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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87화 (187/424)

0018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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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성 회장은 평범했던 동지그룹을 재계서열 5위의 굴지의 대기업으로 올려놓았다. 아무리 괴팍하고 독재적인 성격으로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이룩해놓은 업적을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그가 쌓아올린 엄청난 업적만큼이나 세간의 부러움을 받는 것이 바로 자식농사였다.

호랑이가 호랑이 새끼를 낳는다는 말은 이제 옛말. 요즘은 고양이 새끼뿐만 아니라 쥐새끼를 낳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모 재벌가는 자식들이 하도 사고를 쳐서 사고 수습 전담팀을 따로 만들 정도로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동지그룹은 달랐다. 장남 고정호부터 막내 고장희까지 네 사람 모두 미국의 명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귀국할 정도로 명석하고 성실했다.

오히려 그래서 문제였다. 누가 해도 동지그룹 차기 총수에 어울릴 만큼 걸출한 인재들이다 보니, 고대성 회장의 나이가 70세에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후계구도는 안갯속이었다.

장남인 고정호 전무의 나이가 벌써 42세. 가장 정력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기에 동지그룹의 발전보다는 후계다툼을 우선하고 있으니, 그룹 전체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나 굉장한 손해였다.

하지만 고대성 회장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후계자 다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방관자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몇몇 임원들이 그룹의 안정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후계자를 명확히 하는 게 좋다고 간언을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고정호 전무.

2010년 현재 나이 마흔두 살. 고대성 회장의 동생인 고진성 전무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지그룹의 지주회사인 주식회사 동지의 전무로 승진했다. 동지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와튼스쿨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동지그룹 내 뿐만 아니라 그룹 외적으로도 서울대 라인은 그에게 강력한 힘이다. 서울대와 와튼스쿨의 졸업자라는 수식어는 보수적 그룹 인사들에게 큰 플러스 요인이다.

장남답게 리더십이 있으며 호탕한 성격의 기분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감정적 일 처리가 많고 지나치게 서울대 위주의 인맥형성에 의존하는 것은 단점이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그의 약점 중 하나다.

고평호 상무.

나이 서른아홉 살. 고정호 상무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무로 올라섰다. 동지 중공업의 실질적인 책임자다.

하버드 STAT(Statistics, 통계학)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다. 하버드를 비롯한 IVY 리그 출신들을 자신의 인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1등 지상주의자. 하버드 대학을 선택한 것도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간판 때문. 심지어 배우자 선택도 철저히 계산에 의해 이뤄짐. 굉장히 냉정하며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성격. 자기 관리가 철저하여 약점이 될만한 건 없다. 계산적이고 냉정하다는 건 그의 장점이자 단점.

고현호 이사.

나이 서른일곱 살. 이 년 전 한국 귀국. 오랜 외국 생활로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와는 달리 한국에 다져놓은 기반이 거의 없음. 동지마트의 책임자.

스탠포드에서 ARCG(Archaeological Studies, 고고학)을 공부하다가 갑작스럽게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꿈. 뒤늦게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세 명의 아들 중 가장 명석하다는 평가답게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스탠포드 비즈니스 스쿨 최우수 졸업.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재벌 2세 답지 않게 선입견 없는 소탈한 성격으로 여러 사람과 골고루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그의 포용력은 최고의 장점. 그러나 그룹 내 인맥이 거의 없는 그가 동지그룹의 차기 총수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장희 과장.

나이 서른한 살. 동지랜드로 발령 후 1년 만에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 과장이긴 하지만 동지랜드의 실질적인 주인.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던 도중 도미.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산업 디자인(Industrial Design) 전공. 오직 동지랜드를 살리기 위해 공부를 시작.

동지그룹의 경영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나 그녀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막대한 유산 덕분에, 차후 경영권 향방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음.

***

동지마트의 본사가 있는 송파점은 지하철 3호선과 8호선이 만나는 가락시장역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 역시 올림픽 훼밀리 타운 등 여러 아파트 단지가 붙어 있어 상권으로는 최적의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옆에 가락동 청과물 도매시장과 농수산물 채소시장이 있어 상권이 겹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가락시장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다른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동지마트를 들렀다 가면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7,000 세대가 넘는 올림픽 훼밀리 타운 1, 2, 3단지를 생각하면 기대 이하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휴. 여기도 행당점하고 다를 바가 없구나. 암울하다. 암울해.”

동지마트 송파점을 들어서자마자 드는 첫 번째 느낌은 행당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새단장을 한지가 언제인지 분위기는 칙칙했고,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욕이 없는 죽어가는 조직. 활기찬 곳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거의 컨트롤 C로 복사해서 컨트롤 V로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판박이였다.

“그렇게 암울하십니까?”

나의 푸념에 윤권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실질적으로는 내 보디가드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동지마트 TF팀의 일원. 내가 지나가는 말로 마트 일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했더니,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물론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장경철 지점장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아마 경찰에서는 자살로 결론이 나겠지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나는 타살 혹은 타살에 가까운 자살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나라고 해서 안전할까? 그러니 윤권이 녀석은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여기 직원들 표정이 어때?”

“무뚝뚝해 보이긴 하군요.”

“방실방실 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저렇게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물건 살 맛이 생기겠어?”

“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친절이 과해서 물건 살 때 간섭하려는 직원이 더 귀찮습니다. 차라리 저렇게 무뚝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좋습니다.”

