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화들짝 놀라 화장실에 갔던 시연이가 잠시 후 화장을 지운 깨끗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뭐가 그렇게 창피한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그래도 창피하잖아요. 사람들이 판다처럼 된 제 모습을 다 봤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요.”
“그런데 화장 지우니까 더 예쁜데?”
“치. 거짓말. 누가 그러더라고요. 남자들이 하는 거짓말 중 하나가 화장 안 해도 예뻐 라는 소리래요.”
아, 대체 누가 그딴 소리를 한데? 솔직히 내 애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연이는 정말 초초초 대박 미녀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 어려서 피부도 정말 뽀송뽀송하고 부드럽다. 이런 피부미인은 화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시연이는 가끔 화장에 집착한다.
“누구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 녀석이? 안 봐도 뻔하지. 또 고장희 짓이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뭘 어떻게 알아? 뻔하지. 고장희 말고 네게 그런 쓸데없는 이론을 주입할 녀석이 또 누구겠어?”
“그래도 제겐 큰 도움이 된다고요. 그리고 남자들이 잘하는 거짓말들도 정말 그럴싸했어요.”
“남자들이 잘하는 거짓말? 그게 뭔데? 설마 화장 안 해도 예뻐. 이런 게 거짓말이라는 거야?”
맙소사, 고장희 이 녀석은 평생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 분명했다. 정말 회장님 딸만 아니었으면 어딘가로 확 보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음. 결혼하면 내가 다 할게, 너 없인 못 살아, 얼굴이 중요한가? 마음이 고와야지,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게...”
“아아. 그만. 시연아.”
“네? 왜 그래요, 동수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연이의 모습은 정말 콱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행복감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너 앞으로 고장희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정말 하나 건질 것 없는 쓰잘머리 없는 이야기뿐이잖아.”
“이상하다. 틀린 말 하나도 없다고 그랬는데.”
“다 이상해. 내 말을 믿어. 그리고 난 정말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네? 도, 동수씨 갑자기 그런 말을...”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중에 하나가 그동안 시연이에게 내 마음을 많은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약 살아 돌아가면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했었다. 다행히도 그럴 기회가 정말 내게 생겼다.
“납치되는 동안에 참 많은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제일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시연이 너였어. 정말 미친 듯이 보고 싶더라.”
“흑. 정말이에요? 정말 제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그럼.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난 정말 너 없이는 못살겠구나. 이런 생각.”
“으아앙. 동수씨. 저 정말 처음인 것 같아요. 정말정말 이런 말 듣고 싶었는데, 한 번도 안 해줬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저를 울려요. 히잉.”
“글쎄. 머리를 너무 세게 두들겨 맞아서 그런가?”
“뭐에요?”
울먹이면서도 또다시 동그랗게 눈을 뜨는 시연이를 보는 순간 갑자기 내 분신이 반응을 했다. 정말 죽다 살아난 상황에서도 반응을 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죽다 살아나서 이런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액션영화 같은 것도 보면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가? 죽을 뻔한 고비를 이겨낸 남녀 주인공이 그 격정을 참지 못하고 진한 키스를 나누거나 밤을 함께 보내는 장면. 나도 그런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지 저얼대 아무 때나 발정하는 개가 아니라는 그런 말이다.
“하하하. 그래도 아까 한 말은 진담이었어. 머리를 너무 세게 맞아서 지나치게 솔직해진 게 문제라면 문제지.”
“그런데 솔직한 동수씨가 너무 좋은데요. 앞으로도 계속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었어?”
“거짓말은 안 해도 솔직하게 말을 털어놓지 않은 적은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처럼 속마음까지 완전히 털어놓은 적도 없고요.”
그녀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예전에 철거 공사를 막으려고 옥상까지 올라가다 죽을 뻔한 사건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사실 내가 시연이를 조금 어린애 취급하는 면이 있긴 했다.
조금은 응석 부리듯 투정하는 그녀를 보니 눈치 없는 나의 아랫도리가 점점 더 불끈거렸다.
“미안해. 앞으론 더욱 솔직해지도록 노력할게. 흠흠. 그런데 여긴 처음 깨어났던 곳과 뭔가 다른 것 같은데?”
“병실 옮겼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동수씨야 모르겠지만, 동수씨 찾느라 경찰서며 스포츠 센터며 심지어 동지그룹까지 들썩거렸거든요.”
