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6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신촌의 어느 술집.
동수와 현우 그리고 정수는 사이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나저나 태균이와 선희씨는 화해를 잘 했을까?”
“글쎄. 태균이가 어떻게든 잘 이야기했겠지.”
“그놈 요즘 프러포즈하려고 반지 가지고 다니는 것 알아? 설마 다짜고짜 달려가서 프러포즈 하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무드 없게. 나한테 잘 이야기하면 저렴하면서도 멋진 프러포즈하게 해줄 수 있는데.”
“그 놀이공원 프러포즈? 그거 이용하는 사람 많냐?”
“왜 너도 하게? 김 대리가 받아주려나 몰라.”
“아직은 말고. 좀 더 가까워진 다음. 가을이 되니까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 아, 내가 이야기 안했지? 나 이번에 대리 달면서 계열사 옮겼어. 자, 형님의 명함이다.”
현우는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명함을 꺼내 동수와 정수에게 건넸다.
“대리 달았어?”
“아! 내가 너보다 1년이나 빨리 입사했는데, 이제 대리를 달다니. 에잇, 더러운 세상.”
“뭐가 더러운 세상이야. 나도 그렇지만 너도 빠른 편이잖아.”
“둘 다 닥치지. 난 연애도 못하고 대리도 못 달았다. 우리 회사는 왜 주임 같은 직급이 없는 거야.”
“그러게. 평사원 송정수씨. 크크크. 어디보자 미래건설? 건설로 옮긴 거야?”
“내 포지션이 ‘홍보’잖아. 그러니 계열사가 뭔 상관이야. 대리 티오가 났다면서 그리로 발령 내더라.”
“너희 회사. 목동에서 공사하는 것 같던데. 주상복합인가 짓는다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냐? 말도 마라. 거기는 백화점이 적자라서, 원래는 리모델링만 해서 극장하고 상가들을 입주시키려고 했거든. 그쪽은 아파트가 많아서 높이 제한이 걸려. 그래서 주상복합은 다른 쪽 부지로 알아봤는데 어디라더라? 아, 맞다. 동지. 그러고 보니 너네 회사네? 아무튼, 가격 좀 깎아보려고 시간 끌면서 협상하다가 열 받은 땅주인이 갑자기 너희 회사에게 땅을 파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백화점 허물기로 한거잖아. 어휴, 그것 때문에 계약 담당했던 이사는 모가지 날아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장현우! 그게 정말이야? 홈플러스 옆에 땅 너희가 탐내고 있었다는 말 정말이야?”
“그것까지 알아? 맞아. 홈플러스 옆, 목동 SBS에서 바로 앞에 있는 땅. 완전 노른자 땅이잖나.”
“야. 나 먼저 간다. 술값은 내가 계산하고 갈게. 안녕.”
동수는 현우의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사라졌다.
“야! 임마. 동수야. 저 자식 왜 저러냐?”
“나도 모르지. 꼭 잔머리 돌릴 때 표정 같던데.”
“그지? 무슨 일을 벌이려고 저러는 거냐? 에이, 모르겠다. 생각해서 뭐하냐? 돈도 굳었으니 오랜만에 한 잔 더하러 가자.”
“그럴까? 3차는 꼼장어에 소주 어때?”
“좋지.”
Rrrr
“잠깐만 전화 좀 받고.”
“네. 수현씨. 아뇨. 안 바빠요. 오랜만에 친구 만났다가 이제 헤어지려고요. 지금요? 당연히 저야 좋죠. 제가 바람처럼 날아갈게요. 하하하. 이따 봐요.”
정수와 포장마차에 가려든 현우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전화를 끊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정수에게 다가갔다.
“왜? 무슨 일 생겼어?”
“수현씨가 얼굴 좀 보자고하네. 친구. 미안하이. 나 먼저 가겠네. 꼼장어는 다음 기회에.”
현우는 그렇게 짧은 설명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래. 다 가라. 아주. 다 가버려라. 근데 저 자식 입술은 터지고 와이셔츠는 찢어져서 꼴이 아주 엉망인데. 제 꼬라지는 알고 가는 것 맞겠지? 모르면 또 어떠냐. 사랑의 힘인데, 뭔들 극복 못하겠냐? 아! 오늘따라 밤하늘 참 우중충하다.”
