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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05화 (105/424)

00105  벼룩도 낯짝이 있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주식회사 동지 회장실.

회장실에는 고 회장과 비서실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조 팀장의 장담대로 철거는 무사히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 현장 직원들이 만만치가 않았을 텐데?”

“그게. 저...”

고 회장의 질문에 비서실장이 머뭇거렸다.

“왜 누가 다치기라도 했어?”

“그건 아닙니다. 회장님.”

“그럼? 자넨, 내 성격 잘 알면서 뭘 그렇게 꾸물거려.”

망설이던 비서실장은, 조금 짜증 섞인 어투로 고 회장이 재촉하자, 미래건설에서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서실장의 설명을 듣던 고 회장의 표정이 점점 기괴하게 변해갔다.

“그런 미친놈들이 있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허허허허허. 우리 회사에 그런 녀석들이 있었어?”

“면목 없습니다.”

“면목 없기는. 아직도 그런 열정을 가진 직원들이 있다는데 칭찬을 받아야지. 암, 칭찬을 해줘야 하고말고. 마음 같아서는 전부 승진이라도 시켜주고 싶구먼.”

“그건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조기훈 팀장은 이번에 팀장 대우로 승진을 했고, 김수현 대리는 내년에 과장 대우로 승진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동수 대리는 지난 번 어린이날 기념행사 일로 대리를 달았습니다.”

“음?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담당했던 직원이 마동수라고?”

“네. 조기훈 팀장과 마동수 대리가 함께 담당했습니다.”

“조기훈과 마동수라. 쓸 만한 녀석들인가 보군. 올해만 벌써 두 번이나 내 귀에 들리고. 그럼 상의를 벗었다는 여직원과 중장비 밑으로 기어들어갔다는 녀석은?”

“중장비 밑으로 들어간 태준호 사원은 정직원이 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입이라서 곤란합니다. 그리고 정지영 주임도 이번 달에 주임으로 승진했습니다. 몇 달은 더 지나야 가능합니다.”

“그 놈의 규정은 뭐 그렇게 많아. 뭐, 그래도 규정은 지켜야겠지. 흠, 그럼 어떻게 한다. 가야그룹 회장 놈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먹이게 생겼는데 그냥 넘어가기는 섭섭하지. 런칭행사 무사히 끝나면 특별 상여금으로 1억씩 지급해.”

“네? 팀 전체에 1억 말씀입니까?”

“아니. 각각 1억씩 지급하라고, 이 사람아.”

“그래도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거액을 특별 상여금으로 지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급하라는 소리야. 정말 우리 동지를 위해서 목숨을 건 직원들이잖아. 사보에도 올리고 따로 시상식도 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해.”

“그... 그럼 정말 다치는 직원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라고 홍보하는 거야. 요즘 회사 기강이 너무 해이해졌어. 밥버러지 같은 녀석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소리지. 좀 다치면 어때? 보상해주면 그만인 것을.”

비서실장을 응시하던 고 회장의 눈빛이 섬뜩할 만큼 차갑게 변했다. 사원들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 회장의 잔인한 성정이 여실히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남은 이틀 동안 우리 팀원들은 최선을 다해 런칭행사 준비에 매달렸다. 스포츠센터를 먼저 오픈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방심하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가야그룹과 대박 스포츠센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한 번의 방심으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던 우리였기 때문에 행사 준비에 더욱 만전을 기했다.

초청 인사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연예인들의 사교모임밖에 되지 않았던 노블레스 짐(Gym)과는 다르게, 우리는 많은 사회저명인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지난 어린이날 행사 덕분에 친분을 쌓게 된 각국의 대사관에서도 참석을 하겠다는 외교관들이 있을 정도였다.

