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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20화 (120/424)

00120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판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대포사.

딸랑.

문 위에 걸어놓은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웬 남자 한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사채업자인 마대포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곧 돈 버는 소리와 같다. 이번에는 또 어떤 호구(?)가 자신에게 돈을 바치러 왔을까? 그는 매와 같은 눈으로 손님을 훑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곱상하게 생긴 것이 고생을 해본 티가 전혀 없는 샌님처럼 보였다.

입고 있는 옷이나 손에 찬 시계도 꽤 고급이었다. 급전이 필요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부터 팔아야 하는데, 저런 샌님들은 자기 손에 들어 온 것은 절대 놓을 줄 모른다. 꼴을 보니 마대포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손님이 분명했다. 이놈을 어떻게 뜯어먹을지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여기가 사채를 빌려주는 곳이 맞습니까?”

“어이쿠, 사채라뇨? 그런 섭섭한 말씀을요. 저희는 사채업자와 다르게 법정이자만 받습니다. 그러니 전혀 염려하지 마십시오.”

마대포가 법정이자를 들먹이며 안심을 시키자 손님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안심하는 손님의 모습에 마대포는 속으로 흐뭇한 비웃음을 지었다. 법정최고이자도 법정이자이긴 하다. 단지 이자율이 49%(2009년 현재, 2010년 44%, 2011년 39%)라는 사실을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담보 없이 얼마나 빌릴 수 있습니까?”

“음. 얼마나 빌릴 생각이시고, 기간을 얼마나 예상하십니까?”

“1억입니다. 그리고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한 달 안에 갚겠습니다.”

“1억에 한 달이요? 흠. 그럼 이자가 좀 쌔지는데.”

“얼마나요?”

손님은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담보 없이 빌려드리려면 이자가 49%입니다.”

“4... 49%요?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에이, 한 달로 계산하면 410만 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 정도도 무리가 되십니까?”

“겨우 410만원이요? 하하하. 아닙니다. 금방 갚을 수 있습니다. 염려마세요.”

역시 오늘 손님은 호구가 틀림없었다. 겨우 410만원이라니. 그건 제대로 갚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마대포는 호구가 호구(호랑이 아가리)로 얼굴을 집어넣는 상황이 즐겁기 그지 없었다.

“역시 손님이라면 410만 원쯤은 가뿐하시라 믿었습니다. 어이, 은나라 여기 서류 좀 가져다 줘.”

“알겠습니다. 사장님.”

마대포가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직원을 부르자 짧은 스포츠머리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낀 남자가 서류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여기 서류에 신상명세를 써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손님은 은나라가 전해준 서류에 자신의 신상명세를 적기 시작했다. 이름 채은성. 서류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마대포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리고 은나라라는 직원을 손짓으로 불러 귓속말을 했다.

“혹시 큰손 쪽에서 요주의 인물이라며 일체의 거래도 하지 말라는 사람 이름이 채은성 아냐?”

“맞습니다. 사장님. 호구인지 폭탄인지도 구분 못하시다니 실망인데요. 이거 괜히 아까운 종이 한 장만 낭비하셨습니다. 흐흐.”

“젠장. 지금 웃음이 나와? 응? 저기 손님, 잠시 만요.”

은나라의 깐죽거림에 짜증이 난 마대포는, 채 사장이 작성하고 있던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빼앗았다. 그리고 그가 보는 앞에서 종이를 북북 찢어버렸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무슨 문제? 아주 지랄을 해요. 나가. 이 자식아.”

마대포의 거친 말투에 놀란, 채 사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조금 전까지 친절하게 돈을 빌려준다고 해놓고, 갑자기 왜 이러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네? 이유라도 좀...”

“어허, 그 자식 끈질기네. 이유 필요 없으니까 나가. 안 나가? 몇 대 맞고 나갈래, 그냥 나갈래?”

“아... 아닙니다. 그냥 나가겠습니다.”

채 사장은 마대포의 험악한 인상에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나라야.”

“네. 사장님.”

“소금 뿌려라.”

“네? 소금이 어디 있다고?”

“왜, 임마. 콩 국수 주문하면 같이 오는 소금 모아둔 거 있잖아. 저기 두 번째 서랍에 찾아봐. 거기 있을 거야. 아까우니까 딱 두 알만 뿌려. 아니다. 저 새끼는 관상이 안 좋아. 세 알 뿌려. 에이, 재수 없는 놈 같으니.”

우당탕탕.

마대포의 무시무시한 인상에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치던 채 사장은,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거의 다 내려와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크게 다칠 상황도 아니었지만, 채 사장은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씨발.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냐. 이제는 사채업자에게까지 개망신을 당하고 쫓겨나다니 인생 정말 헛살았다. 헛살았어. 흑. 에이씨, 왜 눈물이 나고 지랄이야.”

조금 있으면 은행 영업시간 종료인데,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보통은 내일 오전 10시까지는 부도처리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채 사장의 마음은 암담하기만 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에게 전화를 해도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채까지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자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자동차와 시계 그리고 그밖에 그가 가지고 다른 몇 가지 물건을 판다면 어떻게 해서든 1억이라는 돈은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채 사장의 좁고 편협한 사고방식은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단지 절망감에 사로잡혀 하늘만 원망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엄마. 저 아저씨 거지인가 봐. 불쌍한데 아까 쭈쭈바 사먹고 남은 100원이라도 줄까?”

“별소리를 다하네, 얘는. 거지 아니야. 옷은 멀쩡하잖아. 아무 사람에게나 거지라고 하면 못써. 알았어?”

“응. 엄마.”

“그리고 딸.”

