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계속 후회가 되었다. 좀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의 모든 행동이 아쉽고 후회스러웠다. 시연이 얼굴, 부모님 얼굴, 동생과 제수씨 얼굴, 그리고 엄마와 제수씨 배 속에 있을 미래의 동생과 조카의 모습도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고 문득 절대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야 했다. 나는 사나이 마동수다. 잔머리 굴리길 좋아하는 조금은 비겁해 보이지만, 절대 당하고는 못사는 악바리 근성이 있는 그런 인간이다. 억울해서라도, 저놈들이 바라는 대로 조용히 죽어줄 수는 없었다.
또 한 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침착해야 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질질 짜면서 추억만 떠올릴 수는 없었다. 반드시 살아남아 오늘의 기억도 추억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쉬이 진정되지는 않았다. 일단 몸이 너무 불편했다. 허벅지와 가슴이 밀착된 상태로 갇혀 있다 보니 꼼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금방이라도 쥐가 날것처럼 온몸이 저려왔다.
도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무더운 열기가 좁은 트렁크로 들어와, 내부는 찜통이 연상될 정도로 뜨거웠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꼼짝달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몸이 힘들다 보니, 일단은 그냥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야. 근데 우리 이거 걸리는 거 아닐까?”
“걸리긴 뭐가 걸려? 주차장도 몰래 잠입했고, CCTV는 락카를 뿌려서 걸릴 일이 없어. 그리고 자동차도 마동수 저놈 거잖아. 뭐가 걱정이야.”
“그런가?”
“그나저나 저놈도 참 재수가 없어. 어떻게 고깃집에서 채은성 그 작자를 딱 만나냐?”
“그러게 말이다. 이건 하늘의 계시야. 덕분에 우리의 복수도 빨라지고 좋잖아.”
“그래도 그냥 좀 어디 몇 군데 부러뜨리면 제 놈도 정신 좀 차리지 않을까? 죽이는 건 좀...”
“그건 곤란하지. 너 다시 감방 가고 싶어?”
“아니. 그건 싫어.”
“몇 대 때리고 풀어주면 저놈이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러고 끝날 것 같아? 바로 신고해. 게다가 우린 지금 집행유예기간이고. 이미 납치까지 했으니 최소 몇 년은 살아야 한다고.”
“그래, 인마. 너도 마음 단단히 먹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도로 담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한 놈은 그래도 양심이라는 것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았지만,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었다. 허긴. 그러니 그렇게 사람 많은 식당에서 여자를 추행하고, 사람을 두들겨 팼을 것이다.
그런데 채은성이라는 이름도 들렸다. 그놈은 예전 출판사 사장이 분명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그놈이 내가 사는 집을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도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출판사를 완전히 인수할 때, 시연이 어머님과 함께 내가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너무 열이 받아서 출판사가 넘어가게 한 배후에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약이 올라 붉으락푸르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때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채은성 그놈의 머리로는, 내가 배후에 있었을 거라는 추측은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에게 큰 원한을 가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저들 삼인방에게 내가 사는 집을 알려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갇힌 채 죽을 일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신세가 되지도 않았을 거다.
순간의 통쾌함을 맛보기 위해 선택했던 어리석은 결정이 이런 불행한 일을 만들었다. 정말 나는 멍청이가 분명했다. 그 통쾌함이 대체 뭐라고. 통쾌함은 그냥 혼자 만끽하면 되는 거였다.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바보같은 나의 행동이 이런 사단을 불러온 것이다.
차에 갇힌 이후 계속 후회만 했다. 그래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절박한 마음에, 예전 로또를 맞았을 때 나타났던 우리 할아버지에게라도 빌어볼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였다.
“야, 조심해. 앞에 사람.”
끼이익.
콰앙.
한눈을 팔았는지 조심하라는 소리와 함께, 찢어질 듯한 타이어 마찰음이 들렸다. 그리고 어딘가에 부딪힌 듯 강렬한 충돌음이 연이어 들렸고, 그 충격 때문인지 눈앞이 하얗게 변해갔다.
“으으. 괜찮아?”
“어. 다행히 괜찮은 것 같아.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어쩌지?”
“어쩌긴. 튀어야지.”
“튀면?”
“이건 우리 차도 아니잖아. 그리고 갑자기 뒤통수를 내려쳤으니, 저놈은 우리가 누군지도 모를 거야. 일단 튀자.”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누군가의 이야기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눈앞이 컴컴해졌다.
***
“음.”
뭔가 깊은 꿈을 꾼 기분이었다. 정신이 몽롱하고 조금 전에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온몸이 쑤시고 찌뿌듯했다.
‘대체 무슨 일을 있었기에 이렇게 몸이 아픈 걸까?’
이게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코 속으로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지금 병원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내가 왜 병원에 있지?’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내가 왜 병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아. 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하지만 목이 잠겨 뜻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그 사람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요하게 나를 불렀다. 지금은 졸려서 잠이나 더 자고 싶은데,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신경질이 났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순간 그렇게 뜨려고 노력해도 떠지지 않던 눈이 떠졌다. 환한 불빛이 눈동자를 통해 갑자기 들어왔다. 제길. 엄청나게 눈이 부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 눈을 뜨셨네요. 제 말이 들리면 눈동자를 깜박여 보시겠어요?”
정말 집요했다. 이런 사람에게는 빨리 원하는 걸 해주고 보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그녀의 요구에 힘겹게 눈꺼풀을 두 번 움직였다.
“다행히 청력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네요. 그럼 환자분. 여긴 병원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럼 당연히 안다. 이렇게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곳이 병원 말고 또 어디 있다고. 어쨌든, 그녀가 원하는 것 같으니 또다시 눈꺼풀을 움직였다.
“그럼 왜 여기로 왔는지는 아세요?”
그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까부터 드는 의문이었다. 나는 왜 병원에 있는 걸까? 이번에는 눈꺼풀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음.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네요. 사고 후유증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억은 금방 돌아오니까. 지금 환자분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좀 특이한 건 자동차 뒤 트렁크 안에 묶인 채 갇혀있었다는 거예요. 운전하던 사람들은 이미 없어졌어요. 혹시 기억나시나요?”
젠장. 기억났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지? 그렇게 엄청난 후회와 절망감을 느꼈었는데,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는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었는데, 정말 사고가 났던 것 같다.
빌어먹을. 난 오늘 두 번이나 기절했는데, 그놈들은 멀쩡히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옆에서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자꾸 기억나는지 질문을 해댔다. 확실히 집요했다. 나는 분노를 삭이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눈꺼풀을 움직였다.
“다행히 기억이 돌아오나 보네요. 그럼 신분확인부터 좀 할게요. 옷에는 신분증이 없어서. 경찰이 조회한 바로는 차량 주인이 성함이 마동수로 나오던데, 혹시 본인 이름이 맞나요?”
그래 맞아, 이 집요한 여자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또 한 번 눈꺼풀을 움직였다.
“정말 다행이네요. 환자분이 누군지 알게 되었으니, 금방 보호자에게 연락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몸이 튼튼하신지 자동차 사고로 인한 외상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납치당하실 때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았는지 뒤통수에 큰 혹이 있네요. 혹시 모르니 이따가 정밀검사를 다시 한 번 해보는 게 좋겠어요.”
나는 이제 기계적으로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뭐라고 몇 마디를 더했다.
“간단한 건 다 물어봤습니다. 환자분 수고하셨어요. 그럼 쉬세요.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그녀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인데, 사고 직후라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계속 짜증만 났다. 잠시 후 귀찮게 하던 질문공세는 완전히 끝이 났고, 그제야 나는 잠이 들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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