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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82화 (182/424)

0018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디일 것 같아?”

시연이가 떠나고 황달중 주임이 격리되어 있는 사무실로 이동 도중, 고현호 이사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보면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싶은 3-마트,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엘마트 그리고 점점 벌어지고 있는 1, 2위와의 격차를 줄이고 싶은 포에버마트. 사실 세 곳 모두 충분한 용의점은 가지고 있었다.

“글쎄요.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3-마트가 가능성은 가장 낮아 보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상권이 너무 겹칩니다. 이곳 동지마트 행당점과 3-마트 왕십리점은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밖에 다른 지점도 보면 대부분 3-마트와 비슷한 상권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긴. 동지가 대형 할인 마트 시장에 진출하니까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근처에다가 신규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지. 실제로 3-마트만 아니었으면 지금 동지마트가 이렇게 고전하고 있을 리도 없고.”

“네. 3-마트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제 살 깎아 먹는 멍청한 짓 따위는 할 리가 없죠. 물론 속단은 금물입니다. 동지마트가 엘마트나 포에버마트로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억지로 인수하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꼭 경쟁업체가 범인이라는 법은 없다. 의외로 내부 소행일 수도 있다. 특히 지금처럼 회장님의 세 아들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제 살 깎아 먹기식 견제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고현호 이사가 동지마트를 맡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일을 꾸미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공작이 이뤄졌다고 하기에 동지마트는 너무 곪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 곪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고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흠. 결국, 두 곳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군. 엘마트냐, 포에버마트냐. 마 팀장 생각은 어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률은 반반 아닐까요? 제가 알아보니 두 곳 모두 예전부터 동지마트를 탐내고 있었더군요. 경영상태가 엉망이긴 해도, 상권 자체가 워낙 좋으니까요. 엘마트가 인수하면 1위인 3-마트의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고, 포에버마트가 인수하면 어설픈 슈퍼 갑에서 확실한 슈퍼 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내기할까?”

“네?”

“두 곳 중 어디가 범인인지.”

“이사님께서는 두 곳 중 한 곳이라고 확신하시나 봅니다.”

“대충 상황을 봐도 꽤 깊이까지 파고들었어. 그 정도의 정성을 기울일 곳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되겠어? 설마 북한 소행은 아닐 것 아니야? 살인 사건을 보면 말이야. 피해자가 죽음으로써 가장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이 범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동지마트를 인수했을 때 가장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엘마트와 포에버마트고요.”

“그렇지. 그러니 거의 90% 확률로 두 곳 중 하나야. 어때 내기할까? 선택권은 마 팀장에게 먼저 주지.”

“음. 내기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뭘 걸 생각이십니까?”

남자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승부욕(내기), 서서 오줌 누는 것 그리고 여자. 무분별한 내기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지만, 적당한 내기는 삶의 MSG(?) 같은 역할을 한다.

“뭐가 좋을까? 차라도 걸까? 나는 911 터보 카브리올레, 자네는 X5. 어때?”

미친. 내가 눈앞에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2억이 넘는 자동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기에 걸다니. 평범해 보인다고 해도 역시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가 삼남다운 씀씀이였다.

내가 아무리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이 있다고 해도, 양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승부욕이라고 해도, 자동차를 내기로 걸 만큼 미치지는 않았다.

“미쳤습니까? 이사님에게 포르셰는 그냥 여러 컬렉션 중에 하나겠지만, 제게 X5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친구를 내기에 걸 수는 없죠. 그리고 이사님. 자꾸 이런 식으로 재벌티 내시면 같이 안 놀아드립니다.”

“하하하. 미안. 미안. 내가 사과하지. 마 팀장이 워낙 부티나게 생겨서 그래. 그러니 안 놀아준다는 말은 취소하게.”

나의 버릇없는(?) 행동에 고현호 이사를 수행하던 남진우 대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굴할 내가 아니다.

“직장 상사가 취소하라고 하니 취소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너무 귀찮게는 하지 마십시오. 임자 있는 몸이라서 항상 데이트가 우선입니다.”

