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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41화 (141/424)

00141  뿌린 대로 거두는 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Rrrr

“어떻게 하나같이 전화를 안 받지? 한 사람은 결번이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 젠장. 일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되냐.”

조향미, 김애림, 박도은, 이채향, 허홍주. 최근 몇 달간 제주 동지호텔 헬스클럽을 그만 둔 사람은 이렇게 다섯 명이다.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신상명세서에 나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연결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박도은이라는 사람의 전화번호는 결번이었다. 최소한 전화통화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려왔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보니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막막해졌다.

“다행히 신상명세서에 주소도 나와 있으니 이제는 직접 찾아가보는 수밖에 없겠네. 어디 보자. 두 명은 서귀포시, 한 명은 화순리, 한 명은 하모리, 한 명은 제주시. 아주 그냥 제 각각이네. 어휴. 내가 흥신소 직원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기가 찼다. 이 정도면 제주도 반 바퀴를 돌아야 했다. 그나마 제주도 동쪽에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고, 호텔을 그만 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서귀포시를 향해 차를 몰았다.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십니까? 동지호텔에서 나온 마동수라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 아무도 안 계십니까?”

서귀포시를 들른 다음, 화순리, 하모리를 거쳐 제주시까지 왔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결번이었던 박도은이라는 여자의 거주지인 화순리 집은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네 곳은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어, 그곳에 계속 살고 있는지 이사를 했는지조차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해서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다섯 사람이 호텔을 그만뒀는데 전화도 안 되고 만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좀 이상했다. 단순히 직장을 옮겼다면 뭍으로 나가지 않은 이상 이사를 갈 이유가 없다.

Rrrr

성과는 없었지만, 오늘 일을 보고하기 위해 조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팀장님도 이번 일이 꽤나 신경이 쓰였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이곳 상황부터 물으셨다.

“가야호텔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왜 그만둔 거래?”

“그게 좀 이상해요. 전화도 안 되고, 집에 찾아가도 사람이 없어요.”

“출근해서 그런 것 아냐?”

“지금까지 기다려봤는데 아무도 못 만났어요.”

“흠. 회식이라도 간 건가?”

“회식이요?”

“단체 회식을 할 수도 있잖아. 어디 한 곳에서 그 사람들을 다 빼갔으면 동시에 늦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다고 전화도 안 받아요?”

“요즘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안 받는 사람도 꽤 있어. 그러니까 내일 한 번 더 찾아가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일도 못 만나면 어쩌죠? 흥신소에라도 부탁을 해야 하나.”

“그건 내일 상황을 보고 이야기 하자고. 어쨌든 가야호텔에서 벌인 짓은 아니라니 마음이 좀 놓인다. 그럼 수고해, 마 대리.”

“네. 들어가세요.”

화요일에 출발했으니 출장 온지도 벌써 삼 일째다. 오늘은 면접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그 일을 도왔다. 명목상 나도 면접을 위해 내려왔기 때문에 얼굴은 비춰줘야 했다.

“마 대리님. 인사드리세요. 제주 호텔 헬스클럽 책임자세요.”

“안녕하십니까. 마케팅부의 마동수 대리라고 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면접장에 들어오자 정 주임이 인상 좋은 40대 남자를 소개해줬다. 어제는 그만 둔 직원들에 대해서 알아본다고 인사를 못했었다.

“이곳 팀장인 도지광입니다. 친구는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

“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면접 준비로 바쁘실 텐데, 저만 이렇게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와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제주도가 원래 자주 오기는 힘든 곳 아닙니까.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도지광 팀장이라는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정 주임을 살짝 불렀다.

“왜 그러세요, 마 대리님?”

“도지광 팀장님 말이야. 어떤 사람 같아?”

“도 팀장님요? 하루밖에 안 봤지만 좋으신 분 같아요.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점잖으시고. 이상한 점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

“그런데요?”

