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행당역은 잠실점과 함께 서울에서 둘밖에 없는 동지마트 지점 중 하나이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많아 위치적으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로운 대형 할인 마트들이 주변에 생기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동지마트의 가장 큰 약점은 지점이 고작 10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 할인 마트의 가장 큰 장점은 누가 뭐래도 가격이다. 슈퍼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음에도 굳이 차를 끌고 멀리 있는 대형 할인 마트에 가는 것은 값이 싸서지 다른 이유가 없다. 그리고 물건을 싸게 팔면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박리다매.
하나하나의 이익은 적게 보는 대신 물량을 많이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는 정책을 박리다매라고 한다. 예를 들어 물티슈 하나를 팔면 100원의 이익이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를 팔면 100원밖에 이익이 안 생긴다고 해도, 10,000개 팔면 1,000,000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대형 할인 마트는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상술로 큰 수익을 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물건을 팔아대면서 유통업계의 슈퍼 갑으로 군림하게 된다.
슈퍼 갑의 자리에 오른 대형 할인 마트는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들을 쥐어짠다. 공급가를 더욱 낮추는 건 기본이고 매장의 리뉴얼 따위를 할 때도 작업 대부분을 업체 직원들에게 떠넘긴다.
부당한 요구지만 웬만한 대기업조차도 슈퍼 갑의 요구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매장이 있는 대형 할인 마트에서 자신들의 물건이 빠지게 되고, 그건 곧 엄청난 매출 하락을 의미하게 된다.
독자적인 전국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대형 할인 마트에 대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다. 설사 독자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대리점보다는 여러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살 수 있는 할인 마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상당한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는 대형 할인 마트 서열 1, 2위 업체인 3-마트와 엘마트 두 곳만 해당한다. 조금 양보하면 3위 업체인 포에버마트도 슈퍼 갑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작 10개의 매장밖에 없는 우리 동지마트에게는 그야말로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공급 가격 내려줘.’
‘못 해줘.’
‘직원 보내서 리뉴얼 좀 해줘.’
‘싫어. 너네 직원들보고 하라고 해.’
‘못 해? 그럼 물건 뺀다?’
‘그래 빼라. 고작 10개 매장?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넣고 만다.’
과장되었을 순 있겠지만 대충 이런 대화가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동지마트다. 갑이지만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갑질했다간 본전도 건지지 못할 수 있는 처량한 신세.
조사한 바로는 현재 동지마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 제품들은 3-마트나 엘마트와 가격이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협력업체로부터 받는 공급가격은 차이가 날 것이다. 각 지점당 물티슈를 100박스씩만 주문한다고 가정하면, 우리 동지마트는 1,000박스, 3-마트는 20,000박스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20,000박스를 주문하는 곳과 1,000박스를 주문하는 곳을 같이 취급할 리가 없다. 가격을 직접 할인해줄 수도 있고, 아니면 100박스 정도는 덤으로 줄 수도 있다. 그게 전부 가격 인하 요인이 된다.
이렇게 공급 가격이 다르다고 해도 동지마트 입장에서는 제품을 다른 마트들에 비해 비싸게 팔 수 없다. 요즘 소비자들은 굉장히 영악하다. 10원 단위까지 꼼꼼히 따져서 가격 비교 후에 물건을 산다. 그러니 비싸게 팔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가격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거의 이윤이 나지 않는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거나 심지어는 손해 보면서 파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적자 폭은 더욱 커지고, 돈이 없으니 투자를 못 하고, 투자가 없으니 낙후된 시설은 방치 중이고, 그러다 보니 방문객들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
사면초가, 진퇴양난, 고립무원, 설상가상, 총체적 난국.
지금 동지마트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동지마트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도 과연 내가 이런 곳을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답답한 내 마음을 아는지 시연이는 나의 오른쪽 손등에 살짝 손을 올리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어. 여기는 한양대학교 근처네요.”
고민을 좀 하느라 차를 타고 처음 꺼낸 말이었는데, 시연이는 밝은 표정을 내 말을 받아줬다. 이제 고작 21살 같지 않은 속 깊은 그녀. 항상 느끼지만, 그녀를 만난 건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훨씬, 아니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행운이었다.
“응. 왕십리역 바로 옆이 행당역이니까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와. 그런데 여기 아파트가 되게 많네요.”
강변북로를 빠져나가 난계로를 타기 시작하자 푸르지오, 래미안, 벽산 아파트 단지가 하나둘씩 등장했다. 그리고 논골사거리에서 행당역 방면으로 우회전하자마자 양옆으로 한진타운 아파트와 대림아파트가 병풍처럼 도로주변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아파트단지인 천혜의 입주 조건을 가진 동지마트 행당점. 동지마트에서 가장 알짜배기 지점이지만, 환상의 입주 조건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가까운 동지마트를 놔두고 행당역에서 2km 떨어진 3-마트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정말 뼈아픈 현상이었다.
