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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43화 (143/424)

00143  뿌린 대로 거두는 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 팀장님이 보내주신 계약해지 직원들에 대한 신상명세서와 업무평가 기록을 노트북으로 확인했다. 그 명단 중 두 명의 업무평가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객관적 평가, 그러니까 근태준수(결근, 지각, 조퇴, 외출 등의 발생횟수), 사내진행 행사 및 교육 참여정도(봉사활동, 월 중 테마 활동), 복장규정 준수여부(두발, 유니폼 착용, 청결상태, 명찰패용), 근무자세(근무시간 취침, 근무 중 자리이탈, 외출시간 준수)도 양호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헬스클럽 회원들의 참여도가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곳 책임자인 도 팀장의 주관적 평가항목인 업무지시 이행정도, 지휘‧통솔력, 협동심, 책임감 등의 항목에서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어느 사회조직이나 그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는 미꾸라지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 내에서 미심쩍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바라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체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 되는 헬스클럽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떤 몰지각한 행동을 해야 저런 최악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도 팀장이 평가했다는 항목 중에서 특히 지휘‧통솔력과 협동심이 과연 이들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가치수단이 될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큰 조직이 있으면 당연히 그곳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서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부서들은 맡고 있는 직무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일괄적인 잣대로 모두를 평가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정말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주관적 평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곳의 시스템은 문제가 많아 보였다.

출장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석 팀장님과 정 주임, 정화는 오후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갔다. 나와 김 대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인근의 펜션을 빌려 이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 대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그렇죠? 우리 팀의 경우는 주관적이라고 해도 과장, 팀장, 부장 이렇게 세 단계에 걸쳐 직원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헬스클럽은 우리 팀보다 인원도 두 배 이상 많으면서도 평가하는 사람이 도 팀장 하나뿐입니다. 아마 다른 지역에 있는 우리 호텔도 이곳과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팀장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몰아 준 꼴이 되었죠.”

“그러네요. 그동안 우리 동지호텔의 수준에 비해 헬스클럽에 대한 평가가 낮았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네요.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팀장에게 잘못보이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누가 열심히 하려고 하겠어요. 몇 달 동안 D&Y휘트니스 클럽에 대한 준비를 하면서 이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우리 팀은 그동안 헬스클럽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너무 외부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단순히 우리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윤 스포츠센터의 높은 노하우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을 조사하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어쩌면 불합리함이 이것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출장이 끝나는 대로 서울 올라가서 내부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외부 치장만 신경 쓰느라, 안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은 몰랐네요. 우리가 회사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서 별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 많은 것 같아요.”

“그전에 당장 닥친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죠. 마 대리님이 이상하다고 했던 두 사람은 제가 연락을 해볼게요.”

김 대리는 휴대폰을 꺼내 신상명세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근조근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어투로 상대를 설득했다.

“...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연숙씨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기에는 객관적 지표가 훌륭해서요. 네. 억울하신 마음 이해합니다. 그래서 본사에서 일하는 저희가 확인을 위해 이렇게 제주도까지 내려온 겁니다. 네. 우리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김연숙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뇨. 그냥 만나서 이야기만 조금 나눠주시면 됩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사실 확인만 하면 되니까요. 아, 낮 시간은 곤란하고 저녁에나 가능하시다고요? 그럼 서귀포시에서 저녁 7시에 뵙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나 주겠답니까?”

“네. 한 명은 부산으로 직장을 옮겨서 곤란하다고 하고 했지만, 다행히 김연숙씨는 내일 저녁 시간에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당장 만나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그럼 내일 김연숙씨를 만나 확인하고, 심증에 확신이 생기면 이채향씨를 만나야겠군요. 휴, 사람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번 주말은 다 보내겠네요.”

“어쩔 수 없죠. 우리 호텔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동지호텔은 꼴도 보기 싫다고 그랬는데,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죠.”

