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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04화 (104/424)

00104  벼룩도 낯짝이 있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D&Y휘트니스 클럽 런칭행사가 끝나면 윤 스포츠센터 직원들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아직 합류하게 될 정확한 인원이 정해진 것은 아니죠.”

“음. 그렇다면 대학원생들을 그쪽 인원에 포함시키자는 말이로군?”

“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 같기는 한데.”

솔직히 나도 자신은 없다. 윤 사장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해도, 공적인 일에 사적인 부탁을 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제가 아빠에게 말씀드려볼게요. 교수님.”

“허허허. 교수라는 작자가 제자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다니 참 민망하구먼. 제자를 앞세워서 청탁을 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그냥 약속만 잡아주게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찾아가서 직접 말씀은 드려야지.”

교수님 말씀이 맞다. 자칫 오해를 하면 딸을 이용해서 무조건 떼를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교수님이 직접 찾아가서 설득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

“복안은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도 무작정 부탁을 할 생각은 아니야. 지속적인 산학협동 체제를 만들어보려고 하네. 생색내기에 불과하겠지만, 적당한 시기에 명예박사학위도 윤 사장님께 수여할 계획도 세워두었지. 그리고 최고경영자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 지원도 할 생각이고.”

따지고 보면 정말 생색내기에 불과한 방안이다. 그러나 사업가 입장에서는 정말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다. 말이 명예박사학위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진짜 박사학위보다 더 받기 힘든 것이 명예박사학위다. 게다가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하면 우리학교 동문이 된다. 새로운 인맥이 생기는 일이니 사업에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될 일은 없다. 그만큼 이번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그 정도면 저나 시연이에게 따로 부탁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그래. 동지그룹에서 지원하는 것이니 D&Y휘트니스 클럽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당연히 외국에도 진출할 것 아닌가? 다른 학교에서 탐을 내기 전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지.”

우리도 막연하게 계획만 세워두고 있는 일인데, 벌써 그런 예측까지 하고 계시다니 놀라웠다. 대학도 변화에 민감하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냥 청탁 비슷하게 해서 대학원생 몇몇에게 경험을 쌓도록 하려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계획까지 가지고 계셨다.

교수님이 왜 나를 여기로 불렀는지 이제야 제대로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정도 계획까지 세워져있었다면, 이건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고계신가 했더니 미리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모양이다. 최소한 다른 경영대 교수들과 논의를 거쳤을 것이다.

절차를 밟고 우리와 협력관계를 모색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노블레스 짐(Gym)이라는 경쟁업체가 등장했으니 당황스러우셨을 만도 했다. 아마 교수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을 것이고, 우리와 노블레스 짐(Gym)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나를 발견했으니 정보도 얻을 겸해서 부르셨던 것 같다.

“우리와 노블레스 짐(Gym)을 두고 저울질을 하셨던 것은 아니고요?”

“흠흠.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하지. 노블레스 짐(Gym)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처음부터 윤 스포츠센터와 협력관계를 맺으려고 했어. 동수 네 덕분에 확실하게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게 된 것이고. 혹시 섭섭해?”

내가 교수님 입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대학 입장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인데 함부로 선택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섭섭한 마음을 전혀 들지 않았다. 나도 항상 다른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이런 일에 서운했으면, 현우는 나보다 몇 배는 더 서운해야 한다.

“섭섭할 리가 있겠어요. 교수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죠. 학교에서도 꽤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니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래. 이왕 하는 일인데, 세계적인 스포츠센터로 만들어 봐. 꿈은 크게 가져야지. 그리고 말이야. 동수 너, 입사한지 얼마나 되었지?”

“저요? 아직 3년차죠.”

“그럼 회사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겠네. 내가 편의를 봐줄 테니까 내년에 MBA과정 등록해보지? 회사에서 커 나가려면 이런 과정도 미리미리 밟아두는 것이 좋잖아?”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나를 불러 이런저런 부탁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리셨나보다.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야간 과정도 있으니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지.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합격여부야 내가 관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학부 때 성적 장학금을 받고 다녔는데 떨어지기야 하겠어? 합격만 하면 내가 장학금 받을 수 있도록 힘써볼게. 그러면 학비 부담도 줄고, 좋은 기회 같은데.”