“크윽.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내 여자친구도 몇 달 후면 한국에 완전히 귀국한다고. 그럼 나도 심심할 이유는 없지.”

“진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진 속의 그분 말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하시죠.”

“하하하. 그래. 그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고. 그나저나 내기를 뭐로 건다. 부모님이 포항에 사신다고 했지? 아버님은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고. 마 팀장이 이기면 내가 포항 동지 푸드쿡 매장 독점 권리를 주도록 하지. 어떤가?”

“네?”

“매장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권리만 주는 거니까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잖아.”

동지 푸드쿡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중 한 곳이다.

동지호텔에서 제공하는 요리를 캐주얼하게 만들어, 호텔 수준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지 푸드쿡의 목적이었다. 동지호텔이라는 유명세 덕분인지 그런 전력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서울·경기권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직영점 90%, 가맹점 10% 정도의 비율일 정도로 직영 우선으로 매장을 운영 중이며, 그래서 가맹점 경쟁률이 어머어마하게 치열하다고 알려져 있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포항 정도 규모의 도시에 독점권까지 주어진다면 이건 거의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알짜배기 권리를 내게 준다? 부모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편안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희귀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연이 광고권도 그렇고 대체 고현호 이사는 내게 뭘 바라길래 이토록 정성을 쏟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이사님은 내기에서 제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솔직히 확률은 반반이라고 해도 심증적으로 더 의심이 가는 곳은 있잖아. 거기가 어딘지는 마 대리 자네나 나나 같을걸?”

“대체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시연이 일도 그렇고 이번 부모님 일도 그렇고 너무 제게 지극정성을 쏟으시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 대체 제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러신다고 해도 제 목숨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나도 마 대리의 목숨을 바라진 않아. 그냥 평생 같이했으면 좋겠거든.”

“설마 그거 프러포즈입니까?”

“못 알아들은 척하지 말고.”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고현호 이사의 사람이 되라는 의미다.

“제가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이사님이 이러실 만큼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자네의 매력은 이번 일만 봐도 알 수 있어. 벌써 한 건 해버렸잖아.”

“그건 운이 좋아서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대부분 사람은 출근 이틀 앞두고 편안하게 쉬지, 자신이 일할 곳을 찾아가 조사를 벌이지 않아. 아까 전화통화를 하면서 말했지만 나는 마 팀장의 그런 행동력을 높이 사. 운이라고 했어? 그것도 성실하고 한번 결심하면 머뭇거리지 않는 행동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 생활 모습 덕분에 운이 찾아오는 거지. 그리고 그게 진짜 운이라면 그건 더 좋지.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모습만 봐도 마 팀장은 행운의 사나이니까. 곁에 두면 나도 운이 좋아질 것 같거든.”

“그런데 이것 참 서운합니다.”

“응? 뭐가?”

“저는 이미 빼도 박도 못하고 이사님의 사람이 된 거로 생각했는데, 이사님은 아직 저를 이사님의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씀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군. 내가 깜빡했군그래. 마 팀장은 이미 내 사람이었지. 자네 입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니 든든하기 그지없어.”

“저, 그런 오그라드는 말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아무튼, 내기에서 제가 이기면 포항지역 동지 푸드쿡에 대한 권리 넘겨주셔야 합니다.”

이유야 어쨌든 솔직히 동지 푸드쿡에 대한 독점권은 탐이 났다.

“물론이지. 그건 걱정하지 마.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지. 마 팀장은 어디가 가장 유력한 범인이라고 생각해?”

“이렇게까지 더럽게 구는 곳이 한곳밖에 더 있습니까? 와룡그룹이 운영하는 포에버마트. 아무래도 그곳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죠.”

============================ 작품 후기 ============================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어제 김장김치랑 같이 먹은 굴 때문인지 하루종일 복통에 시달렸습니다.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스토리 진행을 못 하고 신변잡기식 이야기가 주를 이뤘네요.내용도 짧고요 ㅠ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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