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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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마트 본사 총무팀 사무실.
“이봐. 김 대리.”
“네. 팀장님.”
“TF팀은 지금 뭐 해?”
총무팀의 한상질 팀장은 TF팀과 마동수가 계속 거슬렸다. 커피 심부름으로 시비를 걸어보려고 했지만, 유도 선수 출신이라는 직원 때문에 기가 눌려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동지마트의 다른 직원들은 총무팀의 판정패라며 수군거렸고, 그는 그것 때문에 상당히 자존심 상해 있었다.
그래서 총무팀 직원들에게 TF팀을 염탐해오라는 터무니 없는 지시까지 내렸다.
“그냥 그 여직원 이름 뭐지? 추미래? 아무튼 그 계약직 여직원 혼자 있던데요. 마동수 팀장이랑 조폭 같은 새끼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더군요.”
“팔자 좋군. 이사에게 신임받는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군. 일과 중에 사무실도 안 지키고 말이야. 재수 없는 새끼. 이봐. 다들 모여봐.”
한상질 팀장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총무팀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총무팀 안에서뿐만 아니라 동지마트에서도 상당한 파워를 발휘하는 그의 지시에 모두들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회의실에 모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의욕없이 살아가는 평소의 그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 모였습니다. 팀장님.”
“너희도 지난번 회의에서 마동수 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 망신당한 일을 잊지 않고 있겠지? 고작 고졸 계약직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는 이유로 말이야.”
“물론입니다. 팀장님. 그 깡패 같은 자식에게 협박당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나서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입니다. 마동수 팀장, 본사에서 일했다고 하길래 좀 점잖게 행동할 줄 알았는데 양아치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회사 일에 깡패까지 동원하는 건, 양아치도 보통 양아치가 아니라는 거지. 절대 마동수 그놈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런데 팀장님. 소문에 의하면 고현호 이사가 뒤에 버티고 있다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흥. 너희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해봐라. 지금 우리 동지그룹은 회장님의 세 아들이 후계자 싸움을 하고 있어.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셋째 아들이 망해가는 동지마트로 발령이 났다. 어떤 상황인 것 같아?”
자기들이 일하는 동지마트를 망해간다고 표현하는데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누구 하나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혹시 후계자 싸움에서 밀렸다는 말씀인가요?”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딴 곳에 셋째 아들을 보낼 리가 없잖아.”
“그 비슷한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지 그룹의 후계 다툼 이야기가 타오자 머리에 젤을 잔뜩 바르고 하얀색 안경테를 낀 남자가 아는 척을 했다.
“그래? 어떤 이야긴데?”
“원래 고현호 이사는 동지그룹 후계자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 참. 회장님 아들 세 명이 모두 공부를 잘했다는 건 다들 아시죠?”
“알지. 고정호 전무는 서울대, 와튼을 나왔고, 고평호 상무는 하버드, 고현호 이사는 스탠퍼드를 나왔잖아. 그런데 그게 왜?”
“그런데 고현호 이사 말입니다. 처음에는 경영학이 아니라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하더군요.”
“고고학? 그럼 원래는 그냥 공부 좋아하는 샌님이었다는 뜻이네.”
“그렇습니다. 무슨 계기로 갑자기 후계자 다툼에 뛰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공부만 좋아하는 그런 학구파였답니다.”
“우리 회장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긴 하지. 당신의 세 아들 중 셋째가 머리는 가장 명석하다. 그러나 강단이 부족해서 많이 아쉽다. 그게 아니었으면 자신을 뛰어넘을 최고의 경영자가 되었을 것이다.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친분 있는 본사 이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었지. 어쨌거나 성격이 유약하다는 건 사실일 거야. 그런 성격으로 동지마트 직원들을 휘어잡겠다고? 웃기는 소리지. 아마 우리가 마동수 그 자식을 엿 먹여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쳐다보기만 할걸?”
“그럼 어떻게 할까요? 사소한 것부터 괴롭혀 볼까요?”