“그렇게 말을 해요? 와!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했나보네요.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저녁 드셔야죠? 나나기도 번거로운데, 오늘은 그냥 라면으로 간단히 요기만 하는 건 어떨까요?”

급하게 숙소를 잡느라 먹거리를 제대로 준비 못했다. 그렇다고 관광지인 제주도에서 우리 두 사람만 나가서 저녁을 먹는 것도 좀 껄끄러웠다. 단순히 직장동료라면 모를까, 친구인 현우의 애인이기도 하니 이상하게 행동이 조심스럽다.

“저도 그게 편할 것 같네요. 라면은 제가 끓일게요.”

“아닙니다. 고작 라면인데요, 뭐. 현우가 김 대리님에게 라면을 끓이게 했다는 사실을 알면 저를 죽이려 들 겁니다. 하하하. 그냥 앉아 계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김 대리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오호. 이 여자가 부끄러워할 줄도 다 알다니 오늘 참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 나는 펜션에 딸린 작은 매점에 가서 라면과 꼬마 김치를 산 다음 주방에 들어가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얹었다.

똑똑.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보며 라면봉지를 뜯으려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김 대리는 씻으러 갔는지 거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싶어 문을 열었는데, 현우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눈앞에 서 있었다.

“맙소사. 정말 왔네.”

“안녕. 친구.”

“문자로 숙소 이름 알려달라고 해서 보내기는 했는데, 설마 했다. 오늘 금요일 아냐?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반차내고 왔어.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내니 엄청 눈치 보이더라. 하하하.”

“이제 갓 대리 단 놈이 잘하는 짓이다. 그러다 회사에서 찍혀, 임마.”

“괜찮아. 내가 그동안 정당한 월차도 한 번 안 쓰고 열심히 일만 한 사람이다.”

“지랄을 해요. 그게 네가 성실해서 그런 거냐? 월차 안가면 돈이 더 나오니, 짠돌이 기질이 발동한 거지.”

“역시 네 놈은 너무 위험한 놈이야. 나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흐흐.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가스레인지에 뭐 올려놨냐?”

“아, 라면 끓인다고 물 얹어놓은 걸 깜빡했다.”

현우의 말을 듣고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둔 냄비의 뚜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라면? 너 이 자식, 설마 우리 수현씨에게 라면을 먹이려고 했던 거야? 너는 어쩜 이렇게 사람이 정이 없냐! 비켜. 내가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뒀지.”

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배낭을 열어 먹거리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뭘 그렇게 많이 사왔냐?”

“그냥 이것저것. 쌀도 있고, 찌개거리도 있고. 그리고 이건 오늘 특별메뉴.”

“특별메뉴? 그게 뭔데?”

“제주도에 왔으면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바로 이게 흑돼지 오겹살과 항정살이라는 거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것부터 사오느라 늦은 거야. 주인장께서는 흑돼지 구워 먹을 준비나 하시게나. 밥과 찌개는 내가 얼른 만들 테니까.”

정말 지극정성이다. 그래도 좀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짠돌이 기질이 있다는 것 말고도 현우와 나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10년에 가까운 자취생활이다.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안다는 소린데, 사실 이 녀석의 요리솜씨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서 그런지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그야 말로 예술이다. 특히 고향에서 현우 어머님이 보내주신 묵은지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숭숭 썰어 넣은 김치찌개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재료의 차이인가 싶어 나도 녀석이 쓰는 된장과 김치를 얻어 만들어 봤지만 도저히 같은 맛을 낼 수 없었다.

“마 대리님. 라면은 어쩌고 그냥 앉아 계세요?”

간단하게 씻고 왔는지 편한 복장으로 방에서 나온 김 대리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로 주방을 가리켰다. 주방에는 현우가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그녀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혀... 현우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

“수현씨! 어쩐 일이긴요. 저도 제주도에 놀러왔는데, 마침 동수와 수현씨가 펜션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 뭐에요. 하하하. 자세한 이야기는 밥 먹으면서 하고, 잠시만 기다려요. 장현우표 된장찌개가 금방 완성이 됩니다.”

