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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23화 (123/424)

00123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서울서부지방검찰청.

탕탕탕.

검찰청의 한 사무실에서 검사로 보이는 남자가 책상을 두들기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것보세요. 채은성씨. 정말 금고에 돈이 들어있던 것 맞습니까?”

“그럼요. 투서와 함께 왔다던 장부와 같이 들어있었다니까요.”

“솔직히 말씀하세요. 고발한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지금 거짓말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고, 검사님. 절대 아닙니다. 정말 2억 정도 되는 돈이 들어있었다니까요.”

검사의 신경질적인 말에, 채은성은 손을 절래절래 흔들며 억울함을 강조했다. 탈세한 돈을 모두 반환해야 그나마 죄가 가벼워지기 때문에 사라진 2억은 어떻게든 찾아야한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수사관을 보내서 지문감식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십니까?”

“아, 지문감식이 벌써 끝났습니까? 누굽니까. 그 사람이?”

“지문조회는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지문이 제대로 나와야 조회를 하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금고 자신이 혼자 사용하던 거 맞습니까? 최소 열 명 이상은 만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지문은 당신 거더군요.”

“최소 열 명이라니요? 거긴 정말 저 혼자 사용하던 금곤데요.”

“누구를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데려갔던 사람은 한 번씩 다 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밀 금고를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했으니... 이제 당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돈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는데, 그런 일에 인력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도 돈이 2억인데요.”

“안 하겠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집안 곳곳을 뒤져서 찾은 지문만 10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창고직원들도 조사해봐야죠. 당장 의심해봐야 할 용의자가 20명이 넘는데 어떡합니까? 시간을 두고 조사를 해볼 테니 기다려 보세요.”

채은성이 데려갔던 여자들의 대부분이, 그가 잠든 사이에 한 번씩은 금고를 열어보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 길은 없었다.

시연이 어머님은 채 이사가 갑자기 끌려가는 바람에 당황하는 직원들을 의외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강력하게 휘어잡으셨다. 변호사가 입회하에 모든 계약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그가 있든 말든 이곳의 사장은 바로 노하원 여사님이셨다. 덕분에 부도위기까지 갔던 OO출판사는 며칠 만에 정상화 되었다. 그리고 시연이 책에 대한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시작하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로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시연이의 말로는 그녀의 팬 카페 회원이 벌써 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하루에 수백 명씩 회원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채 사장 문제까지 처리되자 그야말로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원래 사장이던 그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이사 시절부터 시작한 탈세금액을 합치면 3억 정도 된다고 한다. 그 돈을 다 토해내지 않으면 감방에서 꽤 오래있어야 할 것이다. 참 운도 없는 것이 최근 사회적으로 탈세문제가 커지는 바람에 임의동행을 통한 1차 조사도 없이 바로 영장이 나와 버렸다.

띠링.

“응. 시연이 문자네.”

[동수씨! 얼굴보고 싶어서 회사로 왔는데 괜찮죠? 점심사주세요.~♡ 사실 전해줄게 있는데 기다리려니 못 참겠더라고요. 로비에 있을게요.^^]

책도 제법 유명해졌고 우리 둘만의 간단한 약혼식(?)도 했기 때문에, 시연이와의 관계를 더 이상 감추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녀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며칠 전에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회사로 찾아와.’라며 농담 반 진단 반으로 이야기했었다. 시연이가 기다린다는 문자를 확인하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남은 10분이 1시간 같은 기분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1층으로 내려와서 시연이를 찾았다. 그녀는 방문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라운지의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자를 보낼 때 분위기와는 다르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시연아.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시연이를 부르자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그제야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려 내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왜 그래? 여기서 기다리는 동안 누가 뭐라 그랬어? 응?”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쳐서 건넸다. 이번에 새로 나온 회사 사보였다. 시연이가 펼친 부분에는 나와 우리 팀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었다. 걱정할까봐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로비에 비치되어 있던 사보를 보며 무슨 일인지 알게 된 모양이었다.

