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
언더커버 팀장 버전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가 시연이의 외모를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수수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었는데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연이가 예쁜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 보다 보니 면역력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대형 할인 마트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오면 누구보다 눈에 띈다는 사실을 내가 잠시 망각했다.
- 와. 저 여자 뭐냐? 뭐가 저렇게 예뻐.
그래. 예쁘다. 예쁜데 뭐 어쩌라고!
- 연예인 아니야?
아니거든. 학생이거든.
- 성형빨이네. 딱 봐도 알겠네. 쯧쯧. 얼굴에 돈을 처발랐네.
성형? 열폭하고 있네. 그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세요. 얼굴에 칼 한 번 안 댄 완벽한 자연 미인이거든.
- 그런데 저 옆에 딱 붙어 있는 남자는 좀 별로다.
- 그래도 키는 크잖아.
- 그럼 뭐해. 생긴 게 산적인데. 저런 미인하고 같이 다니는 걸 보니 남자가 부자인가 봐. 저 정도 미인을 차지한 걸 봐서는 재벌 집 아들이라도 되나 봐.
- 에이 그건 아니다. 얼굴 봐! 귀티하고는 거리가 멀잖아. 재벌가는 아니고 어디 졸부 집 아들인가 보지.
그래. 졸부집 아들이 아니라 졸부다. 로또에 당첨돼서 돈이 허벌나게 많다. 부럽냐? 그럼 계속 부러워해라. 찌질이 자식들아!
이건 시연이와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다. 귀가 밝은 편이라 웬만한 소리는 다 들린다. 이제는 면역이 될 만도 한데 저런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그녀에 비해 모자란다는 뉘앙스로 들려, 가슴 속 깊숙이 숨겨둔 못난 열등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한다.
한 살 더 먹어 21살이 된 시연이는 작년보다 더욱 아름다워졌다. 꽃망울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녀 또한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면역력이 생겼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가끔은 시연이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에 낯설음을 느낄 때가 있으니 더 이상 말해 뭐하겠는가. 지금도 이렇게 예쁜데 완전히 완숙해질 몇 년 후에는 얼마나 아름다워질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길을 가다 보면 연예기획사라며 길거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약혼자가 뻔히 옆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뻔뻔하게 작업을 거는 어이없는 벌어지기도 한다. 심할 때는 길을 가는 시연이의 팔을 붙잡고 안 놓아주는 바람에 시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도 시연이의 외모 때문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은 비일비재하다. 솔직히 그녀가 부잣집 딸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지금과 180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반인은 당연하고 웬만한 연예인조차 주눅이 들게 하는 엄청난 아름다움에 우리 학교를 전체수석으로 들어올 만큼 명석함까지 갖춘, 거기에 집안까지 대단한 그녀. 그래서 가끔은 ‘얘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랑 사귀는 걸까?’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의문이 나를 괴롭힐 때도 있다.
내가 로또에 당첨된 돈으로 편안하게 살지 않고 이렇게 아등바등 회사에 붙어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시연이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잘난 남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노력 중이다.
가끔은 오늘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는 열등감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런 식의 못난 감정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채찍질이 되기도 한다.
“시연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네? 왜요?”
“주변 사람들을 봐. 우리 시연이가 너무 예뻐서 사람들이 눈을 못 떼잖아. 이런 식으로는 언더커버가 불가능할 것 같아.”
“히잉. 어떡해요.”
언젠가부터 그녀도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니 바보가 아니라면 그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시연이는 언젠가부터 수수한 옷 위주로 많이 입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외모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패완얼.
패션의 완성은 얼굴. 그래서 패완얼이다. 그녀의 외모는 수수한 옷조차 빛나게 만든다.
“어떡하긴 따로 움직여야지. 윤권아.”
“네. 보스.”
나의 부름에 조용히 뒤따르던 커다란 덩치의 윤권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넌 지금부터 시연이와 함께 다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보스를 보필해야 합니다.”
“마트 안에서만 돌아다닐 거니까 내가 말한 대로 해. 가끔 보면 미친 척하고 시연이에게 접근하는 늑대들이 있으니 그런 놈들이나 제대로 막아줘.”
