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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38화 (138/424)

00138  새 발의 피.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면도를 마친 시연이는 아침 식사까지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나는 파주 평화누리공원으로 놀러 갈 때 먹었던 짜거나, 시큼하거나, 밍밍했던 김밥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냐. 내가 할게. 면도까지 해줬는데, 아침 정도는 내가 해야지.”

“저도 잘 할 수 있어요. 동수씨.”

“원래 이런 곳에 오면 남자가 하는 거야.”

시연이에게 요리를 맡길 수는 없어서 둘러댔지만, 없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 것도 있었어요? 하는 수 없죠, 뭐. 마 쉐프님. 오늘 아침은 뭔가요?”

“음. 어제 먹으려다 못 먹은 스테이크도 있고, 빵과 샐러드도 준비해왔어.”

“스테이크요!”

“나는 좋지만, 아침부터 괜찮겠어?”

나야 해장으로 삼겹살을 먹기도 하는 고기 마니아지만, 속이 부대낀다며 아침을 가볍게 먹는 사람들도 많다.

“괜찮아요. 아빠가 고기를 좋아해서 아침식사에 육류가 빠지는 날이 없거든요. 그리고 동수씨가 해주는 요리는 뭐든지 맛있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벌써 군침이 돌아요. 히히.”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려. 스테이크 굽는 거야 금방이니까.”

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을 둘렀다. 큼지막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올리자 ‘치이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시연이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식탁에 앉아 군침을 흘리며 요리하는 내 모습을 지켜봤다. 준비해온 후추와 구운 소금을 조금 뿌리고, 육즙이 살짝 배어나올 정도로만 가볍게 구웠다. 넓은 접시에 고기를 옮기고,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샐러드를 고기 옆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마트에서 사온 드레싱소스를 샐러드 위에 적당히 뿌려줬다.

“자, 완성 됐습니다.”

똑똑.

후다닥 만든 아침식사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잠깐만 있어봐.”

펜션 관리인이었다.

“정전이 됐다고 통화를 한 이후에 계속 전화가 안 돼서요. 별일 없으시죠?”

“아, 전화기가 고장이 났어요. 벽난로 덕분에 오히려 운치 있게 보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죄송합니다. 저희 불찰입니다.”

손님 입장에서야 당연히 따져야 할 일지만, 그 바람에 더 기억에 남는 하룻밤을 보낸 것 같아 까다롭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누전 된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따뜻한 물이 나와야 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방금 전에 손봐뒀습니다. 이제 전기가 들어올 테니 바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식사 중이신 것 같은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관리인을 보내고, 시연이와 즐겁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샤워를 하겠다는 그녀를 보고 같이 씻자고 했다가 엉큼하다고 구박만 받았다. 아직은 많이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나눴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해보였다.

“동수씨. 사진 찍으러 나가요. 날이 개어서 주변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샤워를 하고 침실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더니,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으러 나가자고 졸랐다. 활력이 넘치는 시연이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음심이 동했다. 사진 찍고 돌아다닐 힘이 있으면, 나와 사랑을 나눌 힘도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나의 음심을 합리화 했다. 날을 잡고 여행을 왔는데 한 번으로 만족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이 날을 위해 너무 오래 참았다.

“어머, 동수씨. 흡.”

나는 시연이를 안고 키스를 퍼부으면서 침대로 향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그녀도 이내 나의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제보다 훨씬 빨리 몸이 달아올랐다. 짧은 애무에도 그녀의 몸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금방 젖었다. 허겁지겁 옷을 벗기고 계곡 안으로 나의 분신을 밀어 넣었다.

어젯밤에 느꼈던 그 뜨거웠던 시연이의 내부가 꿈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다행히 크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어제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나를 받아들였다. 침실 안이 우리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로 가득 찼다.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뜨거운 물줄기를 그녀의 내부에 토해낼 때까지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관계가 끝난 후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시연이를 다시 침대로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두 번의 관계를 더 가지자 그녀는 지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거친 숨소리를 내며 침대에 널브러졌다.

