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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45화 (145/424)

00145  뿌린 대로 거두는 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졌다. 나와 김 대리는 시무룩한 표정의 현우를 내버려두고, 김연숙씨와 만나기로 한 서귀포시로 향했다.

“김연숙씨 되시죠?”

“네. 제가 김연숙이에요.”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동지그룹 마케팅부의 김수현 대리라고 합니다. 이쪽은 같은 팀의 마동수 대리입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동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조사를 위해 일부러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오시고, 고생이 많으세요.”

까칠하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김연숙씨는 의외로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고생은요. 당연히 해야 할일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몇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어차피 그러려고 나온 자리니까요. 저야 이미 그만뒀다고 하지만,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이곳에 오기 전에 김연숙씨 업무평가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객관적 지표는 매우 훌륭하더군요.”

“그거야 당연하겠죠. 동지호텔에 3년을 다니면서 결근은 물론이고 지각이나 조퇴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 자랑 같지만, 회원님들의 반응도 꽤 좋은 편이었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이렇게 총 12년간 개근을 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들이다. 정말 몸이 아파서 수업을 빠져 개근상을 못 받거나, 지각을 밥 먹듯이 해도 부모의 치맛바람으로 조용히 무마해서 개근상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12년 동안 개근상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3년 간 결근, 지각, 조퇴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김연숙씨가 그만큼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는 의미다. 예외도 있겠지만 근면함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직장동료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별로 없다.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동료 유형은 대부분 암체 같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네. 기록에도 그렇게 나오네요. 3년 동안 그렇게 성실하게 직장생활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주관적 평가에서는 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으셨습니다. 출결사항에 문제가 없다는 것만 봐도 책임감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볼 수 있는데, 책임감 항목의 점수도 매우 낮아요.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불쾌하시겠지만,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지휘‧통솔, 협동심 점수가 매우 낮은데,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셨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제각각이다 보니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서로 터부시하며 불편하게 지낸 사람들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억울한 거구요. 나는 성실하게 생활했고 회원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계약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으니 저로서도 황당했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냈어요.’라는 말이 아니라서 신뢰감이 갔다.

“그런 평가를 도지광 팀장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계시죠?”

“네.

“도지광 팀장님과 크게 사이가 벌어질 만한 일이 있으셨나요?”

“아뇨. 제가 애교가 많은 성격은 아니라서 데면데면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서로 말다툼을 하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어요. 단지 회식을 할 때 오래 남으라는 말씀은 몇 번 하셨어요.”

“회식이요?”

“네.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서 식사가 있는 1차만 참석하거나, 2차를 간다고 해도 오래 있지는 않는 편이었어요. 팀원끼리 함께 모이는 자리인데, 좀 더 남아있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 하시곤 했어요.”

“도 팀장님이 그 일로 화를 낸 적은 없고요?”

“네. 그냥 점잖게 말씀하셔서, 저도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죠. 그런 날은 저도 술자리를 가지는 2차까지 따라가기도 했어요.”

“억지로 술을 강요하거나 그런 일은요?”

“아뇨. 그냥 점잖게 행동하세요. 함께 일을 하면서 그분이 화를 내는 것을 본적이 없어요. 괜찮은 직장상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죠. 처음에는 제가 많이 부족했나 싶어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돌출행동을 한 적도, 동료나 회원과 트러블을 일으킨 적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업무평가 점수를 줘서 도 팀장을 의심했는데, 항상 점잖았다는 김연숙씨의 말을 들으니 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혹시 편철수 부지배인님을 알고 계십니까?”

“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요.”

“혹시 그분이 팀 회식에 참여한 적은 없나요?”

“글쎄요. 음. 몇 번 있기는 했어요.”

“그래요?”

“네. 그런데 참석을 했다기보다는 가끔 오셔서 회식비만 결제하고 돌아가셨어요.”

“불편한 행동을 하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까?”

“불편한 행동이요? 어떤... 아, 성희롱 같은 행동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흠. 열심히 하라고 어깨나 등을 두들겨 주는 정도? 불쾌하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불편함을 느끼는 다른 분들은 계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회원을 지도하는 것이다 보니 신체접촉이 많은 편이에요. 그런 사소한 터치까지 신경 쓰면 이런 직업 못 가지죠. 부지배인님 정도의 행동은 애교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회원님들도 계신걸요.”

점점 더 오리무중이다. 그럼 면접장에서 한 행동은 뭘까? 정말 우리 팀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건가? 아니면 압박면접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실수로 그런 걸까? 점점 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혹시 김연숙씨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은 아닐까하는 엉뚱한 의심까지 들었다.

“그럼 도 팀장이 왜 김연숙씨에게 낮은 업무평가 점수를 줬을까요? 단지 회식자리에서 오래 남아있지 않는다고 그런 행동을 할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도 잘 한 번 생각해보세요. 도 팀장님에게 뭔가 실수를 했다든가, 아니면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항의를 했다든가. 뭐, 그런 일은 없었습니까?”

“실수라... 그런 건 없었는데. 아, 항의는 한 번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항의라기보다는 상의에 가까웠지만요.”

“어떤 상의였는데요?”

“저와 친하게 지낸 동료 중에 이채향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채향씨요?”