“저렇게 좋은 사람 밑에서 일하는데 왜 다섯 명이나 그만뒀나 싶어서 그래.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고 해도, 연봉을 두 배씩 올려주고 그러지는 않았을 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잖아.”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저도 마 대리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살짝 알아봤는데, 보통은 기존 연봉보다 3~500 정도 더 많이 주는 선에서 제의한다고 하더라고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지금 직장이 마음에 든다면 쉽게 옮길 결심하기도 힘든 금액이죠.”

정 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정말 능력이 있다면 천만 원을 줘도 데려올 테지만, 그러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아. 한 곳에서 많은 연봉을 제시해서 데려갔다면,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지. 그게 마음에 걸리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떤 이유?”

“강사들끼리의 갈등이나 그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패거리가 나뉘어서 갈등하다가 한쪽이 밀려난 거죠. 두 사람은 먼저 그만두고, 나머지 세 사람은 끝까지 버티다가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뒤늦게 그만둔 거죠.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어때요 제 생각이? 호호호.”

음모론을 좋아하는 조 팀장님과 친하게 지내더니 정 주임도 물이 들었나보다.

“권력을 쟁취해서 뭐하게? 권력이 생기면 회원들이 수업 등록을 많이 하나? 여긴 철저히 개인능력을 우선시 하는 곳이라고. 인기가 없는 수업은 금방 폐지되는데 권력다툼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있을 것 같아?”

“그거야 모르죠. 여자들끼리는 사소한 말다툼 하나로 철천지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요. 집단으로 따돌리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요.”

“그거야 집단이 한두 명을 괴롭히는 거고. 무려 다섯 명이잖아. 다른 사람들이 따돌리든 말든 자기네들끼리만 잘 지내면 되는 건데, 굳이 직장까지 그만 둬?”

“그런가? 참. 가야호텔 쪽은 어떻게 됐어요?”

“그쪽은 아닌 것 같아.”

“그럼요?”

“그걸 알면 내가 이렇게 정 주임의 음모론을 듣고 앉아있지는 않았겠지. 확인되면 알려줄 테니까 기다리세요. 어서 면접 준비나 계속합시다. 곧 있으면 지원자들 올 시간이다.”

호텔에서는 우리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더니, 부지배인까지 참석해서 면접을 지켜보는 성의를 보였다. 서울과 인천지역 인원을 뽑을 때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의외라고 생각하고 반겼는데, 그 생각은 금방 난감함으로 변했다.

“남자 다룰 줄 알아요?”

“그 정도 외모로 어떻게 우리 호텔에 지원할 생각을 했어요?”

“아버님이 초졸 이시네. 가정교육은 제대로 받았어요?”

“여기 보면 어머님하고만 살았다고 하는데, 그럼 이혼한건가요? 왜 이혼했어요?”

“나이가 서른인데, 결혼이나 하지 왜 여기 왔어요?”

부지배인은 여성만 들어오면 압박면접이 아니라 이런 식의 수준이하의 질문을 하면서 지원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성추행적 발언, 성차별 발언, 인격모독, 학벌무시, 외모비하 등등. 우리가 압박면접을 준비하면서 정말 조심했던 부분만 골라서 질문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다.

일부러 망치려고 작정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부지배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인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호텔 부지배인이면 부장급이라 나와 김 대리, 정 주임이 눈치만 보고 있자, 함께 온 석나련 실장님이 항의를 했다. 부지배인은 내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뻔뻔하게 나왔고, 그 모습에 화가 난 석 실장님은 ‘윤 스포츠센터는 이번 일에서 빠지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말았다. 그녀의 기세에 당황한 부지배인이 면접에서 빠지고 나서야 겨우 면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 면접은 모두 끝났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무리하고, 나는 헬스클럽을 그만 둔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호텔을 나섰다. 그러나 서귀포와 제주시를 계속 오가며 아무리 문을 두들기고 전화를 해봐도 만날 수가 없었다.

“어휴. 어떻게 한 사람도 만날 수가 없냐. 단체로 무슨 이민을 간 것도 아닐 테고. 이틀 동안 완전히 뻘짓을 했네. 이젠 정말 흥신소에 의뢰라도 해야 하나.”