“왜, 엄마?”

“엄마 말 잘 안 들으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된다. 그러니까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히히히. 그건 쪼끔 생각해보고.”

건물 입구에 넘어져 있는 채 사장을 발견한, 대여섯 살로 보이는 꼬마와 젊은 여자는 그렇게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두 모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채 사장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얼굴은 새빨갛게 변했다. 쭈쭈바나 빨고 다니는 꼬맹이에게 거지취급을 당하고 나자 자신이 꼴이 얼마나 우습게 변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들었다.

Rrrr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서든 돈 구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길을 나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마누라였다. 평소의 채 사장이라면 귀찮게만 생각했을 전화였지만, 이제 남은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만 했다. 그리고 혹시나 처가를 통해 돈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어, 나야.”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대체 뭐하는 사람이라니? 갑자기 전화해서는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야?”

“말자, 숙자, 미자, 봉순이. 이래도 몰라요?”

마누라 입에서 자신이 만나고 다니던 여자들의 이름이 나오자 채 사장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처가에서 돈을 빌려보려던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래도 양심은 있나보네. 거짓말은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니, 여보 그게 아니라.”

“됐습니다. 채은성씨. 우리 이혼해요. 가지고 있는 재산 다 거덜 내서 위자료도 얼마 못 받겠지만, 어쩌겠어요. 내 팔자가 그런 걸. 당신 같은 사람과는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으니 그렇게 아세요.”

“아니, 여보.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고 하나 이해 못 해주나? 내가 일단 집에 갈 테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채 사장은 오늘따라 주변 사람들이 유난히도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짜증을 벌컥 내버렸다. 그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마누라를 보자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허...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오네요. 짐은 출판사로 보낼 테니까 집에 올 것 없어요. 이혼 서류도 같이 보낼 테니 그리 알아요. 끊어요.”

“여... 여보. 이봐. 끊었네, 젠장.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대체 마누라는 내가 여자 만나고 다닌 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거야? 진짜 더럽게 재수 없네. 남들은 걸리지도 않고 잘도 바람을 피우던데 난 왜 이 모양 이 꼴 인거야.”

10월의 첫째 날, 출근할 때부터 콧소리가 절로 날만큼 기분이 상쾌했다. 모르긴 몰라도 채 사장은 어제오늘 아주 개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 어찌어찌 막는다고 해도, 이르면 다음 달 늦어도 다다음달이면 쪽박을 차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히 쪽박 차고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명목상의 이사가 되어 푼돈이나 받으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신세가 될 뿐이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완전히 부도처리가 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멈추기로 한 것이다.

Rrrr

개고생하고 있을 채 사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윤 스포츠센터의 고문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이 변호사님.”

“바쁘신 중에 전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전에 OO출판사가 1차 부도처리가 됐습니다.”

헉. 이건 무슨 황당하면서도 반가운 소식이란 말인가!

“네? 아니 그놈은 고작 1억도 없었답니까?”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한두 달은 버틸 줄 알았는데, 은행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말입니다. 하하하. 오늘 은행 영업시간까지 어음을 막지 못하면 최종부도처리가 되니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그동안 채은성이라는 놈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 그래도 1~2억 정도는 어떻게 마련할 연줄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접한 놈일 줄이야.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그럼 조금 이따 OO출판사로 가서 인수협상을 진행하시겠군요.”

“그래야할 것 같습니다. 웬만한 어음은 다 인수를 했다고 해도, 자잘한 것들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죠. 노 여사님께서도 빨리 협상 마무리하고, 돈 문제부터 깔끔하게 해결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속사정을 잘 모르는 직원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네. 말씀하시죠.”

“시간이 되시면 같이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가요?”

“시작하신 분이 마동수씨니 마무리하는 모습도 보셔야지 않겠습니까?”

적이라고 해도 확인 사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좀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내가 시작했던 일을 남의 손에 넘기고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더 이상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디서 보면 될까요?”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내 약혼녀를 모욕한 놈이다. 그런 놈에게까지 연민을 느낀다면 앞으로 큰일은 하기 힘들 것이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채은성 사장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간단하게 점심이나 같이 하면서 오늘 협상에 대해 이야기부터 나누시죠. 그간에 있었던 진행상황도 들으시고요. 홍대에 있는 ‘푸치니가 꿈꾸는 작은 정원.’이라고 아십니까?”

거기는 와인바를 같이 하는 예쁜 카페다. 특히 밤에 가면 카페의 전경이 꽤 아기자기하다. 이 변호사가 가기에는 좀...

“거기를 아십니까? 홍대를 자주 가는 젊은 친구들만 안다고 생각했는데요.”

“젊게 살아야죠. 와이프와 데이트를 할 때 종종 들르곤 합니다. 섭섭한데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씀 모르십니까? 하하하.”

“아! 이런, 죄송합니다. 의외의 이름이 나와서 저도 그만.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이 변호사님처럼 살고 싶네요. 하하. 그럼 점심 때 뵙겠습니다.”

이 변호사와의 전화를 끊고 조 팀장님에게 가서 급한 일이 생겼다며 반차를 내겠다고 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급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쉽게 허락을 해주셨다. 이제 몇 시간만 있으면 채 사장을 대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작품 후기 ============================

내일이면 이번 챕터도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최대한 통쾌한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시간이 늦었네요. 제 건강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염려마세요. 글을 쓰면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커피가 늘었고, 야식을 먹기 시작했고, 허리가 좀 뻐근하고, 추워서 운동을 하지 않은 것만 빼면 전혀 문제 없습니다. ^^ 농담입니다. 저도 열심히 건강을 챙길테니 독자님들도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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