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응? 지금 이 녀석이 뭐라고 하는 거지?
“윤권아 지금 시연이가 뭐라고 한 거야?”
경호를 이유로 데이트까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고 있는 윤권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보스가 살 곳이라고 합니다.”
“그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시연아 뜬금없이 내가 살 집이라니?”
“일단 들어오세요. 어때요? 좋죠?”
넓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보다 넓을 것 같은 거실을 보며 받았던 첫 번째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연이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급 마감재로 꾸며진 집 안 구석구석은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엄청나게 좋아 보였다.
시연이의 취향이 반영되었을 것 같은 가구들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화사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그녀와 결혼한다면 살고 싶었던 딱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조, 좋긴 하네.”
“여기가 제일 꼭대기 층이라 위에는 다락방과 널직한 테라스도 있어요. 양재천이 바로 내려다보여서 저녁에 낙조를 보며 동수씨랑 같이 차를 마시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헤헤.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동수씨도 궁금하죠? 우리 얼른 다락방에 올라가 봐요. 네?”
“자, 잠깐만 시연아. 나도 가보고 싶긴 한데, 먼저 자초지종을 알아야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어?”
“음…. 절대 제 맘대로 했다고 화내면 안 돼요. 사실 동수씨가 여기 살면 좋을 것 같아 제가 샀어요. 되게 구하기 힘든 집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아빠 덕분에 겨우 구할 수 있었어요. 집을 사고 꾸미는 동안에 집값이 1억 원 이상 오를 만큼 인기도 엄청나요. 보안과 경비도 확실해서 동수씨에게 일어났던 사고가 일어날 일도 없고요.”
“그래.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그리고 그 마음 정말 고마워. 하지만 네가 무슨 돈으로 여길 사? 혹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거야?”
“아뇨? 제가 그럴 필요가 왜 있어요? 동수씨 돈 있잖아요!”
“뭐? 내 돈? 아! 월급통장을 네게 넘겼었지? 응? 설마 월급을 모아서 이 집을 샀다는 건 아니지?”
“네에? 제가 아무리 재태크를 잘해도 월급만으로 이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하죠. 대신 로열티 있잖아요, 로열티. 저보고 관리하라고 주셨잖아요. 설마 잊으신 거예요?”
시연이 말에 그제야 탁아소 관련 로열티가 생각이 났다.
D&Y피트니스 클럽에 대한 협상을 진행할 당시 윤 스포츠센터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문제가 될까 봐 시연이에게 모든 권리를 넘겼었다. 그러고는 그냥 신경끄고 잊고 살았는데 그게 이 집을 살 만큼 거액이 됐다고 하니 나도 좀 황당했다.
“아니. 안 잊었지. 그런데 너를 완전히 믿고 있다보니 그 돈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었거든. 알아서 잘하리라 믿었으니까.”
차마 잊고 있었다고 대답하지 못해서 말을 돌렸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 달라진다. 100% 솔직하게 이야기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머 그랬어요? 그 큰돈을 맡겼는데 하나도 걱정이 안 됐단 말이에요?”
“내가 아는 시연이는 현명하니까. 처음 한두 번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분명 잘해낼 거라 믿었어.”
“헤헤. 동수씨. 고마워요.”
나의 말에 감동 받은 시연이가 내 품에 폭 안겨왔다.
“그런데. 시연아. 대체 돈이 얼마나 모였길래 이런 고급 빌라를 살 수 있는 거야?”
“처음에 제가 관리 하던 돈이 10억 원 이었어요.”
“응? 내가 준 돈은 계약금 3억 원이었는데?”
“그건 계약금이고 얼마 안 있다가 바로 7억 원이 다시 들어오던걸요? 아빠한테 물어보니까 매장마다 1년에 1억 원씩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그게 원래 선불이었어?”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동수씨 말처럼 돈을 까먹었어요. 천만 원 빼서 투자했는데, 이백만 원인가 손해보고 급 좌절했었거든요. 나는 재테크에 소질이 없나 싶어 우울한 마음마저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동수씨가 제게 그랬잖아요. 처음 몇 번은 손해 볼 거라고. 하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누구보다 잘해낼 거라고 그렇게 용기를 줬어요. 기억나요?”
“그럼 기억나지. 처음에 손해 봤다고 많이 우울해 했었잖아.”
이백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준 돈만 해도 월급통장까지 합치면 4억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런 큰돈에 비하면 이백만 원은 정말 소액이라고 할 만큼 미미했는데, 그 돈을 잃었다고 우울해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한편으로는 그런 소박한 모습이 사랑스럽고 예뻤고, 또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연인이 고작 돈 이백만 원에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며 허세를 부리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1억 원까지는 날려도 괜찮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
“네. 제가 막 우울해 하니까 동수씨가 1억 원 정도는 날리면서 시작하는 거라고 고작 이백만 원에 기죽지 말라고 해서 저 정말 힘 났어요. 그리고 정말 몇 번 하다 보니 큰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돈을 벌기도 했고요. 그런데 동수씨.”
