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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15화 (115/424)

00115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판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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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공지 - 지난 편으로 챕터 마무리했습니다. 제목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입니다. 글 제일 마지막에 ‘그녀들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라는 문구가 추가됐습니다.

지난 편이 좀 유치해서 걱정했는데 바나나 덕분에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었네요. 그래도 쓸데없는 대화부분이 많아서 시간나면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바나나 이야기는 약간의 과장법입니다. ^^;;

이제 출판사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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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휘트니스 클럽에 대한 일은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순항 중이었다. 첫 만남에서 까칠하게 행동했던 석나련 실장도 노련한 리더의 모습을 보이며 팀원들을 잘 아우른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도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대학원생 세 명은 아직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일이라는 것을 처음 하는 입장이다 보니, 우리도 그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은 사소한 잡무 위주로 일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동수형, 우리도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은데요.”

잡무만 하는 대학원생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곽효철이라는 녀석이 내게 와서 하소연을 했다. 대학 3년 선배고 안면도 있으니 내가 그나마 편했던 것 같았다.

“기지도 못하는 녀석이 벌써부터 날려고 해? 차근차근 배우는 거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파악해. 대학원에서 좀 더 배웠다고 너희들이 여기 있는 사람보다 많이 알 것 같아? 나중에 너희에게 믿음이 가면 그때는 싫다고 해도 일이 생길 것이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네.”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도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큰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믿었었다. 내가 운이 많이 없는 케이스이긴 해도, 회사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처음 반년은 그냥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일을 배워야 하고, 최소한 1년은 욕을 들어가며 실력을 키워야 제대로 된 직장인이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터부터 같이 일했던 준호가 운이 좋은 편이다. 인턴시절에 고생하면서 일을 배운 덕분에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Rrrr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OO출판사 사장인 채은성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모레면 1차 부도가 날 텐데, 혹시라도 미리 눈치를 챘나 싶어 사무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당연히 통화녹음도 시작했다. 이런 것이 나중에 전부 증거물이 된다.

“네, 마동수입니다.”

“나, 채은성이요.”

목소리가 여전히 거만한 것을 보니 눈치를 챈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윤시연 작가 연락처 좀 알려줬으면 하는데.”

“제가 그걸 왜 알려드립니까?”

“어허, 이 사람 참.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서야. 지금 윤시연 작가 책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알아?”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과 시연이 연락처가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런데요?”

“사람이 눈치도 없네. ‘그런데요?’라니. 원래대로라면 작가에게 돌아갈 돈이 억이 넘어. 시간이 지나면 더 많아질 것이고. 그 돈은 받아야지 않겠어?”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잖아요.”

“내가 전에 계약서 이야기했잖아. 작가가 협조하지 않으면 계약위반으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그래서 말인데. 윤시연 작가보고 우리 출판사로 좀 나오라고 그래.”

이 자식은 아직 자신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내게 까불기 시작했다.

“제가 대리인으로 계약을 했고, 당장 작가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제게 말씀하시죠. 혹시 사인회라도 필요하십니까?”

“그건 나중 일이고. 흠흠. 내가 잘 아는 분이 윤시연 작가를 만나보고 싶어 해. 이런 기회가 흔치 않거든. 책을 파는 것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묘한 뉘앙스를 띠는 말에 화가 났다. 그렇지만 일단은 참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나 보고 싶었다.

“뭐하는 사람인데요.”

“내가 잘 아는 분이라고 하면 그냥 알아듣지 깐깐하게 나오네. 영보문고라는 대형서점 알지? 그곳 책임자이신 부장님이야. 이번에 딱 한번만 만나면 서점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윤시연 작가 책으로 도배해주신다고 약속하셨어. 그럼 수억 버는 것도 금방이야. 어때? 혹하지 않아?”

그래 아주 혹한다. 네 놈을 밟아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혹한다.

“책이야 인기가 있으면 좋은 자리에 진열하는 거지 뭐 하러 그런 사람을 만납니까?”

“이렇게 이쪽 일을 몰라서야. 자네가 남자 친구라고 내키지 않는 모양인데. 그러니까 내가 직접 윤 작가에게 전화를 한다니까. 그냥 옆에 앉아서 술 한번만 따르면 돈을 몇 배는 더 벌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할 여자가 어디 있어?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고, 웬만하면 자네가 설득을 해보지? 술 한번 따른다고 몸이 닳은 것도 아니잖아. 이번 일만 잘 해주면 자네에게 섭섭했던 일도 모두 잊어주고, 편집자 몫으로 돈도 넉넉하게 지급해지.”

더 이상은 저 개소리를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야 이 개새끼야.”

“뭐? 지금 너 뭐라고 했어?”

“개새끼라고 했다. 왜?

“개... 개새끼?”

“그래. 이 개새끼야.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아주 박살을 내줄 거니까. 영보문고 책임자? 지랄을 해요. 사장도 아니고 부장 나부랭이가 지금 그딴 요구를 해? 너랑 그 놈 둘 다 아주 피눈물 나게 해준다. 씨발.”

“이... 이 젊은 놈의 자식이 어디서 막말을..”

“개소리듣기 싫으니까 전화 끊어. 병신새끼야.”

전화기에다 대고 욕을 진탕 퍼부었지만, 이 분이 풀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채 사장과 영보문고 부장이라는 놈의 멱살을 잡고 낭떠러지에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판업계에서 계약서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저렇게 더럽게 노는 놈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처음 들었다. 인간 말종 쓰레기 같은 놈들은 사회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머리를 굴려봤다. 채 사장은 몰라도 영보문고 책임자라는 부장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힘이 없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다. 내가 여기 동지 그룹의 이사 정도가 되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힘없는 말단 대리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성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돈으로 사업을 해봐야 웬만큼 성공하지 않는 이상 대기업 과장에게도 끗발이 밀리는 세상이다. 누구를 짓밟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인간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힘은 필요했다.

