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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97화 (197/424)

0019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단, 하나만 빼고.”

“비자금 말씀이죠?”

“그래. 진짜 비자금이 동지마트를 통해 조성된 거 맞아?”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으로는 그렇습니다. 확실한 건 회계감사가 끝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고현호 이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라고 나와 심정이 다를 리 없다. 비자금에 직원들 비리에, 용역 업체와 협잡까지.

둘째 형인 고평호 상무가 동지마트를 매각하려고 움직였던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자꾸 사건이 터지고 있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의 고현호 이사라도 이 정도 상황이면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어휴. 정말 여긴 제대로 지뢰밭이군. 마 팀장은 누구라고 생각해?”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 질문을 하시네요. 몰라요. 이번엔 저도.”

“뭘 또 그렇게 빼고 그래. 어차피 둘째 형은 아니잖아.”

“그렇죠. 동지마트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면서 매각까지? 그런 모순된 행동을 할 리는 없겠죠.”

“아버지도 아닐 테고. 남은 사람은 작은 아버지와 큰 형 둘뿐이잖아.”

“그렇긴 한데 도무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는 이사님은 두 사람 중 누구 같습니까? 그래도 가깝게 봐왔으니 저보다는 훨씬 쉽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가 아는 두 사람 모두 비자금을 조성할 스타일은 아니야.”

“그럼 제3의 인물이라는 말씀입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있겠어?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이 동지마트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다? 아버지가 갈기갈기 찢어버리실걸?”

아버지가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뭔가 늬앙스가 이상하다. 회장님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인가?

“그럼 회장님은 알고 계신단 뜻입니까?”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에는 아셨겠지. 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그럼 왜….”

“왜 모른 척 두느냐고? 그건 동지마트에서 조성된 비자금을 개인의 사적인 용도로 착복하지 않아서겠지.”

“회사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의미입니까?”

“그건 나도 몰라. 회사를 위해서 사용했는지, 아니면 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게 아니면 우리 일가족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수도 있어. 아무튼, 확실한 건 아무리 은밀하게 조성을 한다고 해도 동지그룹에서 아버지의 눈을 피하긴 어렵다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고평호 상무님의 동지마트 매각계획도 알고 계셨을까요?”

“모르셨을걸? 그러니 형님이 나와 거래를 한 거지. 눈을 피하기 어렵다는 거지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의미는 아니야.”

“의미가 서로 다른가요?”

“아버지가 천재 경영자인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신은 아니야. 언젠간 알려지겠지만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지. 그건 작은 형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 그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웠겠지. 아버지가 눈치채기 전에 어떻게든 동지마트를 악화시켜서 다른 기업에 팔 수밖에 없게끔 만들면 되니까.”

뭐가 그렇게 복잡한지. 역시 돈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은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혹시 비자금 조성을 계속 모른척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야. 우리 회장님께서는 워낙 고고하셔서 당신께 칼을 들이밀지 않는 이상, 가족들끼리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하지 않으셔. 철저한 방관주의자이시지.”

“그러니까 비자금을 건드려도 회장님의 진노를 받는 일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래도 비자금 문제를 언론에 터트리면 안 되겠지? 그랬다간 동지그룹까지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으니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전에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죠. 지금으로써는 저도 막막합니다. 일단은 회계감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뤄두고 다른 일부터 해결하겠습니다. 총무팀, 물류팀, 인사팀. 이번 기회에 아주 박살을 내버릴 겁니다.”

비자금부터 용업업체와의 협잡까지 안 끼는 일 없이 모두 관여하고 있는 총무팀은 당연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가격 경쟁력을 떨어트려 매출에 불이익을 준 물류팀이나 용역 브로커 짓이나 하고 있는 인사팀 또한 그냥 둘 생각이 없다.

“그건 모두 마 팀장에게 맡길 테니까 알아서 처리해. 회사를 운영할 때 가장 기본되는 원칙 중 하나가 공과 과를 확실하게 하는 거야. 과를 범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야겠지. 아니면 또 재발할 수 있거든.”

고현호 이사에게 확답을 받았으니 더 이상 거칠 게 없어졌다.

솔직히 비자금 사건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농산물 비리는 그나마 낫다. 용역 회사와의 협잡 사실이 밝혀지면 자칫 계약직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악덕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서 쉬쉬하며 별다른 징계 없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이럴 땐 차라리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밝혀 언론을 우리가 주도하는 게 낫다. 어떻게 포장해도 비정규직 직원들을 등쳐먹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든 걸 인정하고, 대신 비난의 대상이 동지마트가 아니라 용역업체에 가도록 여론을 잘 형성해야 한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언론을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용역 브로커 문제가 잘못 불거지면 동지그룹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케이. 그건 내가 따로 연락을 주지. 다른 건?”

“일단은 그 정도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라고. 대신 다음에 올 땐 사직서 같은 걸 가져와서 날 협박하진 말아줘. 마 팀장이 날 버린다고 생각하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니까.”

“하하하. 하나도 걱정 안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니 그런 뻥은 다른 곳에 가서 치십시오.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진짠데. 내가 마 팀장에게 이렇게 신뢰를 못 받는 사람이었나? 내가 배를 갈라서 콩알만 해진 간을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야. 아무튼, 수고하라고.”