그만 둔 다섯 명의 직원 중 내가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이 이채향씨다. 뭔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어 더욱 귀를 기울였다.

“네. 저랑 언니 동생하면서 지냈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며칠 동안 호텔에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어요. 걱정이 돼서 전화도 해보고, 집에도 찾아갔는데 만나질 못했죠.”

“그런데요?”

“실종신고라도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며칠 후에 어디 아픈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다시 나왔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조금 아파서 병원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죠.”

“이상한 점은 없었고요?”

“항상 밝은 사람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얼굴이 좀 어두워졌어요. 잘 웃지도 않고.”

“그래서 도 팀장님에게 말씀을 드린 겁니까?”

“아뇨. 몸이 좋지 않다고 하길래 그냥 넘어갔죠. 그런데 한 달 간격으로 비슷한 일이 두 번이나 더 있었어요.”

“누구, 누구였습니까?”

“도은이하고 홍주였어요.”

이거다. 이채향, 박도은, 허홍주. 다섯 명 중에 세 사람이 같은 일을 겪었다면 확실히 뭔가 있다는 이야기다.

“성도 좀 알려주시겠어요?”

“박도은하고 허홍주에요.”

“다른 사람들은 없었습니까?”

“글쎄요. 헬스클럽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오픈을 하니까 제가 알지 못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죠. 아무튼, 세 명이나 비슷한 일이 있으니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을 하다가 도 팀장님에게 이야기를 했죠.”

“당사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는 않고요?”

“물어 봤는데, 그냥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리더라고요. 그래도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아서 혹시 회원님 중 누군가가 심한 장난을 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죠. 가끔 보면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하시는 회원들이 계시거든요. 이대로 두면 계속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것 같아서 도 팀장님에게 상의를 한 거고요.”

“그래서 도 팀장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제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던 걸요. 자신이 확실히 알아보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모르죠. 그러고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D&Y휘트니스 클럽으로 명칭을 변경한다면서 부산을 떨었고, 아시는 것처럼 저는 얼마 가지 못하고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으니까요.”

안개 속처럼 뿌옇던 머리가 ‘확’하고 맑아졌다. 김연숙씨가 왜 그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도 팀장이 혼자 벌인 짓인지, 부지배인의 짓인지, 아니면 그녀의 추측처럼 VIP회원 중 누군가의 짓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도 팀장이 이번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김연숙씨가 뭔가 눈치를 채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자, 헬스클럽을 새 단장한다는 핑계로 그녀를 내친 것이다.

김연숙씨는 단순히 심한 성추행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채향씨의 반응을 봤을 때는 성추행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째, 조향미씨와 김애림씨도 연관이 되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그만뒀고, 연락이 되지 않는 점을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운동이나 무용을 했던 사람들이라서 보통 여자들보다는 강단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고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고소는커녕 숨기에 바쁜 그녀들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호텔에 나왔을까? 그리고 왜 결국 호텔을 그만뒀을까? 두 번째 의문과 함께 생각해보면 협박이나 회유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협박에 종류에 따라서는 사건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도 있다.

넷째, 단지 다섯 명 뿐일까? 혹시 헬스클럽 직원뿐만 아니라 호텔의 다른 직원들 중에는 피해자가 없을까? 이 문제는 조 팀장님을 통해 인사과에 다시 문의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 대리와 나는 김연숙씨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는 나중에 우리가 따로 연락을 할 때까지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이제 어쩌실 건가요, 마 대리님?”

“정황은 어느 정도 확실해졌으니, 이제 이채향씨를 설득해봐야죠.”

“지금 바로 설득하러 가시죠?”

“벌써 9시가 넘었는데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마 대리님은 더 늦은 시간에 만났다면서요? 아무래도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충격이 컸으면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꾸물거리는 동안 다른 피해자가 또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러네요.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시죠.”

이채향씨의 집도 서귀포였기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채향씨에 대한 설득은 전적으로 김 대리가 맡기로 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말씀하실 때, 동지호텔이 아니라 동지그룹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세요. 조사차 나왔고, 동지호텔과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줘야 될 겁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우리 호텔에 대해서도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염려마세요. 경찰에 신고하자는 설득은 몰라도,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확인하고 올게요.”

나는 차 안에 앉아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채향씨를 설득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채향씨를 설득한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처음에는 당장 닥친 일을 알아보기 위해 정신없었지만, 대강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신고하겠다면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어휴, 그나저나 회사에 이걸 보고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우리가 걱정하던 일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룹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지호텔과 D&Y휘트니스 클럽 프로젝트에는 막대한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는 기업의 생리라면 당연히 막으려 들 것이다. 회사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해자를 단죄할 수 있는 방법. 과연 그런 게 있을까? 신고를 하면 무조건 언론에 알려질 것이고, 그러면 이미지 추락은 기정사실이다. 그렇다고 회사 이익을 위해 신고를 막는다면 나도 가해자들과 똑같은 인간이 된다는 뜻이다. 결론은 이미 정해졌지만, 그래도 계속 고민이 되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뜨겁거나, 맵고 짠 음식은 피하라는 병원의 조언에 따라 바나나 한송이를 사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 얼마전에 제가 쓴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참 거시기하네요. ㅠ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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