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잘하고 계시는군.”
“말발이야 원래부터 좋으셨으니까요. 저도 그 말발에 낚여 이사님과 같은 배를 타기로 한 것 아닙니까?”
인터뷰는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김 부장님이 본인과 절친한 기자를 섭외했으니 인터뷰 내용도 우호적이었고, 고현호 이사 또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하하. 그런 거였습니까? 이사님이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군요.”
“네?”
“이번 용역 비리 사태에서도 느꼈지만, 마 팀장은 정말 신통방통합니다. 이런 복덩어리를 낚으셨으니 가장 잘한 일이죠.”
“헉. 그렇게 대놓고 칭찬을 하시면 민망합니다, 부장님.”
“하지만 볼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네요. 이번 인터뷰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냥 단순히 인터뷰 준비만 했는데, 마 팀장은 저보다 몇 수 밖을 더 내다봤지 않습니까? 그 짧은 시간에 이사님의 고가 자동차를 정리하고, 그 사실을 인터뷰어에게 흘려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알린다. 정말 타고난 순발력이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잔머리일 뿐입니다. 사실 부장님이 다 만들어놓은 판이죠. 제가 아무리 꼼수를 남발해도, 이사님을 인터뷰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뷰어가 아니라면 별 관심도 받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버드 유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김학수 부장님의 인맥은 보통 직장인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다양했다. 특히 미디어쪽 관계자들과의 친분은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알랑방귀를 뀌며 오지랖 넓게 돌아다녀야 하는 나 같은 인간과 달리, 자신은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드는 스타일. 김학수 부장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차분한 성격에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좋아서 따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부럽기 그지없었다.
지금 고현호 이사와 인터뷰하고 있는 유지후 기자는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능하고 신뢰받는 인터뷰어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 또한 김학수 부장님의 인품에 반해 스스로 지인임을 자처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그런 유지후 기자가 나서서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밥상을 아무리 잘 차려줘도 마지막에 떠먹어야 할 사람이 제대로 떠먹지 못하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죠. 나는 그래서 마 팀장이 든든합니다.”
***
모 사이트 자유갤러리
[형들. 나 궁금한 게 생겼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
요즘 고현호 이산가 하는 재벌 2세 때문에 동지마트가 엄청나게 유명했잖아. 나도 호기심이 생겨 검색해봤더니 우리 집이랑 그리 멀지 않더라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동지마트에 갔다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아빠 엄마를 졸랐어. 좀 돌아가야 했거든. 아빠 엄마도 궁금했는지 근처에 엘마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부탁을 들어주셨어.
그런데 말이야. 매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깜짝 놀랐지 뭐야. 이유가 뭐냐고? 웬 거의 여신급 포스를 가진 여자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웃어주더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뭐야.
응? 그런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해줄리 없다고?
쳇! 형들 좀 너무하는구나. 그래. 그건 나도 인정. 하지만 정말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여자였던 건 사실이었어. 단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사진 속 모델이었다는 게 다를 뿐이라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짓하는 사진이 대형 광고판으로 제작되어 동지마트 입구에 ‘똻’ 하고 붙어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저절로 마트 안으로 들어가게 되더라니까!
안 믿을 것 같아서 사진 남겨.
- 동지마트 여신급 모델.jpg-
어때? 이래도 내가 ‘개뻥’을 치는 것 같아? 이 사진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으면 그건 딱 두 종류라고 봐. 게이이거나 예쁜 여자라면 부조건 까고 보는 오크년들.
아무튼 말이야. 나는 지금 그녀에 완전히 반했어.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는 걸 처음 알았어. 나는 이제부터 우리 동지여신님의 팬이 되기로 했어. 그런데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지금까지 무명이었는지 의문이 들어.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거야. 그래서 나 혼자 동지여신님으로 부르고 있어.
형들. 우리 동지여신님이 누군지 알려줘. 정말정말 궁금해.
그렇다고 내가 찾아가서 수작을 걸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절대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 가톨릭 신자에게 성모 마리아 같은 존재. 내게 동지여신님은 그런 존재야.
그냥 순수하게 팬클럽을 만들어 열심히 찬양할 생각이야. 도와줘. 형들.
- 헉! 뭐 저렇게 개이쁨? 정말 동지마트에 가면 대형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나 당장 그리로 가겠음. 서울에 동지마트가 어디 어디에 있음?
└ 인터넷에 검색해서 홈페이지에 가봐. 그리고 동지마트에 가면 동지여신님의 사진이 담긴 쿠폰북을 나눠주고 있어. 거기엔 내가 올린 모습과 전혀 다른 포즈의 사진이 다섯 개나 있어.
- 뭐지. 저렇게 예쁜데 정말 무명?
└ 응.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연예인 활동은 안 한 것 같아. 그리고 동지마트에 문의했는데 개인의 프라이버시라 알려줄 수 없데.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팬클럽을 만들고 싶은 순수한 의도라고 해도 안 된대.
- 어! 나 저 사람... 아니 동지여신님이 누군지 알아. 동지랜드 광고 모델이었어.
└ 확실한 정보야? 개구라 아니고?
