좀 배워야겠어요.”

“우리 마 서방? 아니 갑자기 그 놈 이야기는 왜 나와? 이번 일 그놈이 바람 넣은 거야?”

“어머, 어머. 이이 말하는 것 좀 봐. 바람을 넣기는 누가 바람을 넣어요? 두고 봐요. 그 동안 당신과 시연이 뒷바라지만 해서 그렇지 나도 하려고만 마음먹으면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테니. ‘당신이 사업에 대해서 뭘 알아?’ 잘도 그런 말을 했다 이거죠? 당분간 각방 써요.”

“아... 아니 여보 각방은 갑자기 왜?”

노 여사는 안방으로 들어가 윤 사장의 베개를 밖으로 던지고 방문을 닫았다. 윤 사장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말려보려고 열심히 방문을 두들겼지만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게 다 마동수 그놈 때문이잖아. 에잇. 내일부터는 낙법도 같이 병행시켜버릴 테다.”

나는 시연이 어머님께 국민은행 박 차장과 전 변호사를 소개시켜드렸다. 시연이 어머님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출판사에 다니는 진경이도 만남을 주선했다.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그런지 나이 차이는 금방 극복하고 어느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거 족보가 꼬이는 것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잠깐 했다. 시연이 어머님의 친화력도 대단했지만, 행동력은 그 이상이었다.

시중에 있는 OO출판사 어음은 모조리 끌어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연락을 넣어서 빠른 시간 안에 계좌를 동결시키도록 압박을 넣으셨다. 혹시라도 계좌 동결 때문에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지급하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정말 그동안 내조만 하시던 분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놀랍도록 정확하고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시연이 일로 정말 단단히 화가 나신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일주일이 넘게 지나자 시연이가 쓴 ‘그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라는 책이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결정한 것 같아 우려가 들었지만, 출판사에서는 벌써 2판 인쇄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 채은성 사장아.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라. 나중에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다.

OO출판사 일도 잘 진행되고 있고, 시연이 책도 잘 팔리고, 회사 일도 즐겁다. 요즘같이 행복한 일이 계속 생긴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쉽다면, 전통무예 연구회에서 낙법을 가르친다면서 너무 심하게 패대기를 친다는 점? 그래도 한 공간에 시연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 정도 고통은 견딜만했다. 시간 날 때는 가끔 요트조정면허 공부도 하고 있다. 그 시험은 운전면허시험과 달리 한 달에 두 번밖에 없다. 바빠서 시험등록도 잊고 있다가 이번 달 말에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런칭쇼에 참석할 연예인들도 섭외가 끝났고, 시범공연을 선보일 치어리더, GX강사, 태백무 사범단들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조인식에 맞춰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로고도 'D'와 ‘Y'를 세련되게 표현한 디자인이 선정되어 유인물 제작에 들어갔다. 너무 일이 잘 되다보니 지난번에 있었던 동지랜드 파견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 안 된다. 그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면 큰일 난다.

“큰일 났습니다.”

젠장! 큰일이라니? 안 된다. 설마 내가 방정맞은 생각을 해서 그런가?

“무슨 큰일?”

“오늘 가야호텔과 대박 스포츠센터가 강북, 강서 진출을 위한 조인식을 연다고 합니다.”

“쾅...”

그 이야기가 팀장실에까지 들렸는지, 팀장님이 문을 박차고 나오셨다.

“뭐야? 그걸 어떻게 지금 알 수가 있어?”

“그... 그게 저도 잘.”

아니, 정직원 달고 직장생활 1달차 신입인 준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그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비밀리에 일을 진행한 모양인데, 우리가 그동안 너무 방심을 했나보다. 가야호텔이라면 우리 동지 호텔과 업계 2~3위를 다투는 곳이다. 그리고 대박 스포츠센터. 거기 사장이 ‘대’씨, 부사장이 ‘박’씨라서 대박 스포츠센터라는 웃긴 이름이 붙었지만, 스포츠센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저기 팀장님. 준호에게 이야기를 해봤자 저 녀석이 뭘 알겠습니까? 일단 제가 조인식을 한다는 곳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혹시라도 목동에 1호점을 열겠다고 하면 큰일인데요.”

“나도 같이 가. 직접 보고 확인을 해야겠어.”

“정 주임이랑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팀장님은 지 이사님에게 보고부터 하셔야죠.”

“왕창 깨지게 생겼구먼. 일단 가서 어디에서 1호점이 열리는지 그것부터 알아봐.”

“알겠습니다. 정 주임. 가자고.”

“네. 마 대리님.”

나와 정 주임은 조인식이 열린다는 가야호텔로 향했다. 이런 일은 넉살좋은 정 주임이 어울린다. 들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벌써 말을 놓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친화력이 있다는 소리다.

“그래도 호텔에서 조인식을 연다는 것은 우리처럼 크게 행사를 벌인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모르지. 가야 호텔은 제법 넓은 강당도 있잖아. 방심했어. 이렇게 선수를 빼앗기면 처음부터 너무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 되는데.”

마케팅을 공부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1위의 법칙이다. 가장 먼저 출시한 제품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한다는 이야기다. 최초로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 기억해도 두 번째로 달을 밟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조미료를 우리는 미원이라고 부르고, 섬유유연제를 피죤이라고 부른다.

틈새시장에서의 1위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초의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이다. 초대 대통령은 아니라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를 많이 기억할 것이다.

강북, 강서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대형 스포츠센터. 그 이름을 이제 가야 호텔과 대박 스포츠센터에게 빼앗겼다. 우리도 이미 그런 상징성으로 홍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타격이 크다.