현우의 이야기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래건설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지를 탐내고 있었다면, 아직 이번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다른 땅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그게 우리가 확보한 홈플러스 옆에 있는 땅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간이 없다. 듣기로는 내일 철거에 들어간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서둘러 택시를 잡으러 도로로 나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택시가 잡히지 않는지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모범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일단 조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
“어, 마 대리.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팀장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방법이 남았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니.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스포츠센터 리노베이션 건요. 방법이 생겼습니다.”
“그래? 그게 정말이야? 어떻게?”
조 팀장님의 상기된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포기하고 있었던 일인데 갑자기 방법이 생겼다고 하니 반가우실만도 했다.
“일단 팀장님 댁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가서 자세히 말씀 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아무튼 조심해서 와.”
조 팀장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래건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지를 노리고 있었다. 너무 배짱을 부리다가 땅을 놓치고 어쩔 수 없이 백화점이 있던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리모델링을 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잘만 협상하면 땅값만 지불해도 되는 상황이다. 우리 땅이 더 비싸니 그 차액을 가지고 리노베이션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사야 미래건설에 맡기면 그들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내가 그 정도 협상을 할 위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 하루! 하루 만에 철거를 중단시키고 부지교환을 해야 한다. 미래건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 건물만 세워두는 것 자체가 손해이기 때문에 확실하지도 않은 협상을 한답시고 기다려줄 리가 없다. 아마도 우리 회장님이 직접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방법을 찾아 회장님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우리 주식회사 동지의 독재자인 스페셜 원을 내가 과연 움직일 수 있을까?
“어서와. 대체 방법이라는 게 뭐야?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조 팀장님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자 팀장님은 도로 앞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감히 우리 회장님까지 움직일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신다면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지는 못했을 것이다.
“괜찮은 건물이 하나 남았습니다. 입주자들을 내보낼 필요도 없는 딱 좋은 건물이요.”
“잠깐. 너 어디서 싸우다 왔냐? 얼굴이 그게 뭐야? 입술은 아주 퉁퉁 부었네. 그리고 와이셔츠 단추는 다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병원 안 가봐도 돼?”
“괜찮아요.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에요.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잖아요.”
“됐어. 그거 조금 늦게 듣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람이 먼저지.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약부터 바르고 이야기하자.”
조 팀장님의 그 말씀이 은근히 감동이었다. 맞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몸을 상해가며 일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내가 직장상사 하나는 잘 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 어머님은요? 인사는 드려야 하는데. 너무 늦었죠?”
“괜찮아. 두 분 다 주무셔. 얼굴 대.”
팀장님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구급상자부터 가지고 오셔서는 내 얼굴에 약을 발라주셨다.
“아, 따가. 살살 좀 하세요. 네? 살살.”
“하여간 덩치는 곰 같은 놈이 엄살은. 조용히 안 있으면 꾹꾹 눌러 바른다.”
무시무시한(?) 협박에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약이 다 발라지는 동안 잠자코 있었다.
“다 바른 거죠? 이제 이야기 시작합니다?”
“알았어. 그런데 차는 안 마셔도 돼? 그래도 집에 손님이 왔는데.”
“아뇨. 됐어요. 급하다니까요.”
“그 녀석 참. 아무리 급해도 있던 건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둘러?”
정말 우리 팀장님은 너무 여유가 넘치신다.
“그게 문제라고요. 내일이면 건물이 사라질 거라니까요!”
“뭐? 아니 왜? 문제 있는 건물이야?”
“건물은 아주 멀쩡해요. 우리에게는 정말 완벽한 곳이에요.”
“그런데?”
“내일 철거에 들어간다고 해요.”
“에이, 뭐야. 그럼 지금 이야기해봤자 소용없잖아.”
잔뜩 기대를 가지고 계시던 팀장님의 표정이 금방 시무룩하게 변하셨다.
“그러니 방법을 찾아야죠. 팀장님!”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팀장님을 불렀다.
“왜 불러?”
“우리 미친척하고 스페셜 원 한 번 움직여 봅시다.”
“뭐? 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 알아? 너 어디서 두들겨 맞고 왔더니 머리라도 한 대 맞았냐? 누굴 움직여? 스페셜 원? 우리 회사 회장님? 차라리 조세 무링요(유명 축구 감독. 별명 스페셜 원)를 움직이겠다고 하지?”
