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새 발의 피.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고생고생 하면서 수많은 입사지원서를 읽으며 분류작업을 마치고나자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을 위해 별도로 준비한 회의실 앞에는 면접을 기다리는 대기자들로 가득 찼다. 서류전형을 통과해서 그런지 대체로 밝은 표정이었지만, 초조한 표정으로 준비해온 면접관련 책자나 자신의 전문분야 서적을 중얼거리며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실히 스포츠센터의 강사진을 뽑는 면접답게 엄청난 몸짱들의 향연이었다. 정장이 아니라 저마다의 특기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한 복장으로 참석하라고 했더니, 자신들의 우월한 몸매를 한껏 드러내는 옷을 입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지원자들의 늘씬하고 건강미가 돋보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마음이 들게 했지만, 하나같이 영화 ‘300’에서 등장하는 전사들처럼 우락부락한 남성 지원자들의 모습은 위압감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어디 가서 덩치로는 꿀릴 것이 없었던 나조차도 그들 옆에 있으면 가냘픈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우선은 자신들의 특기를 뽐낼 수 있는 실기 평가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우리 호텔과 윤 스포츠센터의 헬스트레이너 및 GX프로그램 전임강사를 심사관 자격으로 초빙했다. 윤 스포츠센터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은 몰라도 원래의 우리 팀원들은 그들이 특기를 선보인다고 해도 그것을 평가할 능력은 없었다.
두어 시간 후 실기 면접이 끝나고 본격적인 압박면접에 들어갔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뽐내는 남자 지원자도, 섹시하거나, 요염하거나, 우아하거나 그 어떤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한 여성 지원자라고 해도 압박면접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할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고객응대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
“다른 곳에 지원하셨습니까?”
이 질문은 회사의 압박면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문이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세상에 우리 회사만 지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그 사람의 재치나 당황하지 않는 침착성을 보고 싶은 의도가 있다.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합격한다면 꼭 이곳에 다니고 싶습니다.”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대답이다. 이런 대답이 나름 가장 원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면접관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꼭 어떤 대답이 정답이라고는 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자면,
“여러 곳이면 어디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OO회사, OX회사, XX회사 등이 있습니다.”
“아니, 지원자가 OO회사가 우리 회사보다 돈을 더 많이 주는데 왜 이곳에 다니고 싶다는 겁니까?”
“저는 돈 보다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입니다.”
“그럼, 분위기만 가족 같으면 한 달에 백만 원만 줘도 상관없습니까?”
또는
“누가 우리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합니까? 다녀보고 분위기가 생각과 다르면 회사를 그만 두시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심지어 어떤 여성 지원자는 압박질문을 견디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 순간 그녀는 탈락이다. 그런 상황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나름 독하게 준비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GX 프로그램에 지원한 OOO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OOO씨.”
“네.”
“얼굴이 아주 미인이시네요.”
첫 번째 지원자는 꽤 미인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부드러운 칭찬으로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GX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남성 회원들도 많은 것 아시죠?”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들어요? 그럼 직접 가르쳐 본 적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우리는 여성 회원뿐만 아니라 남성 회원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흠.”
“경험은 없지만 잘할 수 있습니다. 휘트니스 클럽의 회원은 성별로 구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래서 남성 회원이든, 여성 회원이든 똑같이 대하면 된다?”
“네. 그렇습니다.”
이 여성 지원자는 지금 제대로 낚인 상황이다.
“그건 OOO씨 혼자 생각이죠.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미인이시잖아요. 남성 회원 중 누군가가 OOO씨에게 접근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회원들에게 GX프로그램을 알려드리려고 지원했지 연애를 하려고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거절하겠습니다.”
“거절이야 당연한 거죠. 어떻게 거절을 하느냐가 문제 아닙니까? OOO씨의 단호한 태도로 상처를 받고 운동을 그만 두면 어떡하죠?”
“기분 나쁘지 않도록 최대한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뻔한 대답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번 낚은 물고기는 쉽게 놓지 않는다. 압박면접 자체가 지원자들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
“기분 나쁘지 않게라. 그런데 말입니다. 남성분들 중에는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을 신봉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계속 접근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도록 잘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 ‘잘’이라는 의미가 뭡니까?”
“네?”
“잘 이야기 한다면서요? 잘 이야기 했으면 다시 접근하는 일이 없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계속 접근하다는 것은 잘 이야기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그게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단호하게...”
“그러다 회원님이 그만 두시면요?”
“그... 그러니까.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게 잘...”
그녀는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스포츠센터의 강사진들은 보통 신체 건강한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회원들과의 스캔들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 이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남녀가 만나 불꽃이 튀기는 것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이렇게 약간 억지에 가까운 질문을 하는 것은 그녀의 성향을 보는 것이다. ‘경험 많으신 동료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구하겠습니다.’라는 식의 대답을 했다면, 이렇게 집요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직장에 비해 동료와의 연대가 크게 필요 없는 직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팀워크는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거나,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로 보인다. 저런 성격에 예쁜 외모는 분란만 일으킨다. 그래서 OOO씨는 탈락 확정.