고현호 이사의 사무실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광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역 브로커 문제는 형사 고발이 불가피한 일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차피 경찰에 넘길 거라면 친구인 광우에게 맡기는 게 가장 현명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Rrrr

- 오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아니면 전화 못 거냐?”

- 잡담할 거면 전화 끊고.

역시 광우 녀석은 단호하다. 이게 녀석의 매력이다.

“진짜 까칠한 녀석 같으니. 물어볼 게 있어 전화했어. 혹시 말이야. 용역 브로커 비리 사건도 광역수사대에서 담당해?”

-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 다르지. 무슨 일인데 갑자기 용역 브로커 비리가 나와? 너,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지 그렇게 오래 안 되었거든. 그런데 설마 벌써 또 사고 친 거야?

“벌써 또라니? 나도 그러고 싶지 않거든. 그런데 어떡해?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는걸. 내가 지금 동지마트에서 일하고 있거든. 여기 좀 살려보려고 열심히 일하려는데 여기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이 용역업체와 짜고 비정규직 직원들을 등쳐먹고 있는 게 보이잖아. 그걸 못 본척해?”

- 동지마트 본사?

“응. 본사 총무팀과 인사팀이지.

- 그럼 한 지점이 아니라 모든 지점의 직원들이 대상이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 그럼 범죄행위가 여러 개 시·도·군·읍·면에 걸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사할 수 있어. 잘하면 괜찮은 건수를 잡을 수도 있겠는걸? 지난번 성폭행 사건도 그렇고 너는 참 사건을 잘 물어오는 것 같아. 이참에 사건 브로커가 되어볼 생각은 없냐?

“사건 브로커? 그런 직업도 있어?

- 이를테면 그런거고. 사실상 흥신소라고 보면 되지.

“흥신소? 하하하. 그건 사양할 게.”

- 싫으면 말고. 그래도 혹시 짤리면 생각해봐. 넌 천성이 트러블 메이커라서 사건 사고 잘 물어올 것 같아.

그때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됐고. 나 한가지 물어볼 게 있어.”

- 뭔데?

“사람들이 하는 짓은 어딜 가나 똑같잖아. 약한 비정규직 직원들 등쳐먹는 걸 꼭 우리 동지마트에서만 일어나라는 법이 어딨어?”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빙빙 돌리지 말고 요점만 말해봐.

“조사해보면 다른 마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말이지.”

- 음.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네. 솔직히 지점이 고작 10개밖에 없는 동지마트 보다는 3-마트, 엘마트, 포에버마트처럼 100개 이상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 직원들을 착취하기도 더 좋으니까. 등쳐먹을 수 있는 금액의 규모가 다르잖아. 물론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그렇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조사하는 김에 다른 곳도 같이 하면 되겠네. 어떻게 생각해?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사가 꼭 동지마트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 광우 녀석이 마음먹고 조사하면 사소한 거라도 나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만 나쁜 놈이 되는 게 아니라 똑같이 나쁜 놈이 된다. 수사가 끝나고 언론에 발표가 날쯤, 우리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마무리 짓는다면 오히려 이미지가 좋아질 수도 있다.

- 이 자식이 이제 수사 지휘까지 하려고 하네?

“그래서 조사 안 할 거야? 힘없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삥땅 처가는 아주 악질 같은 놈들이야. 그런 놈들을 모른 척하려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못 지나치는 정의감 넘치는 녀석이 광우다. 그러니 그 좋은 머리로 경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대학 4학년 신분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다른 길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경찰을 본인의 천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하여간 잔머리 굴리기는. 알았어. 인마. 그렇지 않아도 요즘 큰 건수가 없다며 위에서 잔소리 듣고 왔는데 소원 들어드려야겠네.

“대기업 건드렸다고 혼나는 건 아니고?”

- 내가 언제 그런 눈치 보고 살았냐? 난 어디까지나 익명의 제보자에게 용역업체에 대한 비리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하는 거야. 대기업이 나올지 구멍가게가 나올지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 난 바로 시작한다. 수고해라.

역시 나 이상으로 행동이 재빠른 녀석이다. 용역 비리에 대한 수사는 광우에게 맡겼으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 작품 후기 ============================

쉬라야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100억 넘는 재산이 있는데 굳이 골치아프게 일하는 주인공의 모습 이해하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복권에 당첨된 주인공이 회사 일을 계속 해야할 '당위성'을 독자님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대기업인 동지그룹에서의 성공. 훗날 동지그룹 총수의 오른팔 또는 왼팔이 된다면 복권 당첨보다 더 대단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연이의 존재입니다. 저는 여자 주인공인 시연이를 일부러 좀 잘나게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시연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거죠. 복권 당첨금으로 탱자탱자 노는 모습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남자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사업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런 소설은 많잖아요. 그래서 주인공에게 사업적 수완은 없는 것으로 해뒀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능력이라면 사업을 해도 왠지 잘할 것 같지만, 어쨌든 사업적 수완은 없습니다.

그러니 동지에서 고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ㅠㅜ

제가 좋아하는 최광우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언젠가 광우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야 할 텐데 말이죠. 다음 작품이 될지 다다음 작품이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ㅠㅜ

201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즐거운 한 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저는 아마 이 글을 예약으로 걸어놓고 태백산으로 향하고 있는 중일겁니다. 일출보게되면 독자님들에게도 행운이 가득하길 빌어보겠습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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