역시 내 말에 팀장님은 펄쩍 뛰셨다. 지금부터 팀장님을 잘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지혁권 이사님에게 보고를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회장님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흥분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부터 들어보세요. 이번에 우리가 스포츠센터 부지로 확보한 땅이 원래는 미래건설에서 탐을 내던 곳이랍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딱 적당한 건물이 미래그룹에서 운영하던 백화점이거든요.”
나는 부동산 사무소에서 들은 이야기와 현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팀장님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흥분하셨던 팀장님도 귀를 열고 내 이야기에 집중하셨다. 10분 정도 설명을 하자 팀장님의 눈빛이 살아나셨다. 가능성을 보신 것이다.
“내가 네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목동부터 가보자. 너도 알다시피 이거 보통일이 아니야. 너하고 나만 잘못되면 괜찮은데, 자칫하다가는 팀원들은 물론이고 그 우리를 처음 추천했던 부장님이나 이사님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 나도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목을 걸어도 되는지. 어차피 회장님에게 보고를 하려면 아침 9시는 지나야 해.”
팀장님의 말씀이 맞았다. 생각 없이 뛰어오긴 왔는데 일이 잘못되면 나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회장님은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회사 출근 후에 보고를 받으시는 스타일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미래그룹과 협상을 하려면 업무 시작인 9시는 넘어야 한다. 이제 자정이 조금 넘었으니 아직 8시간 넘게 여유가 있다. 차근차근 보고서를 만들어 지 이사님부터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럼 목동부터 가시죠.”
“너 혼자 산다고 그랬지?”
“네.”
“여기는 그러니까 애들 깨워서 너희 집에 모이자. 회사에 출근하려면 6시 30분은 지나야 해. 그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적으로 처리해야지.”
“그러시죠.”
우렁각시를 숨겨놓은 것도 아니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팀장님이 운전하시는 동안 나는 팀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장을 입고오든 챙기든 해서 1시 30분까지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을 전했다. 다들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이야기는 다들 모여서 하기로 했다.
◆ 김수현 대리의 집 앞.
수현은 집 앞에서 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받고나니 마음이 무거워져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현우는 정말 반갑게 전화를 받으며 당장 이리로 온다고 했다. 의지할 누군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Rrrr
현우의 전화인가 싶었더니 그의 친구인 동수의 전화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수현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네. 마 대리님. 지금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중요한 일이잖아요. 네. 이따 봬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에 급히 모여야 한다는 전화였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현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팀의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자기 혼자 좋자고 일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쉬움을 달래고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우가 탄 택시는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으로 신사동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수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Rrrr
“네. 수현씨. 네? 회사에 일이 생겼다고요? 아뇨. 괜찮아요. 회사 일이 먼저죠. 네. 그럼요. 저는 걱정하지 말고 일해요. 내일 전화할게요.”
급하게 회사일이 생겨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수현의 전화였다. 아까 동수가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린 표정으로 사라지더니 그놈과 관련된 일 같았다. 망할 놈. 도대체가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이다. 그녀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일이 있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다시 마포로 가달라고 말씀 드리고 아까 버리고 온 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수야. 지금이라도 꼼장어 먹을까? 아니. 안 까였다니까. 진짜라니까. 그래. 헛소리하지 말고 꼼장어 먹을 거야 말거야? 이미 집에 들어갔다고? 뭐 그럼 하는 수 없지. 잠이나 자라. 끊는다. 에잇, 망할 똥수 자식 때문에 수현씨 얼굴도 못보고, 꼼장어도 못 먹고.”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제가 복선을 너무 깔았죠? 흐흑. ㅠㅜ
시간외근무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이 같은 말이라는 코멘트에 답변 드립니다. 통상적으로는 같은 말이 맞습니다. 공무원의 경우는 초과근무수당 안에 시간외근무수당이 포함됩니다. 규정은 그렇지만 평일 초과근무를 시간외근무수당, 휴일 근무를 비롯한 나머지를 초과근무수당 이렇게 편의상 분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단어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수정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알고 있다면 조언해주세요.
성희롱은 신체접촉이 없어도 고소가 가능합니다. 단지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합니다. 신체접촉이 있으면 형사 처분도 가능합니다. 단, 상대가 모욕을 느꼈다면 모욕죄로 형사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욕죄를 적용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신체접촉을 이야기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조금 후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선추코 잊지마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