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85화 (185/424)

0018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미친 소리 같지만 장경철 지점장님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보세요. 얼른 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봐. 남 대리. 그냥 전화 걸라면 걸어. 지금 당장.”

급한 마음에 내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는지, 남진우 대리는 그제야 두말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장경철 지점장님은? 뭐? 그냥 지점장실에 혼자 두고 너희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그게 말이 돼? 이것들이 정말. 지금 이게 지점장 대우를 해줄 상황인 줄 알아? 당장 들어가 확인해.”

대화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확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 짧은 침묵이 사무실을 무겁게 만들었다. 고현호 이사도 그제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듯 얼굴이 심각하게 굳은 채 남진우 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없어? 없어졌다고? 대체 일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일이 일어나? 대기해. 내가 올라갈 테니까.”

“뭐랍니까?”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역시 그렇군요.”

혹시나 했는데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인정한다. 솔직히 내가 순진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의 대기업이면 엄청나게 거대한 기업이다. 그런 곳의 차기 총수자리를 노리는 다툼이 평범할 리가 없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제가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같이 갑시다.”

“네?”

“솔직히 말씀드려 장경철 지사장님을 지키던 경호원 두 사람. 믿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나도 같이 가지. 조짐이 좋지 않아.”

“그렇게 하시죠. 그리고 황달중 주임은 철저히 지키도록 하세요. 이번에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배치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소리친 것 때문일까? 아까와는 달리 남진우 대리의 대답이 빠르게 나왔다.

“이사님. 지금부터는 정말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만약 이번 일에 이사님의 형님 중 한 분이 개입했다면 이건 기회입니다. 잘만 이용하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낙마시킬 수도 있습니다.”

“흐음. 그래. 좀 어이없는 사태이긴 하지만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군. 대체 무슨 이득을 보려고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동지마트를 팔려고 했을까?”

“저도 모르죠. 아무래도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동지마트를 넘기는 대신 후계자 싸움에 힘을 보탠다든지 하는. 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점장실로 같이 가시죠.”

똑똑똑.

지점장실이 있는 7층 라운지로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정중하지 않고 다급한 소리였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불길했다.

“네. 들어와요.”

“이사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조금 전 이곳 지점 왼편 화단으로 양복을 입은 남성이 투신했다고 합니다.”

경호원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양복을 입은 한 남성이 이곳 행당점 지점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이봐. 마 팀장.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게 설마 이것도 포함된 이야기였어?”

“이것까지 생각했는지 안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정말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고현호 이사나 나나 그 사람이 장경철 지점장일 거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사고현장이 어디야. 당장 가봐야겠어.”

“안 됩니다. 이사님.”

고현호 이사는 갑작스러운 사고소식에 많이 흥분했는지, 침착함을 잃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마 팀장. 비켜서. 조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어. 당연히 가봐야지.”

“그래도 안 됩니다. 만약 정말 만약, 투신한 사람이 장경철 지점장님이라면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행당점 지점에 이사님이 방문한 사실이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님이 방문과 행당점 지점장의 투신. 타이밍이 별로 안 좋습니다.”

“하지만 마 팀장.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내가 그렇게 다그치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겠지. 모른척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있어. 그러니 비켜서.”

“대중들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니죠. 이사님 때문이 아니라 이사님이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죠.”

“뭐?”

“대중들은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재벌 2세. 그 재벌 2세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지점장이 자살하다. 비난의 화살이 어디로 쏠릴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지점장이 나쁜 놈인데, 사람들은 이사님을 나쁜 놈이라고 욕할 겁니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거든요.”

“욕 좀 먹으면 어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되어있어.”

“정신 차리십시오. 이사님!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모른척하는 겁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해.”