“에이. 동지그룹이 들썩거렸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어머. 동수씨가 어때서요? 동수씨가 얼만 중요한 사람인데요. 장희 언니 오빠라는 고현호 이사님이 직접 나서서 경호실, 비서실 직원들 동원하셨다고 그랬어요. 그 정도면 들썩인 거죠.”
“결국, 장희에게도 연락한 거야?”
“그럼 어떡해요. 전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요. 명색이 우리나라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인데, 가동하고 있는 정보망이 보통은 넘을 것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고현호 이사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일개 대리를 위해 그가 마음대로 경호실이나 비서실을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연이나 윤 사장님의 부탁이 있었다면 다르다. D&Y피트니스 클럽의 중요한 동업자의 부탁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했다.
이래서 내가 시연이에게 반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통의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냥 주저앉아 눈물만 펑펑 쏟았을 텐데, 우리 시연이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찾아서 한다. 한마디로 당찬 여인이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보면 볼수록 우리 시연이는 ‘개 같은 여자’다.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내 다리를 물고 절대 놓지 않던 그 끈질김이나,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든 나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충성심이나, 역시 난 여자 복이 있는 놈이 분명했다.
“우리 시연이 정말 대단하네. 그런 생각도 다 하고. 고생했어. 어쩌면 우리 시연이의 그런 노력 덕분에 내가 살아날 수도 있었어.”
“오늘따라 우리 동수씨 왜 이렇게 가슴 간지러운 말을 잘하죠? 히히.”
“그런데 그게 내가 병실 옮긴 거랑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은요. 당연히 상관이 있죠. 그냥 누군지도 모르던 정체 모를 의식불명의 환자가 알고 보니 윤 스포츠센터와 동지그룹에서 필사적으로 찾던 사람이었다. 병원에서도 깜짝 놀랐겠죠. 그래서 특실로 바로 옮겼다고 하던데요.”
어쩐지. 제대로 둘러보진 않았지만, 왠지 좀 좋아 보이던 병실이었다. 순간 ‘뭐하러 돈 아깝게 이런 비싼 병실을.’이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살아난다면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게 돈도 적당히 써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새 그 결심을 까먹을 뻔했다. 죽다 살아나도 나의 짠돌이 기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 그래서 병실에 화장실이 있었구나.”
“그건 아닌데. 요즘 병원은 2인실만 되어도 화장실이 딸린 곳 많아요.”
나는 그제야 판다얼굴이 된 시연이가 병실 안의 화장실로 뛰어간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또 그건 아니란다. 원체 몸이 건강해서 병원에 가 볼일이 있었어야 내가 알지.
“그런 거였어? 그런데 특실이라서 그런지 정말 좋긴 좋다. 무슨 호텔 같은 느낌이야.”
“병원인데 호텔만큼이야 하겠어요? 그래도 동수씨가 편안하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흠흠. 그럼 시연아.”
“네?”
“여긴 우리 말고 아무도 없겠네?”
“그렇죠.”
시연이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호텔 같은 병실. 여유가 생기니 무릎 위로 반 뼘 정도 올라간 찰랑거리는 보랏빛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무릎과 치마 사이로 드러난 백옥 같은 허벅지에 눈이 닿자 침이 꿀꺽 넘어갔다.
완전한 나체까지 모두 본 나였지만, 가끔은 이렇게 변태처럼 흘낏흘낏 쳐다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고 좋았다. 어쨌든, 사람도 없으니 더 이상 거릴 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침대에 올라와 봐.”
“네?”
“그냥 너를 가슴에 폭 안고 싶은데, 내가 아직 몸이 불편하잖아.”
가슴에 푹 안고 싶다기보다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저 백옥같은 허벅지를 쓰다듬고 싶다는 더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노골적인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히히. 실은 저도 동수씨 품에 안기고 싶었어요.”
시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왔다. 나는 짧은 치마가 드러나는 것을 가리는 척 이불로 그녀의 허리 아래를 덮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은 치마 아래 허벅지를 지분거리듯 살짝살짝 쓰다듬었다.
“앗. 동수씨 여긴 병원인데.”
“쉿. 그래서 싫어?”
나의 음흉한 손길이 허벅지를 타고 점점 올라가자 시연이의 표정이 수줍은 듯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 표정이 왜 그렇게 순진해보이면서도 섹시해 보이는지. 왠지 좀 더 괴롭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과감하게 그녀의 속옷까지 손을 밀어 올렸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도, 동수씨 거긴 정말. 히잉.”