그 말을 듣던 시연이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내가 MBA과정을 밟는다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교수님 앞이라 대놓고 말은 못해도 내가 등록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좋은 기회였다. 이런 과정을 등록하면 회사에서도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까지 포함하면 거의 무료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수님이 그만큼 신경을 써주신다는 점이 고마웠다. 그리고 유학파 MBA출신들도 많아지는 세상인데,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최소한의 자격요건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접수는 언제부터 하는데요?”

“하려고? 그래, 잘 생각했어. 다음 달부터 접수를 시작하니까, 아직 여유는 있어. 참, 토익 본지 2년이 지났으면 미리 접수도 해두고.”

“토익은 올 초에 주인 진급문제로 미리 봐둔 것이 있어요. 교수님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도 없잖아. 내가 두 사람 데이트 하는데 너무 잡아뒀지? 이제 나가서 마음껏 데이트해. 그렇다고 너무 과감한 스킨십은 하지 말고.”

“그... 그냥 포옹이었어요. 어쨌든, 나가볼게요. 원서 접수할 때 미리 연락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교수실에서 나와 시연이의 손부터 꼭 잡았다. 아까 학생들이 하던 이야기가 괜히 신경 쓰였다. 그래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윤시연에게는 임자가 있다.’라고 확인시켜 줄 생각이다.

“자 받아. 바로 주려고 했는데, 교수님께 잡혀있느라 이제 주네.”

“고마워요, 동수씨. 오늘은 우리 만난 지 100일도 아닌데 무슨 꽃이에요?”

“배... 백일?”

“그럼요. 백일! 설마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죠?”

“그... 그럴 리가! 그냥, 그 동안 꽃 선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사왔어. 꼭 기념일에만 꽃을 챙기라는 법은 없잖아.”

잊고 있었다. 백일? 내 나이쯤 되는 남자들에게 백일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아직 나이가 어린 시연이에게는 그게 아닐 것이다. 이런 일에까지 내 사고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 그런 기념일 챙겨봤는데 별로더라.’ 이럴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 집에 가서 그녀와 나의 백일 기념일이 언제인지부터 계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와! 저 오늘 너무 행복해요. 남자에게는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이네요. 히히히.”

“그건 아니지 않아? 아까 얼핏 들어보니까 다른 남학생들이 꽃다발 주고 그랬다던데.”

“동수씨.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아... 아니. 질투는 아니고.”

“에이, 제가 다른 남자들이 주는 꽃다발을 왜 받아요.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한 번도 받은 적은 없어요. 그러니 오늘이 남자에게 처음으로 꽃다발을 받은 날이죠. 그러니까 기분 나빠 하지마세요. 네?”

사실 질투가 조금 나긴 했다. 그렇다고 시연이를 집안에만 꽁꽁 숨겨둘 수도 없는 일이다. 남자들이 알아서 꽃다발을 바치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그건 정말 내가 이상한 놈이 된다.

“내가 왜 기분 나빠? 앞으로도 꽃다발만 안 받으면 돼!”

나는 대범한 척 하면서, 꽃다발은 받지 말라는 말을 은근히 강조 했다. 그리고 아까 계획했던 대로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절대 질투하지 않는다. 그냥 데이트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좌절하더라도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그럼. 그렇고말고!

이놈의 학교는 좁아터져서 제대로 데이트 할 곳도 없었다. 건물 수에 비해 학생 수가 많으니, 빈 강의실을 찾기도 힘들었다. 결국 키스도 하지 못하고 시연이를 수업에 들여보냈다. 대학에 입학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좁은 학교가 야속했던 적은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제 술도 깼으니 회사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야. 이놈의 자식아!”