“황달중 주임의 말에 따르면 장경철 지점장은 이사님의 형님 중 한 사람을 낙마시킬 수 있는 중요한 키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정하십니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버지 모르게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행위잖아. 그런 배임행위를 아버지께서 용서할 리가 없지.”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한민국 재계서열 5위 안에 드는 거대 대기업입니다. 그런 곳의 차기 총수 자리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만약 이사님의 형님 중 한 분이 배후라면 조용히 당하고 있겠습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두 형님 중 한 사람이 장경철 지점장을 죽이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으십니까?”

“...”

고현호 이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보십시오. 이사님도 확신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죽이진 않았다고 해도 자살을 선택하게끔 상황을 몰아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크윽.”

“분명한 것은 이사님 모르게,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회장님 모르게 누군가 일을 꾸몄다는 겁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정황만 보면 이사님의 두 분 형님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계략이 발각 나자마자 이번 일에 가장 깊숙이 참여했던 지점장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고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었어. 자넨 아무렇지도 않아? 어떻게 그렇게 침착해?”

“침착요? 지금 제 손 안 보이십니까?”

고현호 이사의 질문에 나는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오른손을 보여줬다.

“그렇게 떨고 있으면서 그렇게 냉정해?”

“살려고 그럽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질 줄 알았으면, 이사님과 한 배에 타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엄청나게 후회 중입니다. 지금은 지점장이지만 그들의 눈에 거슬리면 그다음 피해자는 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침착해져야죠.”

나도 내가 냉정한 인간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함을 유지할 줄은 몰랐다. 당장 도망가도 시원찮을 상황에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낯설고, 한편으론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 그렇지. 마 팀장 말이 맞아. 일단은 침착해야지. 내가 너무 흥분했던 것 같군. 후우.”

내 말을 들은 고현호 이사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젠 이사님이 낙마 걱정을 하셔야 할 상황입니다.”

“뭐?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만약. 자꾸 ‘만약’이라고 가정해서 죄송합니다. 만약 이사님 형님 중 한 분이 이번 동지마트 사태의 주동자이고, 장경철 지점장의 자살 건에도 개입했다면 그다음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그 정도 독기라면 지금과 같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 어떤 기회인데?”

“이사님과 장경철 지점장의 자살을 연관 지어 사회적으로 매장 시켜버릴 기회. 아무리 이사님의 잘못이 없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기 시작하면 차기 총수 자리는 끝입니다. 경쟁자 한 명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쪽에서 놓칠 것 같습니까?”

이미 고현호 이사가 자살현장으로 나타나길 기다리는 기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지 못해도 고현호 이사가 행담점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증언할 직원들은 이곳에 가득했다. 그것만 있어도 충분하다.

“정말 그렇다면 이미 늦었겠군. 내가 이곳에 온 사실을 완전히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낙담할 때는 아닙니다. 아직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인데?”

“거래를 해야죠. 이번 일의 주동자와.”

“누구인 줄 알고?”

“혹시 이사님 형님 두 분 처가 중에 와룡그룹과 관련된 곳이 있습니까?”

“없다고 하기도 있다고 하기도 애매해. 직접 관련된 사람은 없어. 하지만 이 바닥이 알고 보면 한집 건너면 전부 친척이야.”

“그래도 좀 더 가까운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평호 형이 가깝다고 할 수 있지. 형수님 남동생이 와룡그룹 회장님의 조카, 그러니까 회장님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어.”

“그럼 범인은 고평호 상무님일 겁니다.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서 거래하십시오.”

“뭐? 지금 당장?”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쪽은 이미 기사까지 써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어떻게 거래해야 하는지 그것까지 알려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지금까지 정도의 추론은 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 때문인지 평소의 총명한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고현호 이사의 자존심을 긁었다.

“아니야. 그건 내가 하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미안해.”

고현호 이사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작품 후기 ============================

어제 빼먹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화는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장경철 지점장을 그냥 도망가는 선에서 끝내야 할지 아니면 자살을 택하게 만들지.

몇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자살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연재도 빼먹으며 고민한 결과가,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