“어라. 우리 시연이 야하네. 금방 이렇게 젖었어?”
“그, 그게. 그게 아니라 땀이에요. 땀. 동수씨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뛰어오느라 정신없었거든요.”
“오호. 땀이라고? 그럼 맛을 보면 알겠네. 아닌가? 둘 다 짠맛이 나서 구분이 안 되려나?”
“히잉. 동수씨 이상해요. 꼭 변태 같아요.”
“몰랐구나. 내가 이제 솔직하기로 했잖아. 사실 그동안 숨겨왔던 나의 본 모습이야. 후후후”
점점 더 당황하는 모습에 나는 더욱 더 장난을 쳐 괴롭히고 싶었다. 그럴수록 내 몸도 더욱 흥분되어갔다. 맛을 보겠다는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나는 시연이의 팬티 안으로 손을 살짝 밀어 넣었다. 그녀는 살짝 움찔하는 듯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품을 꼭 안고 있던 그녀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바로 그때.
콰쾅.
“형. 형. 괜찮아?”
정말, 정말 분위기가 좋았는데. 마상수 이 눈치 없는 녀석이 노크도 없이 병실 문을 부서지라 듯 강하게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내 동생이지만 전직 유도선수 출신답게 내뿜고 있는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음흉한 짓을 하던 나와 시연이는 갑작스러운 동생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나의 야한 손놀림은 어차피 이불 속에서 이뤄진 일이라 시연이 말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야, 이 자식아! 노크는 하고 들어와야 할 거 아냐?”
“호호호. 도련님 오셨어요?”
“소리치는 것 보니 다행히 몸은 괜찮네. 어라. 형수님도 계셨네요. 그런데 형수님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졌어요?”
“내가 납치되었다가 살아왔으니 얼마나 놀랐겠어. 그래서 내게 안겨서 한참 울었거든.”
“아하. 그렇구나. 형수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형이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더 튼튼해요. 제가 장담하는데 몸이 하도 튼튼해서 운동을 했어도 분명 성공했을 정도라니까요. 특히 단단한 머리는 어휴... 예전에 나무를 올라타다가 장독대 아래로 거꾸로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장독은 완전 박살이 났는데, 형 머리는 완전 멀쩡했다니까요. 그리고...”
“그만. 상수야. 그만해. 지금 넌 형 병문안을 온 거야, 아니면 내 뒷담화를 하러 온 거야?”
“하하하. 당연히 병문안을 온 거지. 내가 얼마나 걱정하면서 달려왔는데 그래. 형이 무사한 것을 보니 그냥 마음이 놓여서 그래.”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제가 연락했어요. 아버님, 어머님은 걱정하실까 봐 연락 못 하고, 가족 중에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도련님에게 연락드렸죠.”
“잘했어. 엄마는 지금 홑몸도 아닌데, 괜히 놀라 뱃속의 우리 막내 동생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 되지. 아니다. 우리 엄마라면 내가 납치되었다가 병실에 입원 중이라고 하면...”
“그래. 안 죽었으면 됐다. 이러고 말겠지, 아미?”
역시 상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는 누가 뭐래도 대장부 같은 분이니까.
“그렇지. 그래도 뭐 임신 중일 때는 모를 일이지. 잘했어, 시연아.”
“그런데 형.”
“왜?”
“대체 형은 무슨 일을 하길래, 납치까지 당한 거야?”
“무슨 일은. 그냥 예전에 시연이와 같이 데이트를 하는데, 시비가 좀 붙었거든. 그때 일을 가지고 원한을 가진 녀석들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정도 원한으로 사람을 납치해서 파묻을 생각을 하는지. 어휴.”
“안 되겠다. 형. 이제 돈도 잘 버는 것 같던데, 경호원 한 명 써라.”
“뭐? 웬 경호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말이 왜 안 돼? 형 성격을 내가 아는데. 형은 좀 깐쭉깐죽 거려서 남들이 쉽게 원한 사는 스타일이라고.”
“호호호. 맞아요. 동수씨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해요.”
“뭐? 내가 그런 성격이었다고? 난 정말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야.”
“웃기시네. 형의 그 성격 때문에, 형 선배나 동기 중에 언제 한 번 잡아 죽인다고 벼르던 놈들도 있었거든!”
