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바, 방심해서 그렇습니다. 다시 붙는다면 절대 그럴 일이 없습니다.”
“의뢰인을 잃은 다음에도 방심했다고 하지그래?”
“아니. 잃긴 뭐를 잃었다고. 여보세요. 아무리 동수 형 친구라고 해도 말을 너무 함부로 하시는 것 아닙니까?”
“전투에서 진 사람은 말이 없다. 몰라? 넌 방금 경호임무를 실패한 거야. 그래놓고 방심? 나 같으면 낯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다. 아까 동수에게 실력이 괜찮아 보인다고 칭찬했는데 내가 판단을 잘못했군. 방심 운운하는 것 보니 함량 미달이야.”
“큭.”
“넌 아까 주의를 기울인 채 어깨만 살짝 틀어서 나를 보여줬어도, 동수에게 내가 누군지 확인시킬 수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리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실력은 어떤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무턱대고 덤벼들었어. 나를 만만하게 본거지.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일을 괜히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지. 결국, 너의 무모한 행동이 의뢰인을 위험에 빠트린 거나 마찬가지야. 그래놓고 방심이라고 변명을 해?”
“죄, 죄송합니다. 동수 형.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광우의 지적에 윤권이는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내게 사과를 했다. 광우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너무 기를 죽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진 못했다.
“아니야. 처음이잖아.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처음이니까 더 문제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도 몰라? 저 자식은 처음이라고 너한테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거기다 생긴 것부터 촌놈처럼 생긴 놈이 제수씨처럼 톱 탤런트도 울고 갈 엄청난 미녀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겠어? 당연히 잘 보이고 싶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겠지. 그래서 문제인 거야. 보디가드가 제일 조심해야 할 게 여자야.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여자 때문에 감정기복을 보인 것이나 마찬가지지.”
“아닙니다.”
“웃기시네. 야 이 자식아. 거짓말을 하려거든 사람을 봐가면서 해라. 내가 바로 거짓말 하는 인간들 잡아내는 경찰이야. 그것도 대한민국 형사 중에서도 에이스만 모인 광역수사대 대장이 바로 나거든. 사기꾼들은 상대방을 딱 보면 얼마나 뜯어먹을 수 있을지 견적이 나온다고 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너 같은 녀석들은 딱 보기만해도 대강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거짓말할 생각은 접어.”
“아닙니다. 전 죽어도 형수님에게 사심을 품은 적 없습니다.”
“어허. 이 자식 오버한다. 내가 언제 사심을 품었다고 했냐? 그냥 미안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들었잖아. 보통 남자들 다 그래. 예쁜 미인 앞에서 당연히 잘 보이고 싶지. 그게 이상한 건 아니야. 하지만 보디가드는 그러면 안 돼.”
“한번 붙읍시다.”
“뭐?”
“도대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적하려면 그만한 실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한 번 붙어봅시다.”
“이길 자신은 있고?”
“아니요. 제가 당신에게 이기지 못하리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한 대. 딱 한 대라도 때리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래. 좋아. 그래도 근성은 마음에 드네. 네가 나를 한 대라도 때리면. 아니지 그냥 옷깃이라도 스치면 내가 너를 형님으로 모시마. 동수야. 이 녀석하고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제수씨랑 잘 놀고 있어.”
“야.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라.”
“걱정하지 마. 이름이 윤권이라고 했나?”
“네. 성윤권입니다.”
“넌 여기서 기다리다가 우리 애들 오면 그때 옥상으로 올라와. 넌 지금 분노에 눈이 뒤집혀서 의뢰인의 안전은 걱정도 안 하고 있었지? 그게 너와 나의 차이야. 알겠냐? 꼬마야.”
“...”
“그럼 나 먼저 올라간다. 이따 다시 들를 게.”
광우는 전화를 걸어 경찰 둘을 이곳 병실로 오도록 하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광우가 호출했던 경찰이 도착하자 윤권이는 내게 정말 죄송하다고 다시 한 번 사과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옥상을 향했다.
“우리 두 사람 따라가 볼까?”
“아니요. 그냥 여기 있어요.”
“왜?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해요. 하지만 우리가 가서 보면 윤권 오라버니가 상처받을 것 같아요.”
“시연이 너는 윤권이가 광우를 이기지 못할 것 같은가 봐? 옷깃만 스쳐도 진 걸로 하겠다고 했는데?”
“왠지 그냥 느낌이 그래요. 우리 태극도 사범님이 예전에 그러셨거든요. 연계 동작이라는 건 부단한 훈련으로만 이뤄지는 거라고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본능적으로 나왔을 때, 그때가 바로 연계 동작의 완성 단계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광우 오라버니는 그런 경지를 이미 뛰어넘은 것 같아요.”
음. 뭔가 의미심장한 말 같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해했다.
광우는 졸라 세다.
하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중요한 것은 이제 이 병실에 방해꾼이 완전히 사라지고 시연이와 나 둘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래 네 말처럼 광우는 엄청 대단한 녀석이라 윤권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잘 다독(?)여 줄 거야.”
“정말 그럴까요?”
“그럼. 광우를 믿자고. 설마 그 녀석이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겠어? 그러니까 우린 이제. 으흠. 물이나 먹을까? 나 목마른데.”
