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4 뿌린 대로 거두는 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펜션 안 수현의 숙소. (부제 : 손만 잡을게요.)
밤 11시.
현우를 펜션에서 만난 수현은 생각이 많아졌다. 대체 왜 여기까지 왔을까? 혹시 이 남자가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일 때문에 온 출장인데,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며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반갑고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밥을 준비하는 그 모습에 ‘내가 참 사랑 받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수의 장담대로 현우가 만든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직접 고기를 구워가며 수현이 먹기 좋게끔 알맞은 크기로 잘라주는 그의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동수만 없었다면, 그의 품에 안겨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야, 인마. 정말 나 안 재워줄 거야?”
“그래. 안 재워줄 거다. 나, 남자랑 자는 취미 없거든.”
현우와 달빛 아래서 짧은 데이트를 나누고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거실에서 두 남자가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보면 꼭 싸우는 것 같지만 저들이 저렇게 애정표현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 부러운 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사한 놈. 내가 널 위해 된장찌개도 끓이고, 흑돼지도 사왔는데 이럴 수 있어?”
“날 위해? 정말 날 위해서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솔직히 날 위해 준비한 건 아니잖아. 너 같은 짠돌이가 반차내고 비행기로 제주도까지 온 게 날 위해서라고? 평소 고기는 질보다 양이라고 주장하던 네 녀석이 비싼 흑돼지를 사온 게 나 때문이라고? 뻔뻔하다, 뻔뻔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렇지만 너도 먹었잖아. 그럼 된 거지.”
“대신 공짜로 재워주잖아. 여기 이불 있으니까 거실에서 자. 거실도 보일러 들어오거든. 약간 외풍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 11월이잖아. 괜찮을 거야. 그럼 난 잔다.”
쾅쾅.
“야. 치사한 놈아. 문 안 열어? 어휴. 저걸 친구라고. 나쁜 놈. 에잇, 모르겠다. 잠이나 자야지.”
아무리 제주도라고 해도 11월 밤이면 춥다. 두 사람의 투덕거리는 모습이 정겹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수현은 현우를 쫓아낸 동수가 얄미웠다. 침대에서 같이 자기가 불편하면 바닥에라도 재우면 될 텐데 친구끼리 어쩜 저렇게 야박하게 굴까 싶었다. 예전처럼 동수를 다시 괴롭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벽 바로 너머, 문만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현우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왠지 설렜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왔다. 그리고 따뜻한 자신의 방과는 달리 추위에 떨며 자고 있을 그가 걱정도 되었다.
밤 12시.
한참을 뒤척이다가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넘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이대로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자꾸 해맑게 웃던 현우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수현은 자고 있는 현우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자신의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수... 수현씨.”
문을 여는 순간 잠을 뒤척이며 그녀의 방문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수현에게 들켰다고 생각한 현우는 당황한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놀라기는 수현도 마찬가지였다.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과 눈이 마주친 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름을 불렀다. 동수가 그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된 그녀는, 다급하게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모션을 취했다.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조금 전까지 요도 없이 딱딱한 바닥에 얇은 담요만 덮고 누워 있던 현우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수현이 용기를 냈다. 그녀는 조용히 손짓을 현우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자신의 방문을 닫았다.
“수... 수현씨.”
“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거실에서 자는 모습이 너무 안 돼 보여서 그런 거니까. 제 방에도 이불은 있는데 왜 딱딱한 바닥에 그냥 자요. 바닥에 이불 깔아줄 테니까 밖에 있는 담요 가지고 와서 여기서 자요.”
자신을 헤프게 보지는 않을까, 동수가 있는 곳에서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을까. 이런 상념이 잠깐 오갔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우의 처량한 모습이 마음에 걸려, 자기 혼자 따뜻한 방에서 자면,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거실로 나가 담요를 가지고 들어오는 그를 보자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1시.
“수현씨. 자요?”
“아뇨. 이상하게 잠이 안 오네요.”
수현은 침대 위에, 현우는 바닥에 누워 참을 청해봤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한 공간에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잠이 들지 못하고 새벽 1시가 넘는 시간까지 뒤척였다.
“저는 정말 잠이 안 와요. 저기 수현씨.”
“네?”
“나를 엉큼한 놈이라고 욕해도 좋아요. 그... 그렇지만 수현씨 손을 잡고 옆에 누우면 잠이 잘 올 것 같아요.”
현우는 당장이라도 밖으로 쫓겨날까봐 눈을 질끈 감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잠깐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수현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침대를 바라봤다. 침대 오른쪽 구석에 누워 한쪽 공간을 만들어 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히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새벽 2시
새벽 2시가 넘었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 누워서도 잠이 들지 못한 두 사람이었는데, 손까지 잡고 침대에 함께 옆에 누워 상대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아찔한 상황에서 잠이 온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행위다.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의 집만 가지 않았을 뿐이지 현우의 차안에서 키스 이상의 스킨십도 조심스럽게 나눴던 사이였다.
바닷가에 위치한 펜션이라서 그런지 제주도의 ‘휘잉’하는 밤바람 소리와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제주 밤바다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두 사람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잠을 설치던 수현이 현우쪽으로 돌아누웠다. 감았던 눈을 뜨는 순간 그와 그녀는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흡...”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키스를 나누었다. 제대하는 것까지 기다렸던 예전 남자친구가 어린 신입생과 바람이 나서 그녀를 떠났던 그때 이후 정말 처음으로 수현의 몸이 뜨겁게 변했다. 아니, 그동안 억눌러왔던 자신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키스를 시작했다.
“헉... 현우씨.”
키스를 나누던 현우의 손은, 손만 잡겠다던 그의 다짐과는 달리, 수현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그녀의 몸이 활활 달아올랐다. 입고 있던 두 사람의 옷이 하나둘 씩 침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우의 사각팬티와 수현의 토끼무늬 분홍 팬티가 침대 밖으로 던져졌다.