회사에 돌아가자 조 팀장이 나를 보면서 다짜고짜 화부터 내셨다. 이 자식, 저 자식, 곰탱이 자식 등등 오늘이 무슨 삼재도 아니고, 다들 왜 이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왔는지 알고도 저러실까 싶었다.

“왜요?”

서운한 마음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어휴, 저 놈의 자식. 너 오늘 큰일 날 뻔 했다면서? 열심히 막으라고 했지, 누가 정말 목숨을 걸으라고 했어? 다쳤으면 어떡하려고 했어. 응?”

내가 시연이를 만나고 온 사이에 소문이 팀장님에게까지 들어갔나 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을 팀장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어쨌든 일은 잘 해결되었잖아요.”

“준호 녀석은 중장비 밑에 기어들어가고, 정 주임은 상의를 탈의하고, 너는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을 뻔 했는데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끝이야?”

“그... 그건 또 누구에게 들으셨어요?”

“경찰서에 정 주임이랑 준호 데리러 갔더니, 고소 취하하러 온 미래건설 직원이 그러더라. 그러다가 다쳤으면 회사에서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할 것 같아? 두 사람이 사고를 치면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더 난리부르스를 춰?”

목소리는 격앙이 되었지만, 말 속에 숨어 있는 팀장님의 따뜻한 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요. 그만 화 푸세요. 네?”

“마 대리님. 저도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마 대리님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니. 애인만 없었어도 제가 반해서 쫓아다녔을지도 몰라요. 호호호.”

팀장님 잔소리 때문인지 기가 죽어 있는 준호와는 달리 정 주임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그녀의 칭찬은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이번 일은 정 주임과 준호의 공이 가장 컸다. 나는 정말 두 사람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

“에이, 그래봤자 정 주임만 하겠어. 이번 일의 최고 공로자인데. 내가 사진도 멋지게 찍어 놨어. 이따 사진 파일 전부 넘겨줄게. 나는 보관하지 않을 거니까 절대 걱정하지 말고.”

“뭐 어때요? 속옷이 풀린 것도 아닌데. 원하면 가지고 계셔도 괜찮아요.”

헉! 역시 당찬 정 주임이었다. 하긴, 그러니 그런 일을 과감하게 벌였을 것이다.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누군가가 와서 그 사진을 본다면 무슨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

“돼... 됐어. 여자 친구가 보면 난리가 날걸?”

나와 정 주임이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자 준호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팀장님에게 우리의 무용담을 자랑처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중장비 아래 들어갔을 때 정말 조마조마 했다니까요. 엔진이 부르릉, 부르릉 소리를 내는데 정말 간이 콩알만 해졌어요.”

“호호호. 남자들은 어쩜 하나같이 똑같은지, 딱 보자마자 다들 석상처럼 굳어버렸다니까요.”

“에이, 준호는 그냥 심장 떨리고 말았지? 나는 정말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니까. 몸이 휘청하는 순간 ‘아, 끝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래도 마 대리님은 경찰서에는 안 끌려갔잖아요.”

“맞아요. 저는 무슨. 이름이 뭐더라. 음란공연죄? 그런 걸로 협박받았다니까요?”

“에이, 정 주임님은 은근히 즐기신 것 같던데.”

“어머, 혹시 준호씨가 즐긴 건 아니고?”

“네? 저... 전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정 주이님 모습을 보며 울컥해서 중장비에 기어들어갔을 뿐이죠.”

“못 봤다는 이야기는 안하네? 호호호.”

“어이고, 어이고. 자랑이다. 아주 신이 나셨구먼. 제발 부탁인데 앞으로는 사고치지 말고 살자. 응? 내가 정말 제명에 못살 것 같아.”

============================ 작품 후기 ============================

무공 비급이 없는 세상이니 이렇게라도 주인공이 성장할 발판을 마련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무리하게 끌고 왔습니다. 글이 늘어진다는 독자님이 계신데 사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겨우 하루의 이야기를 가지고 몇 회를 잡아먹었는지 모르겠네요 ㅠ

자정에는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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