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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86화 (186/424)

00186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남진우 대리님.”

나는 고현호 이사가 통화를 하는 동안 조용히 남진우 대리를 불렀다.

“네. 말씀하십시오. 마 팀장님.”

“황달중 주임은 확실히 지켜야 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미 믿을만한 직원을 배치시켜 놨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부탁은 정말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하셔야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내 말에 남진우 대리가 조용히 다가왔다. 이젠 확실히 이사님의 측근 대접을 해주는 듯했다.

“장경철 지점장님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을 지금 즉시 체포해주십시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요. 이유는 제가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

세 명의 형제 중 가장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고현호 이사. 그러나 그의 아버지인 고대성 회장은 명석한 머리에 비해 독기가 부족하다며 늘 아쉬워했었다. 그런 그의 단점은 조금 전 일어난 장경철 지점장 투신자살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동지그룹의 패권에 욕심을 가졌지만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쉽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곁에 괴짜라고 평가받는 마동수 팀장이 버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 팀장의 냉정한 분석에 겨우 정신을 차린 고현호 이사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정경철 지점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땐 상황이 복잡해진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곧바로 둘째 형인 고평호 상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Rrrr

“오. 우리 셋째가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고평호 상무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장경철 지점장의 투신자살 소식에 대해서 전해 모르는 듯 보였다. 고현호 이사는 둘째 형의 너무나도 편안한 목소리에 혹시라도 마동수 팀장의 추측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겪어본 마동수 팀장은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평범한 형제들처럼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형들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도록 교육을 받았었다. 물론 막내인 고장희는 예외였지만.

“물어볼 게 있다고? 그게 뭔데?”

“방금 장경철 지점장이 투신자살을 시도했어요.”

고현호 이사는 굳이 돌려 말하지 않고 돌직구를 날렸다.

“뭐? 누구? 장경철 지점장? 그게 누군데? 투신자살을 했다는 건 안타깝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내가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야?”

“네. 형님이 관여하신 일이니 당연히 알아야 할 사람이죠.”

“내가 관여를 했다고? 그게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야? 너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형님. 장경철 지점장이 뛰어내렸다고 끝이 아닙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장 지점장이 심복처럼 데리고 다니던 친구가 있어요. 황달중 주임이라고. 그 친구가 이미 다 불었습니다. 이미 비디오로 촬영까지 해놔서, 빼도 박도 못할 겁니다.”

“쯧쯧. 난 네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형으로서 한가지 충고를 하마. 사람의 증언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어. 비디오 촬영? 그런 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면 그만이야.”

태연한 어투였지만 고현호 이사는 고평호 상무의 이야기가 묘하게 늘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평소 깔끔한 대화를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쓸데없는 사족이나 마찬가지였다.

“형님이야말로 뭘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뭐야? 오, 현호야! 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려고 드는 거야? 하하하. 많이 컸구나. 그럼 알려줘 봐. 귀를 씻고 너의 가르침을 들을 테니.”

“증언은 뒤집힐 수 있다고요? 순진하십니다, 형님. 지금 이건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판결받는 게 아닙니다. 판사가 있긴 하죠. 대 동지그룹의 독재자인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에게 법적 증거능력은 중요하지 않을 걸요? 지금 가지고 있는 비디오만 보여 드려도 아버지는 곧장 형님부터 의심할 겁니다.”

“아버지가 뭐 때문에?”

말투에서 묻어나던 여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때 마동수 팀장이 조용히 메모를 건넸다.

‘지점장실에 대기 중인 경호원 확보.’

짧은 메모였지만 고현호 이사는 그게 무얼 뜻하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왜긴 왜입니까? 형수님 남동생과 와룡그룹 회장 조카딸이 부부 사이이니 당연히 형님부터 의심하겠죠. 그리고 반가운 소식을 누가 알려주네요. 조금 전 장경철 지점장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 두 명을 조용히 구금했습니다.

“뭐?”

“혹시 형님께서 또다시 착각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그들을 경찰에 넘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황달중 주임의 증언이 담긴 비디오와 함께 그 두 사람을 아버지에게 넘기면 알아서 하시겠죠. 형님도 아버지 성격을 잘 아니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 가죠? 형님께서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니 전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자, 잠깐. 야! 현호야!”

“네. 형님. 저 전화 안 끊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녀석. 진짜 많이 컸네. 놀이공원에 처박혀 있길래 아직도 유약한 어린 시절 내 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깡다구가 많이 늘었어.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리 태연하게 전화를 하다니 말이야. 괜찮은 놈 하나를 물었나 봐?”

이미 다 들통 났다고 생각했는지 고평호 상무의 표현이 노골적으로 변했다. 특히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표현에 고현호 이사는 욕지기가 튀어나올 뻔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장경철 지점장을 죽였어’라고 인정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눈앞에서 마동수 팀장이 크게 심호흡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정말 이성을 잃고 크게 분노했을지도 몰랐다.

“저야 항상 사람 복은 많았습니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고현호 이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렇긴 했지. 재수 없을 만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긴 했었지. 그래.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 너도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아버지께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하지 않고 내게 전화를 한 거겠지?”

“저는 그냥 덮겠습니다. 그러니 형님도 동지마트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물러나시죠. 지금 행당점 주변에 대기시켜 둔 기자들의 철수까지 전부 포함해서요. 뒤탈 없게 완전히 정리해주세요.”

“뭐? 하하하. 이야! 기자까지 예상한 거야? 순수했던 우리 현호가 이렇게 많이 성장하다니 형이 정말 반가우면서도 씁쓸하구나. 넌 그냥 권력 다툼없이 조용히 동생으로만 있어줬으면 했는데.”

