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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202화 (202/424)

0020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

- 이해하기 어렵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현호 이사와 척을 질 생각을 했습니까?

“네? 아, 아니 그러니까 저는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라….”

상대의 차가운 목소리에 한상질 팀장은 크게 당황했다. 비자금 조성에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기에 당연히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냉대였다.

- 설마 우리 일을 돕고 있다고 고현호 이사가 만만해 보였던 겁니까? 비자금 조성이라는 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십니까? 조심 또 조심을 해도 모자를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의 셋째 아들과 힘겨루기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것참.

“죄, 죄송합니다.”

- 이게 죄송하다고 끝날 일입니까? 한상질 팀장님의 성급하고 우매한 행동 때문에 그동안 공들여 왔던 일이 모두 어그러지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그렇지만 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 왜요? 그동안 열심히 비자금을 조성해줬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해서 화가 나십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동지마트를 이용해 상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네? 그, 그걸 어떻게?”

수화기를 통해 예상하지도 못한 말이 들려오자 한상질 팀장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런, 이런. 그동안 우리 일을 도와주는 대가라고 생각하고 모른 척해줬는데, 그게 본인의 능력이 출중해서 들키지 않았다고 착각하고 계셨군요.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고현호 이사에게 기어오려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겠지만요.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동지그룹의 고위관계자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상질 팀장은 상대가 시키는 대로 뭐든 다했지만 정확한 그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지점장조차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방에 모가지를 날려버리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높은 사람이구나 막연히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고위직 관계자와 선을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그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위법행위라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덕분에 만년과장이던 그가 원래 팀장을 밀어내고 총무팀 팀장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렇죠. 동지그룹의 고.위.관.계.자.입니다. 그런데 다른 일고 아니고 회장님의 아드님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를 우리가 ‘허허’ 웃으며 반겨주리라 믿었습니까?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착각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신분부터가 다릅니다. 이건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도 아닌 왕족을 능멸한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상대의 냉정한 설명에 한상질 팀장은 그제야 본인이 얼마나 어리석을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그냥 장기판 위의 졸일 뿐이었다. 그런 주제에 감히 로열패밀리를 업수이 여겼으니 그것만으로도 죽을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최대한 서둘러 해외로 떠나세요. 아직 고현호 이사 측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루빨리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입니다. 당신만 사라지면 그들도 더 이상은 비자금 문제에 대해 파고들지 못할 겁니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경비는 당분간 우리가 지원하겠습니다. 그동안 재산은 가족들에게 정리시키도록 하세요. 그럼 그 돈으로 충분히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겠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자식들 교육 문제도 있고 갑작스레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지만,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상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그나마 살 길이 열린다는 열린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

“미적거리지 않아 좋군요. 그게 바로 당신의 위치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셨죠?”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우선 홍콩 비행기를 타도록 하세요. 늦어도 내일까지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아셨죠?”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한상질 실장은 곧바로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가면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기약하기 힘들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부모님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얼굴만 잠깐 보고 가족들과 하룻밤을 보냈다.

아쉬웠지만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와이프에게만 지금의 상황을 대충 설명하고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한상질씨죠?”

대한항공 발권 부스에서 티켓팅을 기다리고 있는데, 딱 벌어진 어깨에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동료와 함께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경찰입니다.”

“네? 가, 갑자기 경찰이요? 그런데 왜 저를?”

“지금 우리는 한상질씨를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이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확인시켜드릴까요? 아니면 여기서 시끌벅적하게 체포해드릴까요?”

“여, 영장요? 말도 안 돼! 어떻게 벌써 영장이 나올 수 있습니까? 비자금 내역이 이렇게 빨리 나올 수가 없을 텐데.”

“비자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한상질씨는 비자금이 아니라 동지마트 용역 비리 건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체면을 생각해 조용히 미란다 원칙을 읊어 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시끌벅적하게 체포되고 싶다면 도망가셔도 됩니다.”

“뭐라고요? 용역 비리요? 갑자기 그걸 어떻게?”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입니다. 이미 천호용역과 관계자들과 동지마트 인사팀장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니 순순히 서까지 동행하시죠?”

***

“동수씨! 히잉 보고 싶었어요.”

“시, 시연아. 여기 회사 앞이야. 잠시만 좀 진정해줄래?”

동지마트에 출근한 이후 정말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이라 거의 모든 시간을 업무에 쏟아붓다 보니 시연이를 만날 틈조차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 고생을 하며 회사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시연이 앞에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에 치여 그녀에게 소홀하다면 그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순간 하던 일을 접어버리고 시연이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그냥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라는 질문에 무조건 시간을 만들겠다며, 나와 만나는 시간을 1초라고 줄이고 싶다며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달려오겠다는 그녀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자마자 정문에서 나오는 나를 보며, 정말 쏜살처럼 날아와 안기는 시연이 때문에 카리스마 마 팀장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평범하게 안기는 것도 아니고, 러브 액츄얼리에서 영국 수상역으로 분한 휴 그랜트에게 안기던 나탈리처럼 조금은 민망한 마음이 들 정도로 격정적인 포옹이었다. 그 모습에 퇴근하던 직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 어떡해. 미안해요. 동수씨.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나가더라고요. 어쩌죠? 다른 직원들이 많이 놀릴까요?”