“안녕하십니까. 헬스 트레이너 파트를 지원한 XXX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지원자는 키가 190cm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거구였다. ‘학교’를 ‘학겨’, ‘교수’를 ‘겨수’, ‘묘기’를 ‘며기’라고 적어서 탈락시킬까하다 내용도 참신하고, 경력도 괜찮아서 일단 서류전형은 통과시켰던 사람이다. 단어를 이상하게 표기해서 귀염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런 거구가 주인공이라니 의외였다. 저 큰 덩치로 ‘겨수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인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XXX씨 면접 전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대학교’를 ‘대학겨’, ‘교수님’을 ‘겨수님’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원래 좀 귀여움을 떠는 스타일입니까?”
“아닙니다. 저 생긴 것을 보십시오. 귀염 떨게 생겼나.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사람들이 전부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ㅛ’자 자판이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판이 고장 났으면, 새것으로 바꾸든지, 그게 아니면 PC방이나 친구 집에 가서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 융통성도 없습니까?”
“아껴 살다보니 돈이 없어서 키보드는 바꾸지 못했습니다. 사는 집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서 PC방이나 친구 집은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원공고를 너무 늦게 발견해서 그랬습니다. 장난처럼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오, 돈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당당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좋아한다.
“처음 입사해서 주위 동료들에게 XXX씨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직장 선배 중 한 명이 XXX씨에게 매우 친절하고, 다른 사람들도 당신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하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후견인처럼 일도 도와주고, 밥과 술도 사주었습니다. 그런 호의가 회사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선배가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과 사를 구분 할 수 있는가? 개인적인 정은 있는 사람인가? 돈에 대한 철학은 어떤가? 이 질문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의도가 담겨있다.
“저는 바퀴벌레보다 생명력이 질겨서 왕따 당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 선배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너무 인정 없는 행동 아닙니까?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증을 서달라는 것인데요?”
“호의는 호의로 머물렀을 때 호의가 됩니다. 진심으로 제게 호의를 베푸신 선배라면 그런 부탁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친구들도 형편이 괜찮은 직장 동료들도 있을 텐데, 굳이 신입인 제게 보증을 부탁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XXX씨를 남다르게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봤던 ‘쩐의 전쟁’이라는 만화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면 99%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그리고 1%는 돈만 건지고, 친구는 잃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절대 금전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래도 오죽 답답했으면 제게 부탁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들 것 같습니다. 월급을 타면 그 선배를 위해 술 한 잔 사드리면서 위로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번 지원자가 마음에 들었다. 당당한 모습도 마음에 들고, 돈에 대한 확실한 자기 철학이 있는 모습도 좋아보였다. 조금 단호한 태도 때문에 다른 면접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영강사 파트를 지원한 YYY라고 합니다.”
면접자가 많아서 하루 종일 질문만 했더니 목이 다 아팠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 지원자의 면접이었다. 괜찮은 사람들도 있었고, 한참 자격에 모자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지원자는 밝은 인상의 여성 지원자였다.
“YYY씨의 휴가일정이 상사와 겹쳤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휴가는 부모님을 위해서 처음으로 준비한 일정입니다. 회사 일정상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 않은가? 양보의 정신과 협상능력이 존재한가? 이번 질문에는 이런 의도가 숨어있다.
“부모님과의 여행이니 상사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부탁을 해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절을 하면요?”
“밥이나 술을 사면서 한 번 더 부탁을 하겠습니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함께 가는 여행인데 그냥 손 놓고 가만히 있기는 아쉬울 것 같네요.”
“그래도 거절을 하면요?”
“어쩔 수 없죠. 상사에게도 그만큼 사정이 있다는 이야긴데 제 주장만 할 수는 없잖아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부모님 두 분만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상사라고 무조건 Yes라고 대답하지 않고 뭔가를 시도해보겠다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아쉽다면 서도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회원 응대도 능숙하게 잘할 것이다. 휴, 이제 끝났다. 처음 해보는 면접이라, 그것도 압박면접이라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일 줄은 몰랐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뽑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부담이었다. 내 의견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금요일도 이제 거의 끝나가니 시연이와의 약혼식이 일주일 남은 셈이다. 면접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더니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뭐를 하고 있을까? 약혼식 준비하랴 시험 준비하랴 그녀도 고생이 참 많을 것이다.
◆ 강남의 왁싱 전문샵
장희는 시연이를 이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로비에는 왁싱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담긴 안내책자가 있었다. 책을 들어 내용을 읽던 시연이는 금방 얼굴이 붉어지며 장희에게 귓속말을 했다.
“세상에.. 언니. 정말 있네요.”
“호호호. 그럼. 팔다리는 기본이고, 풀 프로그램은 완전히 벗고 시술해야해.”
“그.. 그런 걸 진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민망하겠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는 거란다. 시연이 너야 그냥 팔다리만 할 거니까 민망할 일은 없잖아. 이런 전문샵이 좋은 게 시술 후 피부 진정 캐어와 피부 재생 캐어를 받을 수 있다는 거야.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자.”
“아프지 않을까요?”
“아파도 참아야지. 호호호. 어서 들어가자.”
시연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불쌍한 눈을 하고 장희의 손에 이끌려 상담을 시작했다. 잠시 후 안에서는 시연이로 판단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꺄악! 너... 너무 따가워요. 히잉.”
“참아. 이제 다리 하나만 끝났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조그만 더 참아. 저기, 계속 해주세요.”
“꺄악...! 흑. 아파. 흑.”
============================ 작품 후기 ============================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