현우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자신은 그냥 놀러왔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 다시 요리에 몰두했다.

“저 말이 사실인가요, 마 대리님?”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이미 저 녀석은 여기 왔고, 지금 와서 다른 곳으로 쫓아낼 수는 없잖아요. 그냥 편안하게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 그래도. 현우씨가 요리하는데 어떻게 그냥 앉아있어요?”

“아직 현우가 만든 요리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나 봐요?”

“네... 밖에서만 만나서요.”

우와! 정확히는 모르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고 알고 있다. 나야 시연이가 어리니까 뜸을 들였다고 해도, 현우와 김 대리는 나이도 좀 있으니 상황이 다르다. 그런데 아직 서로의 집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니, 진도가 좀 느린 것 같았다. 현우 녀석도 참 고생한다.

“그럼 기다려보세요. 하는 짓과는 달리 요리솜씨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잠깐만 있으면 기똥찬 된장찌개가 나올 겁니다. 김 대리님을 위해서 제주 흑돼지 오겹살과 항정살까지 사왔다고 하니, 덕분에 저까지 포식하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죄... 죄송해요.”

“뭐가요?”

“일하는 곳에까지 현우씨가 찾아와서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저 녀석을 안지가 벌써 10년입니다. 김 대리님 보다 제가 인연을 먼저 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죄송하려면 제가 죄송하죠. 그리고 저는 김 대리님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네?”

“10년 동안 만나면서 요즘이 제일 행복해보이거든요. 친구 입장에서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죠.”

예전에 다른 여자를 사귀었을 때도 현우는 행복해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유달리 행복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 동기들끼리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바로 친구 애인 앞에서는 항상 친구를 추켜세워 주는 것이다. 과거 농담이랍시고 ‘어, 전에 봤던 그 분이 아니네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녀석 때문에 그 커플이 깨진 다음부터 생긴 하나의 약속 같은 것이다.

내 말을 들은 김 대리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서는 요리하는 현우의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내며 녀석을 쫓아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흐흐. 현우야. 난 오늘 된장찌개와 흑돼지 값은 다 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고기 구워먹을 준비를 했다. 펜션은 보통 손님들을 위해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숯불 바비큐그릴을 마련해 둔다. 관리인에게 가 그것을 빌린 다음, 방과 연결된 테라스에 설치하고 불을 지폈다.

“오, 맛있는 흑돼지를 프라이팬에 구워야하나 싶어 안타까웠는데 다행이네.”

“요즘은 펜션에 가면 다 있어. MT가는 민박집에도 있을 걸? 우리 대학생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래? 우리가 처음 MT갔을 적에는 프라이팬으로 고기 구울 때 나오는 기름 때문에 고기를 굽는 건지 튀기는 건지 헷갈렸는데... 아무튼 잘 됐다. 식탁도 바로 붙어 있으니 밥이랑 된장찌개랑 야채는 이리로 가져올게.”

오랜만에 먹어보는, 현우가 만든, 구수한 된장찌개는 역시 맛있었다. 녀석이 사온 두툼한 두께의 오겹살과 항정살도 흑돼지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덕분에 김 대리와 둘이 있었으면 서먹하게 보냈을 저녁이 즐거워졌다. 내일이면 어떤 문제가 생겨 나를 곤란하게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고기 때문인지 출장이 아니라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었습니다. 잇몸살이 장난이 아니네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치과 치료는 앞으로 몇 번 더 가야 한답니다. 그리고 신경치료를 마무리하면 치아를 덮어씌워야 한다는 군요. 다행히 스케일링은 보험적용이 돼서 저렴하게 했지만, 그래도 50만원 이상은 깨질 것 같네요. ㅠ 역시 치과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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