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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80화 (180/424)

0018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야! 저 새끼 잡아.”

나는 나의 멋진 행동에 만족하며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황당한 소리가 들렸다. 설마 ‘저 새끼’가 나? 이건 갑자기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밀폐된 공간이라고 해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납치되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몸은 이미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급한 마음에 밖으로 도망 나가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윤권이었다.

녀석의 얼굴을 보자 온몸을 죄었던 긴장감이 얼음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없었다.

콰광!

“죽고 싶은 놈만 자리에서 일어서라.”

윤권이는 보안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문을 한주먹으로 박살 내버리고는, 주춤거리며 일어나려던 보안요원들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순박하기만 하던 녀석의 몸에서는 그동안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보안실에는 5명의 직원이 있었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눌려 누가 하나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모습이, 내 눈에는 삼국지에서 조조의 5천 정예기병대를 장판교에서 홀로 막아낸 장비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반갑고 가슴 뭉클했다.

황달중 주임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잡으라고 지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문제는 지금 이 모습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확실하게 이곳 상황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Rrrr

나는 곧장 고현호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마 팀장. 무슨 일?

“저 지금 동지마트 행당점에 와 있습니다.”

- 뭐? 벌써? 하하하.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역시 마 팀장은 행동력이 끝내준다니까.

“그냥 쉬엄쉬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을 알아보려고 손님으로 가장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목소리를 들어보니 벌써 한 건 한 모양이군. 그래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이사님께서 믿을 수 있는 보안 요원들을 지금 이곳으로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흐음. 보안 요원을?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군. 알았어. 지금 당장 보내도록 하지. 혹시 경찰도 필요해?

“그건 이곳 상황을 먼저 정리한 이후 이사님에게 보고 드릴 테니 그때 판단해 주십시오. 이번 일이 언론에 나가면 그룹 입장에서 그리 좋은 일은 아닙니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달중 주임의 반응을 봤을 때 다른 기업으로부터 뭔가 모종의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사 직원을 잡으라는 간 큰 명령을 내릴 리가 없었다.

뭔가 믿고 있는 게 있든지, 아니면 알아서는 안 될 사실을 내가 알게 됐다든지 둘 중 하나였다.

- 그렇군. 알았어. 나도 바로 그리로 가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가서 나누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이해했는지 고현호 이사는 이곳에 오겠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권위의식이 거의 없어 엉덩이가 무겁지 않다는 점은 내가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보통의 재벌 2세라면 사안이 어떻든 본인의 본사 사무실에 편안히 앉아 나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쿠당탕!

“어이쿠.”

전화를 끊고 상황을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곳에서는 추미래씨가 황달중 주임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레슬링 선수들이 패시브 벌칙을 받았을 때나 볼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뒤엉켰다.

“놔! 안 놔? 이년이 진짜.”

황달중 주임은 어떻게든 그녀의 팔을 풀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추미래씨는 사생결단의 원수를 만난 듯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은 당황하는 바람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여자가 성인 남자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화가 난 황달중 주임이 혹시라도 혹시라도 폭력을 행사할까 봐 나는 재빨리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제 괜찮아요. 놔 주세요.”

“헉헉. 팀장님이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이 자식이 갑자기 도망가려고 했어요.”

추미래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실할 뿐만 아니라 제법 강단도 있었다.

“잘했어요, 추미래씨. 그만 일어나시죠, 황달중 주임님. 당신은 참 멍청한 사람이군요. 지금 이게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 같았습니까?”

“하하하.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도망가려던 게 아니라 화장실에 가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눈치도 없는 저년이...”

“추미래씨입니다.”

“네?”

“저년이 아니라 추미래씨라고요.”

“아, 그렇죠. 추미애씨. 그, 그러니까 추미래씨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추미래씨. 화장실이 급해서 가려는데 왜 사람을 붙자고 그래. 난 절대 도망가려고 하던 게 아니라고. 처녀가 아무 남자 다리나 그렇게 덥석 붙잡고 있는 게 아니야. 하하하.”

“웃기지 마요. 화장실은 팀장님 쪽으로 가야 나오는데, 왜 반대편으로 살금살금 움직였어요. 거기는 외부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문밖에 없잖아요.”

“그거야 팀장님께서 중요한 전화를 하고 계셔서 방해될까 봐 돌아가려고 했던 거지.”

“됐습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지금부터는 그냥 입 다물고 지금 사 있는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으세요.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그땐 제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사무실 안에서 일어난 소동이기 때문에 곁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도 모두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그 누구도 윤권이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녀석이 내뿜는 기세는 이곳의 모든 이를 압도하고 남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동수씨!”