“하하하. 참 너다운 답변이다. 물론 네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야. 가끔 지나치게 친절해서 강매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우리 직원이 아니라 협력업체에서 고용한 판매원이겠지. 어쨌든 대부분의 손님들은 너와 달리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직원을 선호해.”

“그거야 바꾸면 되지 않습니까?”

“말이 쉽다. 사람이 로봇이냐. ‘지금부터 웃음을 짓겠습니다.’라고 하면 없던 미소가 갑자기 생길 것 같아? 저것도 교육이 필요해. 지금 당장 매출 증대 방안을 마련해도 모자랄 판에 미소 짓는 법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니 얼마나 암울하겠어.”

“제가 예전에 학생들을 상대로 유도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등을 1등으로 만드는 것보다 꼴찌를 중간으로 올리는 게 훨씬 쉬웠습니다. 기초만 제대로 가르쳐도 성적이 쑥쑥 오르더군요.”

제 딴에는 나를 위로한다고 하는 말 같았다.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맞아. 기초가 부족한 사람에게 기초부터 제대로 가르치면 당연히 실력이 늘겠지. 그런데 동지마트가 속해 있는 대형 할인 마트 시장은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곳이 아니야. 최고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같은 곳이라고. 예를 들어 국가대표를 뽑는데 낙법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 지금부터 낙법을 가르친다고 국가대표가 될 것 같아?”

“아니요. 국가대표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거야. 남들은 날고 있는데 우리는 기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니 문제지. 그래서 암울하다는 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

“네. 보스께서 왜 그렇게 암울하다고 하시는지 확 이해가 갑니다. 국가대표 후보에게 낙법부터 가르치라고 하면 전 그냥 포기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면 안 되니까 문제지. 아! 암울하다. 그래도 어쩌겠냐? 까라면 까는 게 직장인의 숙명인 것을. 가자 윤권아. 일단 사무실로 가자.”

나는 우울한 마음을 뒤로하고 윤권이와 함께 본사 사무실이 있는 7층으로 향했다. 동지마트 송파점은 지하에 매장 사무실이 있고, 7층에는 본사 직원들만 머물고 있다. 뭔가 좀 불공평하긴 하지만 계약직보다는 정직원을, 지점 직원보다는 본사 직원을 우대하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의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난 이런 불공평한 분위기가 싫어요. 지점 직원들도 7층에서 같이 일하게 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지하로 내려가겠습니다.’라고 항변할 마음은 없다. 나라는 인간이 원래 그다지 정의롭지는 않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동지마트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방문자이시면 방문 목적을 밝혀주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입구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룹 본사에서 동지마트로 발령받은 마동수 팀장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동수 팀장 대우이지만, 원래 다들 대우라는 꼬리표는 생략하곤 한다.

“아! 인사팀장님으로부터 오늘 출근하실 거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럼 혹시 뒤에 있는 분은...”

“성윤권이라고 새롭게 만들어진 TF팀의 팀원입니다. 혹시 이 녀석 명단도 같이 올라와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드리는 건 임시 출입증 카드입니다. 증명사진을 인사과에 제출하시면 곧바로 정식 출입증 카드를 만들어 드릴 겁니다.”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파란색 목걸이 줄이 달린 임시 출입증 카드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추미래씨는 출근했나요?”

“TF팀에 새로 발령 난 여성분이라면 이미 출근했습니다. 사무실은 오른쪽 복도 끝에서 세 번째 방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그녀에게서 받은 출입증 카드를 목에 착용하고 설명 들은 대로 오른쪽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앞에는 웬 여직원이 큰 쟁반에 10잔이 넘는 커피를 올려놓고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낯이 익었다.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나 추미래씨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래씨.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윤권씨도 안녕하세요.”

“그런데 미래씨. 지금 그 많은 커피를 들고 어디를 가십니까?”

“이거요? 조금 전에 총무팀인가? 거기 직원이 회의를 해야 하는데 바쁘다면서 제게 부탁을 하셨어요.”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그러니까 지금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라, 바쁘다고 하니까 제가 도와드린다고 나서기도 했고.”

황달중 주임에게 대차게 대들던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조금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계약직 직원이 갑자기 본사로 발령받았으니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에게가 아니라 추미래씨에게 커피 심부름을 유도한 총무팀 직원에게 화가 났다.

“추미래씨.”

“네. 팀장님.”

“추미래씨는 TF팀의 팀원입니다. 추미래씨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고현호 이사님과 저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TF팀의 팀원이 보강되면 아마 미래씨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이나 대리급 직원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하면 모두 수평적 관계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는 일, 없습니다. 커피 심부름? 당연히 없습니다. 아셨죠.”

“네. 팀장님.”

“윤권아.”

“네. 보스.”

“여기선 보스 말고 팀장님이라고 불러. 회사잖아.”

“네. 팀장님.”

“미래씨가 들고 있는 쟁반 받아서 내 뒤를 따라와라. 커피를 처먹고 싶다고 하니 직접 가져다 드려야지. 가자.”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열받은 마동수.

기다려라, 총무팀아! 우리 팀원에게 감히 커피 심부름이라니.

내가 커피에 대해 얼마나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 너희는 모를 거다.

본격적인 후계다툼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한 인물 설명을 추가했습니다. 물론 설명처럼 고현호 이사의 기반이 아무 것도 없는 건 아닙니다. 아직 밝혀진 게 아닐뿐, 그리고 고현호 이사의 최측근인 새로운 인물이 조만간 등장합니다. 형가사에서 아주 잠깐 언급했는데 설마 기억하는 분 안 계시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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