행사 당일 미래 아트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다. 1층은 초청을 받은 귀빈들이, 2층은 스포츠관련 실무자들과 일반인들이 자리했다. 자리가 부족해서 우리 그룹의 운동선수들에게 사인만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회사의 전속모델인 브이걸이 오프닝을 열 때만 해도 기자들은 지난번 노블레스 짐(Gym)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쑤군거렸지만, 이 후 시작된 다른 공연들 덕분에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재즈 음악에 맞춰 GX강사들과 회사 치어리더들이 집단으로 선보인 재즈댄스 프로그램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정말 잘 나타냈다. 그리고 이어진 전통무예 연구회의 춤과 비슷하면서도 절도 있는 태백도 품세 공연과 화려한 격파시범은 구경하는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새카만 도복을 입고 화려한 발차기 시범을 보인 시연이의 모습은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할 만큼 돋보였다.

이 후에도 우리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선보인 GX강사들의 한국 무용 공연과 치어리더들이 선보인 섹시하면서도 흥겨운 치어리딩 시범은 참석한 기자들에게 격이 다른 런칭행사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부모들을 설득하느라 고생했던, 윤 스포츠센터의 어린이 회원들이 보여준 짧은 발레 공연은 어설펐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한 폭소를 터져 나오게 했다.

<문화 축제의 한마당을 연 D&Y휘트니스 클럽>

이번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의 협력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D&Y휘트니스 클럽의 런칭행사는 스포츠센터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문화공연의 장이 되었다. 그동안의 런칭행사가 연예인들의 화려한 댄스들로 채워졌다면, D&Y휘트니스 클럽이 주최한 행사는 오프닝을 제외하고는 연예인의 공연이 전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흥미롭고 알찬 공연으로 참석한 많은 관객들의 따뜻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선보인 공연의 모든 내용들이, 앞으로 D&Y휘트니스 클럽이 회원들에게 제공할 프로그램들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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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윤 스포츠센터에서는 이번 동지그룹과의 협력을 계기로 세계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국 고유의 GX프로그램과 필라테스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그들의 노력은 D&Y휘트니스 클럽이 가까운 미래에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OO일보 홍XX 기자 -

“그렇게 좋으세요?”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월요일에 출근하자, 윤 사장님이 나를 호출하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강남으로 넘어왔더니, 이번 런칭행사 관련 기사를 흐뭇한 표정으로 읽고 계셨다.

“좋기는... 당연한 일을 가지고. 원래 우리 윤 스포츠센터의 역량이 이 정도는 되었어.”

“그렇기는 해도 역량을 선보이도록 만든 곳이 저희 팀이라는 사실을 꼭 알아주세요.”

“쯧쯧. 하여간 마 대리 자네는 도대체가 겸손할 줄을 몰라.”

“하하하. 이게 다 사장님께 배워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윤 사장님과의 가벼운 말씨름은 이제 나에게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듯이, 이 양반의 짓궂은 장난을 이제는 즐겁게 받아들일 생각이다. 내가 나중에 시연이 같이 예쁜 딸을 낳았는데, 웬 도둑놈 같은 자식이 홀라당 낚아채가면 나라도 심술을 부리고 싶을 것 같았다.

“하여간 말은. 그나저나 기사에서 등장은 관계자가 또 자네지?”

“그렇죠. 저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이제 기사도 났으니 부지런히 GX프로그램을 개발하셔야죠. 그래야 미국시장에 진출해서 마스터라고 불리실 것 아닙니까? 이름부터 정해야 하나? ‘윤 짐’, ‘윤 모션’, ‘윤 웨이’ 또...”

“됐어. 그렇지 않아도 준비 중이니까 보채지 좀 말게. 그건 그렇고 시연이를 통해 자네 모교 교수가 찾아왔더군. 꽤 구미가 당기긴 했는데, 아직 확답은 주지 못했어.”

무슨 일로 호출하셨나 했더니, 교수님이 벌써 다녀가신 모양이었다.

“저도 이야기를 듣긴 들었습니다.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라서 그냥 있었죠.”

“그냥 있기는 무슨. 옆에서 시연이 충동질 한 게 자네 아니야?”

“아니,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세요. 전 정말 가만히 있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시연이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시던가요. 그런데 시연이를 통해 그냥 약속만 잡으셨던 것 아닙니까?”