“그러게. 나도 자료만 봤지 와보는 건 처음이거든. 이런 멋진 입주 조건을 가지고도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니, 이건 정말 안 봐도 문제가 많은 곳이라는 게 느껴진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쉽게 설명해서 저기 행당역 나오네. 저기 오른쪽에 보이지 바로 저기가 동지마트야.”
“아. 조금 낡아보이긴 하네요.”
“그래. 세워진 지 좀 됐으니까. 그래도 사방이 온통 아파트 단지니 얼마나 조건이 좋아. 만약 저기에 시연이 너희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윤 스포츠센터가 있다고 가정해봐. 그런데 아파트 주민들이 윤 스포츠센터를 이용하지 않고 여기서 2km는 더 가야 있는 왕십리의 대박 스포츠센터를 다닌다고 생각해봐. 어떻겠어?”
대박 스포츠센터는 윤 스포츠센터의 라이벌 기업이다.
“네? 저렇게 좋은 자리를 차지했는데도 고객을 빼앗겼다면 보통 문제가 아닌 거죠. 당장 원인을 찾아야겠지만, 그전에 그 지경이 되기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해둔 무능력한 지점장을 퇴출하겠어요.”
“오. 우리 시연이 과격한데?”
“제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저런 입주 조건을 가지고도 실패를 했다는 건 직무유기라고 봐요.”
이건 나도 처음 보는 그녀의 단호한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센터를 운영하는 윤승태 사장님의 딸이 시연이다. 옆에서 그냥 저절로 배웠든 아니면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든 역시 윤 사장님의 딸답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그게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동지마트 행당점의 문제점이야. 어떻게 생각해?”
“휴우.”
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왜 갑자기 한숨이야?”
“그냥 앞으로 우리 동수씨가 얼마나 고생할지 앞날이 환하게 보여서요. 히잉.”
“하하하. 그게 보여?”
“그럼요. 동수씨라면 당연히 문제점을 개선하겠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을 것 같아요. 예전에 아빠랑 스포츠센터를 인수하는 데 따라간 적이 있었거든요. 위치도 좋고 규모도 커서 장사가 잘 되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폐업 직전에 몰린 거예요.”
“오호.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데?”
“그곳에 방문해서 어린 제 눈에 가장 기억에 남던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죽은 눈빛이었어요. 뭐라 그럴까. 하나같이 의욕을 잃은 얼굴들이었어요. 그래서 아빠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직원들을 다 내보내고 새로 뽑아야 할지 아니면 그분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지.”
“아버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는데? 내가 아는 아버님이라면 다시 기회를 주셨을 것 같은데. 직원들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습. 그게 아버님의 최대 장점이고, 윤 스포츠센터의 강점이잖아.”
“헤헤. 우리 아빠 칭찬을 동수씨에게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맞아요. 다시 기회를 주셨죠.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포기하신 거야?”
“아니요. 오기가 생기셨는지 본사일까지 뒷전으로 미루고 직원분들의 의식부터 뜯어고친다며 대략 6개월 정도 그곳에서 머무르셨어요.”
“성공하셨어?”
“네. 그곳이 지금의 윤 스포츠센터 분당점이에요.”
“뭐? 진짜? 설마 강남점과 함께 매출 1, 2위를 다투는 그곳?”
“네. 고생은 하셨지만, 지금 그분들은 아빠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서 그런지 다른 지점 직원분들보다 훨씬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세요. 그런 노력이 지금의 분당점을 만든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시구나. 아버님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윤 스포츠센터는 지금처럼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 종합클럽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긴 한데 엄마랑 나는 반년 동안 정말 외로웠었어요. 왠지 동수씨도 그렇게 될 것 같아 걱정이 들어요.”
“하하하. 난 아버님처럼 성공 못 할 수도 있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수씨는 꼭 성공할 거예요.”
“그래, 고마워. 우리 시연이가 그렇다고 하니 꼭 성공해야겠는걸?”
“그럼요. 할 수 있어요! 파이팅.”
시연이가 내게 해준 이야기는 동지마트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기업. 그런데 그 기업이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뒀다면,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사람을 바꾸지 않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덕분에 지금의 윤 스포츠센터 분당점이 만들어졌다면 충분히 기다려줄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윤승태 사장님처럼 6개월씩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세상 어느 조직이나 암세포 같은 인간은 존재한다. 조직이 건강하다면 그런 인간들이 힘을 쓰지 못하지만, 조직의 건강이 많이 약화되면 마치 제 세상인 마냥 활개를 치며 분위기를 더욱 망가뜨린다.
그런 암세포를 솎아내어 자생능력을 갖춰주는 것만으로도 조직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시연이는 확실히 내게 행운의 여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언더커버 팀장 미션(?)은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손님으로 가장한다면 누구보다 쉽게 이곳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행동거지를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들어가 볼까?”
“네. 언더커버 팀장. 미션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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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당점에 대한 설명이 좀 길어졌어요.
빨리빨리 진행할게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