“아, 이거. 하하하. 별거 아니야. 기사라서 조금 과장되었을 뿐 사실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어. 놀랬어? 미안해, 시연아. 눈물은 그만 흘리고 맛있는 밥이나 먹으러가자. 응?”

내가 과장되게 웃으며 시연이의 팔을 잡고 근처 식당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녀는 내 팔을 뿌리치고 가만히 서서 계속 눈물만 흘렸다.

“흑흑. 전, 동수씨에게 어떤 존재에요?”

“어떤 존재긴 내가 사랑하는 여자지. 내 약혼녀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떻게 제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제게 한 마디 말도 안했어요? 술 냄새 풍기며 학교 찾아 온 날이 이날 맞죠? 예감이 이상했어요.”

“그... 그게 시연아.”

울먹이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나도 그날은 정말 놀랐었다. 그래서 시연이에게 위로받고 싶어 학교를 찾아갔었다. 그녀의 슬픈 눈동자를 보니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전 정말 한심하고 쓸모없는 여자인가 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크게 다칠 뻔해서 나를 찾아왔는데, 꽃 선물 받았다고 바보처럼 좋아하기만 했으니.”

“네가 왜 쓸모가 없어. 절대 아니야.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가 동수씨에게 좋은 여자였다면,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을 때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겠죠.”

“네가 걱정할까봐 그랬어.”

“제 걱정을 했으면,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겠죠. 제 생각, 제 걱정을 했다면 절대 그런 일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거예요.”

시연이 말이 다 맞다. 나도 그날 일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도 사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 일을 겪은 후 다시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이제 그런 일 없을 거야. 정말이야.”

“이 반지, 회사에서 받은 포상금으로 산거라면서요. 이거 못 낄 것 같아요. 누가 이런 반지 필요하다고 했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남자가 목숨 걸고 번 돈을 이렇게 낭비하기 싫어요.”

“시연아, 그러지마. 내가 미안해.”

나는 반지를 빼려는 그녀를 급히 말렸다.

“전 그냥 동수씨에게 철부지 어린 아이일 뿐이죠? 전혀 의지는 안 되는 그런 꼬맹이밖에 안 되는 거죠? 나, 정말 바보 같은 여잔가 봐. 꽃 받고 좋다고 실실거리고, 반지 받고 좋다고 실실거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돈으로 샀는지도 모르고 바보 같이. 엉엉.”

내가 시연이를 만류하자, 그녀는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얼마나 상처가 컸을지 이해가 갔다. 품에 안고 달래주고 싶었지만, 회사라서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30대 남자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 대리 아니야?”

아, 채 사장이 사라졌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나쁜 놈이 정말 시기적절하게 나타났다. 이 대리 이 자식은 갑자기 여기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아무 일도 아니니 그냥 식사나 하러가세요.”

“아무 일도 아니긴? 네가 무슨 나쁜 짓을 했으니 이분이 여기까지 와서 울고 있는 것 아냐? 이 자식 이거 아주 나쁜 놈이네. 아가씨. 울지 마세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게 말씀을 하세요. 제가 회사도 못 다니게 아주 매장을 시켜버리겠습니다.”

이 대리는 내가 가라는 말도 듣지 않고, 평소와 같은 깐죽거리는 모습으로 다가와서 괜한 시비를 걸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주식회사 동지의 마케팅부 대리인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예쁜 아가씨의 눈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하.”

눈물을 흘리다 만 시연이가 질문을 하자, 이 대리는 과장 된 몸짓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하는 짓이 얼마 전 경찰에게 끌려간 채은성과 비슷했다.

“그건 관심 없고요. 아저씨가 뭔데 여기에 끼어드시냐고요.”

“네?”

“대체 아저씨가 뭔데, 우리 동수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건데요?”

“네? 우... 우리 동수씨요?”