“서.. 설마 또 하려는 건 아니죠?”

내가 다가가자 시연이는 겁을 먹은 표정으로 이불로 몸을 가렸다.

“휴우. 나도 이제 지쳤어. 걱정하지 마.”

“아까도 그래놓고 덮쳤잖아요.”

“하하하. 이번에는 정말이라니까. 제대로 움직일 힘도 없어.”

그렇게 말을 하자 시연이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내 품으로 안겨왔다.

“히잉. 이게 뭐에요. 여행을 왔으면 사진을 찍고 그래야 하는 건데.”

“사진이라니? 그런 걸 찍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네에? 사진 찍는 거랑 남자의 자존심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해요?”

나의 엉뚱한 말에 시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몰랐어? 신혼여행 간 부부들을 보면, 유독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있거든. 왜 그런지 알아?”

“아뇨.”

“남편이 너무 건강해서 부인을 하루 종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피이. 엉터리. 신혼여행은 길게 가잖아요. 어떻게 여행 기간 내내 그럴 수 있어요.”

“궁금하면, 지금이라도 확인 해보던가.”

“아니에요. 확인 안 해봐도 돼요. 믿어요. 동수씨 말은 전부 믿을게요.”

다시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시연이는 내 목을 꼭 껴안고 나를 진정시켰다. 사실 뭐, 나도 지금 당장은 그럴 힘이 없었다. 오전부터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세 번의 사랑을 나눴더니 온 몸이 노곤했다.

“그런데요. 동수씨.”

“응?”

“어제는 무슨 일이었어요?”

“무슨 일이라니?”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 놀라게 만든 일이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혹시나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역시 시연이는 어제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누전 차단기가 밖에 있다고 해서 나갔다 왔지.”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 그냥. 길을 좀 헤맸어.”

“동수씨. 지난번에 저와 약속한 거 벌써 잊은 건 아니죠?”

시연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관계가 끝난 다음에는 아직 쑥스럽다며 항상 몸을 가리던 그녀였는데,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알몸이 드러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나를 바라봤다.

“그게 말이지. 시연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당장 병원으로 가자고 난리칠 것 같아서 둘러대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내가 겪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동수씨!”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연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지금해요. 당장 병원부터 가요.”

“지금? 나 움직일 힘도 없어.”

“당장 일어나요. 안 그럼...”

“안 그럼?”

“안 그럼 지금 이 알몸으로 밖에서 동수씨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보통 이런 비슷한 상황이 나오면 당장 헤어지네 어쩌네 하면서 협박하기도 하는데, 시연이의 말을 내 상식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어떻게 보면 더 무서운 협박이었다.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이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녀의 몸은 이제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는 시연이의 협박에 후다닥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운전은 내가 할게.”

“이리 줘요. 감전이 됐으면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환자니까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있어요.”

여전히 얼굴을 잔뜩 굳힌 시연이는, 나를 완전히 환자 취급을 하면서 자동차 키까지 빼앗아 갔다. 병원 응급실로 가는 동안 그녀는 한 마디도 내게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괜히 말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걱정해준다는 생각에 조용히 앉아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감전사고가 있었거든요. 어젯저녁에 그랬는데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를 만난 시연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했다.

“그래요? 감전 부위가 어딥니까? 아니지. 일단 베드에 누워보세요.”

의사는 시연이의 미모에 혹했는지 온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녀를 병원 침대에 눕히려고 했다.

“아니요. 저 말고요. 이 남자요.”

“크흠. 그렇습니까? 빨리 말씀을 하시지. 환자 분 감전 부위가 어딥니까?”

진료를 해야 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안 의사는 미소를 급히 거두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라도 시연이처럼 예쁜 여자를 보다가 곰처럼 생긴 우락부락한 남자를 보면 저절로 표정이 굳을 것이다.

“오른손입니다. 괜찮은데 자꾸...”

