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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52화 (152/424)

00152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한류스타 B씨와 섹시가수 C양의 스캔들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가끔 우리 호텔과 관련된, 가야호텔의 소행으로 보이는, 기사들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여론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호텔에서 직접 사과성명을 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자구책을 제시했으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등 여러 가지 후속조치들을 발표해 호텔보다는 가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쏠리게 만든 덕분이다.

이번 일은 이렇게 잘 무마되는가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의외의 복병이 등장해 우리 팀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제주 헬스클럽 사건이야 동지호텔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 발생한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었다.

“젠장, 어떻게 쉴 여유가 없냐? 하나 막으면, 또 하나가 터지니 정신이 없네.”

“글 하나로 이런 파장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사건의 발단은 도지광 전팀장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 호텔을 그만뒀던 김연숙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신문기사를 통해 도지광이라는 작자가 벌인 추악한 범죄를 알게 된 그녀는, 그 따위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평가를 받아 일자리를 잃은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동지호텔이 실시했던 업무 평가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썼는데, 그녀와 함께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던 사람이 그 글을 포털사이트의 한 카페로 퍼 나르면서 일이 커졌다.

우리는 몰랐지만, D&Y휘트니스 클럽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던 사람들이 만든 카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계약해지 통보에 불만을 품었던 전직 강사들은 김연숙씨가 쓴 글을 보고 업무평가 방식 자체에 의문을 가졌다. 결국 잘못된 평가에 의한 부당한 해고라며, 오늘 아침 인천공항에 있는 동지호텔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성폭행사건이 일어난 동지호텔, 이번에는 비정규직 차별’, ‘성폭행 범에게 부당해고 당한 비정규직 직원의 비애’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인터넷에 유포되기 시작했다.

아직 크게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잘못한건가요? 계약해지 절차는 정당했잖아요.”

“절차가 정당해도 과정에 문제가 있었잖아. 하필이면 도지광이 업무평가를 하는 바람에 다른 지점의 업무평가도 함께 매도당하게 생겼잖아. 그전에, 직장상사 한 사람이 모든 직원을 평가했다는 자체가 불합리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뭔지 알아, 준호야?”

“글쎄요.”

“우리가 대기업에 다닌답시고 어깨에 힘만 들어가서는, 제대로 된 고심도 하지 않고 너무도 당연하게 직원들을 잘랐다는 거야. 웃기지 않냐? 우리도 말단 주제에 함부로 누군가를 자른 다는 게.”

내가 누군가에게는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동지호텔의 헬스클럽은 너무 정체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잖아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인원교체는 필요했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그 말은 맞아.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번에 제주도로 출장을 가서 업무평가서를 보며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알아? 우리는 그냥 회사에서 시행한 업무평가니 그러려니 하고 제대로 된 의심도 하지 않았잖아. 말이 되냐. 사람을 평가하는데 한 사람의 의견만 수용하는 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최소한 그런 문제점은 잡아 낼 수 있었어. 변화에만 신경 쓰다가 내부가 곪아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잖아.”

입바른 소리하기 좋아하는 버릇이 또 나왔다. 지금 당장 대책부터 마련해야 하는데, 나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 대리님.”

“왜 정 주임.”

“이번 일은 좀 애매한 구석이 있잖아요. 사실 우리는 헬스클럽 강사들을 프리랜서라고 생각했지,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잖아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뭘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리 호텔에서 일한 경력이면 어디든 취직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나봐. 기사에도 나왔잖아. 갑자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바람에 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장을 구하고 있다고.”

“이제 어쩌죠?”

“나도 몰라. 이게 꼼수가 통할 것 같아? 도지광 그 개자식 때문에 우린 졸지에 비정규직 직원들을 차별하는 흉악한 무리가 되었다고. 우리의 계약해지는 정당했다고 말할 명분을 잃어버렸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됐지, 뭐.”

“이것 참. 마 대리가 업무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할 때, 앞으로 개선하면 되겠거니 하며 쉽게 생각했는데.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너무 무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네.”