“그래요. 우리 동수씨요. 잠깐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건데. 왜 갑자기 나타나셔서 우리 동수씨를 나쁜 사람 만드느냐고요. 우리 동수씨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사람인지 아저씨가 알고나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리고 왜 우리 동수씨보고 이놈저놈하면서 함부로 말씀하시는 건데요? 제가 아저씨보고 ‘꺼지세요.’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언제 울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대리에게 조목조목 따지는 시연이의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말에 황당해 하는 이 대리의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쯧쯧. 큰일이네. 이봐요, 아가씨.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이런 나쁜 놈에게 속지마세요. 그러다가 돈 버리고, 마음 버리는 여자들 숱하게 봤어요. 제가 잘 아는데, 마동수 저놈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닙니다. 제가 아가씨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정말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인간들이 이다지도 많은 걸까?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인간들이 계속 내 주변에 알짱거릴 리가 없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뭐... 뭘 버려요? 이 반지 보이세요? 제가 우리 동수씨 약혼녀인데 지금 뭘 속았다는 거예요?”

“야... 약혼녀요?”

“그래요, 약혼녀요. 한국어 모르세요. 프랑스어로 피앙세라고도 해요. Don't you know? 그러니까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계속 가세요.”

이 대리는 시연이의 당찬 말에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 거리다가 자리를 피했다. 와, 우리 시연이에게 이런 당찬 면이 있었을 줄이야! 아주 속이 시원했다. 내가 흐뭇하게 웃자 시연이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흥, 웃지 말아요. 아직 용서해준 것 아니니까.”

“미안해. 시연아. 앞으로는 정말 내 몸을 네 몸처럼 소중하게 아낄게.”

“제... 제 몸처럼 이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 말을 듣더니 얼굴이 빨개졌다.

“응. 그리고 걱정 마. 나도 느낀 게 많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널 두고 어디 절대 가는 일 없을 테니까 안심해. 그리고 반지는 절대 빼지 말고. 네 말처럼 내 목숨과 같은 것이니까 소중하게 생각해줘. 알았지?”

시연이를 달래기 위해 과감하게 닭살 돋는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시연이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이 대리는 결국 우리 사랑의 메신저 역할만 하고 사라진 셈이었다. 고마운 놈.

“앞으로 꼭 조심해야 해요. 저는 동수씨와 백년해로하는 게 삶의 목표란 말이에요. 제 허락 없이 절대 아프지도 다치지도 말아야 해요. 알았죠.”

“그래. 알았어.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자.”

“어머, 혹시 그거 제게 청혼하는 거예요?”

그녀는 이제 완전히 기분이 풀렸는지 내 팔짱을 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청혼이면 받아주려고?”

“음...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요. 히히히.”

“그럼 어쩔 수 없네. 나중에 약혼 프러포즈보다 더 근사하게 청혼하려고 했는데.”

“히잉. 농담이에요, 농담. 근사한 이벤트는 필요 없어요. 그래도 나중에 정식으로 꼭 청혼해야 해요?”

“하하하. 알았어. 꼭 그렇게 할게.”

“그리고요. 또 하나면 약속해주세요.”

“응? 뭔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다고 약속했지만, 그게 아니라도 위험한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잖아요. 그때가 되면 꼭 제게 말씀해주세요. 지금처럼 다른 곳을 통해 알게 하지 말고요. 전 꼬맹이가 아니라 동수씨의 약혼녀에요. 저는 당신에게 의지가 되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약속해줄 수 있죠?”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는 시연이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미 존재만으로도 내게 큰 의지가 되는데, 그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표현을 하지는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연이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약속할게. 윤시연.”

장난스럽게 짓던 표정을 지우고 시연이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맑은 웃음으로 나의 대답에 화답을 했다. 그 미소는 평소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 작품 후기 ============================

좀 늦게 올리네요. 몸이 좀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 글 마무리하고 올립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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