└ 확실해. 예전에 여자친구랑 놀러 갔다가 동지여신님 사진이 들어간 안내책자를 보고 진짜 예쁘다고 감탄했었거든.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내가 예쁘다고 감탄을 했는데, 여자친구가 화를 안 내고 나랑 똑같이 감탄하더라는 거지. 걔가 그랬어. 질투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나야 하는 거라고.
└ 고마워. 방금 확인해봤는데 동지랜드에서 모델을 한 게 맞더군. 아직도 동지여신님이 들어간 안내책자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해서 내일은 거기에 가보려고 해. 복 받을 거야.
-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예쁘다.
└ 형 마음 나도 이해해. ㅋㅋㅋ
- 어! 윤시연 작가님이다. 우와!!! 대박!!!
└ 뭐? 윤시연 작가님? 작가야?
└ 응. 여행 에세이 작가야. 엄청 유명해. 베스트셀러 작가야. ‘그대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라는 여행 에세이를 써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거든. 팬클럽도 있어.
└ 헉. 대박! 방금 ‘윤시연’이라고 검색하니 나온다. 형! 정말 멋져. 나도 팬클럽에 당장 가입할 거야.
└ 내가 좀 멋지긴 해.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둬야 해. 윤시연 작가님. 남자친구 있어. ‘그대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라는 에세이도 사실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여행 일기야. 그걸 선물 받은 남자친구가 감동 받고, 깜짝 선물로 작가님 몰래 책을 만든 게 베스트셀러가 된 거지. 그래서 거기 팬클럽은 남자친구에게 안 좋은 말을 남기면 무조건 강퇴야.
└ 정말? 팬들이 싫어 안 해? 그리고 남자친구를 반대하는 팬클럽도 있을 거 아냐?
└ 일단 대부분 팬은 윤시연 작가님의 미모를 알기 전에 책을 읽고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야. 그러니 싫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이 잘 되길 응원하는 분위기야. 그리고 반대하는 팬클럽? 물론 있지. 하지만 윤시연 작가님이 직접 활동하고, 가끔 보인 사진이나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유일한 팬클럽이야. 상식적으로 어디에 가입하고 싶겠어?
└ 당연히 윤시연 작가님이 활동하는 팬클럽이지. 나도 당장 가입할래. 고마워. 형!
- 나도 아는 사람. 내가 올해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1년 선배님.
└ 오! 동지여신님은 공부도 잘하셨구나. 얼굴도 예쁘고,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고. 여신님답게 완벽해.
└ 공부는 그냥 그런 거 아님? 요즘은 서연고 성한서이라고 보면 됨.
└ 뭔 개소리. 요즘도 서성한임!!
└ 개뿔. 한양대가 최고.
└ 인문은 서강대, 자연은 한양대.
└ 왜 갑자기 대학 논쟁이래. 저 위에 글 남긴 네 명은 제대로 된 대학도 못 나왔을걸? 꼭 되지도 않은 놈들이 남의 대학 서열에 열을 올리더라. 니들이 그런다고 그 대학에서 감사패라도 줄 것 같아? 하긴 그렇게 멍청하니 쓸데없이 대학 서열 논쟁을 하고 있는 거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 대학 논쟁 의미 없음. 윤시연 선배님 전체 수석이었음. 지금 남자친구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일부러 우리학교에 지원했다고 함.
└ 대박!!! 일편단심. 여신님답게 마음도 한결같구나. 동지여신님이 더 좋아졌다.
***
인터뷰가 끝나고 이틀 후 두 사람의 대담이 담긴 인터뷰 내용이 주간지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반응은 처음 고현호 이사에 대한 기사가 나갔을 때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대중들에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같이 식사를 하러 가면 얼굴을 알아보고 고현호 이사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그와 더불어 시연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또한 엄청났다. ‘동지여신’이니 어쩌니 하며 수군거리는 바람에 야외에서 데이트는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그 바람에 데이트는 주로 집에서 했는데, 솔직히 그게 꼭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윤권이 녀석이 눈치도 없이 집안에서 꼼짝달싹도 안 해 불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좀 어이가 없는 건 시연이가 쓴 ‘그대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낸다.’는 에세이가 갑자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팔릴 만큼 팔려 하향새를 걷던 책이 작가의 미모가 화제가 되며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게 웃겼지만, 출판사를 운영하는 시연이 어머님에게 마치 내가 의도한 일인 것처럼 자랑하는 걸 잊지 않았다.
어쨌든, 나와 가까운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치러 불편함은 있었지만, 불편하면 불편해질수록 동지마트의 상황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하지만 여기서 안심할 수는 없다. 이건 반짝인기를 등에 업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러다가도 큰 사건·사고가 터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동지마트에 쏠렸던 대중들의 관심은 금방 사라진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일시적 관심을 지속적인 익숙함으로 바꿔야 한다.
내 임무는 거기까지다. 10여 개의 매장으로는 경쟁력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건 고현호 이사가 방도를 마련한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최대한 오래가도록 동지마트의 생명을 연장시켜 놓으면 된다.
============================ 작품 후기 ============================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동지마트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방식 괜찮나요?
벌써 일요일이 끝났습니다. ㅠㅜ 시간이 왜 이렇게 잘 가는지. 푹 쉬고 즐거운 한주 맞이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기전에 선추코 3종 세트 부탁드려요 ^^