“동생 뒤통수치려고 그 짧은 시간에 기자까지 준비한 형님께서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글쎄다. 너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겠지. 차라리 이번에 조용히 물러나는 게 아귀다툼의 진창에서 형제까지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나았을 거라며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 그래. 이번에는 내가 물러나 주마. 그동안 동지마트에 공들인 게 아깝지만 같이 죽을 순 없으니 포기해야겠지. 그런데 현호야.”

“네. 형님.”

“너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적어도 형님처럼 안 될 자신은 있습니다.”

“하하하. 역시나 아직은 로맨티시스트구나 우리 현호가. 그 마음 변함없길 바라마. 그럼 나는 이번 일 마무리해야 해서 이만 전화 끊는다.”

달칵!

고평호 상무의 음모를 분쇄했는데도 고현호 이사의 마음은 통쾌하지 않고 씁쓸했다. ‘달칵’하며 끊어지는 통화연결음이 둘째 형과 자신의 단절을 알리는 것 같았다.

***

대충 들어보니 통화는 무사히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전화를 끊는 고현호 이사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피를 나눈 형제간의 싸움이 유쾌할 리 없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뭔가 위로의 건네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는 엉뚱하게도 ‘수고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수고는 무슨. 마 팀장아.”

“네. 이사님.”

“나 말이야. 정말 마음 독하게 먹고 성공할 거야. 형님들 같은 사람이 우리 동지그룹을 운영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 거야. 그러니 마 팀장이 많이 도와줘.”

“왜 갑자기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까? 언제는 실패할 생각이셨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내가 이래서 마 팀장을 좋아해. 내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대답을 해서 좋아. 동수야.”

고현호 이사가 다정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깊숙이 상처가 느껴졌다.

“왜 그렇게 느끼하게 부르십니까? 전 여자가 좋습니다만.”

“짜식. 분위기 깨긴. 나도 여자가 좋아. 인마. 그냥 진짜 잘해보자고. 그런 의미에서 악수나 한번 하자.”

“아, 정말! 가지가지 하십니다. 느끼하게 왜 이러십니까? 진짜 딱 한 번만입니다. 앞으로 이러시면 정말 안 놀아드립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려 했는데 조금 전 그의 눈에서 얼핏 보인 상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비싸게 굴긴. 이야. 덩치가 커서 그런가? 손바닥도 엄청나게 크네. 듬직하다 듬직해. 앞으로 정말 잘 부탁한다. 마 팀장.”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내밀자, 고현호 이사는 괜한 호들갑을 떨며 천천히 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서 따뜻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왠지 인간적이면서도 믿음직해 나쁘지 않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사님.”

“응. 왜? 무슨 할 말 있어?”

“이유야 어쨌든 와룡그룹이 개입한 건 사실이니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솔직히 동지 푸드쿡 포항지점 독점권이 탐이 났었다. 부모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방법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연히 와룡그룹이 개입했을 거로 생각했던 동지마트 사태는, 예상외로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3-마트와 엘마트는 물론 내부세력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으니 포에버마트가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하기가 조금 애매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민망했지만, 이런 일일수록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다.

“당연하지. 주범이라기 보다는 공범에 가깝지만, 주범이 우리 작은 형님이니 어쩌겠어. 그리고 여유가 되면 동지마트 주식도 좀 사두지그래?”

“동지마트 주식을요?”

“지금은 똥값이지만 우리가 되살릴 거잖아. 그러니 미리 사두는 게 좋지 않겠어?”

“이거 뭔가 내부자 거래 같은데요?”

형진이 덕분에 주식에 크게 한 번 댄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고현호 이사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겁부터 났다.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면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면 내부자 거래로 잡을 명분이 없지. 그럼 우리사주를 가진 사람은 전부 내부자 거래게? 왜 동지마트 살릴 자신이 없어?”

예전에는 우리사주라도 6개월 이내에 매매해 생기는 이익은 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으로 간주해 반환토록 했었다. 2007년인가 그 규정이 바뀌었고, 내가 임원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긴 했다.

지금 동지마트의 주가는 2,000원 언저리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대략 1,600억 원 정도 된다. 그런데 동지마트의 실제 가치는 그것보다 높다. 전국에 있는 10개 매장이 전부 알짜배기라서 땅값과 건물의 전체 시세만 따져도 4 ~ 5,000억 원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부채도 있기 때문에 순수 자산을 5,000억 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도 원래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경영상태 때문이었다.

동지마트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꽤 괜찮은 주식 투자가 된다. 원래 가치인 주당 5,000원 선만 회복해도 두 배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동지마트 주식이라? 갑자기 땡긴다. 하지만 일단은 관심 없는 척 한 발 뺐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건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사님.”

“왜 또 할 말이 있어?”

“진짜. 진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한 번만 더 손잡아 달라고 조르시면 정말 안 놀아드립니다.”

“뭐? 하하하.”

============================ 작품 후기 ============================

뭔가 결론이 나올 것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이라 꽤 여러회를 할애했습니다. 아무도 낙마하지 않아서 좀 허무한가요?

어쨌든 이제부터는 동지마트 살리기가 시작됩니다. 권력투쟁은 잠시 수면아래로 들어갑니다. 다시 소소한 이야기가 시작되겠죠? 잠시 스케일을 키웠더니 온몸이 피곤하네요. ㅎㅎ

요즘들어 쿠폰 선물을 주시는 분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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