“흠흠. 그거야 그랬지. 마 대리, 자네 생각은 어때?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설마, 내게 조언을 구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사람이야 많으면 도움이 되겠죠.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야 하겠지. 그런데 말일세. 최고경영자과정 그거 실속이 있는 건가? 괜히 시간만 잡아먹고 도움은 전혀 안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최고경영자과정이야 나도 잘 모른다.

“글쎄요. 제가 최고경영자가 될 일이 있었어야죠. 배움 보다는 같이 수업을 듣는 경영인들 끼리 교류도 할 수 있고, 저희 학교 동문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만 압니다.”

“그래? 그 정도 인맥이야 이미 차고 넘치는데 뭘. 결국 성가신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나?”

어라, 이러시면 정말 안 된다. 교수님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일이다.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내가 한 말 때문에 망치게 되면 정말 죄송한 일이 된다.

“그래도 확실한 두 가지 장점이 있죠.”

“그게 뭔데?”

“우선 시연이와 동문이 되지 않습니까? 상상해보세요. 호텔에서 개최하는 동문회에 예쁘게 드레스를 입은 시연이와 함께 참석하는 모습을요. 정말 흐뭇한 부녀지간 같지 않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사장님을 부러워할 겁니다.”

“그건 좀 괜찮네. 그렇다고 1년에 한두 번 참석할까 말까 한 일을 위해 성가심을 감수하기는 좀 그렇지?”

역시 하나로는 꿈쩍도 하시지 않는다. 그래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 사실 시연이가 나보고 MBA과정을 들으라고 옆구리를 찔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좋은 장점이 있죠. 최고경영자과정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학교에서 시연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부녀지간에 같이 밥도 먹고, 캠퍼스도 걸어보고. 얼마나 좋습니까?”

“흠. 그거 괜찮군. 그럼 뭐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지.”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윤 사장님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셨던 것 같았다. 오늘 나를 부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도 그렇고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빙빙 말을 돌리며 사람 간을 보는지 모르겠다.

“혹시 다른 할 말이 있으신 것은 아니죠?”

“하여간 눈치는. 이거 좀 보게.”

역시 본론이 따로 있으셨다. 윤 사장님은 테이블에 책 한 권을 내려 놓으셨다. 시연이가 쓴 책이었다. 꼭 데쟈뷰를 겪고 있는 느낌이었다. 교수님도 그러시더니, 설마 내 사인을 원하시는 것은 아니고.

“시연이가 쓴 책이네요?”

“이제 어떡할 건가?”

“네?”

“이 책 자네가 만들었다며? 남의 귀한 딸 혼삿길을 막아놓고. 네?”

장면은 비슷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윤 사장님 말씀이 충분히 공감이 갔다. 시연이 어머님이야 마음 좋게 넘어가셨지만, 아버지의 입장이라는 것은 또 다르다. 나도 책을 들고 찾아봬서 따로 사과를 드린다는 것을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깜빡했다.

“이 문제는 정말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출판사와 의견교환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지.”

말씀은 저렇게 하시는데, 표정이나 어투가 아주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어렵다. 어려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씀하시면 좋으련만, 이렇게 자꾸 압박만 하시니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판매중지 가처분신청은 해놨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몇 달은 걸릴 것 아닌가? 그때가 되면 책은 충분히 팔리고 남을 시간일세.”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설마 당장 결혼이라도 한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릎이라도 꿇고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호소라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연이 어머님의 말씀도 있었고, 결혼을 원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셨다. 정말 능구렁이 같은 이 양반의 속을 어떻게 짐작해야할지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 작품 후기 ============================

처음 설문 조사를 할 때는 제 또래인 30대 남성이 가장 많고 30대 여성이 가장 적길래 ‘이래서 내가 올 크리스마스에 홀로 보냈구나.’라며 좌절 했었습니다. ㅠ 사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경험하셨을 법한 나이대의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공감까지는 아니라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운이 납니다.^^

어쨌든, 시트콤 같은 느낌입니다라고 설명해도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저께는 결국 막말과 반말하던 김 대리 장면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초반뿐만 아니라 소설 중간중간에도 분량이 있어서 수정한다고 제법 애를 먹었습니다.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한심한 작가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는 초보작가라고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낮에 한 편 더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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