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9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판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OO출판사 사장실 2.
사무실에서 직원의 연락을 기다리던 채 사장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아직까지 전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서점에 간 일이 잘 안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생돈이 나가야 하니 그게 억울했다.
Rrrr
채 사장이 초조하게 방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됐어?”
“사장님. 혹시 윤시연 작가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그쪽에서 뭐라고 해?”
“서점에서 하는 말이 우리에게 지급할 돈에 대한 가압류 요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거 풀지 않으면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텨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가는 출판사 마다 그렇게 말해서 저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젠장, 그럼 영보문고는? 영보문고 A부장에게 말을 해보지. 거기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줄거야. 그동안 들인 공이 얼만데.”
채 사장은 자신이 그동안 무시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깟 1억쯤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지만, 이제는 한 푼이 아쉬웠다. 다른 곳은 몰라도 영보문고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거기 A부장에게 내연녀까지 가져다 바쳤는데 그가 이렇게 나오면 곤란했다.
“지금 A부장은 우리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니?”
“누가 A부장을 찌르는 바람에 일이 커져서 직위해제 되고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쾅.
그 말을 들은 채 사장은 화가 나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일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이는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지금 당장 돈 나올 구석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떡하죠, 사장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출판사로 돌아와. 에잇, 어떻게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지. 전화 끊어.”
생돈이 나갈 생각을 하니 채 사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게 다 마동수 그 놈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돈을 해결하지 않으면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동수에 대한 원망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채 사장은 은행영업 시간이 마감되기 전에 서둘러 자신의 금고가 있는 일산으로 향했다.
끼이익.
거칠게 차를 몰아 회사 창고가 있는 주차장에 새운 채 사장은, 인사를 하러 나온 직원들을 물리치고 별채 안으로 들어가 금고 앞에 섰다.
“아, 이것 참. 곤란하네. 이 돈을 갑자기 은행에 입금하면, 나중에 세무서에서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몰라. 마동수 이 자식 때문에 별걱정을 다하게 생겼네.”
덜컹.
금고 앞에 앉아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묵직한 소리를 내며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리고 금고 문을 열어 안을 확인하는 채 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안을 확인했다. 하지만 금고 안은 먼지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뭐...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넣어뒀나? 아닌데. 분명히 여기 넣어뒀는데,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간 거야. 장... 장부도 없네. 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누가 훔쳐가기라도 한건가? 설마 창고직원들이? 그놈들이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고. 여기 직원들 말고는 올 사람도 없잖아. 이놈들을 그냥.”
채 사장은 제 화를 누르지 못한 채 씩씩거리며 창고 책임자에게 달려갔다.
“이봐. 창고. 창고 어디 갔어?”
“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그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창고’라고 외치자 반백의 머리를 한 50대 중반의 남자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20살 가까이 어린 사장이 자신을 ‘창고’라고 부르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창고 책임자라고 해도 그를 포함해서 이곳에 일하는 직원들은 전부 비정규직 직원들이기 때문에 사장이 아무리 고깝게 굴어도 굽실거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저기 별채 말이야. 저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물건이 없어져서 그러잖아, 물건이. 여기 직원들 아니면 저기 손댈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누구 짓이야?”
“네? 그럴 리가요? 오해이십니다, 사장님. 여기 직원들 중에 그럴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대체 누구 짓이란 말이야. 지나가는 개가 집어갔나? 응? 말해봐. 내가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이놈들을...”
시치미를 땐다고 생각한 채 사장은 당장이라도 경찰을 부르려다, 금고 속에 들어있던 장부가 생각나서 말을 멈추고 말았다. 떳떳하지 못한 돈이다 보니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께름칙했다.
“신고하려면 신고하십시오. 거, 증거도 없이 사람 도둑으로 모는 거 아닙니다. 진짜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퉤.”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갑자기 도둑으로 모는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젊은 직원하나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채 사장에게 대들었다.