“응?”
“제가 동수씨한테 월급통장을 넘겨받은 지가 이제 1년이 지났거든요. 그동안 열심히 재테크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결론은 하나였어요.”
“그게 뭔데?”
“우리나라에서 투자는 부동산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요. 특히 강남과 서초는 거품이 꼈다 꼈다 하면서도 식을 줄을 몰라요.”
“그래서 이 빌라를 산 거야?”
“네.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고 해서요. 그것보다는 동수씨의 안전이 더 중요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연아. 여기 빌라 솔직히 정말 좋아 보이거든. 평수도 100평 가까이 되어 보이고. 여기가 10억 원밖에 안 해?”
“당연히 불가능하죠. 20억 원 좀 넘게 줬어요.”
“뭐? 어떻게 20억 원이 넘는 돈이 네 수중에 있어? 설마 재테크로 그만큼 번 거야?”
헐.
얘가, 얘가 20억 원이 누구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큰돈을 한방에 쓸 수 있지? 나는 시연이의 생각지도 못한 큰 씀씀이에 깜짝 놀랐다.
“아니요. 제가 재테크로 그만큼 벌 능력이 되나요. 사실 2010년도 로열티 정산을 받았어요. 원래는 우리 윤 스포츠센터에 있는 탁아소만 로열티를 지급했는데, D&Y피트니스 클럽도 탁아소를 운영하면서 로열티가 늘어났어요. 우리가 일곱 군데, D&Y피트니스 클럽이 지금 공사 중인 곳까지 다섯 군데. 그래서 총 12억 원이 들어왔어요. 역시 동수씨는 능력자 같아요.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 없이 순수하게 본인의 힘으로만 1년에 10억 원 넘게 버는 사람 우리나라에 몇 없잖아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리고 제가 이 남자의 약혼녀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고요. 헤헤.”
시연이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확실히 이해가 갔다. D&Y피트니스 클럽이야 얼마 전까지 내가 진행했던 사업이다. 그러니 현황은 시연이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지금은 다섯 군데지만 앞으로 열 군데까지 늘릴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이상으로 교육열이 심한 중국에 진출할 때도 지금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가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다.
사업이 계획처럼 순조롭게 성장한다면, 앞으로 몇 후에는 1년에 20억 원을 넘게 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화를 내지 않기로 약속했고, 그 돈에 대한 관리는 전적으로 시연이에게 맡긴 상태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저지른 일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 약혼녀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20억 원이라는 돈도 잊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래 잘했어. 지금 살던 오피스텔은 이미 납치를 한 번 당했던 곳이라 나도 좀 찜찜했었거든. 어디로 이사를 하나 생각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한방에 고민을 해결해주고. 고마워.”
“정말 그랬어요?”
“물론. 그런데 시연아.”
“네. 동수씨.”
“앞으로는 내가 반대할 것 같아도 꼭 나랑 상의하자. 이번 일은 시연이가 내 안전이 걱정돼서 결정한 일이라는 거 알아. 그래서 정말 정말 고마워. 그런데 불안한 네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놨으면 나도 절대 반대 안 했을 거야. 우린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할 사이잖아.”
“당연하죠. 동수씨랑은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요.”
“그럼 상대방이 반대할 것 같아도 대화로 풀어야지.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 거 나로서는 좀 서운해. 내가 그렇게 대화도 안 되는 꽉 막힌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안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잔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이유가 어쨌든 연인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미안해요. 동수씨를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요.”
20억 원짜리 깜짝 선물이라니, 우리 시연이 스케일 한 번 끝내준다. 그래도 싫은 소리는 여기까지다. 그녀는 똑똑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아 들었을 것이다.
“하하하. 진짜 깜짝 놀랐어. 나중에 시연이와 결혼하면 이런 집에서 살아야지 하며 생각했던 그런 공간이 눈앞에 쫙 펼쳐져 있는 걸 보고, 이 아이가 혹시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의심이 들었다니까.”
“헤헤. 정말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그럼. 진짜. 마음에 들어.”
“사실 그동안 동수씨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가끔 이야기해줄 때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안 잊으려고 꼼꼼히 메모해뒀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사실들이 나열되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메모가 점점 쌓이니까 이 남자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상상이 가더라고요. 그 상상을 그대로 여기 옮겨 놓은 거예요. 주택이 아니라 빌라라서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웠지만요.”
아!
내가 지나치듯 던진 말을 전부 기억해 그걸로 집을 꾸몄다는 이야기에 뭉클하다 못해 가슴이 벅찼다. 내 생애 최고 로또는 역시나 시연이가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작가에게 댓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와 비슷합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할 수밖에 없어요. ㅠㅜ
모든 분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은 분에게 만족을 드리고 싶은 제게 독자님의 의견은 항상 큰 조언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