“어떻게 사소한 것?”
“TF팀 앞으로 배정된 예산 집행을 전부 막아 놓을 수도 있고. 법인 카드 일시 정지를 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 나거든요. 특히 접대 자리에 나가서 법인카드가 안 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오! 그거 괜찮은 방법입니다. 팀장님. 접대하러 간 자리에서 카드 안 된다고 상대방에게 돈 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결국 자기 돈으로 결제해야 하는데, 그런 건 경비로 인정이 안 되니 생돈 나가게 되는 꼴입니다. 하하하.”
기껏 생각한다는 게 이런 쪼잔한 방법들이었지만, 총무팀 직원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호응했다.
쾅!
바로 그때였다.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총무팀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티, 팀장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렇게 호들갑이야?”
“지, 지금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우리 총무팀 사무실의 컴퓨터와 서류들을 전부 수거해가고 있습니다.”
“뭣이? 누가 감히? 대체 무슨 근거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 말로는 그냥 통상적인 회계감사의 일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통상적인 회계감사? 우리가 모르는 회계감사가 어떻게 통상적이야? 갑자기 이게 뭐지. 당장 가보자고. 누가 감히 이런 일을 꾸미는지.”
한상질 팀장과 팀원들은, 난데없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회의실에서 총무팀 사무실로 급히 뛰어갔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컴퓨터와 서류를 포함 거의 모든 물품이 파란색 박스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화가 난 한상질 팀장은 씩씩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보안 요원들에 의해 제지 되어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너희들 뭐야?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감히 대 동지그룹의 계열사를 이렇게 함부로 수색해도 되는 거야?”
“아! 이제 오셨군요. 한 팀장님. 함부로 수색하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회계감사일 뿐입니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했는데, 못 들으셨나 봅니다.”
한상질 팀장은 갑자기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동수가 뒷짐을 지고 선 채 뭔가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화가 난 그는 당장에라도 마동수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으며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성윤권의 무시무시한 표정에 기가 질려 속으로만 화를 삭여야 했다.
***
“왜 여기에 숨어계시는 겁니까?”
총무팀 사무실이 보이는 오른편 비상구에서 망을 보듯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윤권이가 던진 말이다.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거야.”
“그러니까 왜 여기서 지켜보고 계십니까? 그냥 총무팀 사무실에 가서 당당히 지켜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재미가 없잖아.”
“뭐가요?”
내 말에 윤권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두 눈을 껌벅이며 바라봤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말이야. 주인공은 평범하게 등장하지 않아. 항상 뭔가 극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등장하지. 그래야 더 재미있잖아.”
“관객이 누군데요?”
“누구긴 누구야. 한상질 팀장이지. 조금 전에 사무실을 지키던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갔으니 지금쯤 발이 안 보이게 뛰어오고 있을걸?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리고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어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해.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음. 저라면 그냥 밀고 들어가겠지만, 팀장님께서 질문한 의도는 그게 아니겠죠? 일반적으로는 답답할 것 같습니다.”
오호! 우리 윤권이 녀석 많이 컸다. 내 심중을 다 헤아리고.
“그렇지. 답답해서 막 짜증이 날 거야. 그때 내가 ‘딱’하고 나타나는 거야. 물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구세주가 아니라 조커처럼 악당같이 느껴지겠지만 말이야. 뭐야? 왜 그렇게 봐?”
“정말 사악함의 극치를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요.”
“하하하. 그게 다 사는 재미 아니겠어? 그러니까 너도 잘해. 나에게 밉보이는 순간 한상질 팀장이 겪을 고통 그 이상을 느끼게 해줄 테니까.”
“전 이미 팀장님에게 충성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고통은 미리 사양합니다. 앗! 팀장님. 저기 한상질 팀장하고 팀원들이 달려오고 있는데요.”