지금까지는 가야호텔이나 도지광처럼 확실히 무찔러야 할 대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무작정 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무신경함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으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회의는 하고 있지만, 우리 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왜 동지호텔 인천공항점으로 가서 시위를 했대요?”

“왜긴 왜야. 서울에 있는 호텔은 항상 집회신고 해놓잖아. 서울에서 했다가는 불법으로 몰리니 인천 쪽에 집회신고를 하고 시위를 벌인 거겠지.”

“집회를 하지도 않으면서 집회신고를 하면 불법이잖아요.”

“끄응. 누가 모르냐? 불만이면 네가 회장님에게 가서 따지던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게 세상인심이다. 인터넷으로 그런 기사를 접하면 나쁜 놈이라고 욕하면서도, 우리 회사가 그러는 것은 모른 척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윤 스포츠센터에서 탁아소를 만들 때 그런 편법을 직접 활용한 적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기성세대들을 욕하곤 했는데, 나도 어느새 그들을 닮아 가고 있다.

준호를 구박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기, 불법 유턴, 정지선 위반, 속도위반, 불법주차와 같은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불법행위를 하면서 정의로운 척 입바른 소리를 하는 나야말로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인간이다. 심지어 양심의 가책도 거의 느끼지 않으니 소시오패스의 초기증상은 아닌지 가끔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좀 이상한 점이 있어요.”

“뭔데?”

“집회신고라는 게 48시간 전에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뿐만 아니라 호텔에서도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인천공항 지점에서 시위를 했는데 타이밍 좋게 기사까지 떴으니...”

“가야호텔이 개입한 건 아닐까요?”

“비정규직 차별은 비단 우리 그룹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 안 그러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비슷하잖아요.”

“여기서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억울하다.’라고 해봐야 누가 알아주겠어. 일만 더 키우는 꼴이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얼른 대책 마련이나 하자.”

“대책 마련이랄 게 뭐가 있나요. 업무평가서를 다시 확인해서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은 구제해야겠죠. 그리고 업무평가 방식도 플랫폼 자체를 바꿔야 하고요.”

“일부만이요? 저들은 전원 재고용과 정규직 전환까지 요구하는 상황인데...”

“전원 재고용? 정규직 전환? 우리가 그러고 싶어도 힘들지. 회장님이 가만히 계실 것 같아? 조용히 이야기했다면 모를까 이젠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봐야지.”

집회가 정당하다고 해도 그들의 방법은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요구 조건이 있으면 집회하기 전에 우리에게 면담요청 정도는 했어야 한다. 누군가가 – 아마도 가야호텔일 가능성이 높다 – 바람을 집어넣은 것 같다.

“언론에서 저렇게 떠드는데요?”

“언론? 며칠만 지나면 조용해질 걸? 간단하게 ‘저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프리랜서다. 1년 연봉은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대기업 직원 이상이다.’라고 언론플레이만 해도 대중들에게 금방 외면 받아.”

“그렇지만 그건 회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일부 강사들의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언론플레이라고 했잖아.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지만, 조금만 지나면 홍보팀에서 그런 식으로 움직일 거야.”

“아, 우리 계열사인 동지조선이 파업하면 늘 그룹차원에서 대응하던 방법 말이죠? 회장님 성격에 거기 노조를 어쩌지 못하는 것 보면 신기하던데요.”

“거기야 금속노조라는 연합체가 있으니 쉽게 건드릴 수는 없지. 그러니 강경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매번 언론플레이로 무마하려고 하는 거고.”

사측과 노조 누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그룹이 동지조선 파업에 대응하는 방법은 한결같다. 평균연봉을 계산하면 우리나라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이는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사람과 적은 월급을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대충 이런 논지를 언론에 퍼트린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게 여론몰이로는 참 좋은 방법이다.

“그럼 마땅한 우군이 없는 저 사람들 소식이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이미 들어갔을 수도 있어. 아직 일이 커지지 않았으니 조용할 뿐이지. 그런데 구제를 한다고 해도 문제네. 마땅한 자리가 없잖아.”