“더러워? 진짜 더러운 맛을 보여줄까? 응? 당장 모가지 날려줘?”
“아이고, 사장님. 이 친구가 아직 젊어서 그럽니다. 고정하시지요.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에게 이게 무슨 말 버릇이야. 당장 사과드리게. 어서.”
젊은 직원의 모습에 화가 난 채 사장이 일자리를 가지고 협박하자 창고 책임자가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사장의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젊은 직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종용했지만, 그직원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 버렸다.
“저... 저 놈이 감히. 이봐. 창고. 저 놈 이름이 뭐야? 오늘 당장 해고시켜버려.”
“제발 진정하세요. 사장님. 갑자기 도둑으로 몰려 억울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흥.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은 아니고? 아! 저거 CCTV지? 저것부터 확인하자고. 빨리빨리.”
창고 문 앞에 설치 된 CCTV를 발견한 채 사장은, 책임자에게 당장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며 법석을 떨었다. 자신에게 건방지게 군 젊은 직원을 자르는 것이 급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고 안에 있던 돈과 장부를 빨리 찾아 부도부터 막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창고 안에 있는 사무실로 가시면 확인할 수 있으니 저를 따라 오시죠.”
사무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녹화된 CCTV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구석에 설치된 모니터에 앞에 앉았다.
“흠. 이것도 문제네. 도둑이 대체 언제 들었는지 알아야 확인을 하지.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금고를 열어봤지? 제기랄. 여기 온 것이 한두 번이라야 기억하지. 일단 어제 것부터 확인해봐.”
“네.”
채 사장의 지시에 책임자가 장비를 작동시키자 화면을 통해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 장면을 보던 채 사장의 인상이 잔뜩 굳고 말았다.
“이게 뭐야. 왜 창고 입구밖에 보이지 않는 거야? 다른 장면을 찍은 영상은 없어?”
“원래는 주차장에서 별채방면으로 찍는 카메라도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철거하라고 하셔서 이제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뭐? 내가? 내가 언제...”
기억이 났다. 색다른 재미를 느끼기 위해 봉순이나 다른 여자들을 별채로 데려오려고 하니 CCTV가 마음에 걸려 철거를 지시했다. 밤마다 여자를 데리고 들락날락 거리는 모습을 직원들이 CCTV로 본다면, 사장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 고민 없이 했던 자신의 행동들이 자꾸 자기의 목을 조른다는 생각이 들자 채 사장은 짜증이 났다.
이렇게 되면 꼭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들만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채 사장이 별채로 데려왔던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자신을 표독스럽게 노려봤던 봉순의 얼굴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별채에 제일 많이 갔던 여자가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이제는 좋지 않은 감정까지 생긴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도봉순 그 여자의 짓이 분명해보였다. 채 사장은 전화기를 꺼내 봉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 봉순의 집.
덜컥.
문이 열리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휴. 이제 검찰청과 국세청에도 투서와 함께 장부를 보냈으니 할 일은 끝난 건가. 그나저나 가방에 든 2억은 어떡하지. 생각 없이 가져오기는 했는데, 이러다 나중에 절도로 잡혀가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냥 장부만 가져올 걸. 채은성 그놈에게 복수를 한다고 눈이 벌게져서 너무 욕심을 부렸어. 으이그, 이 바보 도봉순아. 마동수씨가 복수하려면 냉정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을 1시간도 되지 않아 까먹어 버리다니, 난 정말 멍청한 년이 분명해.”
봉순은 머리를 쥐어박으며 바보 같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처음에는 위자료라고 생각하고 들고 왔지만, 여자 도봉순이 아닌 인간 도봉순이 되겠다고 결심한 상황에서 채 사장의 돈을 쓴다는 것은 영 내기키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겁이 나기도 했다. 조심하지 않고 금고에 지문까지 남겼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채 사장이 이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라도 한다면, 금방 잡혀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Rrrr
“앗, 깜짝이야. 이래서 사람은 죄짓고 못산다고 하나봐. 아유, 놀래라. 누구지?”