허탈한 마음에 차 안에 앉아 담배나 피우면서 30분 이상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채향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집에 불이 켜졌다. 내가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대답이 없었던 집이었다. 불이 켜졌다는 것은 안에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다. 당장 올라가서 다시 문을 두들길까 하다가 잠깐만 지켜보기로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사는 원룸의 입구에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나타났다. 어둡기도 하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확신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찾던 이채향 바로 그녀 같았다. 나는 자동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채향씨?”

“누... 누구시죠?”

밤늦은 시간에 덩치 큰 남자가 다가오자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동지호텔에서 나온 마동수라고 합니다. 안에 계시면서 왜 그렇게 대답이 없으셨어요?”

“됐습니다. 왜 사람을 귀찮게 하세요. 그쪽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그만 돌아가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만 이야기 나눕시다. 네?”

차갑게 돌아서는 그녀의 팔을 황급히 잡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꺄악! 이... 이거 놔요. 흐흑.”

내가 팔을 잡는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집으로 들어 가버렸다.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 그녀를 잡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뭐... 뭐야. 이게.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무슨 치한도 아니고, 왜 저렇게 놀라는 거야?”

뭔가 이상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그녀의 반응은 보통사람과 너무도 달랐다. 마치 무슨 큰 트라우마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면접장을 망친 부지배인이라는 작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추행? 그따위 질문을 서슴지 않게 하는 작자라면 성추행도 충분히 하고 남을 인간이다. 그런데 성추행이라고 하기에는 반응이 너무 과격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성추행을 견디지 못하고 다섯 명이나 그만 둔단 말인가? 사달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익명으로 회사에 신고를 하거나, 경찰 또는 여성부에 신고해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성추행은 아니다. 그렇다면 더 큰? 휴.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사람 좋은 얼굴의 도 팀장도 마음에 걸렸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직원이 다섯 명이나 그만뒀는데, 정말 몰랐을까? 알고 있었다면, 그냥 모른 척 한 것일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닐까? 자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건 함부로 판단하기 너무 어려운 문제다.

Rrrr

우선 조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팀장님도 알아야 한다.

“그래. 사람은 만나봤어?”

“네. 한 명 만나봤는데요.”

“어떻게 됐어? 뭐래? 왜 그만 뒀데?”

팀장님은 마음이 급하셨는지 내가 말을 제대로 가기도 전에 질문을 퍼부으셨다.

“저기 팀장님.”

“응. 왜?”

“이게 말입니다. 잘못하면 조용히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이야? 천천히 말해봐.”

“그게 말입니다.”

나는 방금 전에 이채향씨와 만났던 일을 팀장님에게 그대로 전했다.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내 말을 듣고 있던 팀장님의 목소리가 점점 굳어졌다.

“아직 확인 된 건 없잖아. 함부로 단정 짓지 마.”

“그래도 의심은 가잖아요.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여기서 그냥 덮을까요? 아님 좀 더 알아볼까요?”

덮을 생각은 없었지만, 우선 팀장님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뭐? 너 이 새끼. 지금 사람 떠 보는 거야? 뭐야? 장난해? 덮긴 뭘 덮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조용히 알아보자는 거 아냐!”

“하하하.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요.”

“혹시나고 나발이고. 동수 너 이 자식 한 번만 더 사람 간보고 그래 봐.”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팀장님. 업무평가가 낮아서 그만 둔 사람들 신상명세서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그쪽도 한 번 파보고 싶거든요.”

“그래. 알았어. 내일 아침에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조심해라. 정말 부지배인이라는 작자의 짓이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야.”

“네. 그만 주무세요. 저도 하루 종일 일했더니 피곤해요.”

알아보겠다고 말은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선 내일 팀장님이 자료를 보내면 그걸 보고 방법을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 작품 후기 ============================

치통 때문에 고생하다보니 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내일은 치과부터 먼저 가야겠습니다. 솔직히 무섭습니다. 치과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곳이네요 ㅎㅎ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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