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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28화 (128/424)

00128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임신이 의심이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다고? 지금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울상을 지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정말 맘이 놓였다. 그렇지만 내년에 태어난다고 하면 나와 서른 살 차이다. 서른 살 어린 친동생이라니! 게다가 내 동생 상수는 마수리라는 딸도 있다.

그래, 솔직히 족보쯤 꼬이는 거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나이가 올해 쉰둘이시다. 아직 생신이 지나지는 않으셨으니 만으로 따지면 두 살 깎인다. 그래도 쉰이다! 쉰! 50! 뱃속에 있는 동생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 녀석보다 어머니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다.

“초음파 검사하면 금방 나오겠지?”

“응. 조금 있으면 결과 나와. 조금만 기다려.”

손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느낌이 났다. 음. 이건 시연이가 자신을 봐달라는 신호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민망했다. 상견례를 하던 삼청각에서 당당하게 공깃밥을 요구하던 우리 어머니의 모습은 전혀 쑥스럽지 않았다. 워낙 솔직하신 분이고, 나도 그런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번 일은 너무너무 민망하다.

“아잉, 동수씨. 왜 자꾸 내 눈을 피해요? 나 좀 봐요, 네?”

“어... 그게 말이야.”

“왜요? 어머님이 어디 편찮으시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게다가 동수씨를 닮은 동생이 또 한 명 생기는 거잖아요.”

말은 저렇게 하는데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표정이다. 아, 남사스럽다. 정말.

“그냥 눈으로만 웃지 말고, 차라리 빵 터트리지 그래?”

“풉... 제가 언제 웃었다고 그래요. 히... 안 웃었어요. 히히... 절대로 안 웃었어요. 히끅.”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다가 급기야 딸꾹질까지 한다.

“으이그. 그 봐 참으니까 딸꾹질까지 하잖아.”

“제가 언제 딸꾹질을 했다고. 히끅. 이건 딸꾹질이 아니라 그냥 감탄사에요. 히끅.”

“하하하. 그래. 알았어. 믿어줄게. 이제 윤시연 감탄사는 ‘히끅’이다. 이리 와봐 등 쓰다듬어 줄게.”

결국 시연이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시연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방문자용 의자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힐끔 쳐다봤다. 걱정은 되시겠지만, 결과가 확실해질 때까지 말씀은 안 드릴 생각이다. 어머니께서 정말 임신이면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하실지... 사실 어머니 혼자 애를 만들 수는 없으니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 또는 공로자는 아버지다. 같은 남자로 봤을 때는 참 대단하시다 생각이 들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참 황당할 뿐이었다. 부모님이라는 생각에, 부모 이전에 남녀사이라는 것을 내가 깜빡했다.

검사 결과를 알아보러 갔던 윤석이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 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맙소사. 정말이구나. 정말이야. 이 일을 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 이 자리에 없는 내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인 마수리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우선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야겠지만, 동생에게도 빨리 연락을 해줘야 될 것 같았다.

“하하하. 이제 겨우 한 달이란다. 너희 아버지 정말 대단하시다. 난 이제 아버님 존경하련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안 될까? 알고 보니 어머니 뱃속에 숙변이 가득했다던가? 초음파 검사도 실수할 수 있잖아.”

“지랄 똥 싸는 소리를 해라. 숙변이라니. 지금 네 동생이 똥으로 변하길 바라는 거냐?”

“아니다. 됐다. 그런데 건강에는 문제없으신 거야? 아무리 임신이라고 해도 왜 갑자기 쓰러지신 거야?”

“원래 임신을 하면 약간 빈혈이 생겨. 연세도 좀 있으시고, 기차를 타시면서 좀 오래 앉아있으셨던 것도 있고.”

“노산인데 괜찮을까?”

“응. 자세한 것은 평일에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으셔야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매우 양호해. 어머님 체형이 워낙 건강 체형이시잖아. 그리고 지금 연세에 임신을 하셨다는 자체가 엄청 건강하시다는 증거야.”

휴, 윤석이의 말이 맞다. 아까 시연이 어머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 어머니는 키가 170cm에 가깝고 뼈대 또한 굵으시다. 아버지께서 또래 평균보다 조금 크시다면, 우리 어머니는 또래 평균보다 엄청 크신 편이다. 나와 내 동생의 키가 180cm를 훌쩍 넘은 것은 전부 어머니 덕분이다.

“알았다. 수고했다. 참, 내가 이야기했지? 다다음주 주말에 나 약혼하는 거. 꼭 와라.”