“뭐?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정말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정말 사람 관계에 있어서 유연하게 잘 대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상수와 시연이의 반응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휴. 형이랑 나랑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으니까 알지. 어떤 놈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운동부에다가 형 손 좀 봐주라고 한 사람이 있었거든.”
“진짜야? 고등학교 때?”
“그래 정말이라니까. 형이 덩치가 좀 있으니 직접 덤비기는 무섭고, 그래서 유도부 선배에게 부탁하러 온 거지.”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우리 유도부가 또 의리는 끝내주잖아. 결국, 단체로 몰려가서 그때 고3 교실 완전히 뒤집어놨지.”
“아! 기억난다. 유도부가 고3 선배들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는 사건. 그런데 그게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어?”
“그렇다니까. 어휴. 형은 가만 보면 친한 사람한테는 정말 세상 누구보다도 잘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깐죽거리는 경향이 있다니까. 그래서 원한을 쉽게 사.”
동생의 말을 들으니 정말 내가 그래왔던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출판사 사장이었던 채은성 앞에 나타난 것도 결국은 깐죽거리고 싶었던 내 본능이 작동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정면에 나서지 않는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놈의 성격이 문제인데, 그걸 쉽게 고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야, 이 자식아! 그래도 형 보고 깐죽이 뭐야? 깐죽이.”
“그럼 어떡해? 그것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는데. 아무튼, 형. 진짜 형은 경호원이 한 명 있어야 한다니까.”
“또 그 소리야? 내 나이에 무슨 경호원이야. 내가 무슨 재벌집 자식도 아니고.”
“내 후배 중에 정말 실력 끝내주는 녀석이 있거든. 형도 알잖아. 내가 누구 잘 칭찬 안 하는 거. 경호원이 아니라 수행원처럼 데리고 다니라는 거지.”
그건 그렇다. 특히 운동 분야에서는 정말 칭찬이 인색한 녀석이 내 동생이다. 그런데 정말 실력이 끝내준다면, 그건 정말 실력이 끝내준다는 이야기다. 괜히 혹한다. 아니다. 아무리 납치당하고 죽을 뻔했다고 해도, 내 나이에 무슨 경호원이나 수행원을 거느린단 말인가.
“됐어. 나, 아직 대리거든. 수행원은 이사쯤 되어야 데리고 다니는 거야.”
“범인 아직 안 잡혔다며. 그럼 그때까지만이라도 데리고 있어. 불안하잖아.”
“광우가 실력 좋은 사람으로 병실 지키게 해준다고 했어.”
“어휴. 근접 경호하고 비교하기는 어렵지. 그리고 퇴원할 때까지도 범인이 안 잡히면?”
부상을 입지 않고 계속 운동을 계속했다면 교사가 아니라 경호원이 됐을지도 모를 녀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경호에 대해서는 꽤 집요하게 굴었다.
“그렇게 해요. 저도 불안해요. 그러니까 도련님 말처럼 해요. 네?”
“음. 그래?”
“네. 그렇게 해요. 같이 있어보고 마음에 들면 수행원으로 써도 되고요.”
“시연아, 너까지 수행원 타령이야?”
“죽을 뻔한 게 벌써 두 번째잖아요. 불안해서 그래요. 수행원이 어색하고 눈치 보이면, 우리 스포츠센터에서 파견 형식으로 보내도 되잖아요. 어차피 동수씨 팀이랑 석 실장님 팀이랑 같이 일하잖아요. 그럼 석 실장님 팀으로 파견해서 동수씨랑 붙어 다니라고 하면 되고요. 필리핀도 가야한다면서요. 거긴 우리나라보다는 위험한 곳인데.”
“하하하. 알았어. 생각은 해볼게. 일단은 그냥 범인이 잡힐 동안에만 근접경호를 받는 걸로 하자. 응?”
납치되었다가 살아 돌아왔더니 동생이나 시연이가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참, 아무리 생각해도 수행원이나 경호원은 어색했다. 그래서 우선은 범인이 잡힐 동안만 근접경호를 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과한 걱정이라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는 시연이와 동생의 눈빛이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눈빛은 정말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그런 느낌이 들도록 해줬다.
============================ 작품 후기 ============================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를 아껴주시는 독자님들에게는 항상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조만간 이북 작업을 할 것 같은데, 그때쯤 되면 연재 속도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