“알겠습니다. 그래도 그리 조금 뒤에서 뒤따르는 건 허락해주십시오.”
“녀석 고집하고는. 알았어.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 시연아. 미안하지만 신혼부부 컨셉트의 언더커버는 여기서 종료다. 잠깐만 윤권이랑 같이 다녀. 알았지?”
“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나는 그렇게 시연이와 윤권이를 뒤로 하고 동지마트 행당점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확실히 내가 다니던 다른 마트에 비해 시설이 낙후되어 깔끔한 맛이 많이 떨어졌다.
직원들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연이가 처음 윤 스포츠센터 분당점을 방문했을 때 그쪽 직원들의 눈빛이 죽어있다고 했는데, 이곳 행당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욕을 잃고 마지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소비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예민하다. 제품의 가격뿐만 아니라 매장의 분위기, 직원들의 친절도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행당점 분위기는 무겁고 어두웠다. 누가 봐도 자주 오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운이 매장 전체에 짙게 깔려 있었다.
“저기요. 이 제품 물건이 하나밖에 안 남았네요. 몇 개 더 구입하고 싶은데 재고 없나요?”
혹시나 싶어 물건이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골라 근처에 있는 직원에 질문을 던졌다. 미소를 띤 응대? 그딴 건 없었다. 무뚝뚝하다 못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대답도 듣기 전에 기분이 나빠졌다.
“네. 없습니다.”
혹시나 더 할 말이 나올까 싶어 직원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지만, 알았다고 대답하며 돌려보냈다.
나도 대형 할인 마트에 대해 이제 겨우 공부하는 입장이라 명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동안 소비자로서 다른 매장을 다니며 느꼈던 경험을 비춰 생각해보면, 직원의 행동은 매우 비상식적이었다.
보통은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스마트 기기로 곧바로 재고를 확인하고 재고가 있으면 창고에서 물건을 찾아 가져다준다. 만약 재고가 없으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언제 물건이 다시 들어오는지 알려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심지어 다른 매장의 재고를 확인해서 택배 배송을 해주겠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직원을 만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조금 전에 만난 직원은 모든 것이 건성이었다. 최소한의 친절 교육도 안 되어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하다. 대체 어쩌다가 행당점에 위기가 닥쳤는지 궁금했는데, 이것 하나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갔다.
동지마트 행당점에 대한 나의 실망감은 그 직원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제품 진열이 엉망인 곳도 있었고, 리뉴얼은 할 생각도 없는지 전체적인 제품 구성도 엉성해 보였다. 잘 나갈 것 같은 제품은 구석에 있고, 소비자들이 잘 찾지 않는 제품이 입구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엉터리였다.
마트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 눈에도 보일 정도면 직원들 눈에도 분명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시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둘 중 하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행당점 점장의 얼굴은 정말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리고 어떤 의도로 행담점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만나서 머리 뚜껑을 열어 그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이건 직무유기를 넘어서서 어떻게 보면 영업방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매장 안에 보안 요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호기심에 일부러 여기저기 찾아다녀 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매장 구석에 있는 직원 전용 출입구를 우연히 발견했다.
아무 생각없이 그곳에 들어갔지만, 나를 발견하고도 제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낡은 전구 때문에 약간 어두스름한 통로를 지나니, 행당점 직원들의 사무실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입구 왼편 사무실에서는 보안요원들이 모여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일과시간에 바둑을 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직원들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통로를 지나다녔다.
그때였다.
“당신 뭐야?”
좀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구역이다. 그런 곳에서 나를 제지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란 한편, 괜히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아, 그러니까...”
“협력업체 직원이야?”
“그렇죠. 협력업체 직원입니다.”
“알았어. 그럼 가봐.”
“하하하. 감사합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나를 잡았던 남자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냈다. 입구의 오른쪽 벽에는 ‘방문자 수칙’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경우 자신의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수령한 후에야 출입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걸 지키는 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무실 탐방을 계속했다.
============================ 작품 후기 ============================
일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마라마느님, 무사의한님 쿠폰감사합니다.
무단 연중하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