“그러게요. 헌데, 사실 우리도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잖아요. 제가 여기 온지 2주도 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소문이 나도 이렇게 빨리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요? 아마 우연히 겹친 거겠죠?”

“그건 알 수 없지. 다른 팀에서 타당성 조사를 시작한지가 10달이 넘었어. 우리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지도 5달이야. 어디서 말이 세어나갔어도 벌써 세어나갔을 시간이지. 망할 놈의 양 팀장, 이 대리.”

“네?”

“아냐. 그냥 혼잣말이었어.”

양 팀장과 이 대리가 뒤에서 수작만 부리지 않았어도, 나와 정 주임이 이렇게 가야호텔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동안 부유층들 돈을 빼먹는 재미로 일을 하다 보니, 중산층을 상대로 크게 재미를 보며 경기도 지역을 꽉 잡고 있는 대박 스포츠센터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강서, 강북 지역만 생각하면 대박 스포츠센터의 노하우가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걱정이 앞섰다.

“그나저나 초청장도 없이 뭐라고 하고 들어가나.”

도착은 했는데, 행사장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 막막했다.

“잠시만 있어보세요.”

정 주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갑자기 치마허리를 몇 번 접어서 치마를 무릎 위로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풀어서 풍성하게 만들었다.

“좀 섹시해 보이지 않아요?”

그 모습을 보니 ‘정 주임. 미안하지만 당신은 섹시함과는 거리가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려고?”

“마 대리님과 제가 여기에 투숙객으로 온 행세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됐거든. 투숙객이랑 행사장이랑 무슨 상관인데. 원상복귀하고 있어봐.”

저 여자도 가만 보면 엉뚱한 구석이 있다. 나는 모닝의 뒷좌석에 있는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상의 양복을 벗고, 평범한 잠바와 패찰을 꺼냈다. 형님들과 가끔 출사를 가면 여러 가지 이유로 출입을 못하게 하는 곳이 있다. 그럴 때가 있으면 가끔 기자인척 꾸미고 들어가기 위해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가짜 패찰이다. 행사가 끝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정 주임과 투숙객으로 위장하는 것은 사절이다. 나중에 무슨 오해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다. 연인이 생기면 최대한 오해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피곤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우와. 그런 것도 가지고 다녀요?”

“나는 사진기자, 정 주임은 기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날인데 기자들에 대해서는 까칠하게 신분증 검사는 안 할 거야. 가자고.”

예상대로 기자들에게는 호의적으로 대했다. 행사는 강당이 아니라 컨벤션 홀에서 열리고 있었다. 조인식은 끝났는지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스포츠센터 런칭쇼인지 TV에서 하는 ‘인가가요’ 방송인지 모를 정도로 가수들의 공연만 계속 되었다. 연예담당 기자들만 신났다.

“세상에. 아니 저렇게 많은 연예인이 초대되어서 왔는데, 우리는 전혀 몰랐다는 거잖아요. 에고고. 이 사실을 지 이사님이 아시면 우린 ‘꾀꼬닥’이겠네요.”

“그래도 무대가 허접해서 다행이네. 문화부나 체육부 쪽에서 쓸 만한 기사거리가 없잖아.”

내용이 없었다.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고, 모델들이 나와 가야그룹에서 나오는 스포츠웨어를 선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차라리 패션쇼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야그룹에도 우리 팀 정도의 인재는 넘쳐날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허접한 행사를 준비했다는 것은 어디선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진행했다는 의미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런칭행사와는 품격(?)부터 달랐다.

길지 않은 쇼가 끝나고 본격적인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저희 가야호텔과 대박 스포츠센터가 함께 준비한 초대형 스포츠센터의 공식 명칭은 노블레스 짐(Gym)으로 명명했습니다. 1차로 가야호텔의 모든 헬스클럽 명칭은 노블레스 짐(Gym)으로 변경됩니다.”

이름꼴을 보니 포지셔닝을 잘못 정했다. 귀족? 호텔에서만 사용되는 명칭이라면 괜찮은 이름이다. 그러나 스포츠센터는 다르다. 대박 스포츠센터가 그동안 윤 스포츠센터에게 꽤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강점을 버리고, 윤 스포츠센터의 강점을 따라하려고 하다니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다. 점점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울러 목동에 노블레스 짐(Gym) 제 1호점 건립을 공식 선언합니다. 가야건설에서 개발한 최신의 공법으로 건축에 들어가면, 불과 6개월 만에 최신식의 스포츠센터를 오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길! 발표자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지만, 그 이후의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저들도 목동에서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솔직히 그곳이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니 당연한 선택이다. 게다가 동지그룹에는 없는 건설사까지 동원해서 6개월 안에 완성한다고 하니, 부지매입도 시작하지 않은 우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 확실해졌다. 과장님께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활발하던 정 주임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그녀도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한 것 같았다. 1주일. 앞으로 1주일 안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 작품 후기 ============================

문파아에 갔다가 제 글을 추천하신 게시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로또 맞은 사나이' 였나? 아무튼 그걸 빌려보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목을 바꿔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바꾼다면 e북을 출시하려고 할 때, 제목을 바꿔서 출판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해낸 제목이 좀 부족하죠 ㅠ 오마이동수, 행복을 향하여...., 돈맛을 알아가는남자. 독자님이 추천해주신 제목인데 좀 혹하기도 하네요. 이밖에도 제목을 조언해주신 다른 모든 분에게도 감사인사드립니다.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분들도요.^^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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