“하하하. 아니야. 괜찮아.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약혼녀와 포옹한 게 뭐가 잘못이라고. 걱정하지 마.”

이것 때문에 직원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카리스마 이미지가 무너지면 어떤가? 내게 중요한 건 그런 부끄러움보다 며칠 못 봤다고 나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시연이의 마음이다. 그래도 솔직히 약간 창피하긴 하다.

“정말요? 헤헤. 다행이다. 정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 모습 정도면 동수씨가 임자 있는 몸이라는 사실이 동지마트에 쫙 퍼지겠죠?”

“뭐? 그게 중요해?”

“그럼요. 얼마나 중요한데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동수씨 나이에 동지그룹 계열사의 팀장이 되는 거 정말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재벌 2세는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실장님’ 캐릭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서 동지마트 여직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받을 거라고 그랬어요.”

“뭐? 실장님? 하하하. 시연아. 드라마에서 나오는 실장님은 보통 꽃미남이라고. 나를 봐. 꽃미남보다는 산적에 더 가깝지 않아? 그러니 엄청난 인기를 받을 일은 절대, 저얼대 없어. 안심해도 돼.”

“그건 동수씨가 스스로에 대해 짜게 평가해서 그래요. 제가 볼 땐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제일 멋진 남자예요. 동수씨는!”

“시, 시연아. 사람들이 들어. 아우. 아무리 그래도 전 세계에서는 좀 너무하지 않아?”

“헤헤. 제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여요. 장동건보다, 원빈보다 동수씨가 더 멋진 걸 저보고 어떡하라고요.”

헉! 얘가, 얘가 점점. 이건 정말 갈수록 태산이다.

“알았어, 알았어. 그렇지만 절대 다른 데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지?”

“동수씨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동수씨!”

“응?”

“우리 오늘은 제가 가고 싶은 데로 가요.”

“그래? 어디로 가고 싶은데?”

“음. 일단은 비밀. 키 주세요. 오늘만 제가 운전할게요. 괜찮죠?”

“대체 무슨 일이길래 직접 운전까지 한다고 그래? 그래도 비밀이라고 하니 궁금해도 참아야겠지? 자. 여기 키 받아.”

시연이의 부탁에 별말 없이 나의 노란색 모닝을 넘겼다. 내가 순순히 자동차 키를 넘기자 그녀는 신이 난 얼굴로 운전을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운전에 익숙해진 시연이는 능숙한 솜씨로는 탄천교를 지나 양재대로로 접어들었다.

“저기 동수씨.”

“응?”

“있잖아요. 절대 오늘 제가 데리고 가는 곳에 가서 화를 내면 안 돼요. 알았죠?”

“음. 대체 무슨 일이길래? 무슨 큰 죄라도 졌어?”

“아니요. 제가 생각할 땐 죄는 아니에요. 그냥 동수씨에게 물어보지 않고 제 마음대로 결정했다는 게 마음에 좀 걸려서요.”

“그래 뭐. 까짓것. 우리 데이트도 오랜만에 하는데 다투면서 시간을 날릴 수는 없잖아. 약속할게. 절대 화 안 낸다고.”

“고마워요. 휴우. 정말 다행이다.”

나의 다짐에 안심이 되었는지 시연이는 그때부터 조잘조잘 며칠 동안 있었던 그녀의 일상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동차는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서초나들목으로 빠져나왔다.

“어라. 여긴 너희 집 근처 아니야?”

시연이가 자동차를 세운 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집과 불과 5분 거리에 떨어진 서초구의 한 빌라 앞이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빌라는 입구부터 경비가 철저했다.

대체 이곳으로 왜 왔을까 어리둥절하는 사이 시연이는 익숙한 듯 나를 이끌고 정문을 지나쳤다. 경비원들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여기 되게 좋아 보이는데, 혹시 집 새로 이사했어?”

“아니요.”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예요.”

“알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에 도착하자 시연이는 왼쪽 현관의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문을 열었다. 그리곤 나의 머릿속을 완전히 멘탈 붕괴상태로 만드는 엄청난 발언이 이어졌다.

“짜잔. 여긴 동수씨가 앞으로 살 곳입니다.”

============================ 작품 후기 ============================

시연이를 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잠깐 등장했습니다.

대체 이집의 정체는 뭘까요? 돈지랄 같은 무리수는 절대 아니니 지레짐작으로 욕하진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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