그녀가 돈 2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한 벨소리를 내며 울렸다.
“채 사장이네. 이 인간이 뻔뻔하게 내게 전화를 해? 설마 돈이 없어진 것을 벌써 눈치 챈 거야? 어쩌지. 어쩌지. 받아 말아. 후우. 후우. 침착하자. 도봉순. 침착해라. 도봉순.”
봉순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 은성씨. 왜 이렇게 전화가 없었어요? 기다렸는데.”
그녀는 최대한 교태를 부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반가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중에라도 생길지 모르는 의심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와 통화하는 것 자체가 역겨웠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연기를 했다.
“어... 전화? 그게 일이 좀 있어서 바빴거든.”
“서운해요. 제겐 은성씨 밖에 없는 것 알잖아요. 저는 계속 자기 생각만 했단 말이에요.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어요?”
“다... 다시? 글쎄. 지금 당장은 곤란하고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 끊어.”
“네. 은성씨. 꼭 다시 전화 주세요.”
◆ OO출판사 일산 창고.
“어머. 은성씨. 왜 이렇게 전화가 없었어요? 기다렸는데.”
아무래도 봉순이가 의심스러워 전화를 했는데, 그녀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표독스럽게 쳐다보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는 것이 의외였다.
“어... 전화? 그게 일이 좀 있어서 바빴거든.”
채 사장은 그녀의 반응에 당황을 해서 말을 더듬었다.
“서운해요. 제겐 은성씨 밖에 없는 것 알잖아요. 저는 계속 자기 생각만 했단 말이에요.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어요?”
봉순의 다시 보자는 말에, ‘뭐, 이런 뻔뻔한 년이 다 있나.’ 싶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희롱 당하던 모습도 찝찝했는데,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룸을 나갔던 것이 그녀였다. 그래놓고 어디 감히 자신을 다시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멍청한 여자가 금고를 열고 돈과 장부를 가져갔을 리는 없다.
“다... 다시? 글쎄. 지금 당장은 곤란하고 내가 나중에 전화 할게. 끊어.”
“네. 은성씨. 꼭 다시 전화 주세요.”
다시 전화를 해? 채 사장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통화를 해보니 봉순이는 아니다. 그럼, 자신이 데려왔던 다른 여자들 중에 한 명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연락처는커녕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난감했다. 사라진 돈이 너무 아까워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부도를 막아야 했다.
Rrrr
채 사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학생 시절 만났던 동기인데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이 여자, 저 여자 꽤나 후리고 다녔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니 자신을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은성아. 그렇지 않아도 전화 하려고 했는데. 내가 이번에 죽이는 술집하나 뚫어놨거든. 언제 한 번 같이 가야지?”
“술집은 다음에 가고. 저기 말이야.”
“응?”
“혹시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한 1억만 있으면 되는데.”
“1억? 야야. 전화 들어온다. 꼭 받아야하는 급한 전화거든.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끊는다.”
“급하기는 내가 더 급해.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끊었네. 이런 놈이 친구라고. 어휴.”
전화를 끊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해봐도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인간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도 거의 없는데, 대체 어딜 가서 돈을 밀려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조금 늦게 올릴 것 같습니다.
제가 미리 소제목을 정하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1. 글을 쓰다보면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를 때가 가끔 있습니다. 7~8회 분량으로 썼는데 내용이 길어져 소챕터로 끊어 갈 필요가 있을 경우가 그렇습니다. 작가의 미숙함 때문이죠. 2. 스포일러를 담고 있는 제목이라서 글의 재미를 위해 마지막에 올리는 경우입니다. 눈치가 빠른 독자님들은 소제목만 보고 스토리를 예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소제목은 챕터가 마무리 될 즈음에 공개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