“내년 2월 말이나 3월 초에 목동 D&Y휘트니스 클럽이 오픈하잖아요. 그때 최우선적으로 뽑겠다고 하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이제 11월 중순인데, 석 달 동안은 어쩌라고?”

“윤 스포츠센터에 파견해서 재교육과정을 거치면 될 것 같기도 한데요. 목동 1호점이 오픈 할 때까지는 기본급만 지급하는 걸로 하고. 그 정도 예산 확보는 가능할까요, 팀장님?”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조금 빠르게 시행한다고 문제가 될 건 없겠지. 그런데 계약해지자 전원을 받아들일 수는 없잖아.”

“이미 취직한 사람들도 있을 거고, 업무평가 중에 객관적 지표가 낮은 사람은 제외해야지 않을까요?”

“결근과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회원들과 트러블을 많았던 사람은 우선 제외하자고. 지금부터 거기에 대한 분류작업 시작하고, 동수는 정 주임이랑 인천에 가도록 해. 대화는 나눠봐야지.”

“네, 팀장님.”

조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나와 정 주임은 동지호텔 인천공항점으로 출발했다.

“세상에. 제대로 준비를 하고 왔네요. 플래카드까지 만들고.”

“저 사람들은 며칠을 준비했잖아. 당연한 거지. 얼마 전에 우리가 목동 미래백화점 건설현장에서 가짜 시위를 벌일 때 생각 안 나? 물건들을 새벽에 부랴부랴 사와서 만들어도 그럴싸했잖아.”

“그렇긴 하네요. 그땐 정말 재미있었는데. 호호호.”

“퍽도 재미있었다. 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그나저나 우리 둘만 가서 대화가 되려나 몰라요.”

“어쩌겠어. 부딪쳐봐야지.”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 740번 버스 안.

시연이는 동수와 통화를 하고 기분이 우울해졌다. 급한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들었는데, 회사에 또 무슨 일이 생겼다며 오늘 데이트를 미루자는 전화였다.

“치. 직장인과 사귀면 서운할 일이 많다더니 정말이네. 동수씨 보고 싶은데.”

수업도 모두 들었고, 데이트 약속이 펑크 나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져버린 그녀는 그냥 집으로 가서 똥수나 괴롭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울한 마음을 달랬다.

“이번 정류장은 반포한강공원 앞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시연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반포한강공원 길을 걸었다. 웬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벙거지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어이, 거기 아가씨.”

공원을 빠져나와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남자가 시연이를 불러 세웠다.

“저 말인가요?”

시연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이상한 복장을 한 남자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의아했다.

“그래. 짜잔. 어때? 흐흐흐.”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입고 있던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코트를 활짝 펼쳤다. 순간 흉물스러운 그곳과 함께 남자의 알몸이 드러났다.

“뭐가요?”

그러나 시연이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피곤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

“뭐... 뭐가라니? 놀랍지 않아? 이정도면 꽤 큰 거라고!”

“아, 거길 말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왜 반말이야?”

“뭐?”

“딱 봐도 한참은 더 자라야 할 것 같은데, 뭘. 누나 피곤하니까 그만 가라.”

“한참을 더 자라다니? 뭘 모르나 본데, 나 정도면 대한민국 평균이상이라고.”

“거짓말 하네. 그거보다 두세 배는 커야 평균이지 무슨. 꼬마야. 엄마 젖 더 먹고 얼른 무럭무럭 자라렴. 누나는 바쁘단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가씨가 이상한 미국 야동을 보고 오해하는 것 같은데, 한국에는 그런 남자 없어.”

“뻥치시네. 우리 애인이 그렇거든!”

“뭐?”

“그러니까 그만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 날도 추운데 벌거벗고 뭐하는 짓이니? 어디보자. 여기 있네. 자, 이걸로 까까 사먹어. 누난 그만 간다. 안녕.”

시연이는 주머니 속에 있는 500원 짜리 동전을 남자의 발밑에 던진 다음, 골목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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