창가를 비추는 밝은 보름달이 수현의 아름다운 나신에 반사되었다. 그녀의 몸에 반사된 보름달 달빛은 현우의 늑대본성을 일깨웠다.
“흐윽. 사랑해요, 현우씨”
“헉. 헉. 저도 사랑해요, 수현씨.”
“아... 흐윽...”
두 사람은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침대 아래서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다. 현우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고, 수현의 교성 또한 점점 커져갔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닮은 그녀의 흐느끼는 듯한 신음소리는 방안을 벗어나 펜션 전체에 울려 퍼졌다.
◆ 펜션 안 동수의 숙소.
이상한 소리에 동수가 잠을 깼다.
“음. 이게 무슨 소리야? 꼭 처녀귀신이 우는 소리 같잖아. 에이 씨! 무서워 죽겠네. 근처에 고양이가 살고 있나? 아, 정말. 고양이 새끼가 잠도 없나. 미친 것도 아니고 한밤중에 왜 이렇게 요란을 떨어. 한참 신나게 시연이 가슴을 만지고 있는데. 에잇, 짜증나.”
요상한 소음에 짜증이 난 동수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 시연이의 방.
무슨 꿈을 꿨는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시연이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상기된 얼굴로 일어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했다.
“뭐... 뭐야. 꿈이었어? 휴. 내가 왜 이렇게 엉큼하게 변했지? 우리 동수씨가 내 가슴을 만지는 꿈을 다 꾸고. 내가 이런 꿈을 꾼다는 사실을 동수씨가 알면 나를 얼마나 이상한 여자로 생각하겠어. 히잉. 똥수야. 이건 누나와 너 둘만의 비밀이다. 알았지? 그나저나 현우 오라버니는 어떻게 혼자 제주도에 내려 가냐. 치사하다, 치사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똥수야?”
시연이는 가만히 누워 있는 곰 인형의 고개를 억지로 움직여 끄덕이게 만들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어제 이상한 고양이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김연숙이라는 여자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저녁이라 크게 바쁜 일은 없었다.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처량하고 자고 있을 현우가 생각이 나 거실로 나갔다.
“일어났냐?”
“어, 그래. 너는 일찍 일어났네? 김 대리님도 잘 주무셨어요?”
“네. 마 대리님.”
내 딴에는 현우가 걱정돼서 밖으로 나갔더니 녀석과 김 대리는 벌써부터 일어나 아침을 만든다고 분주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좀 이상했다. 딱히 설명하기는 힘든데, 어제보다 묘하게 친숙해보였다. 특히 김 대리의 표정이 밝아 보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만큼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근데 현우야.”
“응?”
“평소보다 눈 주변이 좀 퀭하다. 너도 어제 잠을 설쳤나보네. 미안하다. 오늘은 특별히 거실 말고 내 방에서 재워준다.”
“아... 아냐. 됐어! 나... 나는 거실이 좋더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얼씨구, 내 제안을 다 거절하고. 이 녀석이 이제 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걸까?
“그래? 네가 그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별일이네. 어제 밤에만 해도 방안에 들여보내달라고 난리법석을 떨던 녀석이?”
“그냥. 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아까 그 말은 무슨 소리야?”
“뭐?”
“나도 잠을 설쳤냐며? 그럼 너도 잠을 설쳤어?”
“너는 어젯밤에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아... 아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던데.”
“가는귀가 먹었나? 어젯밤에 꽤 시끄러웠어. 웬 정신 나간 고양이 한 마리가 오밤중에 우는데, 꼭 미친년 울음소리 비슷했다니까. 정말 기분 나쁘게 요상한 울음 소리였어. 김 대리님은 어제 못 들으셨어요?”
“네? 히끅. 아뇨. 히끅.”
“수현씨. 괜찮아요? 여기 물 있어요. 이거라도 마셔보세요.”
내 이야기를 듣던 김 대리가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고, 옆에 있던 현우는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물을 건넸다.
“응? 미친년 울음소리라고 해서 무서우셨나? 왜 갑자기 딸꾹질을...”
“너 인마! 우리 수현씨도 있는데 표현을 해도 미친년 울음소리가 뭐야. 좀 고상하게 표현할 수 없어?”
“미친 놈. 왜 성질을 내고 그래. 진짜라니까. 정말 미친년 울음소리 같았어. ‘흐르응, 흐르응’ 이런 소리였나? 아무튼 ‘흐윽’하는 여자울음소리와 ‘갸르릉’거리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절묘하게 섞였는데, 정말 무시무시했다니까.”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징그럽게 왜 소리까지 흉내 내고 그래. 너 때문에 우리 수현씨 딸꾹질이 더 심해지잖아. 괜찮아요, 수현씨?”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내 모습에 김 대리는 표정까지 파리해지면서 더욱 심하게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현우가 옆에서 등을 두들겨줬지만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헐. 뭐야? 김 대리님,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거야? 별일이네. 흐르응, 흐르응. 이게 무섭나?”
“그만하라고 이 자식아.”
“알았어, 인마. 짜식. 까칠하게 굴기는. 흐르응, 흐르응.”
김 대리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신입시절 그녀에게 구박받던 생각이 떠올라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이 자식이 정말.”
“하하하. 미안, 미안. 야, 나는 방에 있을 테니까 밥 다되면 불러라.”
내 장난에 현우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하여간 까칠한 녀석이다. 고작 미친년을 닮은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고 친구를 잡아먹을 표정을 짓다니! 나는 얼른 사과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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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조언을 해주신 모든 독자님~ 감사합니다. 컨디션이 다시 올라 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