“히힛. 목이 마른 거예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목도 마르다고 해야 하나? 배가 약간 고프기도 해. 그런 의미에서 요거트도 같이 먹을까?”
물은 그냥 시연이의 보드라운 입술을 느낄 수 있다면 요거트는 므흣(?)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얀색 액체가 그녀의 입술 주변에 묻어 있는 모습은 팜므파탈이 따로 없다.
“요거트요? 음. 요거트도 괜찮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데...”
“헉. 그래? 다른 거 어떤 거? 뭐든 말해봐. 콜라나 환타 같은 탄산음료로 해볼까? 탁 쏘는 맛이 색다를 것 같은데?”
“아뇨. 그거 말고. 음. 사... 탕이요.”
“헉. 사탕? 시연아!”
“네?”
“우리 당장하자. 응?”
“그런데 지금 사탕이 없어요.”
“그게 무슨 대수라고. 병원 입구에 편의점 있잖아. 내가 총알같이 뛰어갔다 올게.”
“아니에요. 동수씨는 아직 환자인데...”
“어허. 아니야, 아니야. 내가 다녀올게. 내가 얼마나 말짱한데. 체리맛, 악마맛, 사과맛, 딸기맛, 눈꽃사탕맛. 이 중에서 어떤 맛이 좋아?”
“자두맛이요.”
“아차. 사탕은 역시 자두맛이었지? 하하하. 기다려.”
나는 입가가 귀에 걸린 채로 편의점을 향해 맹렬히 뛰었다. 광우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윤권이 생각은 이미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동수가 사라지고 없는 병실.
“휴. 다행이다. 아이참, 동수씨도. 밥 먹고 양치도 안 했는데 갑자기 물을 먹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런데 사탕은 너무 야한가? 사탕키스를 해달라고 조른 거나 마찬가진데, 날 되게 밝히는 여자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아니야. 우리 동수씨가 그럴 리가 없어. 사탕 사오기 전에 얼른 양치부터 해야지. 헤헤.”
시연은 조금 있으면 동수와 나눌 사탕키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시작했다.
***
동수가 입원한 병원 옥상.
쿵!
“크윽.”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처절한 남자의 비명소리가 옥상에 울러 퍼졌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윤권. 허벅지를 제대로 얻어맞았는지 다리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제 항복이야?”
“죽으면 죽었지 제 사전에 항복은 없습니다.”
옥상에 올라온 지 벌써 2시간째다. 처참할 지경으로 당하고 있었지만 윤권은 굴하지 않았다. 광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욱 강렬해지기만 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의 처절한 눈빛에 하나에 질릴 정도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경찰 사상 최악의 독종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특히 성범죄자들의 경우 체포과정에서 일어난 몸싸움 때문에 아랫도리가 파열되는 불상사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고자요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그래? 누워 있는 게 좋을 텐데. 더 당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아. 자신 있으면 계속 덤벼봐.”
“안 그래도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크악!”
비아냥에 독기가 끓어오른 윤권은, 사력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이 날아오는데도 광우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그리고 주먹이 눈앞까지 날아온 순간 가볍게 고개를 젖혀서 피하고는 가벼운 스텝으로 윤권에게 다가섰다.
처음 당했을 때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윤권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꾸 당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광우가 다가오길 기다렸다는 듯 몸을 날리며 박치기를 시도했다.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미 버린 오래다. 어떻게든, 정말 어떻게든 광우의 옷깃이라도 스치고 싶었다.
그러나 광우는 그런 얕은수까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놀란 기색 없이 가볍게 뒤로 몸을 젖히며 오른발을 쭈욱 뻗어 날아오는 윤권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차 버렸다.
우당탕탕!
광우의 강렬한 공격에 윤권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환풍기가 있는 그물망에 처박혔다.
“계속 덤빌 거지? 짜식. 그래도 근성은 좋네. 때리는 놈이 먼저 지치는 지, 맞는 놈이 먼저 지치는 지 한 번 해보자.”
“더,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오뚝이 같이 보였던 윤권도 2시간을 지나 3시간째 두들겨 맞자 몸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듯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뭐야? 벌써 쓰러져? 야 인마! 일어나. 옥상에서 잠들면 감기 걸려. 그러니 어서 일어나.”
광우는 쓰러진 윤권을 깨우기 위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죽은 듯 누워있던 윤권의 손이 광우의 팔을 덥석 잡아버린 것이다.
“빙고! 잡았습니다.”
윤권은 감았던 눈을 뜨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라? 하하하. 요 자식 이거 쇼했네. 근성밖에 모르는 근성 바보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융통성도 있고.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떻게 해줄까? 형님이라고 불러줄까?”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대신 형님의 노하우를 제게 알려주십시오. 보디가드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상식이나, 그게 아니라도 동수 형님을 무사히 지킬 수 있는 노하우라면 뭐든지 괜찮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형님.”
“까짓것 그러자. 지금 내려가서 동수에게 양해 구하고 곧바로 우리집으로 가자. 딱 한 번만 들려줄 테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 작품 후기 ============================
새로운 인물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내일부터는 다른 에피소드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