“그래 알았다. 그런데 후드티에 청바지는 좀 그렇지 않냐? 이거 제수씨 생각이죠?”

“헤헤. 네. 너무 이상한가요?”

“그렇지는 않은데, 동수 말로는 두 사람 사진이 들어간 후드티를 나눠준다면서요? 그럼 우리는 그날만 입고 입지도 못하겠네요.”

“염려마세요. 그럴 것 같아서 손님들 옷은 왼쪽 가슴 쪽에 작은 사진만 넣고, 가운데와 등에는 예쁜 글자를 삽입해서 평상복으로 입어도 괜찮게 주문했어요.”

처음에는 후드티의 가운데에 우리 사진을 크게 넣을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면 그날만 입고 못 입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손님과 차별성도 둘 겸 Celebration Engagement!(축 약혼)라는 문구를, 등에는 우리 두 사람의 이니셜을 넣기로 했다.

“오! 센스 있으신데요. 동수 이 녀석 정말 복 받았네요. 하하하.”

“흠흠. 아무튼, 수고했다. 다음 주에 보자.”

“응. 그래도 어머님 연세가 있으시니까 영양제는 꼭 챙겨드리고. 그럼 간다.”

윤석이를 보내고, 방문자용 의자에 앉아계신 아버지에게 갔다.

“저기 아버지.”

“응? 결과 나왔나? 어디 이상 있는 건 아니제?”

“네, 이상은 없어요. 그런데 좀 황당한 일이 생겼어요.”

“황당한 일? 와? 니 어머니가 무슨 사고라도 쳤다나?”

사고? 맞다. 보통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기 전에 임신한 경우를 사고 쳤다고 표현한다. 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부모님은 그냥 사고가 아니라 대형 사고를 치신 거다.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가 사고 친 것을?”

“한두 번 겪는 일이라야지. 어쨌든,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쳤다는데?”

“이번에는 어머니 혼자 사고를 치시지 않은게 문제죠.”

“응? 누가 곗돈 들고 도망이라고 갔다나? 그래서 지금 쇼를 한 기가?”

“함께 사고를 치신 분이 아버지거든요.”

“이 자슥이. 니 지금 아버지랑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가?”

큭. 역시 우리 아버지는 윤 사장님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꼬랑지를 말 수밖에 없었다.

“아니죠. 제가 어떻게. 하하하. 엄마 임신이래요.”

“뭐? 뭔신? 임신? 똑디 말 안하나?”

“진짜 임신이래요. 아버지. 축하를 드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농담하지 말고. 니 어머니가 나이가 몇 살인데 임신을 한단 말이고?”

“저도 그게 좀 황당하긴 하네요. 하하하.”

“진짜가? 진짜 임신이가? 어휴. 내 이럴 줄 알았다. 장뇌삼인가 뭔가 먹이고 달라들 때부터 알아봤다. 아들 약혼식 앞두고 이게 무슨 남사스러운 일이고.”

“네? 어머니께서 뭘 어떻게 하셨다고요?”

“됐다. 마. 니는 알꺼 없다. 어휴. 어휴. 우째 이런 일이 생기노.”

아버지의 반응을 보니 예상보다 충격이 크신 것 같았다. 그러기에 좀 조심을 하시지. 잠시 뭐라고 하시다가 급기야는 말을 잃으시고 멍하니 서 계신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를 찾으러 응급실로 들어갔다. 지금은 아버지도 생각을 정리하실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엄마. 몸은 좀 괜찮아요?”

“으... 응? 와... 왔나?”

우리 어머니께서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날이 오게 되다니.

“어머님 축하드려요.”

“추... 축하는 무슨.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왜요, 어머님? 얼마나 축하할 일이에요. 저는 외동이라서 가족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꼬마 도련님이 될지, 꼬마 아가씨가 될지 모르겠지만 제게 가족이 한 명 더 생긴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쁜 것 있죠.”

“에휴.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동수야. 네 아버지는?”

“좀 놀라신 것 같아요. 장뇌삼 어쩌고 하시던데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모... 몰라. 내가 그걸 어찌 아는데? 나는 모르는 일이다.”

“모르면 모르지. 뭘, 그렇게 당황은 하고 그래요?”

“응? 에구구. 병원에 너무 있었더니 머리 아프다. 어서 나가자 동수야.”

