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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00화 (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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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나이는 스물두 살에서 세 살. 손에는 그 흔한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은 바짝 자른 손톱. 머리는 백 원짜리 머리끈으로 대충 동여매서 멋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군요. 거의 광대뼈까지 내려온 시커먼 다크서클을 보니 항상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겠군요. 가난한 고학생?”

“그게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될 수도 있죠. 가난한데 머리가 좋으면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거든요. 자신이 마치 대단한 인물인 양 착각에 빠져서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죠. 열등감, 피해의식, 자격지심. 보통 서라씨 같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죠. 한마디로 사회성 결여.”

실제로 내가 아는, 가난한데 머리가 좋은 사람들 대부분은 성실하고 겸손하다. 평범하지 않은 성격을 지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잔머리나 굴리고 깐죽거리기 좋아하는 나는 악당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과장된 일반화로 인신공격에 가깝게 몰아붙이는 건, 통통튀는 그녀의 성격을 눌러놓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실망이네요.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마동수 팀장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군요.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평가하는 모습.”

“그러는 서라씨는 색안경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제가 뭘요?”

“혹시 이전에 나와 대화 한 마디라도 나눈 적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나에 대한 모든 평가를 내려놓은 것이군요. 그렇다면 그 평가의 기준이 뭡니까? 매니큐어 없이 바짝 자른 손톱, 싸구려 머리끈. 하얀 피부라 더욱 도드라지는 다크서클. 이따위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한 저와 서리씨가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 그건….”

“사람이 그렇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그랬으면 세상은 이미 아이큐 높은 천재들이 지배하고 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천재들도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게 사람의 내면입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깊어요. 평생을 살아간 부부조차 배우자의 모든 것을 파악하지는 못할 정도로, 사람을 알아가는 건 어려워요. 심리학 책 같은 거 좋아하시죠?”

“네.”

“심리학은 원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학문으로 변질되어 가더군요. 사람을 이해하려는 학문이 오히려 사람에 대한 또 다른 색안경을 만든 셈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라씨는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나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서라씨처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의 기를 눌러 놓으려면 그녀가 믿고 있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깨버려야 한다.

“심리학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인정하십니까?”

“네.”

“그런데 서라씨는 심리학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으로 사람을 이해하기 보다는 공식에 대입하듯 사람을 평가했지 않습니까? ‘빨간색을 좋아해? 이 사람은 감정이 풍부하지만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겠군. 파랑을 좋아해? 차분하고 절제를 잘하는 타입이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 사람이 왜 빨간색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것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는 하지않고, 붉은색의 상징성에만 집착하려고 하잖아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휴….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심리학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심리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확실한 건 심리학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서라씨의 겉모습 몇 가지로 자존심만 높은 가난한 고학생이라고 평가한 것처럼요.”

“그래요. 인정해요. 하지만….”

몰아붙일 때는 확실하게 몰아붙여야 한다. 나는 바로 그녀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됐습니다. 서라씨의 변명을 듣자고 한 건 아니니까요. 동지마트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직원들의 마인드 같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의욕을 잃고 그냥 시간만 죽이는 사람들. 그 직원들을 바꿔야 동지마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컴퓨터처럼 인간의 감정을 심리학적 변수에 대입해서 평가하는 사람 말고요.”

“그건 팀장님께서 서라에 대해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알고 보면 얼마나 속이 깊고 따뜻한 아인데요.”

나의 적나라한 평가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수씨가 항변했다.

“속이 깊고 따뜻한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소문을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퍼트리진 않겠죠. 잠깐이지만 제가 본 서라씨는 꽤 명석해 보이는군요. 같이 일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좋습니다. 이미 파악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랑 같이 일하는 미래씨나 제 옆에 있는 윤권이가 서라씨처럼 명석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제 등을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요.”

“…”

“조금 돌아가고 조금 힘들어도 저는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만 일하고 싶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한 번만 더 이런 장난질을 하면 그땐 지금처럼 경고로 끝내진 않겠습니다.”

나의 이런 행동은 그녀의 계산에 없었을 것이다. 당황하는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진 서라씨와 자기 일처럼 분해하는 이수씨를 두고 1층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서라씨라는 사람과는 정말 같이 일 안 하실 겁니까?”

1층 비상구 계단에 이르자 윤권이가 내게 물었다.

“왜? 서라씨가 마음에 들어?”

“이성적 관심은 아닙니다. 그냥 봐도 똑똑해 보이잖아요. 저야 말이 팀원이지 팀장님에게 일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똑똑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일하기 정말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도 싫지는 않았어.”

“그런데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하고 오셨습니까?”

“윤권아. 팀이 왜 있는 줄 아냐?”

“같이 일하기 위해서요?”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야. 남들보다 다른 점은 잔머리를 굴리기 좋아한다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출 나다고 생각하진 않아. 팀이 그래서 필요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거든. 그러니 특출난 한 사람보다는 팀웍을 해치지 않는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더욱 중요해.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사람이 얼마니 쉽게 팀을 망가뜨리는지 그동안 많이 봐왔거든. 내가 맡는 첫 번째 팀에 그런 문제아를 들일 수는 없어.”

“그럼 서라라는 여자를 완전히 버리시는 겁니까?”

“글쎄. 달라진다면, 아니 달라지려고 노력한다면 다시 생각해볼 수는 있어. 어쨌든 지금의 그녀라면 내게 필요없는 존재야. 계륵이나 마찬가지거든. 나는 혼자서 잘난 사람보다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이 좋다.”

“그런데 팀장님도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이 녀석. 가끔보면 쓸데없이 예리하다.

“그러니까 더욱 문제지. 한 팀에 겸손하지 않은 두 사람이 있으면 결국 분쟁이 생기거든. 그리고 윤권아.”

“네. 팀장님.”

“너 말이야. 요즘 들어 은근히 기어오르는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자꾸 그러면 내 동생한테 이른다.”

“헉. 팀장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상수 형님에게 걸리면 저 죽습니다. 제가 앞으로 더욱 잘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

“멋지다.”

“뭐? 누가?”

“마동수 팀장님.”

“헐. 이 년이 이제 완전 미쳤구나.”

서라의 말에 이수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멋진 걸 어떡해?”

“임자 있다잖아.”

“멋지면 다 사귀어야 해? 멋진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연애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연예인? 미친 것. 이젠 별소리를 다 듣겠네.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너랑 일하기 싫다잖아.”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이건 계산에 없던 일이라. 고민을 좀 해야겠지?”

“아이고. 너도 이제 재벌 2세 병에 걸린 거야?”

“재벌 2세 병? 그건 뭔데?”

“나를 이렇게 막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래서 네가 좋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말해. 중 2병과 비슷한 병이지.”

“호호호. 그런가? 그래도 아까 그 말은 정말 멋지지 않았어? 인간에 대한 이해심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하지 컴퓨터처럼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싫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니까.”

“정말 미쳤구나. 내 친구 서라 맞아? 아픈말 들으면 더 좋아지는 그런 여자였어?”

“글쎄. 나도 이런 내가 이상해. 그리고 꼭 같이 일하고 싶어졌어. 지금의 내가 싫다면 인간적인 박서라가 되도록 노력해봐야지.”

“그건 반가운 소리다. 넌 원래 따뜻한 아이였으니까.”

============================ 작품 후기 ============================

박서라에 대한 반응이 안 좋아서 연참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는 앞으로 조심해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주 중요인물도 아닌데 괜히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ㅠㅜ

이번 편이 쓸데없는 사족이 될지 아닐지 걱정이 앞섭니다.

어쨌든 다음편부터는 시원시원하게 스토리 전개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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