Rrrr

나는 생각 끝에 시연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는 모양새라도 어쩔 수 없었다. 영보문고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울면서 엄마에게 이르는 아이(?)가 되는 것이 최고다.

“네. 마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요즘 많이 바쁘시죠?”

“호호호. 네. 사업을 해보려니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네요. 그래도 다행히 여기저기서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안심하고 있어요.”

나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인맥이 넓은 시연이 어머님이다 보니 OO출판사 인수 후의 준비까지 어렵지 않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맥도 무시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괜한 충동질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네요. 시연이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정식으로 찾아뵈려고요. 시간은 언제가 괜찮으세요?”

“어머. 그래요? 저녁 시간 이후에는 괜찮으니까 미리 연락만 하고 와요. 호호호.”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네?”

“영보문고에 아시는 분 좀 계신가요?”

“영보문고요? 거긴 가족 전체가 우리 스포츠센터 VIP회원이라서 잘 알아요. 무슨 일인데요?”

“저... 기 어머님. 사실은요.”

내 여자 일을 내가 해결 못하는 꼴이 부끄러웠지만, 두 눈 질끈 감고 사실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두고 복수하기 보다는 그런 해충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기 전에 미리 박멸해두는 것이 좋다.

“어쩜 그런 인간들이 다 있어요. 지난번에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라고는 해도 정말 사람들이 너무하네요. 이야기 잘했어요.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네. 제가 괜한 말씀을 드려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전에도 말했지만, 나 시연이 엄마에요. 그리고 마 선생님은 회사일 때문에 바쁘잖아요. 우리 시연이나 많이 챙겨줘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머님.”

시연이 어머님과 통화를 끝내자 뭔가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다. 능력만 되었다면 이런 일은 내가 직접 해결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회사 옥상 휴게실에서 광화문을 내려다보니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행렬이 개미만큼 작아보였다. 언젠가는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 OO출판사 사장실.

“병신새끼? 여보세요. 여보세요. 제멋대로 전화를 끊어? 에잇, 짜증나. 봉순이 그년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영보문고 부장하고 약속을 해버렸는데 이제 어쩌지.”

동수와 통화를 한 채 사장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계약서로 은근히 협박도 했고, 받을 돈이 억대가 넘어간다며 유혹도 했다. 그런데도 동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돈이 싫다는 인간이 어디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흠. 우진경 그 여자는 어떻게 작가 연락처 하나 못 알아와. 하여간 무능해 빠졌어. 하나같이 무능하니 내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가 않지. 약속이 오늘인데 부장님에게는 뭐라고 말을 하지. 20살밖에 안 되는 어리고 예쁜 작가를 데려간다고 큰소리만 쳐놨는데. 어휴.”

Rrrr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을 하던 채 사장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아, 채 사장님. 저녁에 얼굴 보기로 했는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네. 그 일로 조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원래 데려가려던 작가가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요.”

“흠. 이거 실망인데요. 그럼 오늘 약속은 취소해야겠군요.”

“하하하. 제가 대신 다른 작가 한 명을 데려가겠습니다.”

“전 윤 작가가 마음에 들던데.”

“그 여자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20대 작가입니다. 얼굴도 미인에다가 성숙하기까지 하니 20살짜리보다 나을 겁니다.”

“그래요? 채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어보죠. 그럼 저녁에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채 사장은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 인간 채은성 많이 죽었다. 그래도 어쩌겠냐. 무려 영보문고 부장인데. 그런데 봉순이는 어떻게 설득하지. 에잇, 몰라. 이게 다 그년 말만 믿고 일어난 일이니 도봉순 그년이 책임져야지.”

네온사인 화려하게 빛나는 강남의 어느 거리에서 채 사장은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서 있었다.

“봉순이 이년은 왜 이렇게 안 와. 약속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은성씨.”

채 사장이 짜증을 내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슴이 깊숙하게 파이고 몸에 짝 달라붙은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봉순이 생긋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좀 빨리 오지. 늦을 뻔 했잖아.”

“무슨 일인데, 그래요? 옷도 이렇게 야한 옷으로 입고 오라고 그러고.”

“영보문고 부장하고 술 약속이 있어서 그래.”

“네? 우리 둘이 만나는 것 아니었어요? 갑자기 영보문고 부장이라니요. 그 사람 만나려고 저보고 이런 옷을 입고 오라고 한거에요?”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냥 옆에서 술이나 좀 따라주고 비위나 맞춰. 너도 책 내고 싶어 했잖아. 이게 다 널 위해서야.”

뻔뻔스러운 채 사장의 말을 들은 봉순은 속으로 울컥하고 말았다. 아무리 불륜관계라고 해도 다른 남자의 술시중을 들라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채 사장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영보문고면 큰 서점이었다. 그래서 참기로 했다. 옆에서 잠깐 술 한 잔 따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 작품 후기 ============================

레스토랑 대관비 말씀인데요. 특별 상여금에서 2천만 원은 빼주세요. 뇽이를 위해 기부했거든요. ㅎ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라서 더 비쌌습니다. 제가 알아본바로는 최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3~5천 정도 돈이 든다고 하더군요. 사실 알아보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기사 하나를 봤는데 젊은 정규직 직원이 거의 삼촌뻘의 비정규직 직원에게 '이놈, 저놈'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글을 통해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더군요. ㅠ

코멘트 10개만 달아주세요. 그럼 제가 열심히 다음 편을 올리겠습니다. 먼저 올린 글 중에 코멘트가 10개도 안 되면 왠지 가슴이 아프네요.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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