어머니는 딴청을 부리시면 응급실 밖으로 나가셨다. 부모님은 조카인 마수리도 볼 겸 오늘은 동생 집에서 주무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동생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두 분은 한 마디 말씀도 나누지 않으셨다. 분위기가 분위기라 나와 시연이도 슬금슬금 눈치만 보면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뭐 임신? 그럼 아버지하고 엄마도 밤일을 하신단 말이야? 헐.”

동생은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내뱉은 소리에 부모님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셨다.

“니... 니는 형수도 있는 자라에서 못하는 말이 없노?”

“뭐 어때? 이제 우리 가족인데. 그죠. 꼬마 형수님?”

시연이는 동생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웃음을 겨우 참는 표정이었다. 오늘 따라 우리 집안이 왜 이렇게 시트콤으로 변하는지 그녀를 볼 낯이 없었다.

“꼬마 형수님이 머고? 똑바로 호칭 안하나?”

“우리끼리는 이미 그러기로 했어.”

“뱃속 든 아저씨는 있어도 나이 어린 형님은 없다는 말 모르나? 존칭을 제대로 해야 집안이 똑바로 선다. 알겠나?”

“푸하하하하. 뱃속에 애 생겼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야, 엄마?”

나는 어머니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래 의미야 제대로 된 호칭을 사용해야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집안에는 이제 정말 뱃속 삼촌과 나이 어린 형님이 생겨버렸다.

“내가 언제?”

“뱃속 든 아저씨라며. 마수리에게는 삼촌이든 고모든 뱃속 아저씨가 생긴 셈이잖아.”

“삼촌은 무슨. 고모다.”

“진짜 낳으려고? 엄마 나이를 생각해야지.”

말씀을 들어보니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이미 결심을 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정색을 하고 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건강이다.

“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고? 그럼 생명이 들어섰는데 지우기라도 하라는 말이가? 오래비가 돼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아들인지 딸인지 어떻게 알고?”

“딸 맞다. 그리고 아들이면 또 어떻노? 생명이라고 하는 거는 다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 거다. 앞으로 말조심해라. 지금은 진짜 콩만큼 작지만 그래도 들을 건 다 듣는다.”

“그래도 산부인과 가서 제대로 검사 받고 그다음에 결정해도 안 늦어. 혹시라도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이미 건강검진에서도 매우 건강하다고 안 나왔나?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부정 타게 자꾸 쓸데없는 소리하면, 지금부터는 엄마도 가만 안 있는데이.”

“누가 당장 어떻게 하자고 그래? 천천히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말 아니야?”

“니는 아직 애가 없어서 모성애가 뭔지 모른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서 요즘은 생각 없이 애를 지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부부가 애를 가졌는데 그걸 포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니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한 번 낳아봐라. 그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다.”

생각 이상으로 어머니는 단호하셨다. 그리고 가족 중에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별 다른 말씀 없이 침묵만 지키고 계셨다. 이제는 제발 어머니와 뱃속의 내 동생이 건강하기만을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 상수(주인공 동생)네 집 작은방.

동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수 아버지. 우리 아기 태명 지었어요. 호호호.”

“얼씨구. 벌써 태명까지 지었나? 정말 가지가지 한다.”

“어때요? 늘그막에 적적하지 않고 좋은 거지. 아무튼 ‘뇌사미’가 태명이니 당신도 그렇게 알아요.”

“무슨 태명이 그래? 뇌사미가 뭐야? 뇌사미가.”

“어때요? 귀엽고 좋기만 한데. 우리가 장뇌삼 먹은 날 생긴 애잖아요. 산신령이 점지해준 녀석이라니까요.”

“에잉.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렇게 무작정 달라 드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잖아. 애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아? 내가 정말 남사스러워서. 어휴.”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그게 어디 나 혼자 힘으로 생기는 건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하잖아요. 뇌사마. 서운해 하지 마. 아빠도 놀라서 그러는 거지 절대 네가 싫어서 저러시는 건 아니란다.”

동수 어머니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태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모습을 보던 동수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서 혀만 차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조금 늦었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 이번 챕터는 여기서 끝입니다.

코멘트가 처음으로 100건이 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반응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상 못했네요.ㅎ 노산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네요. 저도 알아봤는데, 요즘은 40~50대 산모가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설이잖아요 ㅎㅎ.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주세요.

다음 챕터는 약혼식과 여행 이야긴데, 요즘 들어 너무 로맨스쪽으로만 이야기가 흘러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다음 챕터만 끝나면 다시 직장의 이야기가 주가 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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