급박한 상황이 끝났다고 느꼈는지 윤권이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던 시연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그럼 어떻게 해요. 동수씨가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버렸는데.”

“이상한 곳이 아니라 그냥 행당점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야.”

“그렇지만 동수씨는 또 큰일 날 뻔했다고요!”

“미안해. 설마 나도 사무실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꼭 윤권 오라버니를 대동하고 다니세요. 상수 도련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동수씨는 아무래도 트러블 메이커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사건 사고가 끊이지가 않아요.”

“헉! 시연아. 그럼 네 말은 지금 내가 사고뭉치라는 뜻이야?”

“그럼요! 사고뭉치에 애 같아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싫어?”

“네? 그건 당연히 아니죠. 동수씨가 좋으니까 이렇게 조마조마한 거라고요.”

“하하하. 그렇지? 그럼 된 거야.”

시연이와 내가 그렇게 닭살 돋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무도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20여 분의 시간이 지나자 한 무리의 남자들이 행당점 사무실을 향해 들어왔다. 상당한 덩치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누가 봐도 경호원이나 보안요원임을 알 수 있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가장 노련해 보이는 한 사내가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혹시 마동수 팀장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사님께서 보내셨겠군요.”

“맞습니다. 저는 동지그룹 가족 경호 제3팀 남진우 대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동지마트 본사가 있는 송파점에서 이곳까지 최소 30분 이상은 걸린다.

“그룹 본사에서 교육이 있어 이동 중이었는데 고현호 이사님의 긴급 호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중단하고 다른 팀 경호 요원까지 대동하고 왔습니다.”

얼핏 봐도 이곳에 나타난 경호원들의 숫자는 20여 명이 넘어 보였다.

“교육 중에 그렇게 함부로 움직여도 괜찮은 겁니까?”

“물론입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계 가족분들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와 대화를 나누던 남진우 대리는 보안실을 향해 눈을 돌리며 질문을 했다.

“누구 말씀인지... 아! 윤권이 녀석을 말하는 건가 보군요. 이사님께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번에 팀 하나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 녀석은 제가 운영하게 될 팀의 첫 번째 팀원입니다.”

“흠. 그래요? 희한하군요. 풍기는 느낌부터가 딱 우리 쪽 사람인 줄 알았는데.”

“틀린 건 아닙니다. 한때 경호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으니까요.”

“어쩐지 기세가 남다르다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됩니까?”

“우선 보안실에 있는 보안요원 다섯 명과 제 뒤에 있는 황달중 주임을 이곳 사무실에서 격리조치 해줬으며 합니다. 조사할 게 있거든요. 그리고 이곳에 있는 직원들의 입단속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실시하겠습니다.”

남진우 대리와 함께 온 가족 경호팀의 행동은 일사불란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는 격리조치 된 구석진 사무실로 찾아가, 갑자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지시한 이유가 뭔지 황달중 주임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대체 자네들은 뭐하는 놈들이길래 남의 영업장에 와서 이렇듯 방해를 하는가?”

사무실의 누군가가 연락했는지, 행당점 지점장이 어느새 나타나 따지듯 내게 달려든 것이다.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알고 있지만 모른 척했다.

“난 이곳 행당점의 지점정인 장경철일세. 본사에서 왔다고?”

“안녕하십니까, 지점장님. 저는 내일부로 동지마트 본사 TFT의 팀장을 맡을 마동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사에서 나온 팀장이면 다야? 팀장이면 이렇게 제멋대로 매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직원을 감금해도 돼?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딴 일을 벌이는 건가?”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들이 맡고 있는 동지마트 지점장이라고 해도,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다. 저렇게 짬밥으로 밀어붙여 버리면 어린 후배 입장에서 뭐라고 대꾸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그렇지 사건이 일어난 지 20분이 넘어서야 얼굴을 보인 건 너무했다. 지점에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다가,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나타난 것 같았다.

“자격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지마트를 완전히 뜯어고치라는 지시를 받았으니까요.”

“뭐? 완전히 뜯어고쳐? 내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해?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자네가 경찰도 아니고 어떻게 같은 직원을 격리시킬 수 있나? 당장 풀어주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사실이 잘못 알려지면 나는 계열사의 힘 없는 직원들을 감금한 파렴치한 본사 직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저들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대체 무슨 말로 둘러댈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나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장 지점장님. 제가 시켰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천리마마트에 이어 미생이 생각난다는 분도 계시네요. 미생과 제 글은 완전히 다를겁니다. 미생이 현실적이라면, 제 글은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아픈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속시원한 대리만족?

어쨌든 허접한 제 글을 그런 훌륭한 작품과 연관지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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