“뭐가 괜찮아요. 기절까지 해놓고는.”

“기절까지 했다고요? 쇼크가 왔다는 이야긴데 왜 이제 왔습니까? 잘못하면 몸에 큰 무리가 올 수도 있습니다. 우선 검사부터 받아보시죠.”

내가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의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의 표정을 보자 겁이 덜컥 났다. 이래서 병원에 오기가 싫었다.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의사의 심각한 표정은 아직도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심전도 검사다 뭐다 하면서 내 몸에 이상한 장치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여러 가지 검사를 시작했다. 내 꼴이 정말 이상해보였는지 나를 지켜보는 시연이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다행이네요. 손끝에 화상을 입은 것 말고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이렇게 덩치가 좋은 분이 기절을 할 정도였으면 어딘가 손상이 갈 정도로 전류가 흘렀어야 하는데. 어제 저녁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말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의 말이 꼭 내게 무슨 이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합리적인 의심은 의사에게 항상 필요한 일이라고 친구인 윤석이에게 들었다. 아마 나를 진료하는 의사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욱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전류가 흐른 시간은 매우 짧았다는 말이군요. 그럼 더더욱 기절할 일이 없는데요. 잠시만 머리 좀 만져보겠습니다.”

“윽...”

의사가 다가와 내 뒤통수를 만지는데,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뒤통수에 큰 혹이 있네요. 모르셨습니까?”

응? 큰 혹? 정말 몰랐다. 시연이를 덮치(?)겠다는 사명감만 가득차서 그런지 몰라도 의사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네. 몰랐습니다.”

“둔한 분들 중에는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뼈에 금이 갔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일주일 뒤에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우선 동공반응이나 그런 건 이상이 없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충격을 받고 기절 하신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MRI라도 찍어 보시겠습니까?”

“네. 해주세요. 지금 바로 가능하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시연이가 나서서 그러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꼼짝없이 MRI까지 찍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고 나서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시연아. 괜찮다고 하잖아. 이제 얼굴 좀 풀어라. 응?”

검사 결과는 괜찮다고 나왔는데, 시연이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제가 말했죠. 동수씨 몸은 내 것이라고. 그런 일이 있으면 왜 자꾸 숨겨요.”

“숨긴 거 아냐. 나도 깜박했지. 너도 생각해봐라. 시연이 네가 진흙탕에 뒹굴었는지 몸이 엉망이 되어서 나타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틈이 어디 있었어?”

“그럼. 나중에라도 이야기했어야죠.”

“너... 너랑 잔다고 정신이 없었잖아. 어젯밤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내 말을 들은 시연이의 얼굴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휴. 정말.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아픈 것까지 잊을 정도로?”

“그럼!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정말 모를 거야.”

“또 속은 것 같아요.”

“뭐가 속아?”

“동수씨는 속이 여우라고 생각했는데, 엉큼한 너구리같아요.”

“뭐? 너구리? 지금 나보고 너구리를 닮았다는 거야?”

“동수씨.”

“응?”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제게 이야기해주세요.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요.”

“생기면?”

“평생 동수씨랑 안 잘 거예요.”

“헉! 그... 그럴 수는 없지. 절대 안 그럴게. 정말 안 그럴게.”

알몸으로 밖으로 나가겠다는 협박보다 더 무서웠다. 내가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자 그제야 기분이 완전히 풀렸는지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껴왔다. 오전에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오후에는 검사를 한다고 시간을 다 보냈더니 우리의 첫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 짐을 챙기고 주변을 산책하며 사진 몇 장을 찍으니 금방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차안의 분위기는 어제와는 많이 달랐다. 뭔가 훨씬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 작품 후기 ============================

여행 이야기를 잠깐 마무리 하고 회사이야기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감전이 되었으면 병원에 꼭 들러야 한다는 독자님의 코멘트를 보고 스토리를 추가했더니 이렇게 되었네요. 내일은 확실히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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