“드디어 쇼타임인가? 윤권아 너도 준비해라. 난 뭔가 비열한 웃음을 지을 테니, 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등장해야 한다. 어쭈. 누가 나한테 그런 험억한 표정을 지으래? 표정 안 펴?”
“팀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허. 우리 윤권이 머리 좀 커졌다고 반항하는 거야? 처음 만났을 때는 ‘분부시라면 따르겠습니다.’라며 비장하게 대답했었는데.”
“끄응. 알겠습니다. 분부시라면 따르겠습니다.”
윤권이와 잠깐 등장 방법에 대해 토론(?)을 나누는 사이, 한상질 팀장은 사무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 내가 등장할 시간이다.
쇼타임!
“아! 이제 오셨군요. 한 팀장님. 함부로 수색하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회계감사일 뿐입니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그렇게 전하라고 했는데, 못 들으셨나 봅니다.”
나는 최대한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한상질 팀장 앞에 등장했다. 내 모습에 그제야 지금 상황이 파악되었는지, 그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아니. 마 팀장. 이게 무슨 짓인가?”
“네? 무슨 짓이라니요?”
“갑자기 회계감사라니.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냐 말일세.”
“한 팀장님 귀가 안 좋으신가 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통상적인 회계감사라고요.”
“통상적이라는 뜻이 뭔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나? 설마 내가 TF팀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고 이렇게 보복하는 건가?”
당연하지! 싸움을 걸었는데 피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저를 뭐로 보시고 그렇게 서운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아주 통상적인 절차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어제 우리 TF팀 앞으로 총무팀에 대한 투서가 들어왔거든요.”
“뭐라고? 투서? 어제 투서를 받았는데 오늘 회계감사를 한다고? 허!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믿든 말든 그건 한 팀장님 마음이시죠. 하지만 투서가 들어온 건 사실입니다. 투서에 담긴 내용이 총무팀 내부자가 아니고는 알기 어려울 만큼 디테일 했습니다. 저와 이사님이 회계감사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도 그 투서가 충분히 믿을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우리 팀 내부자 소행이라고? 누구야. 어느 미친놈이 투서를 보낸 거야?”
나의 거짓말에 한상질 팀장은 더욱 노발대발해서 뒤에 있는 팀원들을 돌아보며 호통을 쳤다. 윤권이가 ‘대체 언제 투서가 날아왔습니까?’라는 듯한 의문 섞인 시선을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여줬다.
투서는 무슨. 그냥 내부를 한 번 흔들어보기 위한 나의 잔머리일 뿐이다.
“이봐. 진짜 투서가 온 거 맞나?”
모두들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한상질 팀장은 나에게 재차 확인했다.
“바보도 아니고 투서를 보낸 사람이 ‘내가 했소.’라고 고백할 리가 있습니까?”
“우리 팀원 중에 그럴 사람이 없어.”
“전 총무팀 팀원 중 한 사람이라고 한 적 없습니다.”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건가? 내부자가 아니고는 알기 어려운 내용이라면서?”
“하지만 내부자가 아닐 수도 있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익명으로 보낸 투서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총무팀 팀원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오늘 회계감사로 비리행위가 드러난다면 일벌백계가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주 가담자가 아니라면 감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조건하에 예전 일은 불문에 부칠 수도 있습니다. 괜히 의리 지킨답시고 침묵하지 마십시오. 그것 또한 암묵적인 협조라고 간주하고 형사고발까지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봐. 마 팀장. 그게 무슨 망발인가? 회계감사? 백날 해보게. 비리 사실이 드러나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한상질 팀장은 큰소리로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그의 팀원들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몇 명은 벌써부터 흔들리는 듯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내가 투서니 어쩌니 하며 쇼를 한 것도 이런 효과를 보기 위해서였다.
============================ 작품 후기 ============================
내일이면 총무팀 일은 마무리됩니다. 얼른 TF팀 위주의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조금 늦어지네요. ㅠㅜ
프리맨님 조언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기전에 선추코 3종 세트 잊지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